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chapter 40. 악플에 대응하는 방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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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등록금이 헛되게 쓰이지는 않는지 점심은 그래도 맛있었다.
‘이 정도면 급식충 인정이지.’
후식으로 생과일 푸딩이 나오는데 이건 인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겐 너무 부담스러운 짝꿍의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제안도 거절하고 혼자 온 급식실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급식실은 멀끔했고 되레 나처럼 혼자 먹는 이들도 수두룩했으니까.
‘입학식이라서 그런 건지, 예고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네.’
고등학생이 돼서 혼밥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은 점심시간 동안은 소화를 하기 위해 잠깐 산책을 하고 양치를 한 뒤 자리로 돌아와서 영어 단어를 외웠다.
여전히 교실에는 어색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고 나뿐만 아니라 몇 명 아이들도 자기 자리에서 자기 할 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오후 수업.
일주일 중 유일하게 월요일만이 6교시여서 이제 앞으로 두 시간만 수업을 들으면 학교가 끝났다.
“앞으로 패션쇼의 기획과 연출을 가르칠 강혜은이라고 해. 잘 부탁하고, 다들 책 펴라. 안 갖고 온 사람 있으면 오늘까지만 봐줄 테니 옆 사람이랑 같이 보고.”
노트북을 연결한 선생이 PPT 화면을 띄우며 말했다.
무표정인 얼굴에 쓴 안경이 첫인상부터 뭔가 빡빡해 보였는데 빗나가질 않네.
첫 수업부터 정상 수업이라니 벌써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책은 가져왔지만.’
나는 사물함에 책을 전부 넣어두고 다닐 생각이었기 때문에 오늘 웬만한 책들을 전부 들고 왔다.
아직 정리를 하지 않아서 가방에서 ‘패션쇼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꺼내자 그런 나를 보고 있었는지 옆에서 작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리니 간절한 표정의 성운의 얼굴이 보였다.
“나 안 갖고 왔는데 같이 볼 수 있을까?”
“응.”
“고마워!”
우리가 지금까지 나누었던 대화 중 처음으로 긍정이 포함된 대화가 오갔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반대의 사람이 같이 다니면 어느 한쪽은 참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나일 것 같단 말이지.
임시 반장인 것부터가 글러먹었지만 나는 편한 학교생활을 추구하는 학생이었다.
“전부 준비된 거 같으니 그러면 바로 수업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러분은 일단 ‘패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선생의 질문에 정적인 교실에서는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조차 예상했다는 듯 그녀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패션은 자신감이다, 라는 말이 제일 유명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더욱더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겼고, 그 결과 다양한 브랜드들과 디자인들이 생겨나면서 패션계가 진화했으니까요.”
슬라이드에는 흑백 사진의 과거 옷 사진부터 현대의 옷 사진이 나열되어 있었다.
“패션모델, 패션 디자이너. 정말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죠. 적어도 패션에 관한 직업들인 만큼 그중 모델을 지망하는 여러분은 패션에 대해서 알아야 해요.”
책을 펴라고 했지만 정작 책을 볼 시간은 없었다.
‘패션쇼’에 들어가기에 앞서 ‘패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 생각인지 책에는 안 나와 있는 얘기였으니까.
첫날부터 수업에 들어가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의 수업은 나름 오티라고 봐도 무방했다. 학생들의 집중도를 끌어올린 오티.
매시간 딴짓하기 바빴던 짝꿍, 성운 또한 이번에는 정면을 응시한 채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으니까.
‘그건 좀 편하네.’
어찌 됐던 간 여기 앉아 있는 이들은 일단 모델을 지망하고 온 아이들.
첫날에 그런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내용들을 가져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선생 좀 괜찮네.
그녀가 말하는 것들은 이미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었다. 하지만
‘패션쇼의 기획과 연출.’
어디 가서 배워본 적 없었던 지식이 담긴 과목인 만큼 수업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중간에 식곤증이 왔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눈을 부릅뜨면서 잠을 참아내고 수업에 임했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영락없는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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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연
내용: 새 출발 새 학교 새 교복
(교복 입고 브이하고 있는 사진)
좋아요 92.1만개 댓글 40만개
: 아이돌 안 해? 아이돌 안 해? 아이돌 안 해? 아이돌 안 해?
: 내 본진이 여기라고 여기!!!!
: 성인 언제 되냐...... 아직도 미자라니 정신 나갈 거 같애
: 형 너무 에뻐요 ㅠㅠ! 혹시 화장품 어디 거 쓰세요?
: 사진 기본 카메라로 찍는 건가? 가슴이 웅장해진다......
: 기본은 무슨;; 보정 했겠짘ㅋㅋ
지친 몸을 이끌고 한 손으로는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 아침에 올렸었던 SNS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읽어내렸다.
원래라면 오늘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아버지 아는 친구분이 병원에 입원하신 바람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미안하신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카드로 사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도 내 카드가 따로 있는데 뭐하러.
집 근처에 있는 초밥집에서 초밥이나 포장해갈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요즘 악플이 좀 는 거 같네.’
팔로워 수는 190만 명, 얼마 전부터는 여기서 더 오르질 않아서 정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최근 들어 악플이 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라고 하기에는 자꾸만 눈에 밟혔다.
전에는 그래도 넘어갈 만했었는데 이제는 개수의 단위가 달라졌는지 계속 보인다고 해야 되나?
팬이 있는 만큼 안티팬도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내 입장에서는 악플의 존재가 달갑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원래 이런 댓글들에 관심을 주면 더 분탕칠 거란 걸 알지만, 전부터 몇몇 눈살 찌푸려지는 댓글들이 글을 올린 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달리는 바람에 볼 수밖에 없었다.
‘내 아웃스타 댓글 내가 보겠다는데.’
이것들 때문에 안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한숨을 작게 쉬고는 댓글 창을 닫고 메시지 창을 클릭했다. 그러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쌓여 있는 개인 메시지들의 목록을 눈대중으로 훑었고
“아.”
아까 개네.
아까 악플이라고 생각했던 댓글을 남긴 사람이 메시지를 보냈었다.
단말마를 터트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고.
아까 댓글 창에 봤었던 닉네임과 똑같은 닉네임.
프로필 사진이 없는 것까지 똑같았다.
광고 DM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메시지가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ㅉㅉ’이라고 미리 보기 되어 있는 메시지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뭐라고 했을까?’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눌러버렸다.
그러자 보이는 메시지의 향연.
초딩 때도 대주더니 고딩 되니까 아주 살판 나겠네ㅋㅋㅋㅋ? 얼굴 갈아서 여우짓 하는 거 진짜 역겹다. 걸레 같은 놈......
한 줄을 읽자 누가 찬물을 머리에 부은 것처럼 머리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와 있는 메시지는 한 개가 전부가 아니었다. 전부터 보내기 시작한 건지 위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끊임없이 나왔다.
‘정성스럽네.’
댓글도 게시글을 올리니 얼마 되지 않아 댓글을 달더니, DM은 하루에 한 번씩은 보낸 듯하다.
‘토할 거 같아.’
전생의 기억이 오버랩 되었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모두가 나를 욕하는 게 아니야.
그 한 가지 사실에 마음을 진정시켰다.
전부 네 줄은 족히 되는 듯한 말들은 입에 담지도 못할 욕으로 채워져 있었고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인신공격까지 아주 다양했다.
‘이런 게 사람 한 명 죽일 수 있는 건데.’
아무 이유 없는 사람을 향한 악의가 이렇게 무섭다.
인기가 많은 연예인들조차도 악플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그로 인해 목숨을 끊었다는 이들도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런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 역겨워.”
작게 읊조렸다.
분노가 일었음에도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워져 있는 상태.
“다음 정류소는 노아역입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 들려오자 나는 그대로 아웃스타그램을 나갔다.
여기서 더 읽어도 아마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건 나뿐일 테니까.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아까 봤었던 말들이 떠올랐고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어떻게 족치지?’
어떻게 족쳐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지 최적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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