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chapter 46. 친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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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모델이라는 직업을 병행하려니까 조금 정신이 없었다.
‘예상한 거긴 하지만.’
데일 매거진 패션잡지에 이어서 스카이닝 화장품 광고까지 연속으로 좋은 반응을 얻어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제안이 오기 시작했다.
활동에는 내 의사도 반영됐기에 회사에 가서 들어온 제안들을 검토하랴, 그러다 성사되면 촬영하랴, 학교 다니면서 몸 관리까지 해 바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신인 모델이지만 SNS가 영향을 크게 미쳤는지 무명은 처음부터 아니었고, 그 때문에 많은 업계에서도 주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컨택이 많이 올 수가 없어.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만 되면 엎드려서 잠을 보충했다. 잠을 원체 많이 자서 그런지 계속 졸음이 밀려오더라.
물론 이동수업이 있거나 다음 시간이 점심시간이면 못 잤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는 졸린 걸 어떻게든 참아내도 쉬는 시간에는 바로 엎어졌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난 후의 점심시간.
“오늘이 발표하는 날이지?”
“...... 웅, 오느, 오늘이야.”
“실수만 안 하고 연습한 대로만 하면 좋은 점수 받겠지.”
내 말에 잠시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던 서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느리게 밥을 먹어서 그녀의 입안에는 아직 밥이 있었다. 그래서 대답도 발음이 뭉개져 있었고 볼이 꽉 차 있는 게 마치 햄스터 같았다.
‘내 주변에는 햄스터 같은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단 말이지.’
이미 밥을 다 먹은 나는 서아를 기다리면서 그녀가 먹는 걸 지켜봤다.
근 일주일간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을 정도로 친해졌다. 계기는 그때 나에게 우산을 씌워준 것이고, 과정은 내가 답례로 초코우유를 주면서 시작된 관계.
벽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초코 우유를 받은 서아가 눈을 빛내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고 벽이 깨져버렸다.
그 이후로는 SNS 맞팔로우, 전화번호 교환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캐톡으로 종종 연락을 했다.
학교에서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가 딱히 없었던 나로서는 가볍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었는데 그게 이렇게 지속된 거고.
매일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는 그냥 친구에서 친한 친구로 진화했다.
“다 먹었어.”
“일어나자.”
“응.”
“근데 너 짜요짜요 안 먹어? 안 먹을 거면 나 줘.”
“먹을 거야.”
단호하게 대답하는 서아에 나는 쳇, 하고 혀를 쳤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판과 식기를 정리하고 급식실을 빠져나왔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층이 달라지는 곳에서 헤어졌다.
“이따 봐.”
“너도.”
나는 한 층 더 올라가야 했기에 먼저 손을 흔드는 서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점심시간은 자유시간.
양치를 하고 자리에 오니 시간이 꽤 남았다. 최근 들어 하는 건 단어 공부가 아니라 영어로 된 책을 하나 사서 그걸 독해하기 시작했는데,
‘이거 뜻이 뭐더라.’
호기롭게 책을 펼친 것과는 반대로 한 줄을 읽기가 무섭게 바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서 막혔다.
결국 사전을 펼치면서 낑낑거리면서 책을 읽어내려갔다. 영어가 이렇게 어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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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한데 모여 앉아 있었다.
“자! 드디어 오늘이 발표날이네요. 그동안 연습 열심히 하던데, 첫 수행평가기도 하니까 다들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하는 정도니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모델과 학생들은 당연히 감안해줄 거고.”
다들 긴장했는지 평소 수업 시간과는 다르게 긴장감이 흐르는 게 눈에 보였다.
무용 선생들은 그런 학생들을 눈으로 훑으면서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귀여운 녀석들.
연습하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강 각 팀이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과정쯤이야 뭐, 수월했다고 하더라도 실전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사실 모델과 학생이 실수한다면 모를까, 이번 평가에서 무용과 학생이 실수한다면 조금 눈여겨볼 필요가 있었다.
이번 평가에서의 실전은 실수를 할 만큼의 어려운 부분도, 촉박한 시간도 없었으니까.
“공평하게 순서를 정하는 건 저번처럼 뽑기로 해야겠죠?”
그렇게 생각한 무용 선생이 저번에 팀을 뽑았을 때 썼던 프로그램을 빔프로젝터로 켰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름이 적혀 있는 팀들이 숫자에 맞춰서 자리가 이동되고 있다는 점.
총 세 번을 누르겠다는 말과 함께 세 번이 클릭되자 자리가 바뀌고 순서가 정해졌다.
“이 순서로 발표할게요!”
“아......”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맨 앞에 순서가 배치가 됐든, 맨 뒤에 순서가 배치가 됐든 순서를 만족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달랐다.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무용 선생이 생각하기에 가장 되지 않았으면 하는 순서는 바로
‘으음, 5번? 굉장히 앞쪽이네.’
잘하는 팀 바로 뒤 순서다.
우연과 서아 팀의 순서가 다섯 번째, 다른 잘하는 팀의 순서는 맨 마지막 차례였다. 이렇게 되면 6번째 순서인 친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
뭐 이런 순서를 피하려면 사실 자기가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면 그만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 쉬운 일인가,
연습을 하는 내내 몇몇 학생들을 포함해 무용 선생들의 시선도 종종 우연과 서아에게로 향했다. 각 과의 수석이라는 타이틀, 완벽한 비주얼 합.
그런 녀석들이 춤을 어떻게 출 것인지에 대한 관심.
다행히도 우연은 몸치가 아니었다. 아니, 몸치라는 걸 갖다 붙일 수도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능숙한 면모를 보여주기에 바빴다.
‘여유가 있어, 여유가.’
지금도 보라, 순서가 발표되었음에도 미동조차 없는 무표정을 고수한 얼굴에는 긴장은 온데간데 없었다. 약간 제 나이 때에 보이지 않는 여유랄까.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 그래.
그렇게 첫 번째 순서인 팀부터 발표가 시작됐다.
2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울리는 비트에 맞춰지는 동작과 두 명의 움직임.
시간이 짧다 보니 순서는 빠르게 지나갔고 다섯 번째 차례가 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연과 서아가 앞으로 나왔다.
“패션모델학과 이우연, 실용무용과 유서아입니다. 2번 틀어주세요.”
우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이 나오자 원래도 집중하고 있었던 학생들이 둘을 샅샅이 훑으면서 열성적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진짜 생긴 것부터 다르게 태어났구나.’
‘나도 저렇게 태어났으면 무조건 모델 했겠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대부분 둘의 외모에 대한 감상평이 이어졌다. 처음엔 수석을 얼굴 보고 뽑는 게 아니냐는 말도 돌았었는데.
아무튼 몇 초가 흐르자 곧바로 2번 비트가 재생됐다.
앞서 했던 네 팀은 전부 1번 아니면 3번 곡을 선택해 여태 한 번도 발표된 적 없는 2번 비트에 맞춰 춤을 추는 두 사람.
“흐응......”
무용 선생은 그런 둘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춤을 추면서 센터를 뽑는 자격 요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춤을 잘 추는 것 또한 그중 하나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다.
옆에 있는 서아의 존재가 묻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을 보고 있자면 우연이 눈에 더 확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잘 짰네.’
긴 팔다리를 이용해서 시원하게 뻗어가는 춤 선이 깔끔했다. 처음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중간중간 엇박을 타면서 포인트 비트에 맞춰 유려하게 맞춰 떨어지는 동작은 서아의 창작이었다.
기초 동작뿐이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쉬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살펴보면 철저히 우연의 수준에 맞추어서 이루어진 각각의 포인트를 살리는 기초 동작들로 이루어진 구성,
10초대에 한 번 자리를 스위칭하면서 둘이 팀이라는 느낌을 살렸다.
20초라는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일순 무대를 장악해나갔다. 무대라고 하기에는 그저 앞에서 춤을 춘 거긴 했지만
둘 다 여유가 물씬 묻어져 나오는 표정과 눈빛에 무용 선생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이거지.
‘근데 쟤는 춤도 잘 추네.’
연습을 했더라도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우연에게서 춤꾼의 자질이 보였다.
“연습 열심히 했네. 수석이 둘이라서 못하면 어쩔까 걱정했었는데 그건 기우였어. 둘이 잘 어울리네 수고했다.”
자세한 피드백은 모두 발표한 뒤에 이루어졌다. 짧은 감상평에 둘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고
아주 잠깐 사이 서아의 귀가 붉어졌지만, 그걸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무용 선생의 채점표에는 10점이라는 점수와 함께 짧은 피드백이 적혔고
“이게 다 내가 잘해서 그런 거지.”
“뭐래?”
수행평가 만점을 받은 둘은 티격태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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