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chapter 45.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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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0320 우연 SNS 사진 업데이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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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례없는 폭풍 업로드와 미친 미모를 뽐내고 있는 이우연 0320 사진 가져옴. 최근에 셀카가 좀 올라오기 시작함.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까 이젠 좀 귀여운 거 같음. 물론 잘 나온 건 남이 찍어준 사진이지만
추천 3024개 댓글 4001개
: 야 쟤 폰 뺏어라. 차라리 지나가던 사람 붙잡아서 찍어달라고 해 ㅅㅂ
┖ 귀엽잖아ㅋㅋㅋ 빵떡 같은 게
┖ 예쁜 거만 보는 것보다 귀여운 것도 같이 보면 효과가 두 배
┖ 새끼 아직 콩깍지 덜 씌워졌네
: 저번에 스카이닝 광고 촬영했다는데 광고 나오면 바로 매장 털 예정
┖ 대체 이런 건 어디서 알아오냐?
┖ 응 너 새싹이라서 못 봐~ 등급 높이면 볼 수 있음
┖ ㅅㅂ 차별하네
┖ 그만큼 높으면 좋으시다는 거지~
: 고작 이런 걸로 만족해야 하는 거냐? 분발해라 데마시아!!!!
┖ 어려서 그런 거 아닐까.
┖ 예고 다니느라 바쁨 ㅇㅇ. 데일 잡지로 만족 하셈
┖ 우리 집에 그거 네 권 있음. 근데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다른 건 언제 나오는데? 활동 언제 하는데? 언제 덕질 할 수 있는데?
┖ 광기에 가득 찼네.
예진은 점심을 먹으면서 한 손으로는 팬카페에 올라온 글과 댓글들을 정독했다.
‘셀카 찍는 게 귀엽긴 하지.’
차 조수석에 앉아서 셀카를 찍던 우연의 모습을 잠시 회상했다.
계속 찍으면서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삭제했다가 다시 찍는 모습.
그중에서 자기가 잘 나왔다고 생각한 사진들을 추려서 자신에게 어떤 사진이 더 낫냐고 물어보던 모습.
상상만 해도 짜릿했지만 그때마다 예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다 올려.
액정에 담긴 사진이 아니라 오로지 실제 얼굴에만 눈이 가는 예진으로서는 애초에 사진은 옆에 우연이 없을 때나 보는 대용이었다.
물론 저장은 전부 했지만 좋은 건 많을수록 좋으니까.
‘하아, 당장 만나고 싶어.’
사진을 봐서 그런가 만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참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있겠지.
집도 근처로 이사 왔겠다 나중에 한 번 불러서 밥이라도 먹자고 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예진은 팬카페를 나가고 다른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우연의 얘기가 올라오는 곳은 아니지만 재밌는 여초 커뮤니티.
“투베나 한 번 훑어야지.”
Today BEST
[배달하다가 존예남 본 썰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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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내용이 짐작 가는 글들이 몇 개 있었지만 어그로를 끄는 눈에 띄는 제목에 예진은 피식 웃으며 그 게시글을 클릭했다.
[배달하다가 존예남 본 썰ㅋㅋㅋㅋ]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데 내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알바를 구했음. 근데 그게 짱깨집 배달 알바였단 말이지?
당연히 지리를 좃도 몰라서 개쌉벌레였음. 그런 상태로 세 번째 배달인가? 갔었던 곳인데
음식 받으러 나온 남자가 진짜 존나 예쁜 거임ㄷㄷㄷㄷ ㄹㅇ 말로 표현할 수 없음. 근데 경비가 구려서 연예인이나 아이돌은 아닌 거 같았음
문제는 내가 여기 배달하면서 잔돈 갖고 가는 걸 까먹어서 좆됐다. 이 생각 했는데 존예남이 다시 돈 갖고 와서 잔돈 없게 만들어줌. 여기서 인성도 합격 ㅇㅇ
배달 끝나고 돌아가니까 사장이 존나 뭐라 하더라. 왜 이렇게 늦냐고 결국 일 한지 하루 만에 짤리긴 했는데 후회는 없다. 왜냐?
살면서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한 인간을 만난걸로 만족한다 난.
인터넷 뒤지니까 페룩에서 개유명하더라. 사진보다 실물이 갑임ㅋㅋㅋㅋㅋㅋ
추천 502 댓글 368
: 라는 소설 제목 이름 좀
┖ ㄹㅇㅋㅋ
: 페룩에서 유명한 애면 보정 떡칠이지ㅋㅋㅋㅋ
┖ 아님, 얘 실물로도 되게 유명하던데.
┖ 그런 애가 어딨음? 다 사진에 지각변동 일어나던데.
┖ 모델이래
┖ 혹시 초성 ㅇㅇㅇ?
: 댓글 보고 누군지 바로 알았다 ㅅㅂㅋㅋㅋㅋ
┖ 누군데 같이 알자 야발
┖ 저번에 투베 올라왔던 애임 Eㅜ연
┖ ㅇㅎ 걔였음?
“뭐야 이거.”
우연이 얘기잖아?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글이었지만 댓글로 글의 주인공이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예진은 댓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팬카페도 아닌 곳에서 올라온 글이니 어떤 말이 있을지 모르기에 여태 올라왔던 우연 관련된 게시글은 전부 읽어봤던 예진이었다.
다행히도 댓글에는 선을 넘는 발언들이 없었다. 있었으면 아마 그녀의 손을 거쳐 갈 예정이었지만.
‘다행이네.’
이런 글이 올라온다는 것도, 사람들이 우연을 많이 알아가는 것도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뭔가 한구석이 찝찝했는데
“불안한 건가.”
나만 알고 싶은 우연을 모두가 알게 돼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예진은 핸드폰 화면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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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네, 오늘 우산 안 갖고 왔는데.”
창문 밖으로 낀 먹구름과 내리기 시작한 비들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집에 있을 때면 항상 누군가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기라는 말을 해줬었는데 자취를 하면서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사라졌으니 우산을 갖고 올 리가.
‘앞으로 일기예보를 챙겨봐야겠네.’
아직 오전 수업이었기에 학교에 있는 동안 비가 그치길 바라면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름 쉬운 전공 수업부터 몰랐던 지식을 채워나가는 수업, 그리고 잠깐 잠에 빠져든 수업까지.
모든 수업이 끝나자 종례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날씨는 변함없이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야! 너 우산 갖고 왔어?”
“이응. 접이식 우산 갖고 왔지~!”
“안 갖고 온 줄 알았는데 갖고 왔네? 야 같이 좀 쓰자.”
학교가 끝나자 시끌벅적해진 반은 애들이 쏜살같이 교실을 빠져나가면서 조용해졌다. 나는 우산이 없으니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고.
중간중간 보이는 창문으로는 오히려 더 굵어진 듯한 빗줄기가 보였다.
‘맞고 가야 하나.’
다윤이나 부모님을 부를 순 없었다. 딱히 씌워달라고 할 사람도 없고 굳이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찾자면
‘매니저?’
매니저가 있었지만 오늘은 예진이 데리러 오는 날도 아니었다. 뭐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연락할지 말지를 망설이다가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자기 일이 있을 텐데 우산 없다고 데리러 와달라고 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편의점까지 뛰어가야 하나.’
지잉
1층에 다 달았을 때쯤 핸드폰이 진동했다.
‘뭐지 설마?’
예진이 가끔씩 연락을 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잠금 화면을 풀자 캐톡이 오긴 왔지만
송이: 학교 끝났어?
‘아, 송이네.’
예진이 아니라 송이였다.
송이는 당연히 우산을 못 가져다준다. 학교가 나랑 머니까.
잠깐 생겼었던 기대감이 싹 사라지고 나는 끝났어, 라고 답장을 보냈다.
학교가 끝난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집을 가야 할지가 문젠데, 편의점 우산을 사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사야 할 거 같다.
일단 편의점까지 뛰어갈 생각으로 느슨한 신발끈을 다시 고쳐 묶었다.
그리고 뛰쳐나가려던 순간
“우연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급정지했다.
소리가 난 쪽으로 뒤를 돌아보니 검은색 우산을 들고 있는 유서아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눈을 깜빡이더니 입을 열었다.
“우산 없어?”
“...... 응. 편의점 가서 사려고 했지.”
“그럼 편의점까지는 어떻게 가게?”
“뛰어가려고 했는데?”
내 말이 끝나자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 유서아는 바로 옆에서 우산을 팡 하고 폈다.
“편의점까지 씌워줄게.”
바로 옆에서 눈이 마주치자 키 차이 때문에 내가 자연스럽게 내려보는 형태가 됐다.
‘작네, 아 씌워준댔지?’
새삼 느껴지는 키 차이에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지 유서아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씌워준다면야 나야 좋았다. 편의점까지 안 젖어도 되니까.
“고마워. 우산은 내가 들게”
“...... 응.”
유서아가 내미는 우산 손잡이를 건네받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오는 게 잘못하면 감기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있으면 패션쇼인데.’
컨디션 관리는 필수이기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건 좋지 않았다. 유서아가 씌워준다고 해서 다행이네.
총 두 시간의 무용과 몸 수업을 보내면서 나름 친해지긴 한 거 같다. 둘이서 해야 하는 팀플이기도 하고 성격이 꽤 잘 맞았으니까.
아 물론 중간중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답답할 때가 있긴 했었다.
근데 너무 떨어져 있는 거 같은데.
“야 너 그러면 어깨 젖어,”
우산이 꽤 커서 두 명을 수용할 수 있었지만 조금 떨어져서 걷는 유서아에 그녀의 어깨 한쪽이 젖는 게 보였다.
소매를 잡아당겨서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자 그제야 어깨가 우산 안으로 들어와 안 젖었고, 어쩐지 유서아는 말이 없어졌지만 걷다 보니 어느새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나중에 내가 맛있는 거 줄게.”
“...... 응”
편의점 문을 열기 전에 말하자 작은 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우산 때문에 얼굴은 안 보이네.’
“조심히 가!”
“...... 응, 너도.”
나는 그대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우산을 사고 나오자 당연하게도 편의점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집으로 향해 옷을 갈아입은 뒤 헬스장으로 갔다.
그리고 비를 안 맞았는데 감기가 재발했다. 이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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