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chapter 70. 스토킹은 범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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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매니저를 맡기 전, 남자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를 맡았었던 예진은 ‘사생’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밑도 끝도 없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누군지 확인할 수가 없다고요?”
“상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증거가 마땅치 않아 아무래도 당장은 조치를......”
경찰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예진의 표정은 거무죽죽하게 변해갔다.
“문자나 전화 내역은 복사해오시면 경범죄 처벌 가능합니다.”
저번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대포폰을 쓰는 것 같다며 추적이 어렵다는 말과 함께 기약 없이 미루어졌다.
경찰에게 뭐라도 해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대한민국의 법은 스토킹에 대한 처벌을 경범죄로 구분해 10만 원 안팎의 벌금형을 내리는 게 전부였다.
다른 범죄로 고소할 수는 있었지만 지금 상태로는 어려웠고.
이어지는 경찰의 말을 예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결국, 아무런 수확 없이 경찰서를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떤 년이야 씨발 진짜.’
차에 올라타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우연이 스토킹에 시달린 지 2주, 전화와 메시지를 넘어서서 이번엔 집에 들어온 흔적까지 발견되어 스토킹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지.”
진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저번에 있었던 일은 그래도 초기에 밝혀내서 경범죄 처벌이 내려진 후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안심했는데.
혹시나 해서 에이전시에선 그때 그 여자에게 연락해 봤으나 반응을 보아 아닌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제할 순 없겠지만.
아직 상해를 입지 않았고 주거침입을 했다는 정황만 있을 뿐 명확한 증거가 없어 경찰에서는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오피스텔 CCTV로 돌려본 영상엔 누가 봐도 스토커로 추정되는 여성이 찍혔지만 얼굴과 몸을 전부 가려서 파악할 수가 없었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당하는 쪽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골칫덩이였다.
지잉ㅡ 지잉ㅡ
“여보세요?”
“예진 씨 경찰에선 뭐래요?”
“허탕이에요. 전이랑 다른 것도 없고 확실한 주거침입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
“후우...... 일단 알겠어요. 우연이한테는 한번 직접 들려서 보고 말해줘요. 전화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수고해요.”
짧은 대화가 끝나자 곧장 전화가 끊겼다.
예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캐톡을 켜 우연에게 지금 집으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도착할 때까지 이 메시지를 우연이 읽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짐 싸느라 바쁘겠지.’
주거침입을 신고한 바로 다음날, 하루종일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집을 알아봤다.
그중에서 어떻게든 보안이 강한 곳으로다가 당장 입주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어찌저찌 조건에 부합한 집을 찾아서 이틀 후면 거기로 이사할 예정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짐 정리를 하느라 한창일 거다.
‘좋은 소식만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
쓴웃음을 머금은 예진이 핸들을 돌렸다.
가는 길에 아무것도 안 먹었을 우연을 생각해 수제 샌드위치 가게에 가 샌드위치를 하나 샀고.
우연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서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왔어요?”
“응. 아무것도 안 먹었지? 이거 좀 먹으라고 사 왔어.”
“고마워요.”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연의 눈앞에 종이봉투를 흔들며 말했다.
우연은 종이봉투를 건네받고 작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지만, 예진의 눈에는 최근 부쩍 마른 거 같은 우연의 모습과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이 신경 쓰였다.
“물이랑 같이 먹어. 짐 정리는 나도 도와줄 테니까.”
“...... 네.”
힘없이 대답하는 우연을 지켜보면서 예진은 한숨을 꾹 참아냈다.
저번에 자신이 사다 준 샐러드를 안 먹고 방치한 우연을 알기에, 예진은 우연을 식탁으로 데려가 먹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어떻게든 해결돼야 할 텐데.’
명쾌한 해결책이 없었다.
스토커가 나가떨어지든, 아니면 잡히든 둘 중 하나가 빨리 이루어져야 마음이 편할 텐데 말이지.
우연이 샌드위치 한 조각을 다 먹은 걸 확인한 예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짐 정리를 돕기 위해 책들을 하나둘씩 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느껴지는 옆통수를 뚫을 거 같은 시선.
“왜?”
“아니에요.”
고개를 돌리니 예진을 쳐다보고 있던 우연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우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어떻게 됐어요?”
“...... 증거가 없어서 수사가 힘들대. 변화도 적고, 현장을 맞닥뜨린 것도 아니어서”
결과를 말해주는 예진의 목소리는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점점 작아졌다. 괜스레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우연에게 말했고,
예진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우연은 샌드위치를 다 먹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면 이런 일은 없을 테니까.”
“오늘은별일 없었어?”
“똑같아요. 전화 몇 번 오고, 메시지도 오고.”
우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우연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찢어질 거 같다가도 분노가 일었고.
그 분노를 표출할 상대가 지금 없다는 사실에 애써 마음을 진정시켜 짐 정리를 도왔다.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우연은 느릿느릿 짐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입주 전까지 집에 가 있는 건 어때?”
“...... 거기까지 쫓아오면 어떡해요.”
혼자 있을 우연이 걱정되어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우연이 낮은 목소리로 하는 말에 예진은 제안을 철회했다.
‘거기까지 쫓아가면...... 큰일이지.’
잘못하면 우연의 가족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었다. 우연도 아마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 테고.
또다시 벽에 막힌 기분이었다.
우연의 일상이 그 사생으로 인해 망가져 버린 것 같아서, 예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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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어디서 전화번호라도 유출된 건가 싶었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세 번 온 그날, 바로 다음날 아침에 예진에게 말하고 에이전시에 알렸지만 그건 그저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이 아닌 다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도배하는 것처럼 보내는 메시지의 내용은 가관이었다.
결혼하자 결혼하자 나랑 결혼하자. 우리 결혼......
매니저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 질투나잖아ㅋㅋ
진짜 친구 사이 맞아? 죽여봐도 돼?
간간이 협박하는 메시지도 왔다. 이 모든 게 증거가 될 테니 열심히 복사하고 따로 저장해두고 있었지만.
증거 수집을 위해 몇 번 전화를 받아봐도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단을 해도 하루걸러 다시 또 오고를 반복해 어느 정도 해탈의 지경에 올랐고.
‘누군지 알아내려고 해도.’
대포폰이라는 장벽에 막혀 알아낼 수도 없었다.
핸드폰 번호를 바꿔도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은 계속 왔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 에이전시에서도 어떻게 할지 방안을 모색하는데
“뭐야.”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불이......’
흐트러져 있었다. 이불 정리는 항상 일어날 때마다 하고 가는 것이었고, 지금 저 상태는 누가 봐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상태였다.
‘누가 들어왔었어.’
그 사실을 깨닫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집에 사라진 물건이 있는지 뒤지면서 속옷 두 장이 사라진 걸 파악했고, 나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 상황을 설명했지만.
도착한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내 신고를 접수하고, CCTV를 확인하겠다는 것뿐이었다.
애초에 침입자가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고이미 간 상태였으니까.
결국 나는 경찰서로 가 진술서를 작성했고, 이후 실장에게 연락해 상황을 알린 뒤 가족들에게도 연락해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어떻게 들어온 거지.‘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사실에 다른 곳에서 지낼까도 생각했었지만 기각했다.
그러면 내 집을 막 드나들 수도 있고차라리 집에서 침입자를 마주하는 게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누군지를 모르니”
그것만큼 답답한 게 없었다.
혹시 몰라 호신용품을 잔뜩 구매하고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바꿨고.
누군가가 도어락을 치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신고할 생각으로 전화 단축번호까지 설정해뒀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불안감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와, 예민해져서 잠을 자지 못하거나 입맛이 없어지기도 했다.
열흘 동안 전화와 메시지를 받으면서 광기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지만.
집에 들어온 흔적을 발견한 다음날, 나는 바로 이사할 곳을 찾아다녔다.
“보안이 좋은 곳으로.”
이사할 돈도 있겠다, 학교 근처일 필요도 없니 보안을 최우선으로 해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 하나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으니까.
“뉴스에 나오는 범죄의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직업이 모델인 만큼 감수해야 할 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아니었다.
[최근 홀로 있는 남성을 노린 범죄가 무서울 정도로......]
뉴스를 보다 나오는 소식에 나는 멈칫했다.
왜냐면 이제 저 범죄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어 버렸으니까.
착잡한 심경으로 마저 짐을 정리했다. 일단 이사가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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