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chapter 78. 이탈리아에서
* * *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
“나 이탈리아 땅 처음 밟아봐.”
“저도요.”
“택시 기사님한테 연락해야겠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는 사람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미리 호텔까지 가는 픽업 택시를 예약해두어서 도착하고 한 번, 짐을 찾고 나서 한 번 연락해야 한다고 했고.
‘드디어 도착했네.’
장장 12시간의 비행을 했던 탓에 답답했던 것들이 해소됐다.
아직 비행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역시 인간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니까.’
걷고 있는 게 오히려 더 편했다. 우리는 그렇게 입국 심사를 하러 갔고 다행히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리지 않아 빠르게 끝마칠 수 있었는데
입국 심사가 빨리 끝났다고 짐이 나오지 않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써야 했다.
그리고 짐을 찾자
“5분 정도 걸린다네.”
“그 정도야 뭐.”
픽업 택시에 연락한 예진이 5분 정도 걸린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가는 시간도 있어서 기다리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그렇게 밖으로 나가자 한기가 몸에 스며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택시 기사를 발견해 곧장 다가갔고.
확인을 마친 택시 기사가 캐리어를 들어 뒤에 실어주었다.
‘따뜻하네.’
차 안은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놨는지 들어가자마자 얼었던 몸이 녹아내렸다.
‘이탈리아는 일교차가 커서 밤에 추우니까.’
시차가 있어서 밤에 도착한 우리는 내일 아침까지 호텔에서 쉴 예정이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따뜻해져서 나는 슬슬 눈이 감겨왔고.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데 그런 나를 발견한 건지 예진이 말했다.
“도착하면 깨워줄게. 한 30분은 걸리니까.”
“응...... 이따 깨워줘요.”
30분이나 걸린다고 하니 잠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렇게 눈을 감으며 잠시 예진과 택시 기사가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던 거 같은데. 그 대화를 해석할 여지도 없이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우연아 일어나.”
예진이 깨웠을 때는 이미 호텔에 도착하고 난 뒤였고.
부스스하게 잠에서 깨어나 예진을 따라 차 밖으로 나가는데
‘잠 확 깨게 만드네.’
몸을 강타한 찬 공기 덕분에 잠이 확 깰 수밖에 없었다.
손수 캐리어를 꺼내준 택시 기사에게 우리는 감사 인사를 전했고, 계산은 예진이 미리 했는지 곧장 캐리어를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 이탈리아로 가는 필수 지출 경비는 전부 유필리아 측에서 지원해줬으니까.
“I'd like to check in, please.”
(체크인 하려고요.)
예진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 호텔 내부를 둘러보는 정도?
체크인을 끝낸 예진이 내게 카드키 한 장을 내밀었다.
‘...... 영어 잘하는 게 정말 의외란 말이지.’
내가 미성년자만 아니었어도 혼자 왔었겠지만, 같이 온 예진의 영어 실력은 예상 수준 밖이어서 꽤나 편했다.
“아침에 연락해요. 같이 조식 먹으러 가게.”
“어. 들어가서 푹 쉬어.”
택시에서 30분을 자서 그런가,
공항에서는 몰랐는데 어째 나보다 예진이 더 피곤해 보였다. 방이 바로 옆방이어서 우리는 문 앞에서 헤어졌고.
“오.”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작게 감탄했다.
‘향기가 좋네.’
일반 싱글룸이라 공간이 딱히 넓진 않았지만 충분히 만족했다. 애초에 호텔에서 묵는 것 자체가 좋았기도 했고.
나는 캐리어를 한쪽에 둔 뒤 열어서 옷가지들과 세면도구들을 꺼냈다.
‘내일 입을 옷도 미리 꺼내놔야지.’
씻고 나서는 정신이 더 또렷해진 덕분에 창밖으로 보이는 이탈리아의 밤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다 조금 늦게 잠들어버렸지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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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so beautiful.”
“Thank you.”
아, 그냥 같이 내려올 걸 그랬나.
이어지는 이탈리아 여자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쿨하게 알겠다며 자리를 떴지만 이것도 두 번째.
예진이 늦게 일어난 탓에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해서 샐러드라도 먹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혼자 와서 그런지 그 잠깐 사이 두 명의 이탈리아 여자들이 다가왔다.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건만 찾아오는 서비스인 건지.
외모에 대한 감탄과 함께 여행을 온 거냐, 혹시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냐라는 물음에 나는 답변을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과와 샐러드를 담아서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고.
[매니저: 지금 내려가!!]
앉아서 핸드폰을 꺼내니 예진으로부터 캐톡 하나가 와 있었다. 아까 왔었네.
답장을 하려고 캐톡을 누르려던 순간.
“늦어서 미안, 알람을 하나만 맞춰둬서 그냥 잤나 봐.”
“피곤하면 그럴 수 있죠. 고작 10분 지났는데.”
“별일 없었고?”
“별일...... 은 있었다고 해야 되나. 여기 여자들이 꽤 적극적이더라고요.”
내 앞자리에 예진이 의자를 빼고 앉았다.
간단하게 안부 형식으로 물어본 것 같은데, 별일이 없다고 하기에는 별일이 있긴 있었지.
“뭐? 무슨 일? 혹시 간밤에......”
“그런 건 아니고요. 방금 있었던 일인데 그렇게 큰일은 아니니까 일단 음식 먼저 가지고 오세요.”
나는 태연하게 양배추를 포크로 찍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시간을 확인한 예진이 빨리 가져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방울토마토를 입안에 넣자 터지는 상큼함에 나는 포크질을 계속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여자 두 명한테 헌팅 당했다고 보면 돼요. 물론 전부 거절했지만.”
신체적인 접촉 같은 건 없었고 대충 아름답다느니 그런 칭찬을 하면서 말로만 그랬다고 덧붙였다.
‘표정이 안 좋은데.’
말하고 나서 괜히 말했나 싶을 정도로 예진의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 못 할 건 아니었다.
나는 지나간 일이니 앞으로 더 조심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고.
“기껏 가져왔는데 먹어요.”
“어, 어.”
손도 안 댄 예진의 접시를 보면서 주스를 들이켰다.
예진이 들고 온 접시에는 샐러드와 과일만 있는 내 접시와는 달리 꽤 다양한 것들이 담겨 있었으니까.
‘맛있겠네.’
자연스럽게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입을 먹은 예진이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안 되겠다. 내가 너 꼭 지켜줄게.”
“지켜주긴 뭘 지켜줘요.”
“여자는 다 늑대야, 알지? 타국이라도 예외는 없다. 이탈리아 여자 위험해.”
나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네~ 그러면 잘 좀 지켜주세요.”
“맡겨만 둬.”
“늦잠 자지나 말고요.”
“아 그건.”
그리고 이어지는 변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식사를 끝마쳤다. 비록 늦게 왔지만 예진의 먹는 속도가 빨라서 뭐.
다시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한 시간 뒤에 보자며 문 앞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방에 들어온 나는
“어디 한번 준비해볼까.”
이탈리아에 위치한 브랜드, 유필리아의 본사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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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첫 해외 활동이 이탈리아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기본적으로 유럽은 한국에서의 패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모델들이 더 안달 나서 직접 발로 뛰기도 하는 곳이었으니까.
상대적으로 외국 모델들을 필요로 해 쉽게 계약할 수 있는 동남아 쪽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기본적으로 유럽은 전 세계적으로 패션으로 가장 유명한 중심지.
파리는 가냘픈 이미지를, 밀라노는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선호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 위치한 유필리아가 그동안 반항아 컨셉을 추구한 것도 이해가 갔다.
수많은 브랜드가 창립되는 곳에서 이탈리아 브랜드 평판 20위권에 위치한 유필리아.
완전 메이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름이 없지도 않은.
그런 ‘유필리아’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 많았다.
이를테면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브랜드라는 점이라던가, 베르사체의 디자이너가 베르사체를 나와 유필리아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다던가 하는 것들.
실제로 패션계는 굉장히 폐쇄적이기 때문에 한 디자이너가 여러 브랜드를 이적해 다니는 것도 흔했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의 값도 값이지만 오히려 디자이너의 이름이 유명한 경우도 더러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알고 보니 유필리아는 그 브랜드보다 디자이너가 더 유명한 축이었다.
사실 나는 따지고 보면 ‘소년’이라는 트렌드에 더 적합한 이미지에 유필리아가 원하는 이미지야 이미 정해져 있겠지만.
‘여기까지 온 거 제대로 해야지.’
준비해온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옷들을 입고 그 위에 가죽 자켓을 걸쳤다. 아마 이러고 나가면 얼어 죽을 텐데.
어쩌겠나, 이게 패션인데.
걸친 가죽 자켓은 유필리아 브랜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걸 입고 가면 내 이미지를 반감시키거나 비교 당하겠지.
굳이 유필리아 것을 입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겉옷은 벗게 되겠지만 그래도 첫인상이라는 게 있으니.
“아마 나를 보자마자 내가 착용한 모든 것들을 알아보지 않을까.”
눈으로 한 번 훑고 순식간에 모든 것들을 파악해낼 수도 있었다.
하여 손에 끼는 반지는 유필리아 브랜드의 것으로 착용했다. 분명 알아보겠지.
그렇게 마지막으로 선크림을 바르며 한 번 더 얼굴과 머리를 점검한 뒤 준비를 마쳤다.
모델 북까지 잊지 않고 챙겨 든 나는 핸드폰을 들었고
“준비 다 했어요. 가죠.”
해외 활동의 첫 단추를 끼기 위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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