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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는 법-64화 (64/137)

〈 64화 〉 chapter 63. 서울패션위크 (1)

* * *

일 년에 단 두 번밖에 열리지 않는 서울패션위크.

패션쇼는 흔히 ‘일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포토그래퍼, 에디터, 바이어들을 비롯해 패션업계의 수많은 종사자들이 모이니까.

서울패션위크 같은 경우 일반인들의 관람이 불가하고 오로지 초대권이 있어야만 메인쇼를 관람할 수 있었다.

얻는 방법은 초청을 받거나 해당 디자이너 브랜드로부터 받거나 혹은 이벤트를 통해서.

4대 패션위크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패션 행사인 서울패션위크는 많은 사람들에게 패션 축제와도 같은 기간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패션위크의 둘째 날, 내가 서는 이은석 디자이너의 맨시크 브랜드의 패션쇼가 있는 날이다.

“약간 어지럽네.”

근 이틀 동안 식단 조절을 좀 타이트하게 해서 그런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약간의 어지러움이 동반했다.

곧장 부엌으로 가 물을 마시고, 냉장고에 넣어놨던 냉찜질팩을 꺼낸 뒤 얼굴을 가볍게 마사지했다.

‘아직 해도 안 떴네.’

얼굴 부기를 빼면서 창밖을 보니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깜깜한 밖이 보였다.

“컨디션 좋은데.”

목을 가볍게 돌렸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상태를 점검했고, 최근 몸 관리에 신경 써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비록 속이 좀 허하긴 하지만.

씻고 나온 뒤 옷을 갈아입고 방울토마토 몇 개와 바나나를 꺼내 먹었다. 아마도 이게 쇼 전 마지막 식사일 게 분명했다.

나가야 되기 20분 전.

한 손으로는 얼굴 냉찜질을 해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에 방울토마토를 밀어 넣었다.

머릿속으론 며칠 전 변경된 동선 콘티를 다시 한번 복기하면서 시뮬레이션에 빠져 있었다.

캐톡ㅡ

[예진 누나: 내려와]

“왔나 보네.”

냉찜질하던 걸 멈추고 겉옷과 핫팩을 챙겨 들었다. 집 안에 있는 불도 다 끄고 밖으로 나오니 새벽의 찬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으 추워.’

원체 추위를 잘 타서 차로 향하는 걸음이 더 빨라졌다.

예진은 이런 나를 잘 알고 있으니 히터쯤이야 미리 틀어놨을 게 분명했다.

‘빙고.’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검은색 차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따뜻한 공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대표님은 이따 리허설 할 때쯤에 가신다는데.”

“그래요?”

예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마시아의 주성훈 대표.

애초에 신인 모델이 대표를 만날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지난 반년간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아, 악플 관련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이 오긴 했었네.

‘그래도 서울패션위크는 빼놓을 수 없나 보지.’

계약 이후로 만남의 장소가 패션쇼장이라니 참으로 모델 에이전시다웠다.

이은석 디자이너의 브랜드 ‘맨시크’의 S/S 서울패션위크 모델로 선정된 건 데마시아에서 나밖에 없었으니.

워낙 이은석 디자이너가 슬렌더 모델은 선호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를 캐스팅하면서 유례 없이 신인을 뮤즈로 삼아 만든 의상이라고 한다.

‘뮤즈라니.’

신인에겐 과분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굴러들어온 복을 찰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서울패션위크 모델 오디션을 볼 생각이기도 했고, 그보다 전에 다이렉트로 이은석 디자이너에게 캐스팅된 것이니 굳이 그를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까.

“도착했다. 잘하고 와”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누나.”

“이게 내 할 일인데 뭐. 오늘도 다 씹어먹고 와.”

“...... 어째 표현이 더 거칠어지는 거 같은데?”

다 씹어먹으라니, 나는 예진의 말에 작게 웃었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고, 다시 한번 몸을 강타하는 찬바람에 몸이 자동적으로 움츠러들었으나 쇼장 바로 안으로 들어가니 그나마 추위가 가셨다.

들어가면서 신원을 확인을 한 뒤스탭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보이는 꽤 많은 사람들.

‘다 미리 와 있었네.’

전부 다 온 건 아니겠지만, 화장대에 앉아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모델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우연 모델 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저희 둘이 담당 헬퍼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내가 서 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두 명이 다가왔고, 원래 보통 헬퍼는 1명에서 2명이 붙는데 오늘은 2명인가 보다.

그렇게 나는 헬퍼들의 손에 이끌려 화장대에 착석했다.

헬퍼들은 헤어, 메이크업 담당자들에게 상세하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저 앉아서 얼굴을 내어주기만 하면 됐다.

‘아 간지러워.’

그렇지만 이걸 건드리면 다시 또 수정 화장을 해야겠지.

눈 밑이 간지러운 걸 참아내고 조금 지나자 메이크업이 전부 다 끝났다. 헤어는 순식간에 바뀌었고.

거울 속에는 밋밋한 얼굴 대신에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내가 앉아 있었다.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한쪽으로 나온 뒤 멀뚱히 서서 쇼장을 둘러봤고, 다른 모델들은 다 친한 모델이나 소속 모델들이 있는지 속속들이 도착해 떠드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하지만 나는 같이 온 사람도 없고ㅡ, 일면식 있는 사람도 없으니

‘핸드폰이나 해야지 뭐.’

1차 리허설 때까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콘티를 보기도 하고, 의상 컨셉들을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하고.

그리고 잠시후 1차 리허설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착장까지 한 뒤 2차 리허설이 시작됐다.

2차 리허설까지 끝나고 나서야 주성훈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와 마주하자마자 과거와 똑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더니

“역시 데마시아로 데려온 내 안목이 장난 아니었다니까?”

윙크를 하면서 장난스러운 말을 건넸다.

‘차라리 혼자 있던 게 나았을지도.’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주성훈 대표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턴에 대한 조언을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경청했다.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상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그 시뮬레이션이 끝나자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네.’

어서 빨리 무대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이제 상상으로 하는 패션쇼는 지겨운걸.

****

“처음 보는 앤데? 쟤 뭐야?”

“마스크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완전 이은석 디자이너 취향이네.”

리허설을 하는 우연의 모습을 본 다른 에이전시 소속 대표와 실장이 말했다.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이은석의 디자이너의 취향이 한껏 묻어나 있으니까.

의상 또한 특유의 난해함을 조금 없앤 것인지 모델과 잘 어울렸다.

백스테이지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던 거 같은데, 무대 위에서는 존재감을 마구 표출해냈다.

특히 착장을 한 2차 리허설에는 더욱더.

그런 우연을 지켜보는 이은석 디자이너의 표정 또한 흐뭇했다. 역시 잘 어울리네.

1차 리허설이 막 끝날 때쯤 도착한 주성훈 대표는 우연이 2차 리허설을 끝낼 때까지 지켜보면서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었다.

‘딱 런웨이 체질 모델이란 말이지.’

화보도 괜찮았지만, 전체적인 피지컬도 그렇고 무엇보다 저 워킹이.

누가 봐도 참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워킹이 압권이었다.

고운 흰 피부는 의상의 원색과 대비됐지만 조화를 이루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눈을 깜빡일 때마다 이목구비가 강조되었고

멀리서 걸어올 때는 의상이 돋보였지만 가까이 오면 올수록 의상이 모델을 돋보이게 해줬다.

우연의 어려 보이는 얼굴은 메이크업으로 가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느낌을 주었고 컨셉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빨리 돌았어!”

그때 우연이 중간 턴을 조금 빠르게 돌았다. 그것을 캐치한 주성훈 대표가 외쳤고 고개를 크게 끄덕인 우연은 그대로 백스테이지로 들어갔다.

알아들었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

따라서 백스테이지로 돌아간 주성훈 대표는 우연에게 이것저것 턴에 대한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턴을 할 때 조금 더 무겁게 턴하면 좋겠어. 옷 특성이 뒤가......”

그의 조언을 듣는 우연의 얼굴은 진지함이 한껏 담겨 있었다. 주성훈 대표의 말이 다 끝난 후에도 알겠다고 대답하며 침착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 주성훈 대표가 먼저 우연에게 물었다.

“안 떨려? 여기서 네가 제일 막내일 텐데.”

17살. 여기 있는 모델들 중에서 아마 최연소일 게 분명했다.

그런 그의 질문에 우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모습이 의상과 메이크업을 한 상태라서 화보의 한 장면으로 느껴졌지만

오히려 당사자는 무덤덤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리허설은 리허설이잖아요. 본무대랑은 또 다르기도 하고 그래서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약간의 설렘이 담겨 있었지만 주성훈 대표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연을 처음 보고 계약했었을 때를 회상하면서 결국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하나도 안 바뀌었네.’

한결같은 우연의 모습에 되려 수긍해 버리고야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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