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chapter 68. 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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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것들과 바뀌지 않은 것들.
이번 연도가 유독 그랬던 거 같다.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것들과 그렇지 않을 것들이 있었고.
‘사람도 그렇지.’
그건 사람도 그랬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 또한 존재했고.
이번 논란으로 인해 나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분명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전보다 안티들이 더 많이 생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물론 그중에서 심한 악질 같은 경우에는 에이전시에서 고소를 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선에서 해결될 거다.
“이제 학교 가야지.”
그동안 일을 하고 쉬느라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기분도 낼 겸, 옷장에서 교복을 꺼내 풀착장을 했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좀 어색했다.
‘앞으로 입을 일도 잘 없을 텐데.’
교복을 입고 노아 예고에 가는 건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다.
일단 오늘 자퇴 절차를 밟을 것이고, 글을 올렸던 녀석과 직접 보고 대화할 테니까.
이미 에이전시에선 고소를 진행한 상태였지만 글을 올린 당사자가 누군지 들었을 땐 그저 그랬구나, 정도였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위.
덕분에 충격받을 일은 없었다. 오히려 덤덤해서 문제면 몰라도.
‘아무렇지 않네.’
마지막으로 가는 학교라고 생각해도 느껴지는 아쉬움이라던가 떨린다는 감정은 없었다. 앞으로 학교를 갈 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저 똑같은 하루일 뿐.
캐톡
아빠: 아들~^^ 밑에 있으니까 준비 다 되면 내려와^^
: 준비 다 했어요. 지금 내려갈게요.
거울을 보고 있다 울리는 알림 소리에 캐톡을 확인한 나는 골라뒀던 코트를 입었다.
얼어 죽어도 패션이지.
하지만 진짜 얼어 죽으면 안 되기에 목도리를 목에 둘렀다. 대부분 실내에 있고 차로 이동하긴 했지만 뭐.
그렇게 집을 나서자 집 바로 밑에는 아버지가 차를 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수석 문을 열자 보이는 한껏 꾸민 모습의 아버지.
“우리 아들 오늘도 예쁘네~”
“...... 아버지도요.”
“아빠라고 부르라니까! 에잉, 애교가 없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아버지는 대답을 바라고 말한 게 아닌 듯, 콧노래를 부르면서 차를 운전했다.
내 자취방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얼마 걸리지 않았기에 우리는 빠르게 학교에 도착했고, 수업 시간이어서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었으면 완전 정신없었겠지.’
원래 같았으면 나도 평범하게 수업을 듣고 있었겠지만 자퇴를 하러 학교에 왔다니까 뭔가 조금 이상했다.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났으니 뭐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
나는 아버지를 이끌고 교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우연이 담임 이한솔이라고 합니다아! 호호, 너무 미인이시네요. 안으로 들어가셔서 얘기하실까요?”
“어머, 안녕하세요 선생님.”
시간을 미리 예고해놨기 때문에 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아버지와 선생 사이에서 오가는 짧은 대화.
이미 담임에 대해선 아버지에게 미리 얘기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마 그의 인상은 좋지 못할 게 분명했다.
끼익
교무실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반대편에는 선생이 앉았고, 앉자마자 그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연이가 워낙 모범적인 학생이어서 걱정 같은 건 안 했었는데......”
웃으면서 내 얘기를 하나둘씩 아버지에게 꺼내는 모습이 조금 가증스러웠지만 참았다.
아버지는 선생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 말했다.
“선생님께서 우리 우연일 신경 써주셨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하지만 아무래도 좋은 소식으로는 찾아뵙는 게 아니다 보니......”
아버지는 웃으면서 시종일관 웃으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입장에서 저 말들을 해석하면 좀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원래 이런 대화는 빙빙 돌려가면서 얘기하는 게 예의이기도 하고,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건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서, 우연이는 어떻게 하고 싶니?”
아버지의 말을 전부 다 들은 선생이 내게 예의상 물음을 던졌다.
애초에 오늘 아버지가 오게 된 이유에는 자퇴 절차도 속해 있었으니까.
“자퇴하고 싶어요.”
“그래? 혹시 그 친구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니겠는 거면.....”
“그건 아니에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퇴를 하려고 결심한 건 그 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내 앞으로의 모델 생활을 위해서니까.
“이미 에이전시에 소속된 모델이기도 하고, 앞으로는 활동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요. 학업을 유지하기엔 버거울 거 같아요.”
“아버님도 우연이와 같은 생각이신가요?”
“저야 뭐 항상 저희 아들 편이죠. 자퇴해도 본인이 열심히 하겠다니까.”
그런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본 선생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학교 측에선 최대한, 아무 일 없이 일이 끝나길 원하는 상황이지만 우연 군이 자퇴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죠. 개인의 선택인걸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자퇴’가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는 문제다.
나야 앞으로의 활동으로 증명해 내갈 생각이었지만 학교 측에선 조용히 넘어가고 싶겠지.
선생은 이어서 자퇴 절차에 대해 설명해 준 뒤 원서를 갖고 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성격 똑 부러지네 아주.”
“아빠 닮아서 그래요.”
“어우, 얘는.”
그러면서 아버지는 내 팔을 툭 밀쳤다.
‘아빠가 잘 먹히네.’
자연스럽게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렀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워하시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번에 한 번 아빠, 엄마 소리를 했더니 더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덕분에 치트키 아닌 치트키 하나가 생겨버렸다.
“이게 자퇴 원서고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프로그램은 신청 안 하신다고 하셨으니 생략하고요.”
“알겠습니다.”
선생이 들어오자 언제 웃었냐는 듯 아버지는 다시 또 비즈니스 모드로 돌아갔다.
종이를 건네받은 우리는 내용을 전부 작성해 다시 선생에게 돌려줬고, 내용을 살펴보던 선생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그 친구 불러올까요?”
“그러죠.”
아까와는 다르게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선생이 느껴졌다.
‘굳이 봐야 되나 싶지만.’
아버지도 녀석의 얼굴을 한 번 보길 원하고, 당사자도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고 하니 만남이 성사될 수밖에 없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냥 그랬지만.
그렇게 자리를 뜬 선생이 다시 돌아오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다른 한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고.
“성운아, 여기 앉으렴.”
“...... 네.”
물기 어린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반대편에 앉은 녀석을 쳐다봤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녀석의 모습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퉁퉁 부은 눈, 정돈되지 않은 머리까지.
방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을 깨고 말한 건 다름 아닌 아버지.
“왜 그랬니.”
네 글자엔 아버지 특유의 성격답게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가시가 돋아져 있었다.
자퇴를 인정받은 다음날 나는 나를 둘러싼 논란들과 해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은 분개하셨다.
그때에 비해 지금 아버지의 반응은 약과다.
“죄, 죄송합니다아...... 끅.”
울음기가 섞인 사과가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말이 허공에 울려 퍼졌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 말... 죄송합니다아..... 처음엔, 우연이랑 친해지고 끅, 싶었는데...... 그렇게 안 돼서, 끕 질투 나서. 그랬어요.”
성운은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자신의 잘못을 고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성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처음엔 흔한 남자애, 아니 천상남자라고 생각했었지만
‘남왕벌이었지.’
애교 많고, 남에게 잘 다가오는 성격인 줄만 알았던 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드러나는 모습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뒷담화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친구들을 비교해 가면서 여자애들에게만 유독 더 상냥한.
나도 반 애들과 다 친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성운을 싫어하는 남자애들이 있다는 건 알았다.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런 건 함부로 적는 게 아니란다. 우연이도, 우연이 주변 사람들도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어. 네가 한 말에 따른......”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자 선생은 딱히 중재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했다.
울고 있는 성운은 그런 아버지의 말을 듣고만 있었고.
‘답답하네.’
방 안에 이 네 명이 앉아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는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녀석이 제대로 반성하는지도, 사과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도 모르기에 용서해 줄 마음은 없었다.
‘이 일이 잘못됐더라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성운이 적은 글과 이번 일은 나와 관련되어 언제든 회자가 될 수 있었다. 그건 지금도 변치 않고.
“우연이는 할 말 없니?”
아버지의 말이 끝나고 성운이 한 말은 또다시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선생이 나를 보면서 묻자 나는 그런 선생을 쳐다보지 않은 채 성운을 보며 말했다.
“네가 쓴 글이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상처를 줬는지 깨달았으면 좋겠어.”
나지막하게 말하자 옆에 앉은 아버지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지는 게 느껴졌다.
“네가 진심으로 반성하는지는 몰라. 관심도 없어. 그건 아마 너만 알 수 있겠지. 딱히 믿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
눈물을 휴지로 닦은 녀석이 붉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딱 한 번만 기회를 주는 거야. 이유는 네가 17살이고 네 부모님들을 생각해서. 에이전시에도 말해둘 거니까 고소는 취하될 테니 합의만 하면 돼.”
“고, 고마,... 끕. 미안해애.......”
“사과하지 마. 받고 싶지 않으니까.”
자칫하면 사람 인생 망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그러니 진심인지 아닌지 간에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고, 훗날 용서받았다고 녀석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이번 딱 한 번 정도 넘어가는 건, 순전히 계속해서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성운의 부모님들 때문이었다.
성운은 공식적으로 사과문과 함께 글을 다시 올렸지만 그건 당연한 거였고.
합의에 관해선 아마 따로 또 얘기를 나눠봐야겠지만 적어도 고소라는 결과보단 나을 거다.
“그럼 이제 성운이는 나가보고, 두 분은 이제 교무부장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을......”
성운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더니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교무부장과 학교장을 만나, 이어서 자퇴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성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야 했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즘엔
“오늘은 아빠랑 같이 초밥 먹으러 갈까?”
“...... 좋아요.”
이미 기가 다 빨려 있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초밥집으로 향했고 초밥과 마주한 나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오늘은 먹어줘야지.’
먹다 보니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신사데이 계약을 했던 날 이렇게 초밥을 먹으러 온 게 떠올랐다.
“맛있어? 아 우리 우연이 광어 좋아하지. 이거 하나 더 시킬까?”
“...... 네.”
아직 입안에 있는 것조차 다 씹지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뭔가 마음 한켠이 따뜻해져 있는 건 똑같다.
아마 이런 게 부모님이라는 존재겠지.
꿀꿀하던 기분마저도 어느새 풀려 있었다. 절대 맛있는 거 먹어서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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