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chapter 29. 졸업식
* * *
“회원님~ 딱 한 개만 더하죠! 옳지, 하나만 더?”
“더는 못해요......”
“아니에요. 할 수 있다! 하나만 더! 오케이 이제 쉴게요~”
소속사가 생긴다고 해서 일상이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 진짜 탈주 치고 싶다......’
그건 내 오산이었다.
회사에서 붙여준 트레이너는 내가 진짜 더 이상 못 할 거 같다 싶을 때마다 휴식시간을 줬다.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슬렌더 모델이라도 관리는 필요했다. 방금 한 힙업 운동도 마찬가지였고.
유산소 운동만 조졌던 과거의 나는 이미 사라지고도 남았다.
“자자. 한 달 뒤가 첫 촬영이라고 그러셨죠? 한 달 동안 컨디션 최상으로 끌어올려서 레전드 찍으셔야죠. 운동은 거짓말은 안 해요.”
반쯤 퍼져서 앉아있는데 트레이너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척 보아하니 슬슬 다시 시작하자고 할 거 같은데.’
아직 쉬기로 한 지 2분밖에 안 지났다. 경계의 눈초리로 트레이너를 쳐다보면서 머릿속으로는 어느 정도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무작정 유산소 운동만 했었을 때와는 달리 옷핏이 더 좋아진 거 같으니까.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을 때면 더 체감했다. 내 엉덩이가 이렇게 튼실한 녀석이었다니.
“자! 그럼 이제 시작하죠.”
“...... 네”
울며 겨자 먹기로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트레이너와 땀으로 몸을 적셔가며 운동을 한 뒤 샤워를 하고 또 회사에서 다니라고 한 피부과에 출석체크를 해야 했다.
“여기서 더 좋아질 피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좋아지는 거 같네요, 피부가 막 좋은 걸 흡수해가는 건가?”
“하하......”
“나중에 우연 군이 저희 피부과 다녔다고 꼭 홍보할 거예요. 손님이 아주 넘치겠죠? 호호.”
무엇인지도 모를 시원한 액체가 얼굴에 발라지면서 일과를 마무리했다.
‘분명 방학인데 학교 다니는 것보다 기 빨리는 것 같단 말이지.’
피부과 원장의 수다를 감당하기에는 정신적인 데미지가 너무 컸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졸다가 내리기 직전 역에서 항상 깨는 건 국룰이었고.
“하암......”
자기 직전까지 SNS와 인터넷, 너튜브 영상을 뒤지면서 내 평범한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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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집 밖에서 노는 걸 안 좋아하기도 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학교에서 이렇다 할 친한 친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싸나 왕따는 아니고.
물론 중학교 1학년 때 그런 낌새가 조금 보이긴 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단연코 없었다.
딱 같은 반 친구. 적당한 선에서 친하고 그렇다고 해서 안 친한 것도 아니었지만 사적으로 연락할 일은 적었다.
신사데이 피팅 모델을 하면서 몇몇 남자애들이 호의를 비추면서 다가오긴 했었지만.
‘아마 애들은 내가 모델인 것도 모르지 않을까?’
종종 아이돌 연습생이냐는 말은 몇 번 들어봤었지만 그럴 때마다 전부 아니라고 대답했었다.
소속사에 들어간 지도 이제 2주가 지났고, 학교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기야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내일 졸업식 가면 막 다들 사인해달라고 그러고 사진 찍어달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에이. 저 아직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아마 제가 소속사 들어간 것도 모를 거예요. 뭐 몇 명은 알 수 있더라도.”
“그래? 그럼 뭐......”
“야. 구라 치지 마. 너 내일 가면 백퍼 애들 몰릴걸?”
1월 8일. 내일은 졸업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거실에 다 같이 모여있는데 아버지가 호들갑을 떨면서 말하자 내가 심드렁하게 대답했고, 그걸 들은 다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 왜? 맞는 말이잖아.”
“맞는 말은 네가 처맞는 말이겠지.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네가 왜 힘들어?”
“누나라고 부르랬지 짜샤.”
그러곤 다윤이 내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하나도 안 아픈데.’
힘이 하나도 안 실려 있는 주먹이란 걸 알기에 나는 막지도 않았다.
“그래서 누나가 왜 힘드냐고.”
“아 있어 그런 게. 내가 보기엔 전교생이 너 트루먼 쇼 찍고 있는 거라니까? 네 앞에서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에휴.”
“예전에 몇 번 사인해달라고 하는 애들이나 사진 올려도 되냐고 물어본 애들은 있었는데, 그거 말고는 나한테 잘 말 걸지도 않던데?”
간혹 후배나 선배 중에서 말 거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건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다.
다른 페룩, 아웃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한다고 했었는데 나한테는 유독 그런 일들이 없었고.
애초에 팔로워 수만 많을 뿐 이렇다 할 컨텐츠도 없어서, 팬들이 안 생길 만도 했다.
‘활동 시작하면 달라질지도 모르지.’
유명 모델들은 전부 팬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나도 유명해져서 팬들이 생긴다면 철저하게 관리할 생각이었다.
조련해놔야지. 한 눈 못 팔게.
“하, 그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뭐랄까 네 앞에 서면......”
“내 앞에 서면?”
“아 몰라! 됐어 나 자러 갈래!”
갑자기 신경질을 내더니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지금 9신데.’
어차피 자지도 않을 거면서. 하지만 그런 다윤을 뒤따라 나도 방에서 조금만 쉬겠다면서 거실을 나왔다.
‘내일 알람은 30분 일찍 맞춰놔야겠네.’
너튜브 영상 몇 개를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서 눈꺼풀이 감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반쯤 감은 눈으로 알람을 맞추려고 하다가 모르고 메이버를 눌러버렸는데.
“뭐야. 이거 알림이 왜 이렇게 많이 와 있냐.”
마이 페이지 알림이 99+였다.
알림이 왜 와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 잠이 너무 쏟아졌다.
‘내일 확인하자 내일.’
메이버를 나가고 알람을 맞춘 뒤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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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럴 줄 알았지.”
다윤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동생 중학교 졸업식이라는 명목하에 학교를 빠지고, 모교를 방문했으나 다윤의 시야에는 인파에 휩쓸려 있는 우연밖에 안 보였다.
‘이놈의 학교는 달라진 게 하나 없어.’
다윤이 졸업했던 2년 전 강당과 별로 달라진 점이 없었다. 아, 다른 풍경이라면 지금 저기서 사진 찍느라 바쁜 제 혈육 정도랄까.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저 그런 우연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내내 그저 자리에 앉아있었을 뿐이었지만 다윤은 알았다.
우연의 반부터 시작해서 그 근처에 있는 이들은 전부 우연을 쳐다보고 있다는걸.
‘저게 천연인 건지, 아니면 눈치가 뒤지게 없는 건지.’
우연은 자신의 인기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윤이 재학했었을 당시만 해도 주변에 접근하려는 여자들을 특히나 막았었는데, 졸업하고 나서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지가 된 거 같고.
티는 안 냈지만 아마 우연에 대해서 웬만한 동급생들은 다 알고 있을 거다.
애당초 페룩과 아웃스타그램을 생각하면 조용히 넘어갈 수가 없지.
“나랑 사진 한 번만 찍어주라! 제발!”
“여기에 사인 하나만 해주라.”
“나도 사인해줘! 코팅까지 해서 간직할게!”
“저도 하나만 해주세요 선배님!”
그동안 참아왔던 걸 터트리는 건지 아예 우연의 사진을 종이에 프린트해 온 사람도 있었다.
졸업식 날인데도 학교에 온 후배들도 몇 명 보였고, 덕분에 졸업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시간에 인파가 한쪽으로 몰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쟤가 그 주현이가 말한 모델이라는 앤가? 예쁘장하게 생겼네.”
“어후, 혼자서만 얼굴에서 빛이 나네 빛이 나.”
“허허, 우리 아들이랑 사진 찍으려면 좀 기다려야겠구만.”
그런 아이들을 기다려야 하는 학부모들도 우연이 있는 쪽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쟤는 옆에 꼭 붙어있네.’
다윤은 인내심을 가지고 우연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여태 참아왔던 걸 터트리는 거니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정신없어 보이는 우연의 옆에는 한송이가 딱 붙어있었다.
‘다른 반이라고 했었는데.’
3년 내내 다른 반이라고 들었는데 언제 우연의 옆으로 달려온 건지, 보디가드처럼 옆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야. 소리 지르지 말고 좀 기다려.”
“으, 으응.....”
실제로 송이는 우연의 옆에서 몇몇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하하. 송이랑 우연이는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렸을 때도 송이가 우연이를 참 많이 좋아했었죠. 혹시 모릅니다, 저희가 사돈이 될지? 허허.”
“아무리 송이 아버님이라고 해도 저희 우연이는 아직 못 드려요~”
그런 둘을 보면서 부모님들은 알게 모르게 작은 신경전을 보였고,
“...... 졸업 축하해. 거봐 내 말이 맞지?”
“고맙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윤은 인파를 헤치고 이쪽으로 온 우연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왜 크면 클수록 더 불안하단 말이지.’
그리고 우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송이를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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