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23화 (23/137)

〈 23화 〉 chapter 22. 노아공연예술 고등학교

* * *

“정말 이 학교에 지원할 거니?”

“네.”

“이 성적이면 다른 좋은 학교들도 갈 수 있을 텐데......”

“모델이 꿈이라서요. 이 학교는 꼭 가고 싶어요.”

“실기 100%인 건 알지? 준비는 어련히 네가 하고 있겠다만, 그럼 부모님도 동의하신 사안이라니까 우연이는 노아예고 지원하는 걸로 할게.”

“네 감사합니다.”

“다음 친구 불러주렴.”

고개를 작게 숙인 나는 그대로 교무실을 나왔다.

‘노아공연예술 고등학교.’

내가 진학을 원하는 학교였다. 고등학교 중에서 유일하게 패션모델학과가 있는 곳.

일반전형이 있는 곳들에 반해 노아 예고는 실기가 100%였다. 오히려 그편이 나한테 더 이득이 되겠지만.

‘고등학교는 나와야지.’

원래는 대학교도 갈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다. 전성기를 생각하면 20대 초반이야말로 바쁠 테니까.

사실 모델 아카데미를 들어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겠지만 학력을 중졸로 끝날 생각은 없었다.

‘모델학과면 활동도 할 수 있으니까.’

배우려고 학교를 다니는 건 아니었다. 고작 졸업장 하나 따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우연아. 넌 어디 고등학교 갈 거야?”

“노아 예고. 학과는 모델학과로”

“역시 넌 그쪽으로 가는구나. 성공해도 나 모르는 척하면 안 돼!”

옆자리 애가 하는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마 우리가 다시 만날 확률은 거의 없지 않을까?’

이 넓은 세상에서 아마 중학교 때 1년 같은 반했던 애를 만날 확률은 적었다. 애초에 진로도 다른걸.

‘고등학교는 좀 다르겠지만.’

성인이 되기 직전 다니는 학교인 만큼 인연이 작용할 확률이 컸다.

학교를 진학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학연, 즉 인맥이기도 했으니까 말 다 했지 뭐.

모델이라는 직업을 꿈꾸며 모델학과에 온 동급생부터 선배, 후배 그리고 선생님까지. 또 예술제나 패션쇼 같은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에이전시 쪽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이고.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꽂아줄 수 있는 게 학연이었다. 그걸 크게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성년자 때는 즐겨야지.’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보내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

“자! 다들 오늘 너무 수고했고 선생님이 너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고등학교 진학 상담 때문인지 하루가 통째로 자습 혹은 영화였다.

유독 종례가 늦게 끝나는 반이었기에 한 귀로 들으면서 딴짓을 했다.

‘어라, 쟤가 왜 저깄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복도 창문 쪽으로 복도에 서 있는 한송이가 보였다.

저 반은 아마 종례가 일찍 끝났을 텐데 우리 반 앞에서 기다리는 걸 보면 아마 날 기다리는 거 같은데.

같은 반에는 송이와 친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무슨 일 있어?”

“아냐. 그냥 오랜만에 같이 하교하자고 하려고 했지.”

“그래? 그러면 가자. 근데 너 내가 같이 가는 애 있으면 어쩔 뻔했어.”

“...... 없는 거 알거든.”

예상했던 대로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은 나였다.

살짝 놀리니 입술을 삐죽내밀면서 대답했고, 우리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면서 걸었다.

‘오랜만이긴 하네.’

서로 친구가 없었던 1학년 초반과는 달리 3년 내내 다른 반이 되면서 학교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거나, 특별한 기념일에 캐톡하는 정도가 다였다.

중간중간 힐끔거리면서 쳐다본 송이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넌 학교 어디 가냐?”

“서울 예고.”

“어? 너 예고 가?”

가볍게 던진 물음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에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서울 예고를 간다고? 그러고 보니 꿈이 뭐였더라.’

언제 한 번 들었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서울 예고면 노아 예고 만만치 않게 예고 쪽에서 알아주는 학굔데.

솔직히 말하면 인문계에 진학할 줄 알았다.

내가 당황한 걸 알았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 배우 하려고. 오늘도 연습하러 가.”

“배우? 힘들 텐데.”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우리는 실기 60퍼센트더라. 너도 예고 갈 거지?”

“응. 노아 예고 패션모델학과로 가려고.”

“......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말하면서 송이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 얼굴만 보면 성공하겠네.’

연기 실력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 관상에 의하면 저 얼굴은 배우로 성공할 얼굴이었다.

그렇게 입시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고.

“조심히 가.”

“응 너도 연습 잘하고.”

손을 흔들면서 헤어졌다. 나는 이대로 쭉 가야 했고 송이는 버스를 타야 했으니까.

그렇게 가던 도중 잠깐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는데,

‘아직도 보고 있네.’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지 눈이 잠깐 마주친 것 같았다.

“나중에 더 좋은 남자 만나겠지~”

애써 외면했던 사실은 아마 이대로 영원히 묻힐 거다.

‘아니, 완전 애기 때부터 알던 어린애랑 어떻게 만나.’

아마 송이도 예고에 가면 나보단 아니겠지만 꽤 생긴 남자애들은 만날 거다.

그날, SNS를 통해 그녀가 와일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

11월 첫째 주, 노아 예고에 원서접수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떨어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부모님은 걱정하고 계신 것 같았지만.

“네가 안 붙으면 누가 붙어.”

다윤은 당연히 내가 붙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SNS가 워낙 커지면서 나라는 존재가 사람들에게 모델로 많이 알려져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모델이라는 직업을 그만큼 좋아하고, 내겐 재능이 있으니까. 또 이 세계에서 남자라는 존재가 가지는 우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남녀 모델의 연봉이 몇백억이나 차이 났다.

‘워킹, 포즈, 특기, 질의응답, 활동 경력’

11월 셋째 주에 있을 실기 고사와 면접에서 볼 것들이었다.

질의응답은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이 안에 있으니 문제없고, 활동 경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워킹, 포즈, 특기.

포즈는 딱히 연습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자신 있는 포즈를 비롯해서 여태 했었던 모든 촬영들에서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했으니까.

특기는...... 연기로 해야겠다. 춤은 안 춰봐서 모르겠고 표정 연기에는 꽤 자신 있었기에 간단한 연기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워킹.

나를 바라보던 관중과 빛나는 조명 위를 걷던 그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생의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졌지만 또렷하게 기억 남는 몇 장면들 중 하나.

걸음걸이야 평소에도 몸에 길들여 놨었지만 워킹은 연습할 필요가 있었다.

감을 되찾아야 하니까.

연습실을 예약해서 워킹을 몇 주간 연습했고

‘더, 더. 아직 부족해!’

쇼에 섰었던 때의 워킹 감각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걸었다. 상체를 거의 고정하다시피 당당하게 걷는 걸음.

그렇게 실기 고사 이틀 전까지 연습한 뒤에야 만족스러운 워킹을 해낼 수 있었고

“수석 해야지.”

연습실 바닥에 누워있는 눈에는 전에 없던 열기가 차 있었다.

****

“내일부터 학교 안 가기로 했지?”

“네. 연습해야죠.”

“송이는 참 열심히 해서 좋아. 그럼 연습 시작할까?”

“네! 잘 부탁드립니다.”

연기 선생님 앞에서 연습했던 대사를 내뱉으며 송이는 연기했다.

“내가 너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날 한 번만이라도 봐주면 안 돼?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난 안 되고 걔는 되는 건데......”

몇 차례 이어진 연기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들렸다.

“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해. 특히 몰입하는 게 또래 애들보다 빨라. 짝사랑이라도 했었니?”

“네? 아 그......”

“원래 그 나이 때는 한 번씩 해보는 거지 뭐. 근데 의왼데? 송이가 짝사랑할 남자애가 있다니.”

어지간히 잘난 남자애였겠다며 말하는 연기 선생님의 말에 송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그 애는 저보다 훨씬 멋진 여자를 만날걸요.’

소꿉친구라는 이름으로 몇 년 동안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를 못했었다. 왜냐면, 그 애가 너무나도 잘났으니까.

페룩으로 한창 유명세를 떨치고 피팅 모델을 하면서 우연은 전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당장 그를 좋아한 여자들만 해도 한 트럭이고.

그래서 더더욱 고백할 수 없었다. 그런 애들과 자신이 똑같은 애가 돼버릴까 봐.

‘차라리 차일 거면, 친구로라도 남는 게 낫지.’

그 애는 자신이 살면서 본 남자애들 중 가장 예뻤고, 가장 빛났다. 웃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심장을 뛰게 했으니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씁쓸한 마음을 애써 지워내고 다시 연습에 집중했다.

“이 부분 발성 똑바로 해서 해보자. 표정도 같이 해서”

“네!”

연습생 신분으로 들어온 지도 어느새 반년. 고등학교 입시가 끝나면 오디션을 보러 다닐 예정이었다.

와일 엔터테인먼트.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소 엔터테인먼트로 나름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이 소속된 소속사.

길거리 캐스팅이 된 후로 자꾸만 관심이 가게 되면서 가지게 된 배우라는 꿈이었다.

‘아직은 꿈일 뿐이지만’

“너무 늦게까지 연습하지 말고, 컨디션 조절도 실력이야.”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자신이 배우가 된다면, 스타가 되어 있는 우연에게 언젠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렸을 때, 나 너 사실 좋아했었다?’

가벼운 장난으로라도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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