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52화 (52/137)

〈 52화 〉 chapter 51. 손 편지의 로망

* * *

[떠오르는 신예 모델, 이우연 헤이미시 광고 모델 발탁]

모델 이우연이 헤이미시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 뷰티 브랜드 헤이미시는 6월 썸머 시즌을 맞이하여 신제품과 함께 이우연의 화보를 공개했다.

깨끗하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그는 특유의 청순미와 더불어 순백의 이미지로 제품을 선보였으며......

“기사 모니터링하고 있어?”

“앗 네!”

“요즘 우연이 기사 많이 나더라. SNS 게시물 하나만 올려도 바로 뜨던데?”

“그래서 모니터링할 게 더 늘었어요. 오늘 하루종일 그것만 해야 되는데.”

“힘내.”

실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어깨가 축 처진 직원을 격려했다.

데마시아의 간판 모델인 강원우보다 SNS 팔로워 수가 많은 우연이다 보니 일어나는 해프닝들 중 하나다.

홍보 수단이 많아지면서 SNS 광고가 큰 화제가 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모델로 검증된 우연에게는 들어오는 광고 단위 수부터 남달랐다.

최근 들어 인지도가 급상승한 것도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아무튼 간에 그의 에이전시인 데마시아로서는 모두 검토해야 할 사안이었다.

‘승승장구하는 거지 뭐.’

원래부터가 무명이 아니긴 했지만 우연에게는 무명 생활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패션 모델들은 시즌에 따라 성수기와 비수기로 나뉘어서 겸직을 하는 모델들도 많은데, 비수기인 지금도 우연은 들어오는 스케줄을 잡으면 한도 끝도 없었다.

이게 신인이 맞긴 한 건지.

데마시아에서도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아무렴 좋은 게 좋은 거지.

여론이 그를 원하는데 어쩌겠는가.

앞으로 활동하면서 연차가 늘고 몸값이 커질 일만 남았다. 아마 천생 모델이라는 말은 우연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인성도 좋고, 과거 문제도 일절 없고.

예전에 소속 모델의 인성 문제로 한 번 구설수에 올랐었던 경험을 한 실장은 그때만 생각하면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남자 아이돌 한 명이 연관되어 있어서 전화는 끊이지 않고, 기사는 계속해서 보도되면서 난리가 난리가 아니었다.

여차여차해서 덮긴 덮었지만 된통 당한 그때 이후로 데마시아에서는 소속 모델의 과거나 인성 문제에 있어서도 신경을 쓰게 됐다.

옆집 탑모델이 학창 시절 일진이었다는 걸로 나락 가는 걸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고.

‘우리 우연이는 아주 완벽하지.’

메이버에 이우연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니 나오는 훈훈한 기사들을 보면서 실장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몇 개씩 올라오는 중학교 동창이라는 게시글도, 그 외 목격담도 전부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반이기는 했지만 전부 미담이라는 건

아주 바른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지.

얼굴 하나만 예뻐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인성까지 좋아버리니 성공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실장은 이번 헤이미시 광고 화보로 나온 우연의 사진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실장님! 캐스팅 팀장님이 전화 받으시래요!”

“아 응!”

그 감상은 얼마 가지 못했지만.

직원의 말에 허둥지둥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2개가 떠 있었다.

‘무음으로 해서 몰랐네.’

전화를 걸자마자 1초 만에 받은 캐스팅 팀장이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시선은 여전히 우연의 사진이 띄워져 있는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참는다 참아.

****

“어제부터 초코우유 계속 먹네?”

“당 떨어질 일이 많아서 그래. 술을 마실 수는 없잖아.”

“술? 너 술 마셔?!”

“매일 헬스장으로 출근하고 있는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냐.”

“...... 운동해도 술 마실 수는 있지. 진짜 아니야?”

“안 마신다니까.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고 한 모금도 안 마셔봤어.”

물론 전생에 술을 진탕 마시고 술 사러 편의점 가다가 차에 치이기는 했지만, 이번 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입에 안 댄 게 술이었다.

그렇게 말하자 서아는 내 볼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들였다.

‘내 볼에 뭐가 묻었나.’

볼을 만지니 묻어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나를 힐끔 보더니 한다는 말이

“...... 그래 술 마셨으면 피부라도 망가졌겠지.”

“뭘 보고 그러나 했더니. 참나 내 말은 못 믿겠다는 거지 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괘씸죄로 머리에 손을 올려 그대로 꾹꾹 눌렀다. 키 안 큰다면서 내 손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지.

한 1cm는 더 작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나는 만족스럽게 손을 뗐다.

“이씨.”

“이거나 먹어.”

“나 젤리 싫어하거든? 너나 먹어!”

“그래? 그럼 내가 먹지 뭐.”

뾰로통한 얼굴로 하는 말에 나는 꺼냈던 젤리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편의점에서 초코우유 사면서 같이 몇 개 샀던 건데, 이따가 쉬는 시간에 먹어야지.

뭔가 얄밉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그거나 한 번 물어볼까.

“야 유서아.”

“왜.”

“너는 집 앞에 팬이 손편지 써서 두고 가면 어떨 거 같냐?”

“개소름일 거 같은데. 그게 무슨 팬이야.”

팔을 쓸어내리는 액션을 취하는 서아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역시 그런가.

“왜? 너 설마 누가 팬이라고 집 앞에 편지 두고 갔어?”

“아니 나 말고, 에이전시에 다른 모델 형이 그랬다고 해서”

“그렇다면야 뭐......”

태연하게 대답하자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이는 서아를 보고 화제를 다른 걸로 돌렸다.

저번에 지적했었다던 무용선생님 이야기를 꺼내니 아니나 다를까 인상을 찌푸리고는 또 무슨 일이 있었다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다른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결해야 되려나.’

애초에 내가 해결해야 되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당사자가 나였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집을 알아보려니 귀찮기도 했고, 짐도 다 푼 마당에 번거롭기도 했다.

현관에서 비밀번호 치고 들어오는 곳으로 이사 갈 걸 그랬네.

하지만 지금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다.

“너 내 말 듣고 있냐?”

“어. 듣고 있는데.”

“그래서 그 선생이 나만 보면 자꾸......”

하나도 안 들었는데 듣고 있다고 대답 한 번 하니까 넘어가네.

참 단순한 녀석이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기침하는 척을 하면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일단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집에 가서 생각해 보는 걸로 하고, 지금은 이 얘기나 좀 들어줘야겠다.

“완전 어이없네 그 사람.”

“내가 원래 이런 말 사람한테 잘 안 하는데......”

한 번 물꼬가 트인 뒷담화를 계속 들어주느라 점심시간이 사라졌다. 그냥 얘기 꺼내지 말걸 그랬나.

*****

“또 있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현관 앞에서 나는 또다시 문제에 직면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박카스 한 병과 이제는 익숙한 편지지 하나.

어제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박카스가 추가됐다는 점 정도였다. 어차피 먹지도 않을 거지만.

“하아.”

한숨을 쉰 채 그것들을 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그저께부터 문 앞에 놓이기 시작한 자칭 팬이 보내는 손 편지는 처음에는 뭔가 싶어서 끝까지 읽었었지만 이제는 내용에 별 감흥도 없었다.

다 똑같은 말에 반복을 더한 편지. 글씨체가 자유분방한 게 악필이었다.

당장 아웃스타그램이나 페룩, 하다못해 블로그 댓글만 들어가 봐도 이런 말들이 줄줄이 적혀 있는 댓글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편지가 문제인 건 다름 아닌 ‘집 앞에’ 놓여 있다는 것.

처음에는 한 장 들어있었던 편지가 이제는 세 장으로 늘었다. 하루에 한 장씩 늘고 있는데 내일 되면 네 장이 오려나.

막 소름 돋거나 무섭지는 않았지만 이런 게 집 앞에 놓인다는 것만으로 어딘가 찝찝했다. 일단 우리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겠고.

굳이 이런 걸 써서 두고 간다는 것도 별로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쓰레기통 옆에 놓인 편지 세 장 위로 세 장이 추가됐다.

아직 피해본 건 없었지만 정신적인 피해는 받고 있었다. 이런 거 받고 싶지도 않았지만 신경 쓰이기만 하니까.

가급적이면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이 편지가 온 당일 종이 한 장에다가 볼펜으로 좋게좋게 이런 건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고 적어놨었는데

다음날 되니까 종이만 사라지고 편지는 그대로 있더라. 셋째 날인 지금도 변함없었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난리 날 텐데.’

당장 이사 가라고 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라고 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한 번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매니저나 에이전시, 가족들한테는 말을 하지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이건 말해야겠지.

오늘 서아의 반응을 보았을 때도 그렇고 이 상태가 지속되는 것도 원치 않는 일이다.

“멈추라고 했는데 안 멈췄으니까 뭐.”

좋게 끝내려고 했다 이 말이야.

나는 그렇게 핸드폰을 들어서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 중 제일 먼저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되나 고민했다.

일단 예진한테 말하면 자동으로 에이전시한테도 전달되겠지.

예진 누나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이런 일은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도 말고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도망치는 게 답이다.

“어 누나.”

­“여보세요? 웬일로 전화를 다......”

잠시 통화 가능하냐고 물은 뒤 괜찮다는 말에 나는 지난 삼 일간 있었던 일을 모두 빠짐없이 말했다.

내가 말하는 동안 전화 너머에서는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았고 내 말이 끝나자

­“그게 끝이야?”

“응.”

싸늘한 목소리로 되돌아온 대답을 듣고, 역시 이렇게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음날 곧장 경찰서에 갔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신고했다는 말에 조금 진정한 듯 보였다.

“그 썅년 진짜 조져뿔라.”

진정한 거...... 맞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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