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chapter 50. 유명해진다는 건
* * *
“우연 군 지금 좋아요! 아이 예뻐! 고개만 살짝~”
사진 작가의 말을 귀신같이 알아들은 우연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사진 작가는 좋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플래시를 터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쉬었다 가자는 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예진은 멀찍이 서서 그런 우연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번 컨셉도 완전 찰떡이네.’
셔츠 단추가 세 개 풀어져 있으므로 쇄골과 가슴이 약간 노출됐다.
원래라면 저 노출은 합의되지 않아서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지만 우연이 괜찮다며 단추를 직접 풀었다.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는지.
아마 사진 작가 쪽은 애초에 저런 노출을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7월 화보 치고는 어쩐지 의상에 노출이 없었으니까.
우연이 아직 고등학생이기에 노출이 있으면 에이전시에서 반려할 가능성이 컸다. 노출을 많이 하는 모델로 이미지가 박혀버리면 복구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지금도 목 부분 단추 몇 개 푸는 정도여서 그렇지 더 심한 노출이었으면 예진이 나서서 제지했을 거다.
그렇지만 또 단추 몇 개 풀었다고 분위기가 확 바뀌는 걸 보면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사진 작가도 만족하는지 전과는 다르게 목소리의 텐션이 높아져 있었다.
‘아, 안 돼.’
우연의 저런 모습이 담긴 사진을 늑대 같은 다른 년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괜찮다는 생각이 싹 사라지기 시작했다.
쯧. 이 화보 실리면 눈 호강하는 사람들 많겠네.
그러는 자신도 사실 4개 정도 살 생각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딴 년들이 우연의 사진을 보고 헉헉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짜증이 났다.
어쩌겠나, 우연의 직업이 모델인데. 하는 수없이 다같이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상용, 소장용, 순장용으로다가 세 개 사놔야지.
과거 남자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를 맡았었던 예진은 우연을 어떻게 덕질해야 효율적으로 덕질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7월 잡지 생각하니 군침이 싹 도네.
“의상 갈아입고 마지막 촬영 들어갈게요! 세트 바꿔주시고......”
아, 이제 마지막 촬영인가 보다.
사진 작가의 지시에 따라 스탭들이 움직였다. 어느새 네 번째 촬영.
저번 촬영과는 다르게 이번 촬영은 촬영 시간도 길었고 그만큼 찍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러면 실리는 것도 당연히 전보다 많겠지?
곧 있으면 퇴근이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연을 볼 수 없었다.
그건 좀 싫네.
‘우연이 요즘 물올랐는데.’
잡힌 스케줄을 소화해내느라 살이 전보다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지만 이쪽 업계에서는 저게 당연한 몸이다.
얼굴이 샤프해져서 살 빠진 것도 나름대로 우연의 이미지와 어울렸다.
이제는 일반인이라고 보기에는 힘들고, 사람들도 아이돌 혹은 모델이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
아무튼 간에 현재 우연의 주가는 치솟고 있었다.
이한나 디자이너 패션쇼 이후로 여러 디자이너들로부터 모델 프로필을 요구받았고, 실제로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디자이너들도 있었으니까.
모델 프로필을 가져간 이들 중에는 이은석 디자이너도 있어서 실장님이 많이 기대하고 있었다.
“나도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야지.”
예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옷을 갈아입고 온 우연과 함께 다시 촬영이 재개된 촬영장 속에서 그녀를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자로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가질 수 있는 건 많았다. 더욱이 우연처럼 생긴 남자로 태어난다면...... 아마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델계는 남자 모델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연봉 차이도 엄청났다. 아이돌도 인지도 같은 면에서 차이가 나고 세상은 예쁜 남자에 환호했다.
‘꿈 깨야지.’
SNS가 주력이었던 우연은 최근 들어서 더 유명해졌다.
여기저기에서 그의 사진을 퍼가고, 입방에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워낙 무결점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 보니 외모 하나만으로도 이슈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덕분에 ‘모델’ 이우연이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내가 맡은 모델이 뜨면 좋아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예진은 그 반대였다.
‘나만 알고 싶다.’
그래도 자신의 갤러리 안에는 자신만 알고 있는 우연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위안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 끝났나 보네.
마지막 촬영까지 끝났는지 여기저기서 수고했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우연을 보고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뗐다.
대충 고개를 숙이면서 우연에게로 다가가자 그런 에진을 보았는지 우연도 그녀에게 다가왔고
“촬영 끝났어요! 기다리느라 힘들었죠? 저희 빨리 퇴근해요.”
“...... 응 가자.”
연달아 촬영을 한 건 자기면서 기다리기만 한 자신에게 힘들었겠다고 말하는 우연이 귀여웠다.
전에 맡았던 남자 아이돌들은 전부 뭘 사오라면서 매일 시켰었는데 오히려 우연은 그녀가 직접 사오지 않는한 그녀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하는 일이 없었다.
천상남자라고 해야 할까.
스탭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촬영장을 빠져나와 차에 탔다.
시동을 걸자 우연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누나.”
“어?”
누나 소리를 잘 안 해서 방금 그건 녹음을 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을 삼켜내자 우연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몰래 떡볶이 한 번만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 먹고 운동도 하면 살도 안 찌고.......”
“푸흡.”
변명하는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예진이 웃자 왜 웃냐며 자기는 진지하다고 우연이 말했다.
아까 촬영할 때는 이슬만 먹을 것 같은 차도남이었는데 지금은 떡볶이 한 번만 먹으면 안 되냐고 낑낑거리는 강아지였다.
‘이런 모습을 나만 본다 이거지.’
묘한 충족감과 함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우연에게 입을 열어 그가 원하는 대답을 말해줬다.
“너 요즘 살 많이 빠졌어. 한 번쯤은 먹어도 티 안 날걸? 그리고 운동하러 갈 거면 뭐.”
“그렇죠? 실장님한테 저 떡볶이 먹었다고 이르면 안 돼요. 누나도 공범이에요.”
“난 항상 네 편이야.”
그녀의 말에 뭔가 생각에 잠긴 우연은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믿어요.”
“...... 응 나만 믿어.”
방금 전 것도 녹음했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둘은 분식 집에 가서 떡볶이에 순대, 튀김까지 추가했다.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한 우연을 보고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귀엽다니까 진짜.
****
“으아아아.”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씻고 난 뒤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매트리스에 몸을 맡기고 이불 위에서 뒹구니 몸이 나른해졌다. 그러면서도 든 생각은
‘치킨 먹고 싶다.’
치킨 먹고 싶다는 생각이긴 했지만.
운동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머릿속에는 바삭한 껍질을 가진 치킨이 맴돌았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전부 할 수는 없다. 이유는 내가 모델이니까.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그런 욕구들은 싹 사라지곤 했다.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해 빠져들고 결과물을 바라볼 때면 벗어날 수 없었다.
‘미래의 워커홀릭 유망주가 저예요 저!’
카메라 앞에 설 때면 모델이라는 직업이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가기 싫어......”
그렇지만 당장 내일은 학교에 8시 30분까지 가야 하는 학생.
최근 들어서는 같은 반 애들이 슬금슬금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내가 패션쇼에 선 것도 아는지 어땠냐고 물어보기도 했었고,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다고 그랬는데.
‘요즘 셀카를 많이 올려서 그런가.’
SNS 댓글들 중에서 제발 셀카는 멈추라는 말이 떠올랐으나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계속 찍다보면 실력도 늘겠지 뭐.
캐톡!
“서아?”
핸드폰 화면을 키자 서아가 보낸 캐톡이 미리 보기로 보였다. 나는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근래 서아에게서 연락이 먼저 자주 오곤 했다.
학교에서도 자주 마주치기도 하고밥도 같이 먹다 보니까 연락도 자주 하면서 더 친해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송이랑은 연락 안 한 지 좀 된 거 같은데.’
서아에게 답장을 보내고 나니 송이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몇 주 전이라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시험은 잘 봤으려나? 그래도 먼저 연락 한 번 해봐야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이한테는 먼저 연락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게 송이의 캐톡 프로필을 누르고 메시지를 보내자 더 이상 할 게 없었고, 조용한 집 안에서 침대에 계속 누워있다 보니 눈이 감겼다.
“그냥 자자......”
여전히 치킨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 식욕보다는 수면욕이다.
그렇게 막 잠에 들려는 순간
띵동ㅡ
“.... 뭐야.”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택배 올 것도 없는데.
터벅터벅 현관으로 가 문을 여니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단 쪽에 불이 들어와 있는 걸 보면 내려간 거 같은데......
“밑에 층이랑 헷갈렸나.”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게 빨리 다시 침대로 가서 자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현관문을 닫고 침대로 다이빙했다. 아, 피곤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