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chapter 69. 쉴 틈 없이
* * *
어느새 12월, 서울패션위크가 있고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조금 넘게 흘렀다.
논란이 일고 자퇴를 한지도 한 달. 그 시간 동안 나는 모델 일에 집중했다.
“젖은 머리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감사합니다.”
“A컷은 이걸로 하죠. 아쉽지만 이건 B컷으로 둬야 할 거 같고요.”
미세한 차이였으나 단번에 A컷을 선정하는 포토그래퍼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의했다.
‘저게 더 나은 거 같네.’
옷을 갈아입고 촬영이 재개됐다.
“와아ㅡ”
“너무 예쁘다!”
“큽,”
촬영 도중 스탭들이 감탄사를 내뱉을 때마다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촬영 분위기가 좋고, 순조롭게 흘러가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잠깐 웃을 때에도 포토그래퍼의 플래시는 멈추지 않았고,
그 호응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최대한 집중해가면서 촬영을 이어나갔다.
‘컨셉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가.’
나오는 결과물들도 꽤 마음에 들었다.
서울패션위크 이후로 소년 컨셉의 촬영 제의가 많이 들어왔는데, 지금 하고 있는 컨셉은 반대로 섹시한 쪽이었으니까.
특히 향수 화보 촬영으로 벨피아 패션지에도 실릴 예정이었기에 그만큼 스탭도 많고 규모도 컸다.
“마지막으로 한 번 볼까요?”
포토그래퍼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길었던 촬영이 끝나기 직전, 모니터로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훑어봤고.
익숙하지 않은 젖은 머리와 넘긴 머리를 한 내가 모니터 속에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자 인사를 나누고 각자 흩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오늘 촬영은 이걸로 끝.’
긴장이 풀리며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예진과 함께 차로 향했다.
학교를 자퇴한 뒤로 평일에 시간이 비기 시작하면서 스케줄을 하나둘씩 소화해냈고, 덕분에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있는 날도 있었으나.
‘내일은 쉬는 날.’
내일은 휴일이었다.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브랜드. 잡지, 화보, 광고.
SNS에서도 그렇고 여러 방면에서 제의가 들어오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금이 나는 제일 즐거웠다. 학교를 다녔을 때보다 훨씬 더.
고소를 취하한 성운과 달리 헬퍼는 그대로 고소를 진행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성운도 자의로 인터넷에 게시글 두 개를 올리면서 상황을 좋게 흘러가게 만들었다.
적힌 내용을 비롯해 보도되는 기사들은 여론을 뒤집기에 충분했고.
그 소식은 내게 호재였다.
“집으로 가면 되지?”
“네.”
“말해둔 방울토마토는 시켜놨어. 모레 스케줄 있는 거 잊지 말고.”
“절대 안 잊죠.”
차에서 나오는 잔잔한 노랫소리를 배경으로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추위를 워낙 많이 타서 빵빵한 히터에 담요까지 덮고 있는 나와 운전을 하고 있는 예진.
최근 그녀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 또한 익숙해져 있었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루틴이겠지만.’
다른 건 변했을지 언정, 나의 일상에는 적어도 큰 변화가 없었다.
‘어제 늦게 자서 그런가 좀 졸리네.’
차 안이 따뜻해서 눈이 자꾸만 저절로 감겼다. 내가 말이 없어지자 예진은 조용히 음악 소리를 작게 줄였고.
작아진 음악소리와 조용해진 차 안, 몸이 노곤노곤 풀어진 나는 빠르게 수마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우연아, 도착했어.”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집 앞이었다.
****
“...... 아”
너무 집중해서 봤다.
눈을 깜빡이지 않아서 뻐근한 눈을 꾹꾹 눌러주고 부엌으로 가 캐모마일 티를 한 잔 타서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매일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마셔서 이젠 습관이 되어버렸고.
컨디션 관리가 최우선이다 보니 어딜 가든 핫팩과 담요는 필수품이었다.
“이거 괜찮네.”
침대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메일들을 확인하고 있던 나는 꽤 괜찮은 콘티를 골라 바탕화면으로 옮겼다. 오늘 촬영한 콘티는 다른 폴더로 또 옮기고.
마지막까지 제안 온 촬영 컨셉들을 훑으면서 있다가, 차를 다 마시고 집중력이 깨질 때쯤 노트북을 닫았다.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네.’
빈 잔을 싱크대에 넣어둔 뒤 화장실로 가 씻고, 스킨 로션까지 바른 후에 다시 침대에 누웠다.
어차피 내일은 늦잠 잘 생각이라 늦게 자도 되고.
누워서 SNS를 살피고, 너튜브 영상을 보면서 새벽 1시까지 핸드폰을 하다 졸고 있었을 찰나.
지잉ㅡ 지잉ㅡ
“아 뭐야......”
이제 막 잠들 뻔했었는데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이 있나.
손을 휘적여 핸드폰을 잡아 뒤집자 핸드폰 화면에는
“...... 아?”
발신자 표시 제한이라고 띄워진 채로 전화가 오고 있었다.
‘거절.’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거절을 눌렀다.
모르는 전화번호도 전화를 받지 않는데, 발신자 표시 제한이라니.
‘전화를 거절하긴 했지만......’
지잉ㅡ 지잉ㅡ
아니나 다를까. 다시 한번 걸려오는 전화.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전화를 받은 채 통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전화 너머에서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그대로 10초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미친”
수신 차단을 하려고 설정에 들어가려는데, 다시 한번 더 전화가 왔고 여전히 수신자는 발신자 표시 제한이었다.
이번엔 곧바로 전화를 거절한 뒤 설정에 들어가 차단을 눌렀고 그러자 핸드폰이 잠잠해졌다.
‘자려고 했는데 잠 다 깨게 만드네.’
지금 시각은 새벽 두 시.
애초에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이런 걸로 장난을 칠 사람도 없었다. 캐톡에 들어가 봐도 이렇다 할 연락은 없었고.
‘번호 유출됐나.’
차단을 해놔서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내일 아침에 말해야지.”
아무래도 시간이 늦었다 보니 내일 아침 중으로 예진에게 연락해 방금 있었던 일에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번호 유출이라면 일단 핸드폰 번호를 바꿔야 했으니까.
‘괜히 찝찝하네.’
너튜브 영상 몇 개를 봤건만 여전히 머릿속에선 아까 온 전화가 신경 쓰였다.
몸을 뒤척이다가 결국 몇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
[우연이 고화질 사진!]
아웃스타그램 @dndus_0 이거 우연이 계정은 아닌 거 같은데, 우연이 고화질 사진 올라와 있어, 서치해보다가 찾았는데 음 아마도 팬계정......? 처음 보는 사진인데 완전 고화질로 잘 나와서 바로 저장해버림 ㅜㅜㅜ 팔로우도 당연히 했고.
추천 103개 댓글 57개
: 사진 다섯 장밖에 없는데 지린다......
┖ ㄹㅇ 저런 걸 보고 금손이라고 하는 듯ㅋㅋ
┖ 일반인이 찍은 게 아닌 거 같은데 소속사가 팠나?
: 이런 말 하면 미안하지만 우연이 셀카보다 진짜 훨씬 나아
┖ 쉿 팩폭 그만. ㅈㄴ 크리티컬ㅋ
┖ 카메라 완전 좋은 거 쓰나 본데? 일단 폰카는 절대 아님.
: 저장해서 컴퓨터 배경화면 사진으로 해놓음.
┖ 아 나도 해야지ㅋㅋ
┖ ㄹㅇㅋㅋ 개이득
BEST [유입된 사람들]
제발 공지 글 좀 읽으셈. 최소한 지켜야 될 건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최근에 한 번 테러 당한 적 있어서 더 예민한 상탠데 사소한 걸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다...... 그리고 우연이 사진 퍼 오는 거 출처 기재 좀 하셈.
추천 5901개 댓글 2032개
: ㅇㅈ 최근에 유입 많아졌더라. 논란이 발판이 되어줌.
┖ 그 일 있고 나서 팬들끼리 유대감 오짐.
┖ 그리고 좆목도 오짐.
┖ 하지 말라고 이 글 올라온 거잖아;;
: 사진 가져오는 곳이라고 해봤자 SNS밖에 더 있나?
┖ 그러니까 그게 어딘지 출처 기재하라는 말.
┖ SNS 팬 계정도 많이 생겼음. ㄹㅇ 개꿀.
: 쳐낼 애들 확실하게 쳐내고 받을 애들 확실하게 받자.
┖ 그게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점심 나가서 먹을 거 같아~
┖ 나만 알고 싶었던 맛집이 다 떠벌려짐.
┖ 쩔수다 ㅎㅇ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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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럽제 근황 알아냈다]
타팬이긴 한데 워낙 럽제 때문에 제이 유명해져서 둘 다 알고 있었음. 근데 얼마 전에 우연히 아웃스타그램 돌다가 럽제가 찍은 걸로 보이는 사진 발견함.
내 감이 말해주고 있어. 저거 분명히 럽제가 찍은 거야. 다른 애로 갈아탄 거 맞았네ㅋㅋㅋ
(사진)
(사진)
댓글
: 쟨 또 누구냐 예쁘네
┖ ㅁㄹ. 어디서 본 거 같은 얼굴인데
┖ 모델 아냐? 페룩에서 본 거 같음. ㅇㅇㅇ.
: 사진 잘 찍기는 했는데 저것만 보고 뭔 럽제임ㅋㅋㅋㅋ 걔가 유명한 건 악질 스토킹 때문이었음.
┖ 맞지. 솔직히 사진 실력은 다른 애들이랑 비슷
┖ 뭐래;; 제이 사진 원탑이 럽제였는데.
┖ 아 몰라 뉴스 타면 생각할게~ 우리 제이는 뉴스 탔거든~
: 뇌피셜 언급 자제 좀
┖ ‘타팬이긴 한데’부터 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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