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44화 (44/137)

〈 44화 〉 chapter 43. 무용과 몸 (2)

* * *

같은 대사가 주어져도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이 달라진다.

모델도 똑같았다. 똑같은 옷을 입혀놔도 어떤 모델한테 입혀놨는지가 중요하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도.’

그랬다.

분명 비슷한 기본 동작을 하는 것 같은데도 아까 봤었던 영상의 움직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주변 아이들과는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두 번 들어본 비트에 맞춰서 정확한 동작과 팔다리가 쭉쭉 뻗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매끄러운 움직임, 모든 게 몸을 타고 절도 있게 일련의 동작을 완성해나갔다.

“어때,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 이게 제일 쉬운 건데?”

“일단 웨이브는 안 되니까 빼는 게 좋을 거 같아.”

“아.”

아차 싶었는지 유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봤자 웨이브가 나오는 구간은 한 구간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스텝이나 팔 동작이었지만 아무래도

“너랑 나랑 같이하면 확실히 비교되겠네.”

“.... 다시 한번 짜볼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전부 연습 삼매경이었지만 엉성한 곳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지 남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수행평가라.’

다시 고개를 돌려 유서아를 쳐다봤다. 그러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유서아.

‘얘한테도 점수는 중요하겠지.’

일주일에 고작 한 시간밖에 듣지 않는 수업이다.

사실 이 수행평가에 안무의 난이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모델과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몸 선에만 주목할 것이고, 무용과의 평가 기준은 들었던 것처럼 기본 동작을 얼마나 활용하여 창작할 수 있는가였으니까.

그런 점에서 춤에 대해서 초짜인 페어가 기준에 알맞은 것이었다.

‘딱히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곡은 두 번째 곡으로 바꾸자.”

“어? 그래도 되겠어?”

“보니까 다른 팀들이 별로 안 하는 거 같더라고. 네 말대로 튀어 오르는 부분도 있고.”

“...... 그러면 내가 다시 몇 개 보여줄 테니까 보고 말해줘.”

“응.”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고 춤을 추기 시작하면 사람이 바뀌는 유서아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춤에 진심인 녀석이랑 함께 페어를 맺어서 그런가.’

일단 모로 어떻게 가든 좋은 점수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입 부분은 두 번째가 제일 나은 거 같아. 거기 동작 알려줘.”

“응.”

내 말에 유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서 천천히 동작을 하나씩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눈으로 볼 때는 그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막상 직접 하니까 아까 유서아가 보여줬던 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걸 유서아도 느끼는지

“으응,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으응, 그거 아닌데.”

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동작 하나하나에 대한 컨펌 아닌 컨펌을 받으면서 동작을 익혀나갔다.

이래서 천재는 사람을 가르치면 안 된다니까.

****

사실 서아는 처음 우연을 무용실에서 봤었을 때부터 그를 알아봤다. 노아 예고 실기 날 부딪혔었던 남자애.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부딪힌 바람에 그의 싸늘했던 표정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기억 못 하는 거겠지.’

하지만 우연은 페어가 되고 인사를 나눌 때까지 자신이 그때 그 부딪혔었던 여자애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기야, 부딪힌 여자애를 하나하나 기억하기에는 너무 많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우연의 얼굴을 잊지 못한 건 그의 외모도 한몫했다. 무용실 먼발치에서 바라봤음에도 유독 눈의 띄는 외모.

서아는 거울에 비친 우연의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배운 동작을 계속해서 연습하고 있는 우연은 서너 번 정도 물은 뒤부터 혼자 안무를 외워버렸다.

자기가 스스로 수정해가면서 직접 다듬는 과정만 반복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해본 적이 없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혼자서 너무 잘하잖아.’

그 모습에 습관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잘 춘다, 못 춘다로 정의되는 게 아니다.

춤을 춰보지도, 배워보지도 않았고 자신이 춤을 보여줬을 때 비교가 될 거라고 말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빠르게 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것. 그걸 우연이 지금 하고 있었다.

‘내가 수도 없이 노력했었던 것들 중 하나.’

춤을 추고 있는 우연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고 그의 몸 곳곳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저 얼굴에 춤까지 잘 춘다면 그거야말로 사기겠지.

서아는 자조했다. 같은 과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을 보고 생겨난 같잖은 질투심을.

하지만 그는 경쟁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잘 추면 잘 출수록 자신의 점수가 올라갈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그녀는 질투심을 지워낼 수 있었다.

중반까지 뺀 진도는 몇몇 동작들을 수정하고 추가하면서 완성해나갔다. 다 이런가 싶어서 주위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초입을 배우고 있거나 이제 막 안무 창작을 하는 단계.

“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빨리한다고 좋은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앞서고 있다는 사실에.

이번 입학 수석을 하면서 한시름 걱정을 덜어냈지만 앞으로 주어질 평가 하나하나가 그녀의 숨통을 조여올 것이다.

“나만 연습하는 거 같잖아. 너도 옆에 와서 같이 해 보면서 좀 해보게”

“...... 응.”

나지막한 음성에 서아는 우연의 옆에 섰다.

계속 춤을 춰서 그런지 마스크를 벗고 있는 우연의 얼굴이 거울로 비췄다.

예쁜 남자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지.

“여기 팔 각도.”

“내가, 맞출게.”

애써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

“몸치는 아니네요.”

“몸치라고 하면 큰일 날 수준이죠. 제대로 배우면 오히려 성공할 거 같은걸요.”

“그쪽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아, 이미 데뷔했다면서요?”

“꽤 유명해요. 특히 어린애들 사이에서는 더 그런 거 같더라고요.”

구석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우연과 서아를 보면서 무용 선생 둘이 대화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들은 패션모델과 수업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는 엄연히 실용무용과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둘은 자연스럽게 아는 사이일 수밖에 없었다.

무용실은 넓었다. 거울로 되어 있는 벽면을 포함해 단체 연습을 하기 위해 만든 곳이니 공간은 넓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의 시선이 자꾸만 한곳으로 모이는 건 필수불가결이랄까.

일단 조합부터가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서늘한 인상처럼 보이지만 표정 변화가 있는 편인 우연은 대화하기 시작하면 꽤 다정한 편이었고 그에 반해 서아는 귀여운 얼굴에 비해 무뚝뚝한 편이었으니까.

일단 비주얼이 되니 1차 합격, 둘이 각 과에서 수석이라는 실력 면에서 2차 합격.

선생님들도 알게 모르게 그쪽을 주시하면서 대화를 나누곤 했지만 학생이라고 뭐 다를 건 없었다.

“너 쟤랑 친해?”

“으음, 딱히 친하다고 할 사람은 없을걸?”

“뭐야. 쟤 왕따시켜?”

“왕따라니 무슨!”

패션모델과 여학생이 얼토당토않는 질문에 펄쩍 뛰면서 부정했다.

하지만 무용과 남학생의 의심의 눈초리는 거둬지지 않았고, 여학생은 뭔가 억울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왕따시키는 게 아니라...... 어 쟤가 우리를 왕따시켜! 뭔가 한 명이 반 전체를 왕따시키는 듯한......?”

“그게 뭔 개소리야.”

“아 진짜라니까. 아씨 이걸 뭐라고 해.”

둘은 연습을 하면서 친해진 건지 대화에 스스럼이 없었다.

그렇지만 억울한 패션모델과 여학생의 말에 뭔가 이해가 간다는 듯 무용과 남학생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고

하마터면 인터넷에 올라갈 뻔한 ‘우연 왕따설’은 다행히도 올라가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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