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chapter 71. 기다리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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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잠잠해졌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 일단 큰 문제는 해결된 거 같으니 다행이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많지만요.”
실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반대편에 앉아있는 예진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게, 일주일째 회사로 똑같은 꽃바구니가 배달되고 있었으니까.
우연의 앞으로 온 이 꽃바구니를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징하네요 정말.”
“그래도 한 명인 건 확실한데......”
그나마 단체는 아니다.
스토커 개인이 저지르는 일과 여러 명이 모여 단체로 저지르는 일은 스케일은 또한 다르니까.
처음 꽃바구니는 로비에 퀵으로 배달되어 전해졌다. 로비에 있던 직원은 우연의 앞으로 왔다는 말에 꽃바구니를 위에 층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로 넘겼고.
그걸 건네받은 직원은 우연 앞으로 올 꽃 선물이 없어 꽃바구니를 뒤지다 카드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직원은 카드를 열어본 순간 기겁했다.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카드를 펼치자마자 보인 건 다름 아닌 ‘사랑해’라는 글자였고, 카드를 빼곡이 채워 적혀 있었다.
결국 직원은 꽃바구니와 카드의 존재를 실장에게 알렸고, 실장은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누가 보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퀵을 보낸 사람을 추적하려 했으나 추적은 실패.
그 이후로부턴 로비에선 퀵으로 오는 꽃바구니를 반려시켰는데, 그렇게 배달원이 다시 꽃바구니를 들고나가자
“정말 종잡을 수가 없네요.”
“일반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해주는 거니까요.”
회사 앞에 일방적으로 꽃바구니를 두고 가기 시작했다.
스토커가? 아니, 일반인들이.
연령대도 다양했다. 어린아이부터 시작해서 노년층까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꽃바구니를 두고 가는 사람들.
그들을 붙잡고 물어보자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이거 하나 두고 가기를 돈을 받다니.”
돈을 받고 두고 간다는 것.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근방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을 가야 나오는 곳에서 제의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꽃바구니에는 항상 그랬듯 보라색 장미가 담겨 있었다.
보라색 장미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자기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거야 뭐야.’
터무니없는 망상일 뿐이었지만 아마 그 망상 하나로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다른 여타 스토커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려 하는 거 같았고.
‘까다롭네.’
치밀하게 움직이는 스토커에 더 골치 아파지는 쪽은 이쪽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팀장은 볼펜을 책상에 두드리면서 말했다.
“따로 연락 온 건 없다고 했죠?”
“네. 3일째 아무 연락도 안 왔다네요.”
“앞으로 영영 연락이 안 왔으면 좋겠네요.”
“그러길 바라야죠.”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이었지만, 실장의 입에서는 다시 또 한숨이 흘러나왔다.
우연은 다른 통신사에서 새로이 핸드폰 하나를 개통했고, 이사를 간 오피스텔은 보안이 철저한 곳이었다.
층수는 10층, 로비에는 경비원이 24시간 상주하는 오피스텔. 건물에 들어오기 전에는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와야 했다.
전부 스토커 하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이사를 가고, 핸드폰을 바꾸면서 그동안 겪었던 큰일들의 해결책이 되는듯 싶었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신고를 해도, 경찰에선 직접적인 상해를 입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 끝이 난 게 아님을 알려주는 꽃바구니와, 스토커가 SNS에 계속해서 업로드하는 우연의 사진들.
‘차라리 티라도 내면 몰라.’
갑작스럽게 생긴 스토커였지만 당사자인 우연은 이렇다 할 심정이나 불안감을 알려오지 않았다.
다른 남자들처럼 울고, 투정 부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래도 달래주거나 할 터인데 우연은 정반대다.
오히려 참고 있는 게 더 독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지.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항상 차분하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묻는 우연을 볼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원래부터 긍정적인 성격을 가졌더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살이 계속 빠지네요.”
“얼굴살도 같이 빠졌어요. 누가 봐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죠.”
우연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스토커가 활동을 개시한 시점부터 아니 정확하게는 우연의 집에 침입한 흔적이 있고 나서부터.
우연은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슬렌더 모델이라면 당연히 살이 빠지면 빠질수록 좋아해야 하는 게 맞지만.
아직 우연의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그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래도 먹어가면서 생활했었다. 시즌이나 촬영 전에는 더 혹독하게 관리를 해서 문제가 없었고.
그렇지만 지금 같은 경우, 살이 빠지는 과정이 좋지 않다 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본 예진이 우연을 걱정하며 말했지만 우연은 아니라며 곧 있을 촬영 때문에 살을 빼는 거라고 둘러댔고.
우연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는 슬렌더 모델이었으니까.
“내일부터는 쭉 촬영이네요.”
“네. 이사도 끝났고, 아무래도 미뤄둔 스케줄을 해야 하니까요.”
“하아. 정신없다 그쵸?”
내년부터는 우연의 해외 활동이 예정될 수도 있다.
그러니 국내에서 발목 잡히는 일은 최대한 없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우연을 찾는 곳은 아주 많았으니까 말이다.
아직 우연이 어리기도 하니 건강상의 큰 문제는 없겠지만
‘되도록 병원엔 안 갔으면 좋겠네.’
살을 빼는 건 모델의 숙명이다.
한 대 툭 치면 부러질 거 같은 몸을 유지하는 게 이쪽 업계에선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영양실조 혹은 그에 관련해서 병원에 가는 걸 흔히 봐오곤 했다.
그렇지만 우연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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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가 붙었다고 해서 일이 사라지진 않는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스토커는 개인적인 문제였고 공적으로 해야 할 일은 확실하게 해야 하니까.
주거침입 사건 이후로 이사를 가고 하느라 삼일의 휴식시간이 주어졌지만, 사실 딱히 휴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삼일이 지나고 활동을 재개했으며 쉽게 떨어질 거 같진 않았지만
‘역시나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전개였다.
일단 회사에 온다는 꽃바구니부터 시작해서 계정을 몇 개나 만든 것인지 SNS 댓글에도 도배를 했고.
더해서 최근 떠오르는 한 존재가 있었다.
“아, 이거 별로네.”
아웃스타그램에 내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사람.
‘아니 스토커.’
아이돌 같은 경우에는 해당 아이돌의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홈마’라는 개념이 있었지만 나는 모델이었다.
공식적인 행사나 방송이 없는데 그렇다면 무슨 사진을 찍을까.
정답은 내 일상생활이었다.
‘이건 내가 편의점 갔었을 때네.’
이사하고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갔었을 때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말인즉슨 자연스럽게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는 것.
스토커와 동일인물임을 추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닐 수가 없지.”
아웃스타그램에는 내가 이사하기 전에 있었던 곳에서 찍었던 사진들도 몇 있었다.
그리고 이사를 오고 난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이 조금씩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내 전 집주소도 알고, 현 집주소도 안다?
말도 안 됐다.
팬들 사이에서도 맨 처음엔 이런 사진들에 대한 반응이 좋았지만, 사생이 찍은 거 같다는 의심글 하나로 반응이 180도 바뀌었다.
물론 그러면서 스토커가 올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집에는 못 들어와서 다행이네.’
보안이 좋은 곳으로 고르길 잘했다. 아무래도 집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정말이지 최악이었으니까.
다른 핸드폰을 개통하고 나서도 이렇다 할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올라왔네.”
스토커의 SNS를 들어가 보니 오늘 스케줄을 가기 위해 차를 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하루 걸러 올라오긴 했지만 오늘도 근처에 있었다는 말.
나는 사진을 저장하고 캡처했다. 증거는 하나둘씩 천천히 모아지고 있었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은 미뤘다. 신고해봤자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생각이었다.
‘누군지 밝혀내고 확실하게 감방 보내야지.’
변호사를 대동해 하는 고소. 그러기 위해선 많은 증거를 필요로 해 그때까지 감수해야 하겠지만.......
타이밍을 쟀다. 완벽한 타이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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