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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는 법-24화 (24/137)

〈 24화 〉 chapter 23. 실기 고사 (1)

* * *

11월 29일 수요일.

노아 예고의 실기 고사이자 면접날이 밝았다.

“우리 아들, 긴장하지 말고 항상 하던 대로 잘하고 와! 이 아빠는 네가 합격할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야! 꼭 붙어야 된다. 진짜 떨어지면 말도 안 되는 거 알지? 논란이 생길 만해.”

“잘하고 올게요. 그동안 연습도 열심히 했으니까 뭐 좋은 결과 나오겠지.”

“떨지 말고 잘하고 오렴.”

전날부터 시작된 가족들의 응원은 당일 아침까지 이어졌다.

실기 100%로 반영된다는 말에 다들 놀랐는지 종종 떨어져도 괜찮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내가 떨어질 일은 없지.’

당사자인 나로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하튼 모두의 응원을 받으면서 나는 짐을 챙긴 뒤 아버지 차로 탔다. 원래 같았으면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었겠지만 서류부터 실내화, 실기 의상까지 챙겨야 했으니까.

‘차 타고 가는 게 제일 편하지.’

노아 예고는 여기서 차로만 1시간 거리였다. 짐도 있는데 대중교통으로 힘 빼는 것보다 곱게 차로 이동되는 게 낫지.

“우리 아들이 벌써 고등학교 면접 보러 간다니까 잘 안 믿기네.”

“이제 시작인데요 뭘,”

“그래도...... 남자 모델이라는 직업이 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를 잠깐 쳐다본 아버지가 말을 이어나갔다.

“힘든 일 있으면, 아빠한테 꼭 말하고. 이상한 여자 있으면 여기를 콱 때리는 거 알지?”

“알죠. 힘든 일 있으면 아빠한테 꼭 말할게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대화가 끝났다.

‘어쩐지 묵혀두셨던 말들을 하신 거 같네.’

걱정과 응원의 말이 반이었지만 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한 아버지의 염려가 드러났다. 단 한 번도 내게 반대하는 말은 하시지 않으셨지만

이게 아버지의 표현이신 거겠지.

시간을 보니 어느새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반이나 왔네.

“머리 넘긴 게 깔끔하니 아주 예쁘게 생겼네.”

“으음...... 나쁘진 않죠.”

그다지 좋지도 않지만.

거울에 비친 내 머리는 이마가 보이도록 뒤로 넘긴 머리였다.

모든 화장과 액세서리 착용이 불가했기에 얼굴에는 스킨과 로션만 발랐다. 이마를 보여야 하는 것도 규정이었고.

넘긴 머리도 어울리는 사람들은 어울리지만 개인적으로 지금 내 얼굴은 내린 머리로 할 수 있는 스타일링들이 잘 어울렸다.

머리를 잘 넘기질 않아서 그런가 유독 아버지의 반응이 좋았다.

‘다른 가족들은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노래를 틀고 간간이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시간이 지나 노아 예고에 도착했다.

“도착했다. 저기서 내려주면 되려나?”

“네. 데려주셔서 감사해요!”

“끝나면 바로 전화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

고사 시간은 11시. 1시간 전까지 대기실에 입실해야 했기에 지금 시각은 9시 40분이었다.

대기 시간과 차례를 생각하면 아마 한두 시간 정도 걸리겠지.

차 안에서 계속 기다리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끝나면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해야지.

‘자취도 해야 되는데.’

건물로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노아 예고에는 기숙사가 없으니까.

아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게 분명하고 그렇게 된다면 매일 대중교통을 타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나중에 한 번 자취 얘기도 꺼내봐야겠네.’

그렇게 고사장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데스크 앞에 서 있는 여자애들 몇 명 보였다.

“3층이네.”

“빨리 가자 이러다 늦겠어.”

화살표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진 여자애들을 뒤로하고, 안내데스크로 다가서자 학과별 고사장이 적혀 있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4층이네.’

패션모델학과 고사장은 4층이라고 적혀 있었다.

화살표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니 계단이 나왔고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기초체력을 키운 보람이 있네.’

4층에 도착하고 나서도 몸에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걸 보니 이 정도론 이제 운동으로도 안 치나 보다.

“탈의실이 있어?”

고사장과 대기실을 알리는 화살표들이 있었으나 내 눈길을 끈 건 탈의실이었다.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에 실기 의상으로 갈아입고,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했기에 화장실에서 갈아입을 생각이었는데.

‘학교가 시설이 좋단 말이지.’

올라오면서 느낀 부분이기도 했다. 건물이 큰 것도 있지만 시설이 좋아 보였으니까.

그만큼 등록금이 비싸겠지.

끼익ㅡ

남자 탈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울을 보고 있었던 남자 두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귀엽네.’

키가 컸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뭔가 풋풋한 티가 났다.

하지만 왜인지 내게 시선을 고정한 두 명은 먼저 고개를 돌릴 생각이 없어 보이니, 내가 둘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갔다.

옷과 신발을 교체하고 가슴에 수험표를 달고 나오니까

“다 들어갔나 보네.”

아무도 없었다.

하긴, 일부러 시간을 딱 맞춰서 5분 뒤가 딱 고사 시간 한 시간 전이었다. 빨리 들어가야겠네.

겉옷을 입고 짐을 챙긴 뒤 대기실로 향하자 두 개의 반으로 나누어져 있는 팻말이 보였고

‘여자 대기실, 남자 대기실?’

나누어져 있는 대기실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의상 때문인 거 같았다.

실기 의상이 몸에 착 달라붙고 파인 부분도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난 같이 써도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겠지.’

항상 이런 데에서 보수적이었다.

남자 대기실이라고 적혀 있는 문을 열자 곧바로 안에 있던 대략 10명 정도되는 남자애들이 보였다.

“......”

‘뭐지 이 스포트라이트는.’

마지막으로 들어와서 그런가, 전부 나를 쳐다봤다.

괜히 머쓱해져서 걸음을 옮겨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놨고, 시선을 돌릴 법도 한데 몇 명은 그런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 우연 맞져? 대박 저 완전 팬이에여! 페룩이랑 아웃스타그램 전부 다 팔로우 해놨는데.”

그중 마지막에 마주친 남자 한 명이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수줍게 말을 걸었다.

‘얼굴이랑 매치가 너무 안 되잖아.’

다부진 얼굴과 큰 키, 변성기 온 목소리로 말하는 말투가 적응이 안 됐다.

근데 저런 말투 쓰는 남자애들 은근 많더라.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만날 줄 몰랐어여 진짜! 저는 최민성이라고 하고여.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하실래여?”

“응 그래.....”

친화력 쩌는 타입이구나 너.

타오르는 불꽃처럼 식지도 않고 어느새 내 옆에 자리를 잡은 뒤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우리의 수험표는 각각 19번과 27번. 16번부터 시작하는 걸 보면 아마 애가 먼저 들어가고 나는 더 늦게 들어가겠지.

1시간 일찍 대기실에 들어와서 대기해야 했기에 시간은 많았다. 그렇게 민성이와 대화를 하면서 30분을 보내자

“이제 진짜 연습해야 돼!”

“그래. 그러면 이제 각자 연습하자.”

민성이가 먼저 연습을 해야 된다는 말을 꺼냈다.

‘긴장을 안 하는 편인가 보네.’

나와 꽤 떨어진 한쪽 빈 공간에서 포즈 연습을 하는 민성이를 잠깐 바라보다가 전체적으로 반 안을 눈으로 훑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애부터, 종이를 보거나 계속해서 포즈를 취하는 사람까지.

‘연습할 게 딱히 없는데.’

굳이 한다면야 워킹 정도가 있었겠지만 어제까지 연습한 결과 문제없었다. 눈 감고도 재연할 수 있을 만큼 걸었으니까.

쇼도 아니고, 오디션을 보는 것도 아니며, 디자이너 앞에서 걷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기억들보다 모델로서의 경험들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서 그런지 떨리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대기 시간 동안 다른 생각을 하거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면서 시간을 보냈고

“20번 들어갈게요.”

어느덧 20번대에 진입했다.

19번이었던 민성이는 돌아와서 짐을 챙겼고 어쩐지 표정이 밝았다.

‘잘봤나 보네.’

아까 연습하는 걸 잠깐 봤을 때는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 많았는데.

내게 손을 흔들면서 파이팅이라고 입모양을 보이더니 먼저 떠났다.

그로부터 또 몇십 분이 지나 반에 남은 사람들이 몇 안 됐을 때,

“27번 들어갈게요.”

비로소 내 번호가 호명됐다.

****

“으으, 나도 이따가 후기 올려야지.”

노아 예고를 나온 민성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실물이 더 대박이었어.’

글로만 봤던, 사진으로만 봤던 우연을 노아 예고 대기실에서 마주칠 거라고는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우연이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순간부터, 민성의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얼굴은 진짜 주먹만 했고,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무결점인 피부는 자체발광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키도 컸고,

정말 말랐지만 그렇다고 볼품없는 몸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들이 바라는 몸이지 않을까.

용기를 내서 우연에게 다가가고 난 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뒤통수가 따가웠는데,

‘그러면 자기들도 말 걸던가!’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쟁취한다고 민성은 우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지수가 상승했다.

그는 우연과 관련된 SNS에 전부 댓글을 달면서 좋아요를 누를 정도로 팬이었으니까.

알게 모르게 생긴 커뮤니티에서는 우연을 덕질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모델이라고 팬이 없으란 법이 있나.

“같은 학교 다녔으면 좋겠다......”

아마 우연은 무조건 붙을 거고, 그러면 자신만 붙느냐 안 붙느냐인데......

“제발 붙게 해주세요! 제발!”

이미 한 번 성덕이 됐지만 한 번 더 되고 싶었다. 그렇게 5일 뒤 나온 노아 예고 결과에서,

그는 노아 예고 패션모델학과에 불합격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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