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chapter 49. 프로페셔널한 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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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 모델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사람들이 든 생각.
눈부시게 비추어지는 조명과 진한 메이크업으로도 모델의 얼굴은 가려지지 않았다.
작은 얼굴에서는 강렬한 눈빛이 쏘아지고, 앞서 나온 모델과는 확연하게 차이 나는 워킹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움직이는 팔과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절제미.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그가 입은 의상으로 이끌리는 시선.
그가 탑에 도착해 포즈를 취할 때까지 오로지 그에게 관객들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모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주목하며
약간 치켜든 고개와 함께 깔끔한 시선 처리, 디테일한 손끝부터 다리 각도와 포즈까지 전부 눈에 담아냈다.
퇴장하고 다음 모델이 나온 후에도, 그의 앞 순서로 나왔던 모델과 똑같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네 번째까지도.
모델이 나오고 들어가는 그 타이밍에 맞춰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관객도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막상 나오면 그에게 매료되어 그가 입은 의상과 움직임에 시선이 저절로 향했지만
단순히 예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옷을 소화해내는 모델의 역량이 쇼 자체의 수준을 올리고 있었다.
쇼가 진행되는 약 20분 동안 관객들의 집중도는 최상.
피날레가 되자 차례대로 나오는 모델들 속에서 중간에 위치한 그는 원래 입고 있었던 가죽 자켓을 어깨에 걸침으로써 마지막까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했다.
준비한 시간에 비해 20분이라는 시간은 쇼를 끝내기에 충분한 시간.
피날레가 끝나자 진행자가 나왔고, 그가 말을 하는 동안 관객들은 쇼가 끝났음을 인지했다.
“...... 역시 한나야. 이번 쇼도 대성공이네.”
이한나의 마지막 인사말을 들으면서 이은석 디자이너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수 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고, 박수를 치면서 이은석 디자이너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의상들도 괜찮고 좋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런 모델을 어디서 구한 것인지에 대해.
마스크도 뛰어나서 자칫하면 의상이 아니라 모델한테 집중이 쏠리는데도,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서 오히려 의상을 부각시켰다.
‘여태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신인인 건가?’
이한나가 신인이었기에 신인 모델의 비중이 더 많다는 걸 아는 이은석 디자이너로서는 그 모델이 신인 모델일 거라 짐작했다.
한 번 알아봐야겠네.
최근 탑모델 한 명이 과거가 재조명되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모델이 걸어 나오고 들어가는 순간까지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었던 기억 속에서는 모델이 잊히지 않았다.
화려한 의상도 어울리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S/S 시즌 의상들이 더 잘 어울릴 거 같은 마스크였다.
자연스레 개인적으로 고안해낸 디자인 중 그 모델에게 어울릴 법한 의상들을 떠올렸다.
‘다리 라인을 좀 부각시켜서 바지는 스키니 형식으로 살리면 좋을 거 같은데......’
그 정도 얼굴이면 이미지도 좋았고 분위기와 존재감도 또렷했다.
이은석 디자이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둘씩 일어나는 사람들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주위를 한 번 둘러보기만 해도 반은 아는 사람이었기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빠르게 쇼 장을 벗어났고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에 있는 ‘이한나’를 눌러 전화를 연결했다.
“어 한나야,”
오랜만에 마음에 든 모델을 찾은 이은석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백스테이지에서는 모델들과 스탭들이 섞여 인사하기에 바빴다.
옷은 진즉에 갈아입었고, 메이크업은 그대로인 상태였지만 보통 지우지 않고 가기에 다들 그대로인 얼굴로 서로 인사했다.
‘피곤하네.’
목을 돌리자 목에서 뚜둑, 소리가 났다.
쇼에 서 본 지 너무 오래돼서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몸이 긴장했었다. 그래서 긴장이 풀린 지금은 피곤이 확 몰려왔고.
“우리도 이제 갈까?”
“밖에서 실장님이랑 캐스팅 팀장님 기다리고 계신다는데.”
“이만 가죠.”
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헬퍼를 비롯해서 스탭들과 어느 정도 인사를 나눴고, 와 있는 캐톡을 보니 예진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가고 있던 찰나
“우연 군!”
“어.”
어깨에 닿은 손길에 고개를 틀자 숨을 고르고 있는 이한나 디자이너가 보였다.
‘아까는 못 봤는데.’
혼잡한 백스테이지에서 비교적 키가 작은 이한나 디자이너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인사 한 번은 하고 갈 생각이었지만 보이지 않아서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부를 줄은 몰랐네.
나는 그녀를 보면서 눈을 깜빡이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둘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먼저 가세요. 저도 곧 갈게요.”
“응! 먼저 가 있을게!!”
나를 한 번, 이한나 디자이너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이윽고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거 아무래도 가게 되면 뭔가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네.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이한나 디자이너가 입을 열었다.
“오늘 진짜 고마웠어요. 도움만 받은 거 같은데 나중에 꼭 보답할게요. 어, 그리고 아까 은석, 아 이은석 디자이너랑 다른 디자이너한테도 연락 왔는데......”
“괜찮으니까 천천히 말하세요.”
“후하, 아마도 좋은 소식 갈 거 같은데 비록 이번 쇼는 메인 모델이 영훈 씨였지만 다음에는 꼭, 꼭 우연 씨를 메인 모델로 세우고 싶어요.”
‘이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네,’
뭔가 결심한 것처럼 말하는 이한나 디자이너의 표정이 비장했다. 좋은 인상은 확실하게 남긴 거 같은데 말이야.
물론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은 생겼겠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그래도 도와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호의를 받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니까.
“인사는 꼭 하고 싶었어요. 추가 수당 관련해서는 에이전시 통해서 연락 갈 거고, 너무 오래 붙잡아두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네요.”
“저야말로 쇼에 서게 해주셔서 감사하죠. 신인 모델 고집 들어주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다음에도 불러주시면 언제든지 오겠습니다.”
내 말에 이한나 디자이너는 작게 중얼거렸다.
“신인이라...... 맞다 신인.”
거리가 가까워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렸지만, 모른 척했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오늘 쇼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들어가세요. 우연 씨도 수고했어요.”
나는 본래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먼저 등을 돌렸다.
‘신인이긴 신인이다. 중고 신인이라 그렇지.’
전생에는 세계 4대 패션위크에 설 뻔했었던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신인이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 되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실장에게 전화를 걸자 3초도 안 지나서 받았다.
전화 너머로 건물을 나오면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아주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뭐라고 하는 거 같았지만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고, 말대로 건물 밖을 나오자 차 한 대가 보여 다가가니 문이 스르륵하고 열렸다.
“예진 누나는요?”
“두 개 다 차가 4인승이라서 동현이가 예진 씨 차 타고 먼저 가 있기로 했어.”
어쩐지 차에 한 사람이 없더라. 그러면 그냥 내가 예진의 차를 타고 가면 됐을 일인데.
“어디로 가요?”
“배고프지 않아? 뭐라도 먹어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에너지 소모를 해서 배가 고팠으니까.
그리고 차가 출발하자 나는 비로소 왜 내가 예진의 차가 아니라 이 차에 탄 건지 알 수 있었다.
어쩌다가 의상을 네 개나 입게 되었는지부터 이한나 디자이너와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자초지종부터 설명해야 했고
“자 내리자.”
“......”
내릴 때까지 질문 세례에 전부 답변을 해야 했다.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 보인 식당은, 아니 가게는.......
‘샌드위치 가게?’
이거 맞는 거냐. 내 눈을 의심했지만 옆에서 실장이 하는 말에 이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삼일 뒤에 촬영 잡혀 있지? 그래도 샌드위치는 마음껏 먹게 해줄게.”
위장이 줄어들어서 어차피 한두 개 먹고 말 텐데.
샌드위치가 그려져 있는 간판을 보고 허탈했지만, 오늘 쇼에서 살이 쪄서 때문에 문제가 됐었던 모델이 떠올랐기에 나는 자포자기한 채로 가게 문을 열었다.
내가 진짜 촬영 끝나면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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