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chapter 38. 예고 입학
* * *
“아 학교 가기 싫다.”
에이전시에 들어간 후로 밖을 나갈 일이 많아서 사실 이번 방학은 방학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를 간다고 하면 말이 또 달라졌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정을 소화해내려면 일단 변하는 건 거의 없을 테지만 나는 피곤해질 테니까 말이다.
전생에 현역일 때는 잠을 줄여가면서 발로 뛰었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확실히 배가 부른 거긴 했다.
하지만 어째. 나이가 어리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알아 버렸는걸.
학교에서도 귀찮은 일들을 전부 여자애들이 해주면서 편하게 앉아만 있었기에 남자인 것도 포함이었다.
‘그래서 정신도 같이 해이해져버렸네.’
인정했다.
그간 너무 쉬면서 놀고, 해달라는 거 다해주는 세상에서 살았서 그런지 마음이 풀어져 있었다.
“...... 영어 공부나 해야지.”
그런 마음가짐을 다시 다잡기 위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모델 일을 하면서 해외를 나가는 건 부지기수. 그만큼 제2외국어 능력을 스펙에 기재하는 모델들도 있었다.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있으면 좋은 거.
‘뭐든 잘하고 싶어.’
과거에 나는 그래도 외국을 돌면서 대화를 하는데 일절 문제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2외국어에 능통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운 생을 살아가면서 새롭게 생긴 욕심 중 하나.
내가 목표로 잡은 건 ‘세계적인 모델’이었기 때문에 언어라는 장벽 때문에 막힐 순 없었다.
일단 시작은 영어부터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늘려가면 아마 미래의 나에게도 좋을 일.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았다.
“실전 영어 A반 클래스 친구들 안녕! 오늘 배울 표현은.......”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들려오는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그렇게 내 방학은 끝이 났다.
****
“우리 아들이 벌써 고등학교 입학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
“그러게요. 저도 제가 고등학생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나요.”
“그래도 잘할 수 있지? 아빠는 우리 아들 언제나 믿어 의심치 않아. 너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똑똑한 아이였는지에 대해 읊고 있는 아버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것도 그럴게 학교에 도착하려면 아직 40분이나 더 남았으니까.
며칠 전에 잠깐 자취에 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크게 반대하시진 않으셨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서시는 것 같았다.
‘생각하실 시간을 드려야겠지.’
너무 오래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입학식이어서 이렇게 데려다주는 거지 매일 아침 데려달라고 하기에는 미안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귀찮았으니까.
여러모로 빨리 자취를 하는 게 좋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 그런 나를 쳐다보며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학부모가 안 가도 되는 거니....?”
“네. 누나 때도 안 가셨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시무룩한 목소리에도 나는 단호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어려서 빨리 크기를 바랐었는데 이제는 벌써 고등학교 입학식이었다.
포기한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가니 떨리지 않냐, 친구는 어떻게 사귈 거냐 등등의 질문을 던졌고 답변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자 어느덧 학교가 보였다.
‘같은 교복을 입은 애들도 꽤 보이네.’
나는 거울을 보면서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응! 우리 아들 오늘 힘내~! 친구도 많이 사귀고!”
“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해요. 조심히 가세요!”
아침부터 운전해서 피곤할 게 분명한데도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면서 활짝 웃으셨다.
물론 나도 그런 아버지에게 마주하여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그렇게 차에서 내리고 학교로 가는 학생들에게 합류해 교문을 통과했고
‘활기가 도는 거 같네.’
저번 실기 고사를 보러 왔었을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인 학교를 보면서 걸었다.
1학년은 본관이 아니라 별관을 사용했고 내가 속한 패션모델학과는 3층.
신입생들이 헤매지 않도록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걸으니 반 앞에 도착했다.
드르륵ㅡ.
“......”
문을 열자 앉아있던 이들의 고개가 잠시 내 쪽으로 돌았다가 원위치했다.
등교 시간까지 아직 10분 정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다 온 것인지 몇몇 자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자리가 차 있었다.
‘이런 어색한 공기도 진짜 오랜만이네.’
침묵에 휩싸인 반을 둘러보면서 앉을 자리를 물색했다.
칠판에 ‘앉기 자유’라고 네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으니까,
일찍 오지 않아서 그런지 좋은 자리는 이미 전부 차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맨 앞자리에 앉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데.
“여기 앉아도 되지?”
“응? 응!”
전부 채워져 있지만 딱 가운데 비어 있던 한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애가 아닌 건 좀 아쉬웠지만 옆자리 남자애는 성격이 밝은 편인 건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무쌍인 눈이 올라가 있는 게 첫인상은 조금 사나워 보이는데.
‘생긴 게 성격이랑 반대인 사람들도 많긴 하지.’
그게 옆자리 애도 해당될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모델들도 사납게 생긴 사람이 오히려 더 순하고 애교가 많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얼굴은 착한데 성격이 개차반인 사람도 있었다.
교실이 워낙 조용했기에 우리는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너튜브로 음악 유튜버의 영샹을 보면서 3번째 곡이 거의 끝나가려던 순간.
앞문이 쾅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옷차림과 얼굴에 나는 그대로 음악을 멈추고 이어폰을 빼냈다
“하하. 이렇게 세게 열려던 게 아닌데 세게 열리게 됐네요?”
어색하게 웃은 남성이 눈에 띄게 문을 살살 닫고는 교탁에 섰다.
그가 교탁에 섬과 동시에 종소리가 울렸고, 그는 종소리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현역이었던 거 같은데?’
동안이라는 걸 감안해도 크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은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걸어오는 걸음걸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았는데 움직이는 팔의 각도가 어느 정도 일정한 걸로 보아하니.
내가 그를 탐색하고 있는 동안 종소리가 멎었다.
“반가워. 앞으로 1년 동안 너희의 담임을 맡을 이한솔이라고 해. 자세한 내 소개는 입학식이 끝나고 하는 걸로 하고. 일단 강당으로 가야 하니까 전부 뒤로 가서 두 줄로 서!”
담임의 말이 끝나자 그와 동시에 의자를 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딱히 두 줄을 어떻게 서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서 한 줄씩 섰고, 우리는 강당으로 이동했다.
“아, 미안!”
“괜찮아.”
뒤에서 모르고 내 발뒤꿈치를 밟는 일이 있긴 했지만 별로 아프지 않았으니 가볍게 넘어갔다.
“크흠, 다들 도착한 거 같으니 지금부터 제30회 노아공연예술 고등학교의 입학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루한 입학식의 연속,
전교생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몇 명이 졸고 있는 게 눈에 보였지만 지적하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훈화 말씀을 한 4개 정도를 듣고 나니 입학식은 끝을 향해갔다.
오늘따라 졸리지 않아서 나는 입학식 내내 멍을 때리고 있었고.
“이상입니다!”
짝짝짝짝짝.
이상이라는 말에 박수가 제일 큰 거 같네.
1학년은 마지막으로 나간다며 2, 3학년이 강당을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잠깐 있긴 했었지만 장장 2시간 동안 이어진 입학식에 다들 반으로 돌아오자 자기 자리에 털썩, 하고 앉았다.
‘입학식이 설레긴 뭐가 설레.’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아이들이 전부 자리에 앉은 걸 보고 담임이 입을 열기 시작했으니까.
“자, 그러면 아까 했었던 내 소개를 먼저 이어서 할까? 이름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한솔이고 담당 과목은 테크닉 워킹, 너희가 배울 모델 실기에 속해.”
칠판에 이름 석 자를 적고 내려놓은 뒤 반 전체를 훑으면서 말을 이었다.
“경쟁을 뚫고 너희가 진학한 이 패션모델학과에서는 너희를 최고의 모델로 한 명이라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다. 너희의 꿈이 모델인 만큼 데뷔를 했건, 안 했건 전부 똑같아.”
방금 눈이 마주친 것만 같은데 기분 탓인가.
“되도록이면 아무 문제도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렵겠지? 너무 큰 문제만 안 일으켰으면 좋겠다. 하하.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하고 첫 시간이니까 오늘은.......”
아니, 이번에는 제대로 눈이 마주쳤다.
‘불안하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시작해볼까? 우리 과 수석부터 일어나서 모범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이런 안 좋은 직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또다시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모여들었고
“아 맞다. 우리 임시 반장은 앞으로 우연이가 해줄 거야. 다들 박수!”
짝짝짝짝짝.
박수 소리에 다시 앉고 싶었다.
이거 입학 첫날부터 자퇴 마렵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