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chapter 32. 잡지 촬영 (2)
* * *
찰칵, 찰칵
조명을 받으면서 새까만 카메라 렌즈를 쳐다볼 때면 마치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졌다.
카메라 셔터가 반짝거릴 때마다 자세를 바꾸면서 얼굴의 각도와 시선 처리를 다르게 하는 것 또한 물 흐르듯이 이루어졌으며
“좋아요! 지금 표정 그대로 꽃 조금만 내려서 들게요. 오케이.”
사진 작가의 요구에 따라 곧바로 자세를 수정해나갔다.
순간이 포착되는 사진 촬영은 언제나 자연스러워야 하며 그만큼 여유가 있어야 했다.
이 한 장에 오롯이 나를 담아내야 하니.
“지금 상태에서 살짝 미소! 오케이, 마지막으로 한 장만 더! 이제 한 번 볼까요?”
사진 작가가 카메라를 내림과 동시에 취하고 있던 포즈가 풀어졌다.
큰 모니터 화면 앞에는 이미 데일 매거진 팀장이라고 했었던 이서민 팀장을 비롯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진 작가와 내가 합류하자 사진을 한 장씩 빠르게 넘겼다.
“의외로 살짝 미소 지은 게 B컷이네요. 고르자면 여기 이 무표정했었던 사진이 A컷인 거 같고요.”
“우연 군 얼굴만 봤을 때는 순진하게 웃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았었는데, 오히려 분위기는 이쪽이 확실히 더 확 사네.”
이서민 팀장과 사진 작가의 의견이 일치했다.
‘둘이 원하는 느낌이 뭔지 알겠다.’
아무래도 몽환적인 느낌을 더 세게 주길 바라는 것 같네.
‘오늘 컨디션이 좋은데?’
그동안 관리를 허투루 받은 게 아니었기에 모니터 화면 속에 잡힌 내 모습은 불과 한 달 전이었으면 꿈도 못 꿨을 사진이었다.
관리받은 태가 나네.
“한 번만 다시 찍어도 될까요?”
“난 여기서 고를 생각이었는데, 음 그러면 조금만 더 찍어보죠? 피사체가 좋아서 더 예쁘게 찍고 싶은 마음도 들고.”
사진 작가가 들뜬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촬영에 들어갔고 나는 그들이 원했었던 느낌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포즈를 잡고 몸에서 힘을 뺐다.
무심하게 카메라를 스치듯 쳐다본 시선과 함께 맞물린 셔터음.
이후 추가로 몇 장을 찍고 나서 촬영이 멈췄다. 이어지는 모니터링에서는 사진 작가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입을 열었고
“이 사진이야! 이게 A컷이 아니면 뭐가 A컷이겠어. 이제 다음 촬영 들어가죠? 우연 군도 이제 만족하지?”
“네. 잘 찍어주셔서 그런가 사진이 잘 나왔네요. 마음에 들어요.”
“근래 들어서 이렇게 만족스러운 촬영은 나도 처음이야.”
촬영장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덕분에 다음 촬영, 그다음 촬영에서도 고비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이 됐고
처음과는 확연히 차이 나는 사진 작가의 태도도 태도였지만 이서민 팀장은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이서민 팀장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 같았다.
심지어 두 번째 컨셉 촬영 때는 다시 한번 찍게 되었을 때 내게 다가와 원하는 포즈를 먼저 말하기도 했다.
그 자세를 바탕으로 다른 포즈들을 취하고, 손 모양과 시선 그리고 표정을 이용해 바꿔가면서 포인트를 조금씩 변화시켰는데 모니터링을 하면서 이서민 팀장은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보고 있었다.
어찌 됐건 세 사람이 원하는 바가 같았기에 결국 하나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사진을 찍는 것.
만약 여기서 좋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면 아마 촬영장 분위기는 나락으로 갔을 게 분명했다.
“완전 프로 모델 같네.”
“하하...... 아니에요.”
중간에 예진이 칭찬을 했을 때는 조금 찔렸다.
‘프로이긴 했었지, 전생에.’
사실 해외에 나가면 일단 인종차별에 플러스로 안 좋은 시선을 깔고 시작하니 이서민 팀장 같은 경우는 약과였다.
거기선 촬영을 순조롭게 마치더라도, 모델이 잘하건 말건 몇몇 사람들은 끝까지 불만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에 비하면 뭐.’
이서민 팀장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게 나쁜 쪽은 아닌 것 같고.
저쪽은 그래도 그런 타입은 아닌 거 같아 다행이다.
명색이 에이전시에 들어가고 모델로서 하는 첫 활동인데 첫 단추를 잘 끼워야지.
촬영장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좋아서 그런지 다른 스탭들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처음보다 훨씬 따뜻해진 거 같았다.
아마 오늘 촬영 일은 어떻게든 대표님이나 회사 사람들 귀로 들어갈 게 분명하니까.
‘끝까지 처신 잘해야지.’
“오케이 촬영 끝!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닥에 앉아서 찍었던 촬영은 앞서 했던 촬영으로 감을 확실하게 잡아서 그런지 한 번에 끝났다.
‘으, 끝이네.’
촬영의 연장 여부는 모델의 재량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원래 예정대로라면 한 40분은 더 걸렸어야 했으나 비교적 촬영이 일찍 끝나버렸다.
그래서 그런가 스탭들의 표정이 묘하게 밝아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인사를 돌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우연 군도 수고 많았어요. 오늘 사진 너무 예쁘게 뽑혔으니까 기대해!”
“...... 수고하셨어요. 나중에 소속사 측으로 연락 다시 드릴게요.”
인사를 돌리고 촬영장을 나오자 이제 차로 한 시간 넘게 집으로 갈 일만 남았다.
“누나. 저희 가는 길에 밥이라도 먹고 들어갈까요?”
중간에 딴 길로 잠깐 새기도 했지만,
의외로 예진과 입맛도 똑같고, 밥 먹는 속도도 비슷한 게 앞으로 자주 같이 밥을 먹어도 괜찮을 거 같았다.
‘매니저랑 친해지면 좋지.’
식곤증 때문인지 또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는 졸았다.
“푸흐,”
어디서 웃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꿈이었나?
*****
촬영장에 도착한 서민은 모델을 보러 가지 않고 곧장 사진 작가에게로 향했다.
‘미리 언질이라도 해놔야지.’
박혜영 사진 작가는 오로지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기로 소문난 사진 작가였다. 아마 모델이 신인인 걸 알아도 그냥저냥 신경 안 쓸게 분명한 사람.
하지만 오늘 촬영은 무려 표지에 실리는 메인 촬영이었다.
새파란 신인을 데려다가 쓰는데 당연히 결과물이 안 좋으면 표지라도 다른 모델로 바꿔야 될 것 아닌가.
“오늘 촬영하는 모델이 정말 생신인이라, 아무래도 작가님 역량으로 커버해 주셔야 될 거 같아요. 저번 작업물 보는데 촬영하시는 게 되게 한 폭의 그림 같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으음...... 정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죠. 저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촬영 시간이 되도록 그녀는 사진 작가의 옆에서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은근슬쩍 모델에 대한 밑밥을 깔아뒀다.
사진 작가도 그녀의 말에 수긍했으며 대충 알겠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그렇게 촬영 시간이 되자 모델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모델 이우연입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려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그녀에 눈에 박히듯 각인되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피부도 좋고,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 주변을 화사하게 만드는 게 얼굴 하나는 정상급 아이돌과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마른 몸은 모델이라는 걸 알리듯 옷핏을 소화해내기에 최적의 요건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겉모습에 흔들리지 말자.’
하지만 그녀의 다짐은 얼마 가지 못해 산산조각 나버렸다.
어수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결과물인 사진들을 본 순간 그녀는 최고의 사진을 눈으로 가려내기에 바빴다.
‘이 정도면 잘했네.’
개인적으로 A컷이라고 생각했던 사진을 뛰어넘을 사진이 나올 거라는 건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신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사진이었다. 카메라에 포착된 그 순간이 유일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이상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하지만 재촬영에 들어가자 그 생각도 다시 한번 사라졌다.
두 번의 촬영은 한 번씩의 재촬영이 이루어졌고, 세 번째 촬영에서는 단 한 번만의 촬영으로 촬영이 끝나버렸다.
“말도 안 돼.”
촬영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그녀는 이우연이라는 모델에에 설득당했다.
‘베스트에서 베스트를 뽑아내는 것.’
그것보다 어려운 게 대체 뭐가 있을까.
더 나아질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찍힌 사진을 볼 때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데마시아라는 배경과 잡지가 잘 팔릴 팬층만 보고 있었는데 상대방은 이미 완전한 모델이었다.
결국 촬영 도중 그녀는 인정했다. 사람을 보지도 않고 판단해버린 자신이 부끄러웠고,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데일 매거진에 와서 만드는 첫 잡지였기 때문에 더 조급했던 걸지도 몰랐다.
“디자인부터 다시 한다.”
그날 촬영장을 나오면서 그녀는 우연의 사진을 보고 얻은 영감을 떠올리면서 데일 매거진으로 돌아갔다.
‘내가 본 남자들 중에 꽃과 제일 어울리는 남자였어.’
이건 안 팔릴 수가 없었다.
하여 그녀는 기존의 표지 디자인이 아니라 문구부터 시작해서 전부 새롭게 디자인할 생각이었다. 그런 잡지를 만들려면,
“잠 못 자겠네.”
잠을 줄여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눈에 불을 켜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멈춰! 일 멈춰!”
“날 죽여줘. 나 여기 드러눕는다. 눕는다고!”
데일 매거진에는 사람들의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니, 야생마 같은 표정으로 나갈 땐 언제고 왜 승천하려는 이무기가 돼서 돌아오냐고!
당사자만 모르는 소리 없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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