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62화 (62/137)

〈 62화 〉 chapter 61. 노아예고 예술제

* * *

“하암,”

어제 일찍 잤는데 왜 하품이 나오는 거지.

오늘은 노아예고 예술제의 첫날이었다. 총 이틀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예술제는 등교 시간도 10시까지여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시간이 넉넉했다.

더군다나 부스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교복을 챙겨 입은 뒤 10시에 딱 맞춰서 학교로 향했고

패션모델과 3학년들의 사진전은 상시, 첫 번째 패션쇼는 1시 30분이 시작이니 그전까지는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같이 다닐 친구는 당연히

“이우연! 이우여언!”

“어어. 봤어.”

유서아다. 1층 현관에서 기다리겠다더니 멀리서만 봐도 유서아인 걸 알아봤다.

가까이 가니 사복을 입고 왔는지 온통 검은색의 스트릿 패션이었다. 약간 일본풍 느낌인 게 취향은 또 확고한가 보다.

예술제 날이어서 사복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긴 했지만, 교복을 입고 온 이들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행이네 나 혼자만 입고 온 게 아니라서.’

실용무용과는 둘째 날에 예정되어 있어서 첫째 날인 오늘은 함께 있기로 했다.

“근데 너 패션쇼 봐도 괜찮아? 아니면 그냥 각자 다른 공연 보고 만나자.”

“됐어. 나도 패션 관심 있으니까 그것보다는”

“내일 다른 공연 보러 가지 말고 너희 거 보러 오라고?”

“잘 아네!”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예술제 둘째 날이 라인업이 좀 빡세긴 했다. 뮤지컬과, 실용무용과, 영상제작과.

첫째 날에 있는 것들은 비교적 그래도 중간에 2~3시간 정도 텀이 있고 다른 과들과 공연 시간이 조금씩 차이나기라도 했지만

둘째 날은 그런 거 없이 전부 동일한 시간대에 이어서 공연을 했다. 전부 풀로 해서.

굳이 보고 싶은 걸 꼽자면 뮤지컬이었지만만약 실용무용과 공연을 보러 가지 않으면 돌아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냥 곱게 서아 공연이나 보러 가야지.

“2층부터 쭉 돌자.”

“그래. 그리고 사람 많으면 그냥 들어가지 말자.”

내일은 서아도 없으니 오전에는 아마 부스 체험이고 뭐고 안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한 층을 올라가니 고작 한층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전 학년이 한데 모여서 그런가.

3층도 똑같을 거 같긴 하지만, 부스가 뭐가 있나 둘러보면서 복도를 걸었다.

“헐 저기 타코야끼 파네.”

“와 저기는 주먹밥이랑 떡꼬치랑......”

“저거 사 올까?”

왜 부스에서 다 음식만 팔고 있는 거냐.

서울패션위크가 얼마 남지 않아 체중 관리는 필수다. 군것질도 당연히 안 되는 거긴 했지만......

복도만 걷는데도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먹는 것도 줄 서서 주문해야 될 거 같은데.

결국 나는 안 먹겠다는 말만을 번복했고, 참다못한 서아는 떡꼬치라도 사 먹겠다며 반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반도 뭐 한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그런 서아를 기다리며 복도 한 귀퉁이에 서 있었다. 패션쇼도, 사진전도 안 하는 패션모델과 1학년이기에 무슨 부스를 한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뭘 하는지를 몰랐다.

“소떡소떡 하나에 1500원~”

“......”

바로 근처에 서 있어서 그런지 복도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소떡소떡 하나에 칼로리가 얼마더라.’

검색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엄청날 게 분명했다.

“한 입 먹을래?”

“...... 딱 한 입만 먹을까?”

그리고 그 칼로리는 미래의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그만큼 소모하겠지.

먹음직스러운 소떡소떡 한 개를 들고 온 서아를 보고 한 입 먹겠냐는 질문에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흐, 뜨거.”

“기다려봐 좀 식었다가 먹어.”

떡 하나를 먹었는데 너무 뜨거웠다. 고양이 혀인 걸 감안하지 않고 먹었네.

서아가 후후 불더니 이제 먹으라며 주는 소시지를 냉큼 입안으로 넣었다. 소떡소떡이니까 떡 한 개랑 소시지 한 개가 한 입이지.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려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지만 서아는 옆에서 남은 소떡소떡을 야무지게 다 먹어버렸다.

“저어, 혹시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찍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도,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온 사람이 하는 사진 요청에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벌써 오늘부로 3번째. 같은 학년인지 다른 학년인지조차 모르지만 사진을 찍어줬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핸드폰을 받아든 남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고작 사진 몇 장 찍어준 건데도 정말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팬’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사진을 찍어주고 나니 서아는 이제 3층에 가자며 내 팔을 이끌었다.

“플리마켓인가 봐. 사람 많네.”

“저기는 가지 말자.”

“그래 뭐, 어차피 살 거 같지도 않은데.”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책상과 의자에 올라가 물건을 홍보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안에도 사람이 많았고.

그렇게 3층을 돌자 댄스 배틀을 한다고 꽉 차 있는 반과 추억의 놀이라면서 뽑기와 불량식품이 있는 곳도 지나쳤다.

그리고 비교적 한산한 포토존 컨셉인 부스를 찾았고, 입구에 뭘 주렁주렁 달아서 꾸며놓은 게 안으로 들어가자 파티 느낌으로 꾸며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가서 서봐. 찍어줄게.”

“어? 어.”

마침 포토존 한 개의 자리가 비자 내 어깨를 툭 치며 하는 말에 나는 포토존으로 가 섰다.

‘그런데 너 그렇게 사진 찍는 건 어디서 배워왔냐.’

쭈그려 앉아서 심상치 않게 각도를 잡는 게 사진 한두 번 찍어본 게 아닌 것 같았다.

“야 대박 나 완전 잘 찍었어!”

“..... 잘 찍네. 너도 가서 서봐 찍어줄게.”

“응!”

나도 그렇게 찍어줘야 하나 생각했지만 꼭 전신일 필요는 없으니 1:1 비율로 맞춘 뒤 상반신만 잘라서 찍어줬다.

다행히도 대충 훑어보고 전신으로 찍어달라는 말은 안 했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찍으실래요?”

“아 좋죠. 감사합니다.”

그렇게 포토존 두 곳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데, 부스 스탭으로 보이는 사람이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와서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아가 대답했고, 뭐 공짜 사진이 마다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창가 쪽에 있는 포토존을 배경 삼아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이거 흔들면 사진 더 빨리 나오지 않냐?”

“입으로 불면 잘 나온다고 하던데. 잘 나왔을까?”

“잘 안 나왔으면 이따 다시 가서 한 장 더 찍어달라고 하면 되지.”

“오 그거 좋은데.”

많이도 돌아다녔겠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들고 구름다리에 있는 의자로 갔다.

그러자 다들 쉬려고 왔는지 앉아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남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 앉으니까 편하네.’

더 이상 둘러볼 곳도 없었다. 아, 굳이 있다면 운동장 정도?

옆을 바라보니 서아는 아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들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되게 좋아하네.’

그냥 얘 가지라고 해야겠다.

“으음, 별로네.”

“왜? 나는 괜찮은데.”

“너무 흐리게 나온 거 같지 않아? 차라리 셀카를 찍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이게 감성이지. 넌 그렇게 잘 울면서 이런 거에는 감성이 없냐?”

“입 다물어. 그럼 네가 가지던가.”

“좋아!”

흔쾌히 대답한 서아가 핸드폰을 손에 들더니 그대로 핸드폰 케이스를 빼 뒤에다 사진을 넣고 다시 케이스를 꼈다.

“그거 거기다 두게?”

“주머니가 없어서.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아 주머니.”

“요즘 옷들은 주머니가 패션으로 달려있더라.”

그건 맞지.

그 말에 동감하며 나도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까 찍어준 사진 중에 괜찮은 거 몇 개를 골라 SNS에 올릴 생각이었다.

폴라로이드 사진 대신에 셀카나 한 장 찍어야지.

사진 몇 장을 고른 뒤 바로 카메라 앱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야야, 여기 봐봐.”

“엉?”

“...... 풉, 와 너 완전 멍청하게 나왔다.”

사진을 찍자 이도저도 아닌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서아의 모습이 찍혔다.

‘이거 올려야지.’

아까 찍어준 사진 두 장과 함께 지금 사진 한 장을 포함해 아웃스타그램과 페룩에 올렸다. 친구라는 말은 절대 빼먹지 않고.

확실히 10분 정도 지나니 다른 사람들도 앉을 곳을 찾아서 구름다리 근처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미리 와서 앉아있길 잘했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시간이 되자 급식실에 가 밥을 먹었다.

물론 내가 먹은 건 직접 챙겨온 샐러드 과일 도시락이었지만.

아무튼 간에 급식실을 나온 뒤 복숭아 아이스티 하나를 사들고 운동장에 있는 부스들을 돌아다녔다.

“이거 하나 살래.”

“나도 하나 사야지.”

그중에서 꽤 괜찮아 보이는 실팔찌 하나를 발견해 천 원 주고 구매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아도 같은 실팔찌에 다른 색상으로 하나 구매했고.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구태여 물어보진 않았다.

“이제 곧 시작할 거 같으니까 먼저 가 있자.”

“응.”

다른 과들의 공연도 시작할 시간이 되어서 인파가 확실히 적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걸음을 옮겨 패션쇼가 열릴 장소로 향했다.

****

앉은 자리는 두 번째 줄. 그다지 좋은 자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예고의 패션쇼이다 보니 외부인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첫 번째 줄에 앉아 있었으니까.

‘이렇게 앉아있으니까 또 어색하네.’

무대를 지켜보는 입장이 아니라 무대에 서는 입장이다 보니, 백스테이지가 아닌 관객석에 앉아 있는 게 조금 어색했다.

옆에 있는 녀석은 미어캣 마냥 여기저기 둘러보기에 바빴고.

특히 이번 생에 패션쇼를 관람한 적은 손에 꼽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른 무대 또한 많이 서고, 보게 될 수 있겠지만.

“안녕하세요!”

음악이 들리고 조명이 켜짐과 동시에 교복을 입은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두 명이 나왔다.

동시에 관객들의 호응과 박수 소리가 들렸고, 그들은 자기소개를 더불어 쇼에 첫 시작을 알렸다.

전생에도 그렇고 현생에서도 그렇고 난생처음 보는 예술제의 패션쇼.

기대가 되지 않으면서도, 기대가 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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