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chapter 65. 논란의 여지
* * *
“쓰읍, 역시 해외 진출 건이 많은데요.”
“한예은 포토그래퍼한테는 연락 넣어뒀지?”
“네! 넣어놨어요. 이제 일정 잡을 거 같긴 한데...... 아무래도”
학교 다니는 것 때문에 스케줄 조정하기가 좀 어렵네요.
직원의 말에 잠깐 멈칫한 실장이 다시 손을 움직이며 입을 뗐다.
“며칠 뒤에 대표님이랑 여러 가지해서 한 번 얘기해 보기로 했어.”
“우연 군이랑요?”
“응. 당사자가 빠지면 안 되지. 아마 거기서 나온 결과가 어떤가에 따라서 갈리지 않을까.”
그 말에 직원은 수긍했다. 하긴, 뭐 하나 결정된 게 없으니.
우연과의 계약은 2년뿐이었고 모든 활동에는 그의 의사가 반영된다. 하여 들어오는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고
무엇보다 지금은 전과 다르게 스케줄을 조정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었다.
학교를 빠지는 거에 있어서는 우연이 보여준 반응을 토대로 봤을 때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지만,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사실 모델의 학력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노아 예고의 존재는 조정이 필요한 스케줄 중 하나일 뿐.
아슬아슬하게 SNS 인기 선에서 유지되고 있던 줄타기가 끝났다.
쇄도하는 문의와 컨택의 수는 간판 모델인 강원우에 버금갈 정도로 빗발쳤다. 아니 이번만 한정해서 보았을 때는 우연에 대한 게 더 많을지도.
이우연의 서울패션위크 데뷔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으니 말 다 했지 뭐.
“일단 컨택 제안 온 거 정리해둔 파일은 보내드렸어요. 국내만 따로 한 것도요.”
“고마워.”
실장은 파일을 열어 제안온 곳들의 목록을 눈으로 쭉 훑었다.
의류 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 국내 브랜드 디자이너들만 해도 많은데 해외로 나가면 아예 넘치는 수준이겠지.
모든 활동에 우연의 의사가 반영되다 보니 그간 자잘한 일들보다는 큼직큼직한 일들을 주로 해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 큼직한 일들이 수두룩하네.’
단 한 번도 연락 오지 않았던 벨피아 패션 잡지에서도 우연의 화보를 한 번 실어보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이건 무조건 수락이긴 했지만.
그만큼 벨피아 측에서도 우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거지.
강원우와 다르게 이우연은 슬렌더 모델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이 선호하는 체형.
어느 정도 볼륨감 있는 모델을 원하는 곳도 있겠지만 해외에서는 유독 슬렌더 모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국내도 별로 다르진 않았건만.
그런 모델들 사이에서 근육질의 몸매로 데마시아의 간판 모델이 된 강원우와는 정반대의 케이스가 우연이었다.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무궁무진한 잠재력.
“국외로 해외 진출 관련해서도 정리해서 파일 보내줘요.”
“네? 네. 알겠습니다.”
17살인 남자애가 학교도 다니고 있는 판국에 해외 활동을 쉽사리 결정하리란 걸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런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었다. 더욱이 아직 데뷔한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신인이라면 더 했고.
‘놓치면 안 되지.’
신인에게는 과분한 기회.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하고 뭐가 됐든지 간에 일단 해 보는 게 좋았다. 경험이란 건 무시할 수 없고, 모델의 경우 그 모든 것들이 커리어로 환산되니까.
물론 평범한 남자 모델이었다면 해외 진출을 말릴 수도 있겠지만
‘뭔가 할 것 같단 말이지.’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더, 모델이라는 직업에 진심인 우연을 떠올려 봤을 때 그는 왠지 할 것만 같았다.
며칠 뒤 있을 대화에서 이 같은 문제들도 협상되겠지만.
‘2년이라는 게 아쉽네.’
남은 계약 기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삼켜냈다.
****
꽃이 피면 지기도 전에 누가 꺾어가기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미가 가시가 있는 건지.’
장미의 심정이 십 분 이해가갔다. 그것도 그럴게 지금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을 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 꽃의 처지가 나였다.
[천사 같은 외모 속에 숨겨진 ‘인성’ 논란 모델......]
[같은 학생인데 차별받는 대우_#예고_#조작_#모델]
[혜성 같이 등장한 모델, SNS 스타 이우연]
“아 두통이야......”
모델 관련 기사들과 게시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만 아파왔다.
이런 걸 굳이 찾아보려고 하진 않았건만, 요즘 SNS 댓글로 스물스물 이상한 말들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이게 웬걸. 몇몇 내용들이 마치 내 이야기 같지 않은가.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봤을 때 충분히 내 얘기라고 생각할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밟히는 건 두 개.
[천사 같은 외모 속에 숨겨진 ‘인성’ 논란 모델......]
인성 문제라며 자극적인 타이틀을 뽑아낸 기사의 내용은 패션쇼 관계자에게 갑질한 모델의 이야기였다.
여기까지라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용 중에는 ‘스탭을 무시한 채 지나가는 모델’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그걸 본 순간 난 한 명이 떠올랐다.
“헬퍼.”
그 헬퍼에 대해 할 말은 참 많았지만 오히려 말을 아낀 축에 속한다.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야겠네.
설마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댓글에서는 이미 내 이름이 함께 거론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같은 학생인데 차별받는 대우_#예고_#조작_#모델]
“이건 진짜 내 얘긴데.”
누가 썼을지 대략 짐작 가는 인물이야 두어 명 정도 있긴 하지만 그건 짐작일뿐이었다. 일반인이 쓴 글이라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몇몇 커뮤니티나 페이지에서 퍼간 덕에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패션모델과는 노아예고에만 존재했기에 특정하기도 쉬웠다.
[이미 자기는 모델이라고 같은 모델과 애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함. 그러면서 학교 빠지고 실기 과목들은 전부 만점. 유일하게 점수 낮게 준 선생님 한 명 있는데, 그 선생님 수업은 일부러 빠지는지 활동 때문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고......]
여기서도 내 이름은 이미 거론되어 있었지만 여론은 괜찮은 편이었다. 아니라는 쪽이 대다수지만, 내가 봤을 때 이건 내 얘기가 맞았다.
이런 얘기들이 기사로 번져서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미리 말해놔야겠네.”
이틀뒤면 앞으로의 활동과 관련해서 캐스팅 팀장과 대표, 둘과 함께 대화를 나눠보기로 한 날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뭐 어때.’
나는 살면서 여러모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내가 떳떳하고, 잘못한 게 없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또 없으니까.
“뭐가 잘 된다 싶으면 안 좋은 일이 하나씩은 생기는 거 같지만.”
이미 된통 한 번 깨져본 경험이 있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어떻게 말을 꺼낼지에 대해 생각했다. 애초에 내가 이런 걸 미리 말할 필요가 없어도 대처를 하면 좋으니까.
생각을 마친 나는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SNS로 들어가 여느 때와 똑같이 사진과 함께 게시물을 올렸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하지만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는 걸.
속이 조금 더부룩해진 게, 아무래도 본의 아니게 끼니를 거를 것 같았다.
꺼진 핸드폰 액정에 비친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
[모델 인성 논란...... 이거 우연이는 아니겠지?]
내가 아는 모델이 솔직히 우연이밖에 없어서 우연이밖에 안 떠올라. 다른 모델들 이슈 터질 거 있나? 괜히 불안하고 그러네.
추천 0개 댓글 15개
: 그거 신인이라던데? 그럼 킹능성 있지ㅋㅋ
┖ 그건 뇌피셜 아님? 신인이라고 누가 그럼.
┖ 후속 기사 보도난 거 보셈.
: 근데 우연이가 인성 논란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목격담만 봐도 미담 줄줄인데;;
┖ 전에 좋아했던 아이돌 통수 맞아서 혹시나....
┖ 과거도 클린하고 뭐 문제 없지 않을까.
[요즘은 예고도 지랄이네]
(사진) 일반 학교에서도 성적 조작 같은 거 일어나는데 예고라고 안 일어나겠냐. 여긴 실기로 평가하는데 그거 완전 선생 마음대로잖아ㅋㅋㅋㅋ 요즘 남자 모델들 게시판에서 핫하던데 그중 하나?ㅋㅋ 아무튼 간에 이런 건 ㄹㅇ 학교도 찔러서 같이 파헤쳐 봐야 됨.
솔직히 학교에 유명한 애 있으면 무료 간판이잖아 ㅇㅈ?
추천 103개 댓글 77개
: 차별대우 진짜 ㅈ같은데.
┖ 선생이 학생 차별하는 건 국룰 아님? 공부 잘하는 걸로도 그러잖아.
┖ 요즘 공부 못한다고 지랄하면 그것도 문제임.
: 패션모델과 있는 학교 딱 하나 있지 않음??
┖ ㄴㅇ예고 맞음 ㅇㅇ 몇 학년인진 모르겠는데.
┖ 3학년일수도.
┖ 아니면 ㅇㅇㅇ? 걔 ㄴㅇ예고잖아.
┖ 걘 수석 입학 아님?ㅋㅋㅋ 그럼 입학부터 문제 있잖아.
: 요즘 찌라시 글들만 너무 많이 올라옴.
┖ 증거 있나요? 증거 없다고요? 꺼지세요.
┖ 오피셜 아니고 뇌피셜로 알고만 있는 거지 뭐.
BEST [서울패션위크 이우연 사진 모음]
(사진)
(사진)
(사진)
전신샷만 가져 왔는데 진짜 다리 개길다...... 이날 입은 옷 찍은 사진 우연이 아웃스타 가면 있으니까 볼 사람은 가서 봐. 서울패션위크라니 완전 월클 메이저 모델이다 이우연 ㅠ 나만 알고 싶은데 그만 유명해져.
추천 7041개 댓글 2001개
: 이번에 기사 뜨고 페룩 ㅈㄴ 퍼가면서 유입 개많아짐
┖ 아이돌 덕질이나 하라 그래
┖ 이미 맛을 봐버린 걸 어캄 핥쨕
: 확실히 모델은 모델인가 봐ㅠ 옷 완전 별론데 우연이가 입으니까 패션이 완성이네.
┖ 패완얼 ㅇㅇ
: 요즘 외국인 댓글 개많아짐. 팔로워도 같이 많아짐. ㅅㅂ 해외각 아니지?
┖ 아ㅋㅋㅋ 한국으로는 부족한 거냐고.
┖ 해외 나가서 뭐함. 거기서도 패션쇼 하려나?
┖ 화보 ㅈㄴ 찍겠지. 해외 화보 개많이 찍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