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32화 (32/137)

〈 32화 〉 chapter 31. 잡지 촬영 (1)

* * *

아침부터 쌀쌀한 찬 공기가 몸에 스며들었다.

‘으 추워.’

패딩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한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걸음을 재촉해서 이제는 익숙해진 차의 문을 열었고

곧장 안에 있던 예진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안녕,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일찍 안 오셨죠?”

조수석에 곱게 개어져 있던 담요를 덮으면서 말했다.

저번에 일어나서 잠깐 베란다로 나갔었는데 밖에 차가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약속한 시간에서 무려 1시간이나 이른 시각이었다.

‘괜히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만 더 급해지고.’

그날 이후로부터는 항상 언제 도착했냐고 물어보면서 너무 일찍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그래도 일찍 오는 건 또 매한가지여서 나도 시간에 딱 맞춰나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일찍 나오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고.

‘이게 좋은 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거겠지 뭐.

“오늘은 한 10분 정도밖에 안 기다렸어.”

“그래도 많이 발전했네요. 그것보다 더 일찍 안 오시면 안 돼요. 오늘도 제가 10분 일찍 나와서 망정이지.”

“...... 응”

운전석을 바라보자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예진이 보였다. 몇 주간 지켜본 결과 그녀는 표정 변화가 대체로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천천히 알아가야지.’

기분이 좋을 때면 눈은 안 웃고 있는데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간다는 사실을 안 것도 며칠 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 무표정한 얼굴을 다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핸들을 돌리는 예진을 잠시 쳐다보다가 내비게이션으로 시선을 돌리자 도착 예정 시간이 1시간 30분이라는 게 포착됐다.

꽤 걸리네.

어느 정도 편해진 사이라서 침묵이 불편하지 않아 다행이다. 1시간 30분 동안 대화하는 건 무리.

그렇게 가고 있던 도중 빨간불에 신호가 걸리자 예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화장한 거야?”

“어, 오늘 촬영장에서 한다고 해서 딱히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 그렇구나.”

“가서 지우고 다시 하려면 귀찮잖아요. 어차피 차로 이동할 거고.”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예진이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왜 물어본 거지.’

조수석에 있는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보자 여느 때와 같이 똑같은 얼굴이 보였다.

아무리 화장하는 남자들이 많더라도 나는 항상 귀찮아서 기초만 하거나 촬영이 있을 때면 샵에 가서 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을 안 했냐고 물어보는 건......

‘오늘 좀 못생겼나?’

얼굴이 조금 부은 거 같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크게 티 나진 않았는데 아마 도착하면 빠져있을 터.

왜 물어봤냐고 괜히 말했다가 나만 상처 입을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한숨 자도 돼”

“잠도 안 오고, 가는 동안 심심하시잖아요.”

집으로 데려다줄 때마다 종종 졸았던 게 생각나서 양심에 찔렸지만 이내 자질구레한 대화들을 이어나가면서 촬영장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모델 이우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촬영 한 시간 전.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예정된 촬영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전부 고개를 숙이면서 밝게 인사하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웃으면서 대꾸해줬고.

‘신인한테 인사는 필수지.’

알게 모르게 이런 스탭들 사이에서 도는 입소문이 평판에도 반영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전생에는 스탭들을 막 대하다가 한 스탭이 폭로하면서 이미지가 나락 간 모델이 있었지.

모델이 이미지 사업이라는 걸 미루어 보았을 때, 그 모델 인생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여기 앉아주세요!”

“네.”

“오늘 메이크업 담당 김경훈이라고 해요. 수정 따로 필요하시거나 부를 일 있으시면 불러주시고 편하게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저는 이우연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알고 있어요,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신다면서요? 어려서 그런가 피부도 완전 아기 같고 너무 부럽네.”

어딜 가나 항상 피부 얘기는 빠지질 않네.

‘그만큼 관리를 열심히 한 덕이지만,’

얼굴에 무언가 발라지는 느낌이 들면서 손길이 한 번 닿을 때마다 변해가고 있었다. 이래서 화장을 사기라고 하는 건가.

머릿속으로는 오늘 촬영분으로 받았던 시안을 떠올리면서 다시 차근차근 복기했다.

3월이라는 걸 물씬 느끼게 해주는 꽃과 함께할 촬영.

그래서 지금 하는 메이크업도 수수하게 청순한 느낌으로 하고 있었다.

“여기.”

“아 고마워요.”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에 옆을 보니 어느새 내 쪽으로 다가온 예진이 건네는 음료를 받았다.

‘날 너무 잘 알아.’

커피가 아닌 스무디를 사 온 걸 보고 예진에게 환한 미소와 치켜든 엄지로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약간 뒤쪽으로 가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빨대로 스무디를 한 모금 마시니 입안에 퍼지는 상큼함과 시원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머리하고 립하면 메이크업은 끝이에요. 너무 예쁘다 정말. 최근에 이렇게 예쁜 모델 본 건 손에 꼽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연신 감탄하면서 마주쳐오는 눈에 어색하게 웃었다.

헤어스타일링은 비교적 빨리 끝났는데, 이마가 보이도록 앞머리는 조금 넘기고 대체로 머리카락을 펴서 생머리로 만들었다,

입술은 연한 분홍색으로 칠하면서 마무리.

“이제 옷 갈아입고 올게요.”

계속 앉아 있어서 그런지 몸이 쑤셨다.

목을 가볍게 돌리면서 행거가 있는 쪽으로 가자 한 남자가 다가와 내게 옷을 건넸고, 그걸 받아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백색이네.’

전부 하얀색인 게 자칫하면 밋밋해 보일 수도 있겠네.

옷을 입으니 원단이 남달라서 그런가 팔에 닿는 촉감이 좋았다. 팔 쪽에서 소매 부분으로 갈수록 통이 넓어지면서 살랑거리는 느낌을 주는 셔츠.

“...... 촬영 들어가도 될까요?”

“네. 지금 가겠습니다.”

밖으로 나와 마련되어 있던 신발로 갈아 신고 있었을 때, 어떤 여자가 들어오더니 눈이 마주쳤다.

스탭인 건지 내 대답을 듣고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 곧바로 나갔지만.

‘왜인지 스탭은 아닌 거 같은데.’

“경훈 형, 음영 한 번만 다시 잡아주실래요?”

“앗, 넵!”

옆에서 입을 헤, 하고 벌리고 있었던 경훈이 허겁지겁 메이크업 도구를 들고 와서 화장을 덧댔다.

그렇게 마지막 점검까지 끝내고 촬영장으로 들어서자 환하게 켜져 있는 조명과 그 앞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중년 여성이 보였고.

‘역시 그냥 스탭은 아니었네.’

그 옆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아까 들어왔었던 여성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모델 이우연입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려요!”

“어, 왔네. 우연 군 사진 찍어줄 박혜영이라고 해요.”

“데일 매거진에서 나온 이서민이라고 합니다. 오늘 촬영 모쪼록 잘 해주세요.”

“네!”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통성명을 통해서 여자가 매거진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잠시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데일 매거진에서 나왔다고?’

사진 작가라면 몰라도 오늘 촬영은 데일 매거진 잡지 촬영이었다. 그런데 그쪽 여자가 관계자라는 사실을 방금 통성명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일단 마음에 안 들었다는 건 알겠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살갑지 않았다. 저런 스타일은 아마 트집 잡힐 게 생기면 모델을 바꾸자고 하겠지.

“그럼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꽃 들어주시고~”

“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왜냐면 이 촬영에 있어서 트집 잡힐 건, 단 하나도 없을 테니까.

꽃을 두 손으로 들은 나는 비스듬하게 서서 고개를 틀어 한쪽에 무게중심을 실은 채 카메라를 응시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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