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chapter 52. 스노우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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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야 되는 거 아냐? 진짜 안 가도 돼? 안 무서워?”
“안 가도 되고, 안 무서우니까 그만 말해 이미 다 끝난 일인데 뭘.”
“그래도.”
어깨를 으쓱하자 넌 어떻게 남자애가 그렇게 조심성이 없냐고 칭얼거리는 다윤을 무시했다.
시선은 여전히 교과서에 고정된 상태였지만 한 페이지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중간고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중간고사 때야 시험 치는 과목이 몇 개 없어서 벼락치기가 가능했다지만
기말고사는 전과목을 시험 보기 때문에 이론 쪽은 공부를 해둘 필요성이 있었다.
‘이왕 하는 거 수석 하는 게 좋지.’
괜한 승부욕이 발동했다.
그런데 시험 전 주에도 스케줄이 잡혀 있는 걸 보면 공부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학교는 모델 일보다는 뒷전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지금부터 따로 조금씩 미리 해놔야 되는데.’
옆에서 계속 말 걸면서 정신 사납게 하는 다윤 덕에 집중력이 바닥을 기었다.
이 꿀 같은 주말에 내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빈둥대면서 계속 말 거는데 진짜 한대 안 친 게 다행이다.
‘걱정돼서 그러는 건 알겠지만.’
자칭 내 팬이라는 인물은 금방 경찰에 잡혔다.
애초에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었고 엘리베이터와 현관 쪽에 설치되어 있던 CCTV에 얼굴이 선명하게 찍혔더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에이전시에서 말하길 이런 일은 가만히 놔두면 나중에 더 심각한 일로 번진다나.
그렇지만 나는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것도 없고, 스토킹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서 결국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걸로 마무리됐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남은 건 과보호뿐.
“너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자취하면 좋은 줄 알았지?”
부모님의 걱정 플러스 알파로 다윤이 금요일에 집으로 쳐들어왔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말 내내 있을 작정이었는지 이제는 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포스가 아주 자기 집이네, 자기 집이야.
만약 저 질문들 속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불안하다는 티를 내거나 대답을 잘못하면 그게 전부 부모님 귀에 들어갈 게 분명했다.
그러면 나는 바로 이사 루트를 타거나 다시 귀환 루트를 타겠지.
그걸 알기에 나는 말을 조심스럽게 골라서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모델이 다 그렇지 뭐.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 여자친구는 없고?”
“그건 또 갑자기 왜 나오는 건데?”
뜬금포로 튀어나온 주제에 나는 교과서를 덮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어.’
아무래도 공부는 내일부터 해야 될 것 같다. 내일은 월요일이니 적어도 오늘은 다윤이 집으로 돌아갈 테니까.
눈이 마주치자 다윤은 말을 툭, 내뱉었다.
“너 모태 솔로잖아. 자취한다고 여자애 함부로 집에 들이면 안 된다.”
“아.”
나 모솔이었지? 까먹고 있었다.
모델 일에 비해 연애라는 게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어서 그런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
그렇지만 이제 고등학생도 됐는데, 굳이...... 못할 건 없지 않나?
‘한송이......’
주위에 있는 여자들을 생각하다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이름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코흘리개 시절 때부터 본 애랑 사귀기는 뭘 사귀어.
비록 그쪽은 나를 좋아했었던 거 같긴 하지만, 학교도 다르고 거기도 예고에 연기로 갔으니 얼굴 괜찮게 생긴 애들은 널렸을 거다.
“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바로 이 누님한테 말해라. 여자는 여자가 제일 잘 보니까.”
“으음, 오히려 절대 안 보여줄 듯?”
“보여줄 여자도 없는 거 아니고?”
“아닌데. 나 학교에서......”
말을 끊고 뜸을 들이자 비웃고 있던 다윤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냐 너.”
“뭐가.”
“언년이야 핸드폰 딱 대.”
내 핸드폰을 가로채갔으나 잠금이 걸려 있기에 다윤은 풀지 못했다.
‘어차피 보여줄 것도 없긴 하지만...... 아 굳이 따지자면 유서아의 존재 정도?’
다윤이 존재 자체도 모르는 애여서 아마 내가 여자애랑 같이 둘이서 밥 먹는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추궁당할 거다.
절대 말 안 해야지.
그렇게 빨리 잠금 화면을 풀라며 핸드폰을 가지고 한참을 실랑이했다. 그러다 짜증이 났는지
“뒤진다 진짜.”
살벌하게 다윤이 말했지만 나는 그걸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수십 년간의 데이터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다윤은 이우연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
[...... 인기 남자 아이돌 그룹 A군을 수차례 스토킹한 사생팬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스토킹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ㅡ]
“아씨 진짜 하필이면 저딴 게 나오네.”
신경질적으로 티비를 꺼버렸다. 뉴스에서 나오는 게 그녀의 심기를 거슬렸으므로.
‘나는 진짜 순수한 마음으로 그랬던 건데.’
억울했다. 그녀는 괜히 옆에 있던 쿠션에 화풀이를 하면서 감정을 삭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없어.
내가 뭘 했다고 경찰서에 가야 되는지부터 이해가 안 갔다. 오로지 팬심으로 열심히 손으로 편지까지 쓰고 힘내라는 의미로 박카스까지 사서 두고 갔는데.
사인을 해달라는 것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세 번 마음을 전했을 뿐인데 경찰서 소환.
뉴스에 나오는 저런 범죄자들과 자신은 달랐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긴 했지만 아직도 자신에게 말하던 그 여자의 말투가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도 짜증 나네.’
마치 자신이 잠재적 범죄자라도 된 것처럼 취급하는 게.
‘다음부터 내가 그런 거 하나마나.’
집 주소를 알고 있다는 것 하나에 우연이 무서워서 신고를 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우연의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웬 처음 보는 여자와 대화한 게 전부였다. 지난 두 번의 경찰서 방문도 귀찮기만 했다.
짜장면 배달을 하다가 알게 된 남자가 알고 보니 꽤 유명한 남자였고, 우연에 관한 모든 걸 습득하고 팬이 되어서 그저 말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SNS 개인 메시지로 보냈었던 메시지들은 단 하나도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손 편지를 적어볼 생각을 한 거고.
이번 일로 인해 마음이 확 식긴 했지만 그냥 앞으로는 조용히 사진이나 올라오는 거 볼 생각이었다.
띠링ㅡ
알람 올 거 없는데.
인간관계도 좁은데 누군가에게 연락 올 일이 없으니 고작해봐야 어플 알림일 거다.
“아, 여기 알림 설정 해놨나 보네.”
아니나 다를까 커뮤니티 댓글 알림이었다. 이것도 이제 꺼놔야지.
우연과 관련한 커뮤니티에서 주로 대화를 했었던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알림을 클릭했다.
그러자 보인 달린 댓글은,
[망상충 더러워. 네가 진짜 걔 집 알면 내가 10만원 준다 ㄹㅇㅋㅋ......]
예전에 올렸었던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조회수는 높은데 다들 무시한 건지 댓글은 하나도 안 달렸던 게시글.
댓글을 달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여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이 새끼한테만 진실을 말해줘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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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남자애]
(사진)
(사진)
(사진)
원래 모델도 예쁜 애들 많다는 거 알고는 있었지만 얘는 클래스가 좀 다른 듯.
댓글
: 먹고 싶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아 고딩이야 철컹철컹
┖ ㄹㅇ? 그러면 성인 되면 단추 다 푸는 거 ㅆㄱㄴ이네
┖ 저게 어딜 봐서 고등학생이냐 개사기
: 이거 때문에 데일 잡지ㅋㅋㅋㅋㅋ 예약 매진 됨.
┖ 내 친구랑 나도 하나씩 삼. 못참지 이건~
┖ 선공개 사진 원툴만 아니면 된다 진짜.
: 원래도 좀 유명했던 애 아닌가? 근데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네.
┖ 화장품 광고한 거 보면 또 색다름
┖ 이게 변천사인지 뭔지 그런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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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극성팬 드디어 탈덕한 듯]
뉴스 한 번 타고 코빼기도 안 비쳐서 뭐하고 사나 싶었는데 개인 홈 가니까 제이 사진 싹 사라져 있더라. 이거 탈덕이라고 봐도 되는 거지? ㅇㅇ. 진짜 얘 때문에 제이 힘들어하던 거 생각하면......;; 다행이다 진짜.
댓글
: 뭐야 럽제새끼 사라짐? 오 하느님 갓뎀 시발
┖ 진짜 제이 덕질하면서 수치스러웠던 게 사라졌다.
┖ 야 근데ㅋㅋㅋㅋ ㄹㅇ 럽제가 일반인들한테도 제이 각인시켰다.
: 럽제 때문에 타팬들도 제이 누군지 알 정도였는데...... 후 악마새끼 사라졌군.
┖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모르겠다. 근데 다신 안 왔으면.
┖ 걔가 진짜 사진은 오지게 잘 찍는데 ㄹㅇ 극성이잖아.
┖ 다른 애로 갈아탄 거 아님?
┖ 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제이 때처럼 뉴스 타겠지 걔도.
: 탈덕할 애는 진짜 아니었는데.
┖ 그 정도면 정신병원 가야 돼~
┖ 키야 다음 타겟 누군진 모르겠지만 ㅅㄱㅂ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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