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chapter 74. 美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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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뼈밖에 없는 거 아니냐 이 정도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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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가 예쁨?? 진짜 뭐가 예쁜지 모르겠어서 그래;; 적당히 살 좀 있어야 괜찮지 저건 뭐......
댓글
: 그냥 얼굴이 캐리하는데?
┖ 얼굴 얘기가 아니잖아; 몸을 보셈;;
┖ 돼지인 거보다는 낫지ㅋㅋㅋㅋ
: 다이어트를 한 건지 모르겠는데 전이 훨씬 낫다
┖ ㅇㅈ 해골 같아
┖ 손목 진짜 힘주면 부러질 듯
┖ 내 팔로 걸어다니네 ㄹㅇㅋㅋ
: 마르니까 볼품없긴 해
┖ 볼품없기는 무슨ㅋㅋㅋㅋ 지금이 제일 예쁘구만
┖ 너 남자야??
┖ 남자면 어쩌려고
┖ 아니 같은 남자가 봐도 저거는 좀 별로지 않나ㅋㅋㅋㅋㅋㅋ
스토커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기 전, 우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광고와 화보 촬영은 그대로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온 사진들을 가지고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커뮤니티, SNS를 타면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마르긴 했지.’
살이 빠진 우연의 몸에 대한 이야기가 반 이상이었다.
에이전시 입장에서야 당연히 소속 모델의 체중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당시 스트레스를 더불어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는 우연에 본의 아니게 몸무게 최저 기록을 찍었다.
그리고 ‘모델’이라는 직업답게 낮아진 체중은 활동에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디자이너들은 살이 빠진 우연을 보면서 반색했다.
‘카메라에 더 잘 나올 거라면서.’
여론과는 상황이 다르게 흘러갔다.
여론의 선호도보다 더 중요한 건 디자이너의 선호도였으니까.
모델이라는 존재는 디자이너가 여는 쇼에 서게 되는, 즉 캐스팅 당하는 입장이었으니 사람들 앞에 서기 전에 먼저 디자이너를 거쳐야 했다.
“해외 진출이 더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살이 빠진 우연은 패션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실장의 눈으로 봤을 때 꽤 괜찮았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기아처럼 마른 수준을 원했지만 모종의 사건이 하나 터진 후부터는 처우가 개선되었고.
해외 톱 명품 브랜드를 비롯해 대다수의 브랜드들이 마른 체형의 모델들을 원한다.
브랜드가 마른 체형의 모델을 원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사이즈와 핏에 있어서 결정되는 게 체형이다 보니 그게 큰 축을 맡겠지만.
시대마다 바뀌는 미의 기준은 주관적인 것이면서 객관적이었다.
‘...... 예쁘네.’
실장은 불과 며칠 전에 우연이 촬영한 룩북 화보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우연은 미의 기준에 부합한 인재.
일 년 동안 해외 활동을 하면서 우연이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이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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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필리아...... 저랑은 이미지가 조금 안 맞네요.”
“최근에 새로운 패션 이미지를 시도한다고 하더라, 소녀다운 스타일에서 남성다움을 추구하는 패션이래.”
“으음.”
유필리아의 전 시즌과 전전 시즌, 룩북 등을 보면서 침음했다.
일단 패션계가 사랑하는 반항아 컨셉.
그리고 레더를 많이 쓰는 것 같았다. 가죽을 좋아하나 보네.
반항아 컨셉이다 보니 모델들의 인상이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센 이미지였고 그런 반항아 컨셉은 내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았다.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왜 제우스 코스메틱 광고를 보고 제안을 했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새롭게 시도하는 컨셉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아마 나한테는 확신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고 제안을 넣은 거 같고.
“여태 했었던 제 이미지랑 안 맞는 거니까요 뭐,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봐요.”
“그래?”
“네. 맛있는 걸 못 먹는 건 좀 슬프지만.”
“괜찮아. 나중에 많이 먹으면 되지.”
자기 먹는 거 아니라고 그렇게 싱긋 웃으며 말하는 주성훈 대표를 보고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내 패스트푸드......’
그나마 몇 번 먹을 수 있던 맛있는 음식들도 이제는 먹을 기회조차 사라져버렸다.
유필리아 측에서는 추가적으로 제우스 코스메틱 촬영 당시의 몸매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고.
그 광고를 찍었을 때는 한창 스토커 문제로 골치가 아파서 끼니를 잘 챙겨 먹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 몸을 유지하려고 하면, 아마 다이어트 식단을 유지해야 할 게 분명하겠지.
‘어쩔 수 없네.’
유필리아는 이탈리아에 위치한 브랜드.
다른 명품 브랜드들과 비교한다면 인지도가 당연히 낮았지만 20위권에서 노는, 나름 이름이 알려지긴 한 브랜드였다.
이제 막 데뷔한지 일 년이 된 신인모델에게 수석 디자이너가 컨택한 점에서 내겐 거부권이 없었다.
거부하고 싶지도 않고.
“삼주 동안 매일 먹는 거 전부 찍어서 트레이너한테 보내.”
“...... 네.”
“이번 일 관련해서 유팀장이 맡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궁금한 거 있으면 유팀장한테 물어봐.”
“알겠습니다.”
“항상 이런 쪽에서 관리는 철저했던 거 아니까, 믿을게.”
잔뜩 기대감이 서려 있는 저 눈빛을 외면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델의 수명은 무척 짧다.
20대 중후반에서 톱 모델인가 아닌가로 한 번 갈리고, 많은 모델들이 다른 직업을 모색하게 되니까.
모델이라는 직업은 찰나의 이미지를 파는 만큼 매년 새로운 스타일과 신인들이 데뷔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톱 모델이 된다면 불러주는 곳이 많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마 신인들에게 밀릴 게 뻔했다.
대한민국은 패션 사업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크게 발달하지 않은 나라.
때문에 한국에서는 ‘모델’이라는 직업을 꿈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 모델을 통해 미디어 매체로 진출하려고 발판으로 삼는 이들이 많았다.
따라서 해외 활동은 필수적인 부분.
“영어 선생님이랑은 아마 시간 조율이 필요할 테니까 오늘 중으로 실장이 연락할 거야.”
“네.”
“오케이. 그럼 됐어! 이제 나가 봐!”
“안녕히 계세요.”
장장 두 시간 유필리아와 해외 활동에 대해 대화를 나눴나 보니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빨리 가야지.’
인사를 하고 터덜터덜 나온 대표 사무실을 뒤로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예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가요.”
“수고했어. 대표님 말 많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별 도움 안 되는 이야기가 60%이긴 했지만.
그렇게 나는 3주 동안 유필리아가 있는 이탈리아로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비행기 티켓이나 숙소는 그쪽에서 잡아준다고 하니 직접적으로 내가 해야 할 건 영어를 배우면서 몸 관리를 하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부했었던 것들이 빛을 발했는지 에이전시에서 붙여준 영어 선생은 당장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각국을 대표하는 여러 명품 브랜드들.
그중에서 첫 시작이 이탈리아 브랜드인 유필리아.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압권이긴 했지만 그 뒤를 영국과 미국이 뒤따랐다.
‘일단 예정되어 있는 건 미팅뿐이지만.’
수석 디자이너를 만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약을 따내야지.
“아 현기증.”
덕분에 종종 가벼운 현기증에 시달렸다.
유필리아 브랜드에 대해서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수석 디자이너부터 시작해 소속된 디자이너들의 성향과 제작한 의상에 대해서 찾아봤다.
스케줄에 운동, 공부까지 더해지니 하루하루가 바빴지만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든다니까.’
나름 이 생활이 만족스러워 어김없이 녹초가 된 몸으로 침대에 기절하듯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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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톡ㅡ
송이: 오늘 다섯시 약속인 거 안 잊었지?
: ㅇㅇ 당연.
송이: ㅇㅋ
“우연아 5분 이따 라이브 방송 키면 돼.”
“알겠어요.”
캐톡에 빠르게 답장한 나는 캐톡 알림을 끄고, 라이브 전용 앱으로 들어갔다.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스케줄을 한지도 2주. 이제 일주일 뒤면 이탈리아로 가야 했기에 그전에 송이와 한 번 만나서 밥을 먹기로 했고.
그날이 오늘이었다.
오전에 짧게 촬영을 하고 난 뒤라 남은 일정은 라이브 방송밖에 없었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수제 샐러드를 같이 파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고.
‘진짜 오랜만인데’
아마 그동안 안 한 얘기가 너무 많아 서로 근황만 물어도 얘기할 게 산더미겠지.
오늘 예정된 운동과 수업을 빼고 마련한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들뜨는 기분이었다.
친구라고 할만한 존재도 별로 없고, 송이는 나름 소꿉친구면서 저번에 스토커 일로 연락한 후부터 계속 연락이 이어졌으니까.
그렇게 내가 잡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5분이 지났는지 옆에 있던 예진이 말했다.
“우연아 지금 켜!”
“네.”
송이를 만날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은 라이브 방송을 해야 할 때.
사전에 안내 받았기에 순조롭게 방송을 켠 나는 로딩이 되고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안녕, 다들 어서 와요.”
이게 그 설렌다는 반존대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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