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55화 (55/137)

〈 55화 〉 chapter 54. 영화관 세수남

* * *

: 나 지금 도착했어.

서아: 진짜? 나는 한 5분 걸릴 거 같은데....

: 괜찮아 내가 일찍 나온 건데 뭐.

서아: 더우면 카페 들어가 있어

: ㄴㄴ 괜찮 그냥 기다리고 있을게

서아: 빨리 갈게

: ㅇㅇ 빨리 와

일찍 올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약속 시간보다 8분 일찍 도착했다.

캐톡으로 서아와 대화를 한 뒤 플레이리스트로 들어가 다른 노래를 재생시켰고, 청량한 노랫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다.

확실히 여름이라는 걸까.

“덥긴 덥네.”

7월 중순으로 접어드니 완연한 여름이었다.

반팔을 입고 그늘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후끈거리는 열기가 지면을 타고 올라왔다.

카페에 들어가면 찬 공기가 날 맞이해주겠지만 5분이면 그냥 들어가서 시키고 나오면 끝날 시간. 어차피 영화관 가면 콜라를 시킬 테니 참았다.

‘토요일이라서 사람이 많네.’

시간은 이제 곧 오후 2시를 가리켰다. 오랜만에 주말에 시내를 나와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유독 많아 보였다.

정말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약속.

그간 서아가 같이 놀자고 제안했던 두 번 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도 가야 하고,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촬영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되니까.

내가 중간고사가 끝났는데도 바빠서 한 번을 놀지를 못하고 연락만 계속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된 데에는 내 영향이 크겠지만.

시험공부라는 스케줄이 하나 추가됐다고 정신이 없었다. 이론 시험이 많아서 외워야 할 것들을 외우느라 얼마 없는 여가 시간도 공부를 해야 했었다.

‘그리고 SNS도 뜸해졌지.’

전에 비해 업로드 주기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이제 시험도 끝나고 곧 있으면 방학이니 앞으로 더 신경 써야지.

“.......”

아, 또 눈 마주쳤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먼저 돌렸다. 아까 도착한 뒤로부터 자꾸만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쳐다보는 건 못 느꼈는데 말이지.’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상대방도 나처럼 주위를 둘러보다가 눈이 마주친 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기에는 시선이 너무 뜨거운걸.’

아무래도 평범하지 않은 외모이다 보니 쳐다보는 것 같았다.

최근 관리를 하면서 더 좋아진 것도 없잖아 있고, 오늘 입은 옷만 해도 이한나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브랜드의 옷이었으니.

눈이 마주치면 머쓱할 뿐이지 남이 나를 쳐다보는 건 크게 싫어하지 않는 편이기에 그냥 핸드폰을 켜서 너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영상들을 살펴봤다.

지잉ㅡ

서아: 나 지금 도착했어!! 빨리 올라갈게!

‘도착했네.’

나는 캐톡으로 대충 알겠다는 답장을 보낸 뒤 서아가 나올 7번 출구를 바라봤다. 분수대 앞에서 만나기로 했고 그 분수대 바로 옆이 7번 출구였으니까.

그렇게 노래를 들으면서 7번 출구를 쳐다보고 있던 도중

“저기......”

뒤에서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는 손길에 몸을 돌렸다.

그러자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키가 좀 작은데?

얼마 전 길거리에서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성이 옆을 쫓아오면서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열성적으로 말하던 게 떠올랐다.

‘사이비만 아니어라.’

당황함도 잠시, 경계심을 세운 채 여자를 바라봤다. 이상한 소리 하면 바로 튈 준비......

“아까부터 계속 지켜봤는데 정말 에쁘셔서 혹시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번호.

튀려고 했던 생각과 경계심이 싹 사라졌다.

‘최근 들어서 번호를 안 따여봤더니.’

자취를 하고 나서부터 대중교통을 사용할 일이 잘 없다 보니 번호를 따러 왔다는 가정이 머릿속에 잊혀져 있었다.

‘그냥 줄까?’

수줍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꽤 괜찮았다.

이런 건 항상 거절했었어서 한 번 주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긴 했다. 연락이 오긴 오겠지?

“싫으시면 안 주셔도 돼요! 죄송합니다 실례했어요!”

“...... 어.”

주려고, 했는데.

핸드폰을 받으려고 들었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여자가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고

그걸 바라보는 내 시야에는 뛰어가는 여자의 뒷모습만이 보였다.

여자가 향한 곳에는 다른 여자 한 명이 있었고, 아무래도 친구인 것 같았다.

‘뭐...... 상관없겠지.’

단순 호기심으로 줄 생각도 없잖아 있었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소대로 안 준 것도 나쁘지 않았다.

길 한복판에서 번호 딸 생각하는 것도 참 가상하네.

“우연아.”

“어, 왔어?”

뒤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그러고 보니 나 서아 기다리고 있었지.’

다른 생각을 하면 원래 하고 있던 걸 잊어버려서 까먹고 있었다. 7번 출구를 등지고 있어서 서아가 나오는 걸 보지도 못했고.

‘봤으려나?’

딱히 언급이 없는걸 보면 번호 따이는 걸 못 본 것 같았다. 굳이 얘기를 꺼내서 자랑할 필요는 없으니까 뭐.

“늦어서 미안. 영화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빨리 가자.”

“어? 어.”

그렇게 말하고 내 손목을 잡은 채 걸어가길래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확실히 여유 시간이 사라지긴 했다.

완전히 촉박한 건 아니지만 늦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서아가 이끄는 대로 걸음 속도를 맞췄다.

‘그런데 얘는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엄청 낯가린 거 같은데.’

확실히 지금은 친해졌다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게 느껴졌다.

좋은 거겠지?

걸으면서 나는 아까 못봤던 서아의 옷차림을 대충 눈으로 훑었다. 완전 스트릿이네.

여름인데 옷 색깔이 무채색인 게 나랑 똑같아서 잘 맞아떨어졌다.

‘오늘 뭐 입을지 꽤 고민했는데 말이야.’

모델 일을 시작한 뒤로부터 옷을 많이 받아서 옷장은 포화 상태였다. 아마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

신사데이에서 받았던 옷들은 이제 사라졌다. 다른 사람이랑 옷 겹치는 게 별로기도 하고 확실히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옷이 더 마음에 들어서.

걸음을 빨리한 덕에 우리는 넉넉하게 영화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팝콘 먹을 거야?”

“...... 응”

“캬라멜 맛으로 해도 되지?”

“너 먹고 싶은 걸로 해.”

“아니면 너 먹고 싶은 맛도 해서 각자 작은 걸로 먹어도 되는데.”

“괜찮아!! 괜찮으니까..... 큰 거로 해서 같이 먹자.”

“어어. 그래”

얘도 캬라멜 팝콘이 먹고 싶었나 보네.

순간적으로 크게 말해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나는 주문대로 가서 콜라 두 개와 캬라멜 팝콘 L 사이즈를 시켰다.

“내가 계산해도 되는데......”

“영화표는 네가 샀잖아. 그러니까 팝콘은 내가 사는 게 맞지.”

“그래도.”

어쩐지 계산하려는데 내 옆에서 지갑을 들고 기웃거리더라니.

하지만 내 손에는 이미 카드가 들려 있었기에 계산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영화표는 자기가 사겠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지만.

시무룩해진 걸 보며 웃다가 팝콘이 나오자 들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일찍부터 예매를 해놔서 자리가 만석인데도 우리는 꽤 좋은 자리에 앉았다.

“이거 엄청 유명하던데.”

“그래? 나 아무것도 몰라.”

“나도.”

광고가 나오는 동안 사람들이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영관 내 불이 꺼졌다.

영화가 시작하자 커다란 스크린이 오롯이 눈에 담겼다.

장면이 계속해서 전환되고, 몰입도가 높아지자 팝콘 먹는 것도 잊은 채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귀에는 대사가 꽂혔고.

‘괜히 1위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니네......’

아무것도 모른 채로 1위길래 본 영화였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중간중간 쉬어가는 부분에서 팝콘을 먹자 서아도 똑같았는지 손이 계속해서 부딪혔다.

그렇게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치닫고, 끝나는 순간까지도

“진짜, 슬프. 다아 이거......”

“그러게.”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몰랐는데 나 완전 감수성 넘치는 사람이었네.

제어가 안 되는 눈물샘에 훌쩍거리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지켜봤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울고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눈물은커녕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던 서아와 눈이 마주쳤다.

“야아.... 너는, 안 슬프냐.....”

“슬퍼,”

말에 영혼이 안 담겨 있네.

전혀 슬픈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팝콘은 큰 걸 산 게 무색할 만큼 줄어있지도 않았고.

그냥 작은 거 살 걸.

후회도 이미 늦었다. 우리는 상영관을 나와서 화장실로 향했다.

“우연이 뚝 해, 뚝.”

“아 진짜 놀리지 마라.”

한 번 째려본 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세면대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남자들이 여럿 보였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서 볼일을 본 뒤 세면대로 와서 손을 닦았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눈물 범벅에 눈가가 빨개서 누가 봐도 나 운 사람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 지워졌네.’

오랜만에 노는 거여서 가볍게 눈 화장을 하긴 했지만 이미 눈물로 다 지워졌다.

솨아아아ㅡ

나오는 물로 세수를 가볍게 했다. 선크림이야 다시 바르면 되고, 다른 화장품은 아예 가져오지도 않았으니까.

‘기다리겠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서아를 생각해 빠르게 휴지로 얼굴을 닦고 선크림을 발랐다.

“...... 허.”

“......”

뭐요, 당신들도 울었잖아요.

거울로 몇몇 사람들과 아이컨택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아 또 눈물 나려고 그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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