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chapter 24. 실기 고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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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을 나와 고사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장하는 곳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다섯 명의 면접관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 꽂혔고
가운데로 걸어가 포즈를 하나 취했다. 그러자
Boom, Boom, Boom!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가 고사장 안에 울려 퍼졌고
비트에 맞춰 시작된 워킹. 고정된 상체와 자연스럽게 떨어져서 움직이고 있는 팔.
학교의 실기 고사는 패션쇼와 결이 달랐다. 옷을 돋보이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돋보이게 해야 되니까.’
탑까지 워킹한 뒤 가장 자신 있는 포즈 두 개를 연달아 취했다. 이후 다시 중간 지점으로 워킹하고, 포즈를 취한 뒤 다시 탑으로 복귀.
‘이 무대는 내 무대다.’
그 마음가짐 하나로 내뿜은 자신감과 워킹, 강렬한 눈빛은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데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27번 이우연입니다. 모델이라는 꿈을 가지며 노아 예고에......”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면접관들은 내가 제출한 원서와 포트폴리오를 훑었다.
그리고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면접관 한 명이 입을 열였다.
“소속 에이전시나 아카데미 수료 기록이 없는데, 워킹은 배운 적이 없는 건가요?”
“네. 독학으로 직접 연습실을 빌려 가면서 연습했습니다.”
“...... 만약 배운 적이 없다면 대단한 워킹이네요. 그렇다면 왜 에이전시나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않았죠? 모델 경력을 보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다른 곳에서도 교육은 받을 수 있겠지만 제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학교를 통해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저는 백지이니 그 가르침들을 흡수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허어. 그렇다면 노아 예고에서 배우기 위해서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네. 다른 교육들도 도움이 되겠지만 학교에서 알려주는 배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질문한 면접관과 그 대화를 듣고 있었던 다른 면접관들도 표정이 한층 풀어졌다.
이어지는 질문 중에서는 질문을 가장한 칭찬과 대화들이 있었고 이후부터는 훈훈한 대화들의 연속이었다.
“그럼 특기 한 번 볼게요.”
비장의 무기로 연습한 특기 중 화룡점정인 ‘눈물 연기’를 짧은 대사와 함께 순식간에 해내자 면접관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패션모델이 아니라 다른 학과를 갔었어도 그 표현력이면 아마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었을 거예요. 하지만 워킹이나 포즈를 보면 모델 그 자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감사합니다.”
“우연 군은 표정이 살아있어요. 특별히 연습하면 아마 그게 모델 활동에도 큰 영향을 줄 거예요 물론 좋은 쪽으로요.”
“수고하셨고 다음에 또 보도록 하죠.”
“네! 감사합니다.”
몸을 숙여 인사하자 곧바로 음악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런웨이에 선 모델로 돌변했다.
들어올 때처럼, 나갈 때도 워킹.
중간 지점에서 다시 한번 돌면서 포즈를 취하고 그대로 들어왔던 문으로 나갈 때까지 이어졌다.
고사장을 나가기 전까지 그 안은 하나의 무대였다. 지금 서 있는 이 복도가 무대 밑일 테고.
안에서 대화를 하는 건지 작게 말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말인지는 안 들렸다. 그대로 고사장을 지나쳐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고.
‘좋네.’
홀로 연습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워킹은 고양감을 일으켰다.
짜릿했다.
모델을 시작한 계기 같은 건 좀 식상했지만 질문들은 예상한 선에서 전부 나왔다.
물론 노아 예고 때문에 에이전시나 아카데미를 안 들어간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기분이 좋을 테니까.
‘원래 이런 면접은 어느 정도의 아첨이 필요한 부분이지.’
대기실로 안으로 들어가자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던 짐을 챙기고 핸드폰으론 아버지한테 방금 끝났다는 말과 함께 이따 전화하겠다는 말을 메시지를 보냈다.
탈의실에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이제 막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남자가 보였다. 고생해라.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합격이 아닐 수가 없어.’
내심 걱정하고 계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밝은 목소리로 잘봤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마 속으로 안도하실 게 분명했다.
뚜루루 뚜루루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신호음이 연결되고 있었는데,
“아.”
“......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아”
뒤에서 어깨에 닿는 부딪히는 충격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누구 골로 갈 일 있나.’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 밀친 당사자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키가 작은 여자가 보였다.
밀쳐진 건 난데, 안쓰러울 정도로 떨고 있는 건 이 여자다.
‘무용과인 거 같은데.’
머리를 묶어 망에 넣은 모양새가 척 보아하니 무용과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됐어요. 계단 같은 곳은 진짜 위험하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네, 네에...... 정말 죄송합니다.”
여자는 몇 번을 더 사과하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아 맞다 전화.”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는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핸드폰을 다시 귀에 가져다 대자
“아빠가 지금 거기로 갈 테니까 어딘지만 말해!”
듬섬듬섬 들렸던 여자 목소리와 사과하는 대화에 오해를 하고 흥분한 아버지를 진정시키느라 땀을 삐질 흘렸다.
정말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어느 정도 아버지를 진정시킨 후에야 처음 헤어졌던 곳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고 통화를 끊을 수 있었고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생각은
“...... 아 얼굴이 안 잊혀지네.”
울고 있었던 여자의 얼굴이었다.
역시 우는 얼굴은 사기캐야. 작게 읊조렸다.
스쳐 지나가듯이 본 얼굴이었지만 여자는 울고 있었다. 그렇게 예쁜 얼굴에 울고 있는 건 반칙이지......
그날 아버지와 점심을 먹으면서도 내 기억에 남은 건 면접관들의 얼굴이 아니라, 울고 있었던 여자의 얼굴이었다.
‘이름도 모르는데.’
이 정도면 아마 학교에서 마주친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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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번 수석은 정해진 거 같죠?”
“워킹 하나만 두고 봐도 그렇게 차이가 나는데 어쩌겠어요. 수석이 아니면 아마 불공정 심사로 넘어가야 할걸요?”
실기 100%이기에 유독 민감한 사안이었다.
노피아 대학교 교수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이번 노아 예고의 수석이 우연이라는 사실을.
애초에 포트폴리오부터 화려했다. 단순히 경력이 좋은 게 아니라 거기에 담겨 있던 사진이.
‘무슨 현역 모델 사진을 보는 줄 알았어.’
다양한 컨셉으로 가득 찬 사진들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사진 안에 있는 우연의 얼굴이 변천사처럼 계속 바뀌고 숨 쉬고 있었으니까.
원래 같았으면 그저 몇 개 보고 말 사진들을 계속 넘겨보던 건 아마 그뿐만이 아니었으리라.
‘고작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애인데.’
군더더기 없는 워킹과 취할 때마다 전부 다르게 부각되는 포즈는 현역 모델과도 다름없었다.
아니, 사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들을 능가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아본 적 없다는 말은 나름 신빙성이 있으면서도 면접관들에게 그게 사실인지에 대한 유무가 아니라
‘내가 한 번 가르쳐 보고 싶다’는 욕구를 만들었다.
규정 때문에 화장을 못했겠지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마스크와 지금 당장 패션쇼에 데려가서 옷을 입혀도 괜찮은 바디.
몇몇 아이들에게 모델을 하려면 여기서 살을 더 빼야 된다는 말을 했었던 것과는 반대였다.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니까.
그게 타고난 건지 아니면 만들어 나간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렴 어때.
“이번만큼은 제가 대학교 교수라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얘는 반드시 뜬다는 직감이 강렬하게 들었다. 저런 아이를 제자라는 이름 아래에 둘 수 있다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질지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몇몇 이들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노아 예고의 실기 고사에,
다른 이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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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난 안 되나 봐....... 안 돼...... 끕,”
엉엉, 서럽게 우는소리가 넓은 방을 가득 채웠다. 엉망인 방의 상태가 주인의 심리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실수만 안 했으면 됐는데.’
한 번도 틀리지 않았던 곳에서 틀려버렸다.
그 단 한 번의 실수로 탈락할 걸 생각하니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나를 더 싫어하실 거야......”
그렇게 말한 여자가 다시금 울음을 터트렸다. 여자가, 끕, 우는, 거 끅 아니랬는데......
세상이 떠나가라 운 여자는 다음날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눈이 부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울었지만
‘노아 예고 실용무용과 합격자 통보’
5일 후, 그녀의 눈물은 멈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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