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34화 (34/137)

〈 34화 〉 chapter 33. 블로그 소동

* * *

오늘은 일요일,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중에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날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고......”

하지만 그 달콤한 휴일에 없던 현기증도 생겨나서 뒷목 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랜만에 로그인한 메이버.

메이버는 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평소에 로그인을 해두질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로그아웃이 됐었다.

하지만 저번에 메이버 알림이 99+인 걸 보고 한참을 까먹고 있다가 이제야 다시 로그인을 하게 됐는데.

“아니 이걸 왜 읽는 거야아!!!”

당일 방문자 수 4000명, 이웃 2만 명.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메이저가 되어버린 블로그를 보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웃스타그램 팔로워 수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에 불과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기에는 내가 싸질러 놓은 글들이 남아 있다는 게 문제지.

‘그걸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읽고 팔로우를 한 거고.’

수치도 이런 수치가 다 있을까.

사진이 첨부되어 있는 게시글은 4개, 짤막한 토막글이 적힌 게시글이 3개.

합해서 고작 7개의 게시글만이 존재하는 블로그였다.

‘대체 뭐가 재밌어서 이런 걸 보는 거지?’

전부 내가 중2병이 한창 돋았을 때마다 들어와서 적었던 것들이었다.

‘연’이라는 한 글자 닉네임과 내 그림자 사진이 프로필 사진인 블로그.

어느새 이렇게 커졌는지는 몰라도 모든 게시글의 댓글 수는 전부 999+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거 글을 다시 읽기보다는 댓글 읽기가 막막한데.

이런 건 궁금해서 못 참는다.

“아......”

결국 나는 댓글을 읽고, 쪽지를 읽으며 연관 블로그로 뜨는 사람들의 글들도 몇 개 읽어봤다. 거기에 일요일 하루를 통째로 바쳤고.

‘벌써 12시 30분이네.’

내 휴일은 어디 가고 지옥 같은 월요일이 다시 돌아왔다.

블로그라고 다르진 않은지 쪽지에는 광고 제안부터 시작해서 혹시 책을 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도 와 있었다.

‘응 안 해.’

마냥 중2병이라고 생각했던 글들이 댓글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댓글들에 그냥 조금 오글거리는 글로 인식이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서 악플이 없던 건 아니고, 꼭 가다가 한 개쯤은 달려 있더라.

“내 아웃스타그램에도 그러긴 하지.”

어딜 가든 다 똑같구나.

사실 몇몇 댓글은 비판과 비난이 교묘하게 섞여 있어서 수긍하다가도 그에 달린 사람들의 대댓글을 보면 생각을 철회했다.

만약 내가 인플루언서라면 쌍수 들고 환영해서 이런 블로그 어떻게든 해봤겠지만

“전부 다 비공개로 돌려버려.”

조용히 사라지는 게 내 선택이었다. 삭제를 해버리는 게 제일 낫겠지만 그러기에는 댓글이 조금 아깝기도 하고.

꽤 좋은 댓글들도 많으니 나중에 보고 싶을 때 와서 볼 생각이었다.

“으음, 그냥 간단하게만 적어야지.”

그렇게 게시물들을 전부 비공개로 전환하고 곧장 글 작성 탭에 들어가서 제목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텅 빈 블로그를 보게 될 사람들에게 그래도 공지라도 적으면서 대강 상황 설명을 해줘야 되지 않겠나.

‘[공지] 안녕하세요, 블로그 주인 연입니다.’

이십 분가량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후에야 올릴 수 있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는 학교를 가야 했으며, 예정되어 있진 않지만 모델 활동도 병행해야 하니까.

‘페룩에 아웃스타그램만 해도 벅차.’

하지만 관종끼가 있어서 좀 뜨니까 아쉬움이 아주 조금 남는 거 같았지만

“그래도 안 돼.”

마음을 다잡고 메이버 로그아웃을 눌렀다.

앞으로는 구굴 이메일 써야겠다.

****

지잉ㅡ.

“엥? 알림이 울릴 게 있나?”

시끄러워서 알림이란 알림은 전부 다 꺼놓았다. 지금 시간에 올 캐톡도 없었고.

반도의 흔한 대학생 남자인 그는 새벽 1시에 울린 알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과제는 조금만 이따가.’

침대로 다이빙하면서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자 곧바로 알림의 정체가 보였다.

[메이버 블로그]

[공지] 안녕하세요, 블로그 주인 연입니다.

“허어어억.”

메이버 표시가 있어서 광고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이웃을 맺어놓고 알림까지 맞춰둔 블로그의 게시글 알림이었다.

‘영영 안 울릴 줄 알았는데......!’

처음엔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감성 블로그였다.

하지만 게시물은 7개에서 멈춰있고 오랜 시간 동안 글이 안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그를 비롯한 사람들은 올라와 있는 게시글을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 너무나도 공감됐었으니까.

몇몇 말들은 심금을 울릴 정도였다.

아웃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가 아니라 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게시물에는 어떨 때는 우울이, 어떨 때는 불안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었기에.

근래 들어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는 블로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오로지 한 명, 연의 글만을 읽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공허’ 글에 댓글을 남기고 출첵을 했는데.

“아......”

설레는 마음으로 메이버 알림을 눌러 게시글을 읽기 시작한 그였지만 짧은 공지 글이 끝나자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ㅇ, 아니 아예 섭종을 때려버리겠다는 거잖아?!’

게시글은 이와 같았다.

[공지] 안녕하세요, 블로그 주인 연입니다.

[먼저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7개의 글이 적혀 있는 이 블로그는 사실 제가 아주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을 때, 그저 가볍게 혼자 적어둔 공간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셨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컸지만, 하루 동안 남겨주신 모든 댓글들과 쪽지들을 읽으면서 다른 의미로 부끄러워진 거 같네요.

하지만 이 공간은 앞으로 이어가기엔 제가 너무 벅차고 또 저와 비슷하신 다른 분들도 충분히 계시니 그분들과 함께하시는 게 어떨까요?

하여 모든 글은 비공개 처리되었으며 앞으로 다른 게시물이 올라올 예정은 없습니다.

이웃해주신 분들, 댓글 남겨주신 분들 전부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글을 전부 읽은 그의 눈동자에는 허탈함에서 분노, 이제는 슬픔으로 진화하며 물기가 차올라 있었다.

앞으로 다른 글들을 더 써서 올리겠다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까지 뺏어버리다니.

‘악마다, 악마야!’

이유 모를 배신감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망을 쏟아낼 수는 없었다. 바짓가랑이를 잡아서라도 붙잡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글을 몇 번이고 읽으면서 그 원망의 대상은 다른 이에게로 뻗치기 시작했다.

“비슷한 다른 분들......?”

이 말인즉슨 자기 글을 표절한 이들과 따라 한 이들을 알고 있다는 거 아닐까?

‘함께할 사람이 없으면 돌아올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그는 999+인 댓글창을 누르니 몇몇 이들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댓글]

ㄴ 돌아와 ^^ㅣ발 이건 아니잖아. 우리 좋았잖아. 나만 구질구질하게 이러는 거야?

ㄴ 진짜 진심으로 연님 글 보면서 힐링하고, 공감했었던 사람입니다. 매일 연님 블로그에 들어오면서 이제는 토씨 하나 안 틀릴 정도로 외웠는데...... 다시 와주시면 안 되나요?

ㄴ 이거 다 표절한 새끼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임 ㅋㅋ. 원인이 뭔지 바로 알겠쥬?

ㄴ 올 때까지 숨 참는다 흡.

정상이 아닌 댓글들도 있었지만 몇 줄씩이나 돼서 설득하려는 댓글들도 있었다.

그도 댓글을 달까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원흉을 제거하기 위해서 표절과 도용을 일삼았던 페룩과 블로그를 찾아 증거를 모아 게시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날, 다섯 개의 블로그가 문을 닫았으며 두 개의 페룩 계정이 삭제되었지만

연의 블로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최후의 방법. 블로그 연 게시물 사진_jpg]

제가 보려고 캡처해서 저장해놨던 거 풉니다. 감상만 하세요.

[공허_jpg]

[내가 바란_jpg]

[해야 하는, 되는_jpg]

[아무것도_jpg]

[짧1_jpg]

[짧2_jpg]

[짧3_jpg]

좋아요 1.8만개 댓글 8000개

: 그런데 올리면 안 되지 않음? 주인이 비공개 돌린 건데.

: 진짜 죄송한데 이거라도 있어야겠음......

: 다 해치웠나? 했는데 왜 안 오냐고ㅋㅋㅋㅠㅠ

: 이거 ‘연’이 이우연의 ‘연’이라는 소리 있던데.

ㄴ 성괴에 연님 갖다 붙이지 마라.

ㄴ ㄹㅇㅋㅋ 이제 고딩 되는데 뭔 성형;; 인정할 건 인정하자 우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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