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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는 법-78화 (78/137)

〈 78화 〉 chapter 77. 출국

* * *

대망의 출국 이틀 전,

짐 정리는 이미 마쳐둔 상태였고 마지막 스케줄을 끝낸 뒤 곧장 에이전시로 향했다.

“따로 통역사는 안 데리고 가도 되겠죠?”

“처음엔 유학생인 줄 알았어요. 소통하는 거에 전혀 문제없고 지금은 패션계에서 몇 년 일한 외국인 같다니까요?”

여태까지 나를 가르친 원어민 선생님이 말했다.

극찬을 하는 그녀의 말에 옆에서 예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지만.

실장은 그 말을 듣고 혹시 한 번 더 대화하는 걸 보여줄 수 있냐고 했고, 우리는 흔쾌히 5분가량 프리 토킹을 했다.

“영어 잘하네.”

“감사합니다.”

“이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이만 들어가 봐. 잘 다녀오고”

“네. 잘 다녀올게요.”

비록 이태리어는 할 줄 몰랐지만 세계 공용어 중 대표적인 게 영어다 보니 어딜 가든 영어만 할 줄 알면 그래도 소통은 됐다.

유필리아 측에서도 이태리어를 영어로 통역해주는 통역사가 있다고 하니까.

따로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해줄 이는 필요하지 않았다.

‘언어는 쓰면 쓸수록 익숙해져서.’

일상생활에서 한국어로 대화하다 보니 영어로 대화하는 일이 극히 적었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만을 사용했기에

근 몇 주 사이 영어 실력이 확 늘었다.

때로는 질문을 하거나 상황을 지정해서도 했고.

“괴물 아니야 너?”

“괴물이라뇨. 그저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 재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예진은 역시 세상을 불공평하다며 툴툴거렸지만 그건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못 봐서다.

겉으로 티 내지 않아서 내가 영어를 잘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을 수도.

‘나름 점심시간이나 틈날 때마다 단어도 외우고, 너튜브도 많이 봤는데.’

트렌드에 대한 공부 또한 빼먹지 않고 했다.

자막 없이 이것저것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그래도 귀가 트일 수 있었던 거고.

“내일 봐요.”

“조심히 들어가.”

“옙~”

고작 집이 바로 앞이었지만 워낙 문제가 있었던 걸 알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비밀번호를 쳐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에이전시에서 마지막까지 검토한 모델북을 꺼내 짐가방에 넣은 뒤 나는 씻고 침대에 누웠고.

자고 일어나 출국 전날 하루 동안 주어진 휴식 시간에

“아, 죽었다.”

침대에 뒹굴거리면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SNS를 하고 잠을 자는 등

긴장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하루를 보낸 뒤에야 출국 당일날 눈을 뜰 수 있었다.

“얼굴이 좀 부었네.”

...... 너무 푹 자서 부운 얼굴을 얼음 찜질로 부기를 뺐다.

****

지잉ㅡ 지잉, 지잉 지잉ㅡ

‘무음으로 바꿔놔야지.’

끝없이 울리는 캐톡 세례에 나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두고 화면을 껐다.

“뭐 좀 먹을래?”

“전 됐어요. 누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어요.”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서 그런가.

탑승 수속을 밟고도 꽤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다.

출국 심사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니 음식점을 비롯해서 많은 면세점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러면 나 햄버거만 하나만 먹을게.”

“네, 가요.”

어쩐지 내 눈치를 보면서 말하는 예진이었지만 나는 딱히 입맛이 없어서 뭔가를 먹고 싶지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또 샐러드 먹기 싫다고.’

기왕 지금까지 유지한 거 끝까지 흔들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중에 이탈리아 음식은 먹겠지만.’

그건 모든 일이 끝난 후다. 시간이 남으면 적어도 맛집에 가서 뭐라도 먹지 않을까.

“저 딸기 아이스크림으로 작은 거 하나만 사줘요.”

“알겠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러 가려는 예진에게 넌지시 말하자 예진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카운터로 떠난 예진을 보고 핸드폰을 들어 아까 왔었던 캐톡에 답장을 보내려는데.......

누군가 걸어오더니 내 앞에 섰다.

“저기.”

“...... 네.”

“혹시 우연님 맞으신가요! 사인 하나만 해주시면,”

“누구세요?”

빨리 왔네.

내가 남자를 눈으로 훑었을 찰나에, 주문을 하고 온 예진이 순식간에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 저 그 죄송......”

“사인해드릴게요.”

내 앞을 가로막은 예진 덕분에 남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인 정도야 해줄 수 있었다.

그러자 내 앞에서 약간 물러난 예진에 남자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고.

남자는 허둥지둥 컴퓨터 사인펜과 작은 메모지를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마스크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비니도 쓰고 있었건만 오히려 알아본 게 신기했다.

사인을 빠르게 한 뒤 메모지와 펜을 다시 건네주었고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저 우연님 팬이에요, 진짜 너무 예뻐요 실물이 훨씬 낫네요.”

“아 고마워요.”

와다다다 말하는 게 아무래도 옆에 있는 예진이 신경 쓰였나 보다.

그렇게 남자는 예진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자리를 떠났다.

‘밖에 일행이 서 있는 게 아무래도 우연히 마주쳤나 보네.’

팬이라고 해도 경계심을 지울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때마침 진동벨이 울렸고 햄버거 세트와 아이스크림을 가져온 예진이 내게 아이스크림을 주면서 말했다.

“보디가드를 따로 고용하는 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앞으로 이런 햄버거 가게도 함부로 오면 안 되는 거 아냐?”

“저는 오히려 절 알아본 게 신기한데요.”

모델이라는 직업과 SNS 유명세가 맞물렸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돌이나 연예인급의 인기는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아무튼 간에, 나는 아까 하려다 만 캐톡 답장을 하기 위해 핸드폰 화면을 켰다.

[다윤: 뭐야 왜 벌써 연락이 안 돼 아직 비행기 시간 아니잖아]

[아빠: 아들~ 지금쯤이면 비행기 탔으려나??]

[엄마: 잘 다녀와라.]

[송이: 다치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

각양각색의 메시지들.

나는 전부 답장을 보낸 뒤 도착하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여행에 큰 관심이 없어서 처음으로 나가는 해외다 보니 아버지는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셨지만 사실 그건 가족들 전부일 게 분명했다.

나야 전생에 경험도 있고 그때보다 그래도 언어라는 장벽이 없어져 조금 더 편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걱정하는 것도 이해하지.’

도착하면 도착하는 대로 바로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다.

‘예전에는 첫 해외 활동 때 영어를 못해서 고생했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복잡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웠다.

공항이 다 거기서 거기라 그런지 별반 다른 게 없어 지금은 들뜬 마음이지만.

‘컨디션 좋네.’

전날 푹 쉬어서 그런가 오늘 컨디션이 최고였다.

답장을 끝마친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이스크림 먹기에 집중하려는데.

“천천히 먹어도 돼요.”

“아 내가 원래 좀 빨리 먹어서 그래 괜찮아.”

“그렇게 먹다가 체할 거 같은데.”

문득 앞에 놓인 햄버거 빈 봉지를 발견했다.

‘나랑 같이 밥 먹었을 때는 느리게 먹지 않았나?’

그동안 나와 함께 밥을 먹는 동안 나보다는 빨리 먹었었지만 그래도 저정도 속도는 아니었다. 무슨 햄버거가 5분 만에 게 눈 감추듯이 사라져.

감자튀김을 흡입하는 예진을 보면서 나는 아이스크림을 떴다.

‘일부러 맞춰줬었나 보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자 우리는 쓰레기를 치우고 가게를 나왔고. 면세점을 아주 잠깐 둘러본 뒤

“슬슬 들어가면 되겠네요.”

출발 시간 30분 전, 비행기를 타러 게이트로 향했다.

****

[나 공항 맥날 알반데 이우연 봄]

같이 온 여자는 햄버거 먹는데 이우연은 아이스크림만 먹고 가던데. 걍 가서 나도 사인 하나 해달라고 할 걸 그랬나? 팔렸을 거 같은데

댓글

: 백퍼 팔렸다ㅋㅋㅋㅋ 걔 빠는 애들 한둘이 아님.

┖ 요즘 배우+모델 좋아하는 거 유행이잖아

┖ 그딴 게 유행도 하냐ㅋㅋㅋㅋ

: ㄲㅂ 나였으면 받고 팔았다

┖ 같이 있는 여자 매니저나 가드 아냐? 입구컷 당했을지도

┖ 아님. 어떤 남자가 받고 가는 거 봤음.

┖ 그럼 넌 왜 안 했어 ㅂㅅ아

┖ 난 여자라고 ㅅㅂ

┖ 다른 의미로 입구컷 당할 순 있겠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BEST [우연이 공항에서 만난 썰]

(사진)

사인도 받았음 개쩔지. 덕후는 계를 못탄다는 말 누가 만들었냐 ㄹㅇㅋㅋ

얼굴 눈 빼고 다 가려놨는데 사진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한눈에 알아봤음. 공항에서 만나다니 ㄹㅇ 상상도 못함. 옆에서 친구가 아니면 어쩔거냐고 했었는데 내 용기가 해냈다.

행복하라잖아 나보고~ ㅈㄴ 행복해 지금~

추천 8698개 댓글 5640개

: ? 왜 공항에 있음? 나는 왜 공항에 없냐?

┖ 어디 가는 거야 ㅅㅂ 왜 안 알려줘

┖ 모델은 스케줄 뭐하는지 하나하나 안 알려줌

┖ 패션쇼 빼고

┖ 그래서 어디 가는 거냐고 이것들아.

: 우연이 사인도 있구나?

┖ ㅇㅇ 사진 몇 개 없는데 종종 올라오긴 했었음

┖ 나는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 여기에는 잘 안 올라옴 다른 사이트에 ㅇㅇ

: 설마 다른 나라로 뜨는 건 아니겠지?

┖ ...... 킹능성 있다

┖ 야발 안 돼 못 놔줘 아직 해야 할 활동 많잖아 팬싸라던가.

┖ 모델이 팬싸를 왜 하냐고 ㄹㅇㅋㅋ

┖ 할 수도 있지 ㅅㅂ

┖ 이제 꿈 좀 접어라. 해외 간 거 맞는 거 같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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