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31화 (31/137)

〈 31화 〉 chapter 30. 매니저

* * *

“그놈의 SNS가 뭐라고.”

데일 매거진 편집자인 그녀는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요즘 시대에 잡지는 잘 안 팔렸다.

다른 패션 잡지에서도 아이돌이나 배우 같은 연예인들을 가져다 쓰면서 판매 부수를 높였다. 그렇지 않으면 잘 팔리지 않으니까.

그녀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다.

연예인들을 쓰는 데에 있어 서슴지 않는 메이저 편집부에서 패션 잡지를 만들다가, 데일 매거진같이 작은 편집부로 와서 패션 잡지를 주관한다는 거에 있어서.

실제로 데일 매거진 편집부는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그리고 두 달 뒤에 발매되는 3월호는 그녀가 합류하고 난 뒤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잡지였는데,

“고작 이제 막 고등학교 들어간 생초짜 어린애를 표지로 세운다고? 아무 경력도 없이 고작 SNS 팔로워 많다는 걸로?”

편집장이 꽂아 넣은 표지 모델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래서 인맥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겠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무리 작은 편집부라 하더라도 데일 매거진 패션 잡지는 최근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제 막 고등학교 들어간 듣도 보도 못한 생초짜 신인을 표지 모델로 세운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하지만 편집장이 꽂아 넣은 모델이라서 그녀의 재량으로는 바꿀 수 없었다.

‘벨피아에서는 어림도 없을 일이지.’

듣자 하니 데마시아에서 미는 신인 모델이라고 하는데, 여유가 없어서 신인 모델을 메인으로 가져다 쓰나.

다른 이들은 별생각이 없을지 몰라도 그녀는 이번 표지 모델에 있어서 회의적이었다.

과연 잘 나올 수 있을지.

하지만 그녀가 오고 나서 처음으로 출간되는 패션 잡지였다.

“......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안 되면 되게 만든다. 정 안 되겠으면 편집장에게 가서 이의를 제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패션 잡지에 온 신경을 기울일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는 무려 ‘벨피아 편집부’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온 사람이니.

‘그정도 대우는 해줘야지.’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대충 신발로 지져서 껐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데일 매거진 편집부로.

****

잡지 촬영이 1월 마지막 주에 예정되어 있었다.

중학교 졸업을 마치고 난 뒤로부터 회사에서 짜준 스케줄에 충실했다. 연달아 2월에는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다면 쇼에 설 예정이라고도 했으니

‘관리해야지.’

트레이너와 피부과 원장이 아른거렸다.

다행히도 오늘은 해야 할 일을 마쳐서 다행이지.

원래라면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지만 잠시 회사로 오라는 실장의 연락에 사무실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을 찰나

달칵­

“먼저 와 있었네! 미안미안, 차 키 좀 주느라 늦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낯선 여자와 함께 실장이 들어왔다.

‘차 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낯선 여자에게 내 시선이 돌아갈 때쯤 실장이 여자를 소개했다.

“여긴 앞으로 우연 씨 매니저를 맡을 강예진 씨예요. 둘은 서로 처음 보죠? 인사 나눠요.”

“안녕하세요 매니저 강예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우연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내 매니저라는 말에 적잖게 놀랐다.

‘모델 소속사는 매니저도 얼굴 보고 뽑나.’

갈색 단발머리와 갈색 눈에 비해 확 올라가 있는 눈꼬리가 인상을 조금 사납게 만들었다. 오밀조밀한 고양이를 보는 듯했지만.

겉으로만 보기에는 이십 대 초반 같았는데, 악수한 손 사이로 느껴지는 굳은 살의 감촉이 생생했다.

그에 비하면 내 손은 물 한 번 안 묻혀 봤다는 티를 내듯 뽀송했고.

“우연 군은 올해 고등학생이에요. 얼굴만 봐도 알겠지만 저희 회사에서 앞으로......”

분명 나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말해줘서 알고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표정이 한결같네.’

저것도 무표정이라면 무표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나고 나서부터 표정 변화가 일절 없는걸 보아하니 조용한 타입 같기도.

차라리 그게 더 좋았다. 오히려 말 많은 사람이면 내가 힘들 거 같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예진 씨는 우연 군 앞으로 잘 부탁하고, 앞으로 우연 군 픽업은 예진 씨가 할 거예요. 대중교통 이용하는 거 마음 아팠는데 이젠 예진 씨한테 태워달라고 하면 돼요.”

“알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에이 뭘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 오늘부터니까 집에 갈 때 차 타고 가요!”

그렇게 실장이 나가자 방 안에는 둘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어......”

“......”

“안 그래도 지금 집 가려고 했는데, 가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어색한 침묵을 깨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걸었다.

조용한 타입이라고 예상한 게 맞았는지 그녀는 웬만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고, 조용한 차 안에서 말을 거는 건 내 몫이었다.

그마저도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집까지 이동하는 동안 몇 가지의 질문을 통해 알아낸 건 개인 정보 몇 개 정도.

‘일단 데마시아에 들어와서 처음 맡게 된 사람이 나고, 매니저 경험은 두 번 있었으며 나이는 스물여섯.’

스물여섯에 비해 얼굴은 동안이었다.

하나 의외였던 건 나에 대해서 예상외로 많이 알고 있다는 점.

‘자기가 맡을 사람이니까 미리 찾아본 거겠지.’

그렇게 정보를 얻고 나서 나는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라 습관적으로 잠깐 졸아버렸는데,

“일... 세요. 도... 했어요. 우연 군?”

“아. 죄송해요. 원래 집 가는 길에는 항상 졸았어 가지고. 그리고 말 편하게 해주셔도 돼요 제가 훨씬 어린데”

“..... 알겠어. 그러면 나도 편하게 예진 누나라고 불러줘”

“네, 예진 누나.”

덕분에 말을 놓았다.

‘앞으로도 계속 같이 다닐 텐데 편한 쪽이 나으니까.’

잠에서 막 깨서 비몽사몽 상태로 물어봤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핸드폰 번호 좀 알려주세요,”

“아, 응. 나는 네 거 있어서 괜찮아.”

내가 건넨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번호를 찍었다. 어쩐지 천천히 누르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뭐.

번호를 찍은 핸드폰을 내게 넘기자 나는 ‘매니저’라고 이름을 적어서 저장했다.

“그럼 저 이만 들어가 볼게요. 누나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조심히 들어가.”

나한테 조심히 하라고 해봤자 집이 바로 앞인데.

차에서 내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고 엘리베이터를 누르는데 그대로 서 있는 차가 보였다.

알아서 가겠지.

“어? 뭐야 오늘은 좀 일찍 왔네.”

“응. 앞으로는 좀 일찍 올 거 같아. 매니저가 생겨서”

“대박 여자야 남자야?”

“...... 여자.”

“뭐? 어떻게 생겼는데? 잘생김?”

집으로 들어오자 방에서 빼꼼 고게를 내민 다윤과 눈이 마주쳤다.

‘이거 뭔가 귀찮아질 거 같은 조짐인데.’

아니나 다를까 다윤은 화장실로 들어가는 내 뒤를 끈덕지게 따라오면서 질문했다.

“아 그래서 잘생겼냐고!!”

“...... 조금?”

“뭐라고? 야 뭐라고 했냐!”

쾅쾅 문을 두드리는 다윤을 무시하고 매니저의 얼굴을 잠시 떠올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고양이 닮긴 했지.

****

“후우.”

우연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예진은 그대로 운전대를 붙잡고 늘어졌다.

“아 진짜 떨려서 죽는 줄 알았네.”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실실 쪼갰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지만 역시 자신이 생각했던 우연과 다르지 않았다. 사진도 보정으로 떡칠한 여타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고.

‘거기에 착하기까지 하다니.’

뒷좌석이 아니라 조수석에 앉은 바람에 자꾸만 돌아가려는 시선을 애써 정면에 고정시켰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하지만 가는 내내 우연을 곁눈질하는 건 끊이지 않았다.

도착하고 나서도 바로 깨우지 않고 가까이 가 몇 분가량 얼굴을 관찰한 건 오는 동안 잘 버틴 상이었고.

그렇게 막 잠에서 깨서 자신에게 말을 놓으라고 말하던 우연의 얼굴을 상상할 때쯤

지잉­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수현: 누나 진짜 다시 돌아오면 안 돼요? 진짜 제가 잘해줄 테니까 제발요. 형들은......

“차단해야지.”

미리보기로 메시지의 내용을 대충 훑은 예진은 메시지를 읽지도 않은 채 손가락을 움직여 빠르게 차단했다.

‘짜증 나게 방해하고 있어.’

그나마 귀찮게 안 굴어서 차단하지 않았던 애였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없었다.

앞으로 자신은 우연의 매니저이니 오로지 그만 바라볼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곤 핸드폰 배경화면 사진을 아까 찍었던 우연이 자고 있는 사진으로 바꿨다. 어차피 업무용 핸드폰은 따로 있었다.

“시발 존나 좋아.”

다시 우연과의 첫만남부터 회상을 시작한 예진은 자신의 집으로 향하면서도 계속해서 웃었다.

‘아, 행복해.’

훗날 우연의 매니저가 팬들 사이에서 극성으로 불리는 이유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