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28화 (28/137)

〈 28화 〉 chapter 27. 에이전시 (1)

* * *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네? 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저 들으시라고 하신 소리잖아요. 몸 파느니 어쩌고 말한 거.”

“으음, 딱히 그쪽한테 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들리셨으면 어쩔 수 없네요.”

조금 짜증이 나서 날카롭게 말이 나갔다.

그러자 남자는 잠시 흠칫하고는 뻔뻔하게 말을 이어나갔고.

‘원래 이런 개소리는 개무시가 답인데.’

일부러 들으라고 한 소리인 걸 알긴 알았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내가 착하질 않아서 그냥은 못 넘어간다.

“어...... 계산 도와드리려고 하는데, 혹시 그 무슨 일 있으신가요?”

“됐고 이걸로 계산이나 해주세요. 그리고 여기 머리 마음에 안 들면 좀 깎아주죠? 마음에 안 드니까 그것도 알아서 해서 계산해주시고요.”

“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담당하신 분ㅇ,”

“아 됐으니까 빨리 계산해달라고요. 원장한테 받다가 일반 직원한테 받으니까 당연히 머리가 별로죠.”

그러던 도중 한 직원이 카운터 쪽으로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거였다.

‘그냥 사람 자체가 재활용 불가인 거 같은데?’

아무래도 아까 그 남자가 이 남자인 거 같았다.

자기는 원장한테 못 받고 내가 여기 원장한테 헤어 메이크업 받아서 이렇게 대놓고 시비를 거는 게 말하는 것만 봐도 딱 보였다.

“얼굴은 개구리 닮은 게 말하는 게 욕심은 많네.”

“뭐라구욧?!”

“아, 혼잣말이었는데 들었으면 유감. 근데 미성년자한테 몸 파는 것 같다는 말은 본인이 생각해도 좀 아니지 않아요?”

“미, 미성년자라고요?”

“네.”

씩씩거리면서 화내다가 잠시 당황하더니 다시 씩씩이 모드로 돌아갔다.

‘아니 개구리 닮은 건 팩트잖아.’

직원은 안절부절하면서 카드를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나가야 되는 손님들이 안 나가고 소란이 일자 기다리던 다른 손님들도 이곳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때마침 원장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 있나요?”

“아 저 그게......”

“혜진 씨가 해준 머리도 아니고, 마음에 안 들어서 깎아서 계산해달라는데 그걸 하나 못해서 이러고 있네요.”

“머리가 마음에 안 드신다는 거죠? 어떤 걸 원하셨고 어떤 부분이 정확히 마음에 안 드시는데요?”

“...... 커트했는데 내가 말한 길이보다,”

“저희 샵에서는 커트를 할 때 고객님한테 cm로 받아서 진행을 하는데, 말씀하신 cm랑 다르게 커트 되셨나요?”

남자가 분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애초에 머리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자기 머리를 안 해줬다고 저러는 거 같은데 더 이상 할 말이 있을 리가.

서로의 눈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가봐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사과할 생각은 없어 보이시니까 그냥 제 할 말만 하고 갈게요. 척 보아하니 제가 이쪽 원장 님한테 받아서 그러시는 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미성년자한테 옷을 몸 파는 수준처럼 입고 다닌다는 막말은 좀 심했고.”

“세상에 손님한테 그렇게 말했다고요?”

“네. 이번에야 뭐 그냥 제가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그렇게 말씀하고 다니시면 나중에 경찰서 가실 수도 있어요.”

“......”

남자는 내 눈을 피하며 침묵을 고수했다.

‘뭘 바라냐.’

딱 봐도 철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카드를 카운터에 서 있던 직원에게로 내밀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그런 말 듣고 기분도 많이 상하셨을 텐데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요 뭘.”

“오늘 하신 세팅 비용은 안 받을게요, 기분 푸시고 다음에도 꼭 한 번 들러주세요.”

카드를 다시 내게 건네는 원장의 표정이 단호했다.

‘다시 올 생각이 없어지긴 했지만.’

원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이 남자 때문이더라도 굳이 이 샵을 다음에 다시 올 생각은 없었다.

눈치가 빠르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빨리 가봐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

“네! 꼭 다음에도 들러주세요.”

딸랑­

나갈 때까지도 입을 꾹 다문 채 서 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본 후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11시 34분.

돈과 시간을 맞바꿨다.

아무래도 택시에서 내리면 뛰어야 할 거 같네.

****

“안녕하세요. 면접 관련해서 왔는데요”

“이쪽으로 오세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계셨어요.”

지각하지는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5분 정도는 빠르게 올 생각이었는데.

안내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네 명의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에이전시 데마시아 대표 주성훈입니다. 이쪽은 저희 캐스팅 팀장 그리고 실장님이시고요.”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모델 이우연입니다.”

네 명과 각각 악수하면서 눈을 마주치고 작게 웃었다.

‘이런 자리에서 긴장한 티를 내면 하수지.’

허리를 펴고 내 얼굴을 뚫을 것처럼 쳐다보고 있는 대표와 눈을 마주했다.

“우연 군의 포트폴리오 인상적이게 봤어요.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표정이나 표현력이 남들에 비해 특출나더군요.”

“감사합니다.”

“제가 브랜드 디자이너였다가 이쪽으로 전향했고, 저희 캐스팅 팀장도 연예계 쪽 인맥이 탄탄해서 콜라보 런칭쇼나 디자이너 패션쇼처럼 비교적 ‘쇼’에 대한 기회를 특별히 많이 제공하고 있어요.”

내가 제출했던 포트폴리오를 한 장씩 넘겨 가면서 주성훈 대표가 말했다.

“그래서 일단 워킹 먼저 보도록 하죠.”

“네.”

그 말을 할 걸 어느 정도 예상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들어왔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공간이 꽤 넓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워킹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었다.

장내에 정적이 흐르면서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했다.

아마 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워킹의 기본기. 걷는 게 거슬리면 아마 따로 수업을 받자는 얘기가 나올 게 뻔했다.

‘보여준다.’

한 발을 내디디면서 이 공간은 하나의 무대 위로 변했다.

흐트러짐 없는 호흡, 무표정과 함께 고정된 상체와 그에 맞춰 흔들리는 팔. 일련의 동작들이 몸을 타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귓가에는 이미 가상의 음악소리가 재생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포즈 잡고, 턴.’

입고 왔던 셔츠 깃을 만지고 포즈를 취한 뒤 시선 처리를 하고 돌았다.

그 뒤로 걷다가 중간에 한 번 더 포즈, 그리고 다시 걸어서 문 쪽에 다다랐을 때

“끝났습니다.”

다시 정면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주성훈 대표가 입을 열었고 나는 그 말에 웃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데마시아에서는,

“완벽했어요.”

꽤 괜찮은 계약 조건을 따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저어 원장님.”

“응? 왜?”

“아까 공짜로 해주셨던 손님, 페룩이랑 아웃스타그램에서 엄청 유명한 사람이래요!”

“아 그래요?”

“네! 모르시고 계셨어요?”

“몰랐어요.”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던 남자 직원이 그녀의 옆에서 조잘조잘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 샵에서 그런 일 겪었다고 막 글 같은 건 안 올리겠죠? 막 보니까 팬클럽도 있더라구요.”

“그럴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어요.”

“휴 다행이네요. 근데 따지고 보면 저희가 잘못한 건 아닌데 왜 공짜로 해주신 거예요?”

“음......”

그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면서 생각하고

“사실 원래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긴 하지만 그 손님한테 되도록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좋겠어서요? 그리고 얼굴만 봐도,”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내 말을 이어나갔다.

“성공할 거 같잖아요. 저렇게 예쁜 남자는 아마 뭘 하든 성공할걸요? 다음에 우리 샵 한 번이라도 더 오면 좋고요.”

“아아. 하긴, 저도 그렇게 예쁜 남자는 처음 봤어요. 그래도 원장님의 선견지명이 맞았네요.”

그렇게 말한 남자 직원은 종종걸음으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오늘 제대로 못 박아야겠네.’

아침에 문제가 있었던 남자는 지인의 아는 사람으로, 어쩌다가 알게 된 사람이었다.

갑자기 다니던 샵을 옮기더니 자신에게서 두 번 정도 머리를 받더니 별 시답지 않은 걸로 개인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 연락을 무시하다가 오늘 샵에서 일이 터진 것이었다.

지인 얼굴을 봐서라도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남의 가게까지 와서 저러는 걸 보니 지인에게도 말할 생각이었다.

근데 다시 생각해봐도,

“이따 아웃스타그램이나 팔로우해야겠다.”

그 모델 손님은 예뻤다. 역시 예쁜 얼굴은 쉽게 못 잊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