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chapter 42. 무용과 몸 (1)
* * *
“에취.”
재채기가 계속 나오네.
나는 약간 내려간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며 수업을 들었다.
‘다른 애들한테 옮기면 안 되니까.’
환절기에다가 얼마 전에 했었던 촬영이 야외 촬영이어서 옷을 얇게 입은 바람에 감기에 걸리고야 말았다.
앓아누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긴 했지만.
하여튼 내가 재채기를 하건 말건 간에 수업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지금 수업은 일주일에 몇 안 되는 일반 과목이었다.
문학.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몸이 자꾸만 축 처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수업을 꾸역꾸역 듣고 나자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울리자마자 나는 바로 책상에 엎어졌지만......
“아싸, 무용 시간이다!”
“야 빨리 옷 갈아입으러 가자 빨리!”
다른 애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있었다.
‘아, 오늘이 그날이었나 보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반을 바라보면서 나는 오늘이 그날임을 깨달았다.
일주일에 유일하게 딱 한 번 듣는 과목, 무용과 몸이 있는 날.
첫 번째 수업은 오티, 두 번째 수업은 무용실로 이동했었는데 무용실에는 무용과 애들이 있었다.
내 상상 속의 무용과는 여자들이 많은 거였지만 여기는 오히려 남자애들이 조금 더 많았다. 그래도 과 명성이 어디 가지는 않는지 애들이 다 환호하더라.
어차피 우리는 한 시간만 쓰는 거여서 넓은 무용실에서 서로의 존재만 힐끗힐끗 쳐다보는 정도였다.
분명 서로 쳐다보기만 하는 정도....... 였는데.
“앞으로 두 시간 동안 실용무용과 친구들과 합동 수업을 진행합니다. 선생님들끼리 먼저 얘기가 오간 거긴 하지만 여러모로 여러분들한테 도움이 될 거예요.”
이마를 탁, 치게 만드네.
넓은 무용실에 두 반을 한곳에 모아 두니 인원이 꽤 많게 느껴졌다.
“오티 때도 강조했지만 선은 정말 중요해요. 자기 몸을 자기가 어떻게 컨트롤 하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이 부각시킨 걸 눈에 확 들어오게 만드니까요. 그런데 우리 두 반이 인원수가 딱! 맞아떨어져서.”
저번 시간까지만 해도 개꿀이었던 과목이 헬게이트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서.
‘그냥 이대로 앉아 있고 싶은데 나는’
애써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런 내 바람과는 별개로 선생은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각 과에서 한 명씩 페어를 맺어서 ‘기초 무용’에 대한 간단한 수행평가를 할 예정입니다. 점수는 10점이고 무용과 친구들은 페어와 20초간 맞출 동작을 창작해내세요.”
단호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페어’라는 말에 내 앞에 앉아 있던 애들의 어깨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멈춰......’
야속하게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난이도는 어렵게 할 필요가 없겠죠? 모델과의 이번 수행평가 목적은 몸 선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는지가 관건인 거고, 무용과는.......”
평가 방식을 말하자 10점이라는 점수에 반응한 몇몇 아이들의 눈에서도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 ‘수석’이라는 말은 중요하지만 그건 예고에서도 통용됐고
실력 있는 아이들을 모아둔 곳에서 1등을 한다는 건 꽤 의미가 있었으니까.
“자! 그러면 작년에 여러분 선배들이 한 영상을 보여줄게요.”
빔프로젝터로 영상이 재생되자 전부 집중해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초 남짓의 영상 3개가 끝나자
‘아 그러니까 저걸 내가 한다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자아 그러면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페어를 뽑아볼게요!”
원래 수행평가에서 제일 주옥같은 게 바로 팀플이다. 혼자 하고 싶어도 같이 해야 하고, 못해도 해야 하고, 사람이 아니어도 같이 해야 하니까.
‘버스 타게 해주세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남을 버스 태울 여력이 없는 나로선 당연히 버스 탑승 희망자다.
자리를 뽑을 때 했었던 제비뽑기로 하려는 건 아닌지 영상을 봤었던 화면에 이름이 적힌 네모칸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한 번씩 클릭할 때마다 이름의 위치가 바뀌는 걸로 보아 이걸로 페어를 정할 심산.
“두 번만 누를게요, 하나, 둘!”
그렇게 랜덤으로 페어가 정해졌다.
나는 내 이름을 찾아서 눈을 도르륵 굴렸다. 이내 이름을 찾아내자 내 옆에 적혀 있는 이름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유서아? 누군진 몰라도 여자 이름이네.’
나는 그래도 여자가 걸렸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점수를 말아먹더라도 굳이 무용과 남자애와는 페어를 맺고 싶진 않았다.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으로 앉아 있자 선생님이 앞에서부터 한 팀씩 이름을 호명했다. 보아하니 둘 중에 한 명은 핸드폰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모양이다.
반쯤 불려 나가고 나서 내 이름이 불렸다.
“이우연, 유서아.”
선생님 앞에 서자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나보다 작은 검은 머리 여자애의 정수리가 보였다.
“핸드폰은 누구 걸로 가져갈래?”
“.......”
“얘 걸로 주세요.”
다른 아이들이 무용과 애들 폰을 가져가는 걸 보고 나는 여자애의 폰을 달라고 말했다.
그럴 동안에도 유서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핸드폰을 찾아 건네면서 선생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수석 페어네? 이거 기대해봐도 되겠어?”
“어, 수석끼리 짝 됐어요? 뭐 그런 경우가 다 있대.”
“으음 그래도 수석이라고 해서 만점 받는 건 아니니까요.”
나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하는 무용 선생을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용 수업에서 무용과 수석이라면 모를까 모델과 학생이 만점은 못 받을 수 있으니까.
우리는 자리를 벗어나 다른 아이들처럼 빈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녕. 아까도 들었다시피 난 이우연이야.”
“.... 나는 유서아. 잘 부탁해.”
“응 나도.”
가벼운 인사를 나누자 어색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이 말을 뱉으면 마치 작업 멘트처럼 느껴질 걸 알기에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기억나면 말해야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 우리 사이의 정적은 가시지 않았고 결국 나는 주도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어떤 걸로 할까?”
“그, 선생님께서 단톡방에 올려주셨는데 전부 한 번씩 드, 들어보죠!”
“응. 한 번 들어보죠.”
처음이라 낯을 가리는 건지 내 말에 유서아는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20초짜리 음악이 담긴 파일 세 개가 연달아 재생됐다. 사실 음악이 아니라 세 개 전부 기본 비트가 조금씩 다르게 담겨 있는 것뿐.
예시로 본 영상에서도 기본 비트로 추긴 하더라.
“그런데...... 마스크는 왜 쓰고 계세요?”
“아, 제가 감기에 걸려서. 근데 우리 존댓말하고 있지? 동갑인데 그냥 말 놓는 게 편할 거 같은데”
“말 놔요!.... 응.”
“그래. 그럼 넌 어떤 걸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사실 난 처음부터 놓고 있었지만, 계속 존댓말을 하길래 나도 반사적으로 존댓말이 나와버렸다.
‘이게 팀플에서 처음 만난 팀원인가.’
통성명부터 시작해서 말을 놓기까지.
다른 조는 벌써 음악을 정했는지 일어서서 춤을 추기 시작한 곳도 있었다.
‘수석이라고 했으니까 믿을만하겠지.’
가볍게 던진 내 질문에도 유서아는 고심하는지 다시 한번 세 개의 음원을 들어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첫 번째는 템포가 조금 빠르고 두 번째는 중간에 튀어 오르는 부분이 있고, 세 번째는 말 그대로 느리네.”
“응. 그러네.”
첫 번째랑 세 번째가 빠르고 느리다는 차이를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튀어 오르다? 신기한 표현을 쓰네.’
내가 이해했다는 듯 대답하자 유서야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못하는 편이면...... 세 번째 하는 게 제일 나아. 그러면 그나마 속도는 다른 것보다 느리게 맞출 수 있으니까.”
나는 그 말에 잠깐 멈칫했다.
과연 내가 잘하는 편인지 못하는 편인지에 대해서.
무용이나 춤에 대해서 배워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몸선에 관해선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무용이라는 하나의 장르인데.
“한 번 보여줄 수 있어?”
“음...... 응. 그러면 내가 생각한 기초 동작으로 한 번 보여줄게.”
유서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 시선에 민감한 나는 근처에서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boom, boo, boom, boom.
20초 동안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유서아를 넋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