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chapter 28. 에이전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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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 군 말이에요. 저희 회사로 오겠죠?”
“그 정도면 거의 신인 수준이 아니라 기성 수준으로 대우해줬어요.”
와야죠. 캐스팅 팀장이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신인 수준의 대우는 진즉에 넘어섰다. 정산비율 7:3부터 시작해서 2년 계약, 모든 활동에 모델 의사반영이라니.
여기서 말하는 모델 의사반영은 모든 활동을 전부 우연이 결정한다는 거였다.
원래라면 회사에서 물어주는 일들을 하는 것도 하나의 이치인데 신인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거니까.
계약 조건은 반쯤 끌려가면서 진행됐다.
경력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완벽함을 보여준 덕분에, 그 모습을 보고 대표님은 어떻게든 우연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계약 조건들을 수정했고.
우연은 자기한테 푹 빠진 대표를 말로 구슬려가며 납득 시켜버렸다.
나이도 무기가 되더라, 분명 이제 고등학생일 텐데 어떻게 그리 말을 잘하던지.
“...... 완벽해서 문제였다.”
“이 바닥에서 그런 애는 처음 봤어요. 강원우 신인 때도 그랬을까요?”
“아니. 강원우는 처음에 완전 숙맥이었어. 노력해서 그렇게 된 거지.”
실장이 회사 간판 모델을 언급했건만 캐스팅 팀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녀석은 타고난 천재다.
맨 처음 얼굴을 봤을 때는 웃는 게 마치 아이돌 얼굴 같아서, 모델을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 같았는데.
왜 많지 않은가.
피팅 모델로 좀 뜨고 모델 출신이라는 경력 하나 쌓은 다음에 검증돼서 연예계로 진출하는 거.
노아 예고 패션모델학과에 수석 입학했다길래 혹시나 했었는데,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나중에 아이돌이나 배우 한다고 하면 바짓가랑이도 잡겠지.
우연이 워킹을 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깨달았다.
한 사람이 얼마나 이목을 끌어당길 수 있는지.
그건 마치 관객들을 몰입시키다 못해 압도하는 것과도 같았기에.
“잡지로 데뷔시킬지, 쇼로 데뷔시킬지 고민하는 건 너무 행복한 고민이겠죠?”
“기대하지 마. 3일째 묵묵부답이구먼,”
그렇게 말하면서도 캐스팅 팀장 또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대중성은 잡지 표지 모델로 잡을 수 있을 거고, 워킹도 받쳐주니 쇼에 서도 오디션은 단번에 합격하고도 남겠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포트폴리오 사진을 봤을 때는 사진 작가의 역량이 컸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아니었다.
찍은 사진마다 전부 조명이나 카메라 위치를 잘 활용한 것도 그렇고 자꾸만 시선이 가는 포즈도 우연이 한 게 틀림없었다.
음악을 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속도감을 가진 워킹, 무표정한 얼굴과 그가 포즈를 취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바뀌는 시선.
그가 숨을 쉬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다른 회사에 간 건 아니겠죠? 그날 바로 그냥 계약서에 도장 찍어버렸어야 했는데.”
우연은 자신이 미성년자이기에 일단 계약서를 가지고 집에 가서 보여주고, 계약을 하게 된다면 연락을 한 뒤 보호자와 함께 회사에 방문하겠다고 했었다.
미성년자는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날로부터 3일이 지났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근 삼 일간 대표가 자꾸만 사무실을 들러서 연락 온 게 없냐고 할 정도였다.
에이전시 데마시아의 남자 간판 모델은 강원우 한 명. 다른 남자 모델은 여섯이고 여자 모델은 여덟 명이었다.
당장 예정되어 있는 패션쇼들도 70%가 남자 모델들을 원하고 있었다. 세상은 남자 모델에 열광하고 그만큼 원하고 있었으니
무조건 뜬다.
소수의 인원에게 집중하는 데마시아로서는 우연의 성공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대표가 우연에게 푹 빠졌다고 했지만 자신도 이미 빠져있었다.
행복 회로는 잠시 멈춰두고 혹여나 그를 놓칠세라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을 때.
“팀장님! 연락 왔어요!”
그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걸 멈추고 주먹을 움켜줬다.
“..... 누구?”
“누구긴요! 저희가 방금까지 말했던 이우연 군이요.”
됐다.
다이아몬드가 굴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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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등학생인데 학교 다니면서 좀 즐기는 게 낫지 않겠니?”
“저는 모델 일하는 게 더 좋아요. 학교도 기왕 수석 입학한 거 열심히 다닐 거고요.”
‘그렇게 열심히는 안 다닐 거지만.’
걱정을 덜어내려면 이렇게 말하는 게 나았다.
에이전시 얘기를 꺼낸 지 이틀째, 예상외로 어머니가 복병이었다.
신사데이를 계약했었을 때도 그렇고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었을 때 지지해주셨던 것도 그렇고 수월하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아직 고등학생인데 2년 동안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모델로 활동한다는 게 걸리시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도 이렇게 떼를 쓴 적은 없는데.’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 의견이 얼마나 확고한지 계속 말해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계약서를 몇 번이나 읽어보셨고, 맨 처음에는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이셨지만 이틀째인 오늘은 뭔가 뉘앙스가 달랐다.
“네 의사반영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게, 네가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안 해도 된다는 거라고 했지?”
“네. 제가 나이도 어리고 그래서 많이 배려를 해주더라고요. 2년 계약이라서 나중에는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고요.”
“하아...... 다른 집들은 사춘기가 와서 걱정이라는데 우리 아들은 벌써 사회로 나가고 싶어 하니.”
“......”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작게 한숨 쉬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침음한 어머니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래, 널 낳았을 때부터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주자고 결심했었다.”
눈을 마주하며 말해오는 어머니의 눈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았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야. 그때부터 어렴풋이 네가 평범한 직장을 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단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더 해주지 못할망정 자식 길 막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토요일에 이 어미랑 같이 계약하러 가자꾸나.”
“......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아버지 쪽을 바라보니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작게 미소 지어주셨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뭔가를 이룬 기분이야’
부모님한테 인정받는 거, 생각보다 훨씬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근데 이 몸무게 조항은 뭐야? 이거 넘으면 안 된다고?”
“아. 그건 그냥 형식적으로 적혀 있는 거예요,”
“너 거기서 다이어트하면 쓰러져. 안 돼.”
“맞다. 다이어트는 네가 아니라 다윤이 해야 되지.”
“아 엄마!! 뭐라는 거야! 나 살 안 빼도 되거든?”
“큽,”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다윤이 급발진하면서 외치자 웃음이 번졌다.
혼자 진지하게 씩씩거리는 다윤을 두고 셋 다 웃어버린 바람에 삐져버렸지만.
그렇게 나는 다음날, 에이전시 데마시아에 전화를 걸어 토요일에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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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에이전시 데마시아에 계약을 하러 가기로 한 토요일.
아버지 차에 올라타면서 안전벨트를 맸다.
‘오늘 얼굴 좀 괜찮네.’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수수한 얼굴보다는 개인적으로 조금 더 또렷한 얼굴이 좋았다.
가끔 이렇게 지금 얼굴에 만족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보네.
“다른 곳에도 가봤다고 했었지? 근데 계약서를 들고 온 건 여기 하난데, 원래부터 여기 갈 생각이었니?”
“한 곳은 계약하면 우선 해외 본사에서 3개월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배제했고,”
제이딘 모델을 갔었을 때를 떠올리니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다른 한 곳은 계약 조건이 별로기도 하고, 저를 돈으로 보는 것 같아서요. 뭐 그냥 느낌이 그랬어요.”
“그래? 그렇다면 지금 가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인가 보네. 사람을 돈으로 보는 곳은 오래 못 있을 곳이야.”
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전시 데마시아에서는 워킹을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줬지만 다른 곳들은 전부 이미지에 대해서만 대화했다.
스타일에 관해 보완할 점이라던가 이런 게 어울리겠다 하는 것들.
워킹은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애초에 전부 회사 내에 아카데미가 있으니 정 뭐하면 거기에 넣을 생각이었겠지.
데마시아 대표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비해 제이딘은 뭔가 뱀 같은 느낌이 강했다.
‘조건들도 타이트한 것들이 많고 양보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
그렇게 차를 타고 대화를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에이전시 데마시아에 도착했다.
로비부터 아는 얼굴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하하. 우연 군이 어머님을 닮아서 예쁜 것 같네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저희 아들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우연 군한테 저희가 잘해야 되죠. 그러면 바로 계약 진행하실까요?”
그런 캐스팅 팀장의 안내를 따라가니 대표실이 나왔다.
‘나 아빠 판박인데.’
어머니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어머니를 닮은 곳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싱글벙글 웃고 있는 데마시아 대표와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잘한 거겠지?’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대표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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