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chapter 81. 여행
* * *
“가는 곳마다 무슨 한 폭의 그림 같네요.”
“저기 배경으로 사진 찍어줄 테니까 한 번 가서 서 봐.”
“알겠어요.”
사진으로라도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싫은 내색 하나 보이지 않고 선뜻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예진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니 뒤를 배경으로 하고 찍으면 확실히 꽤 잘 나올 것 같았고, 주위에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아 나는 빨리 가서 자리를 잡았다.
“찍을게!”
사람들이 지나가길 잠시 기다렸다가, 찍는다는 말에 나는 포즈와 표정을 재빠르게 바꾸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정리도 해야 될 텐데.’
마지막 날이라 유독 사진을 많이 찍어서 아마 예진의 핸드폰 갤러리는 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는 예진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잘 나왔어요?”
“어 완전 개잘나왔어. 인생샷이야 이거.”
“누나는 계속 인생샷이라고만 해서 못 믿어요.”
“아니......”
뭔가 할 말이 많다는 얼굴로 날 쳐다봤지만 그 얼굴을 무시한 나는 예진의 핸드폰을 들고 찍힌 사진을 한 장씩 넘겨봤다.
‘이건 잘 나왔네.’
근데 이거는 별로니까 삭제하고.
별로인 사진을 삭제하자 옆에서 불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삭제하지 말라니까.”
“못 나온 건 삭제해야 돼요. 사진이 이렇게 많은데.”
“그래도......”
어딘지 미련이 남은 듯한 말투였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대충 별로인 것들만 지웠다.
찰나의 순간에 얼마나 사진을 찍은 건지 몇 장이 아니라 몇십 장씩 찍혀있어서.
‘얼마나 누른 거야.’
그 와중에 찍힌 사진들은 전부 다 잘 나왔다. 앉아서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폼부터 예사롭지 않았지만 역시.
“누나도 찍어줄까요?”
“아니 나는 됐어. 이제 가자.”
그러면서 내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할 때마다 한사코 거절했다.
자기는 찍는 걸 좋아하지 찍히는 걸 별로라나.
“뭐야, 너 사진 찍었지.”
“이거 잘 나왔네요.”
하지만 거절한다고 해도 안 찍을 내가 아니지.
처음엔 질색하는 표정을 짓다가도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면 그래도 슬쩍 봤다. 그리고 삭제하라거나 화를 낸 적은 없었으니까.
‘너무 찍어주기만 하면 미안하잖아.’
그래도 얼굴이 안 나오는 각도로 해서 찍은 사진이 많았다. 원래 이런 곳에 와서 남는 건 사 뿐이기도 하고.
‘나중에 보내줘야지.’
흔들린 사진 몇 장을 지우고 예진을 바라보니 그런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곧바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저녁 먹으러 가자.”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빨리 가요.”
눈이 즐겁다는 게 이런 건지,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하지만 예진은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미리 찾아뒀던 음식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꽤 빨랐다.
‘배고프면 말하지.’
해가 일찍 져서 돌아다니느라 늦은 저녁 식사였다.
그렇게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니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런가 자리가 몇 개 남아 있었고.
우리는 그중 한 곳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일단 피자는 이거 먹기로 했었고,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거 딱 하나만 말해봐요.”
그러자 메뉴판을 보고 있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되는 게 느껴졌다.
‘술?’
척 봐도 음식이 적혀 있는 페이지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술이 먹고 싶은 듯한데.
근 이틀간 맛집이란 맛집을 다 돌아다니면서 술은 단 한 번도 마신 적이 없었다. 나야 당연히 미성년자라서 못 마시고.
그러다 보니 예진이 마실 거라는 생각은 보질 않았다.
만약 술에 취한다면 감당하기 힘들 테지만......
‘충분히 이해하지.’
이런 곳에서 술 한 잔 마시는 게 나름 소소한 행복이다.
마지막 식사이기도 하고, 어차피 숙소로 바로 갈 거니까.
나름 합리화한 나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예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진지하게 주량이 어떻게 돼요.”
“어?”
“술 쎄면 맥주 하나 정도는 괜찮으니까요. 감당 못하니까 취하면 절대 안 되고.”
“나 소주 3병은 거뜬히 먹어. 맥주는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도 순식간에 진지한 얼굴로 빠르게 대답했다.
‘어지간히 마시고 싶었나 보네.’
오늘 하루 중에서 가장 들뜬 표정을 짓고 있는 예진을 보면서 나는 작게 웃었다.
“시켜요. 대신 메뉴는 제가 골라도 되죠?”
“응!”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메뉴판과 핸드폰을 연신 번갈아 보면서 예진은 맥주 하나를 골랐다.
예진은 모든 잘 먹는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군말 없이 잘 먹었고, 그 탓에 항상 메뉴를 정하는 건 내 몫이었다.
‘위장이 작은 게 아쉽긴 하지만.’
평소 음식을 많이 안 먹는 탓에 음식을 시켜도 나는 먹다가 금방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예진이 잘 먹어서 많이 남기지는 않아 다행이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우리는 오늘 찍은 사진들을 주고받았다.
사진을 전부 저장한 나는 와 있는 캐톡에 답장을 했고 그러다 음식이 나오자
“...... 진짜 맛있겠다.”
“이번에도 실패 안 했네요.”
끝내주는 비주얼에 사진을 찍으면서도 입에 자동으로 침이 고였다.
‘...... 체중계가 두렵네.’
과식은 하지 않았지만, 칼로리 높은 것들만 먹어서 양심에 찔리긴 했다.
그만큼 걷기도 많이 걸었으니 아마 그만큼 운동이 되지 않았을까.
주로 명소들을 들리느라 도보로 이동하고 구경한 탓에 돈이 따로 크게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먹는데 투자를 많이 해서......
마시는 것부터 시작해 자잘한 길거리 음식, 맛집 등 나름 알차게 먹은 것 같았다.
혹시 몰라 에이전시에서도 돈을 넉넉하게 준 탓에 교통비나 식비가 따로 부족하지는 않았고.
본의 아니게 이틀이라는 시간이 비어 돈이 모자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따로 환전해 온 게 있어서 부족하진 않았다.
“다 먹었으면 이제 갈까요?”
“그러자 으, 오늘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가 피곤하네.”
“저도요.”
마지막 저녁 식사를 끝낸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가서 눕고 싶네’
확실히 아침부터 나와서 돌아다녀서 그런가 몸이 피곤했다.
그렇게 우리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택시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이 모조리 삭제된 게 아무래도
“...... 저 또 잤나 보네요.”
“어. 내려”
지나치게 멀쩡한 예진을 보면서 그녀에게 취하지 않았냐고 물었던 게 무안했다. 누가 보면 내가 술 마신 줄 알겠네.
나는 차만 탔다 하면 잠에 드는 것 같은데,
앞으론 주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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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누나: 피곤해서 나 먼저 잘게.]
“방금 왔었네.”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온 나는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예진에게서 온 캐톡이 제일 먼저 보였고, 그 뒤로는 다윤에게서 온 캐톡이 있었다.
둘 다 가볍게 답장을 한 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대충 털면서 침대 위로 올라갔고.
“...... 여기가 천국인가.”
몸을 잠깐 눕자 푹신한 침대가 나를 감싸 안는 게, 마치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덫에 걸린 것만 같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멀쩡하다는 게 이런 건가.’
아까 택시에서 조금 졸았더니 잠기운이 가신 것 같았다. 방금 씻고 나오기도 했고.
‘사진이나 올려야지.’
몸을 편하게 옆으로 누운 나는 핸드폰을 들어 이제는 거의 일상이라고 봐도 무방한 SNS에 들어갔다.
온 메시지들 목록들을 한 번 훑고, 댓글들도 몇 개 보고.
몇 안 되는 팔로잉 해둔 사람들이 올린 피드, 작업물들도 봤다.
그리고 새 게시물을 올리기 전, 아까 미처 다 고르지 못했던 사진들을 살펴보며 SNS에 올릴 잘 나온 사진들을 선발했고,
‘졸리네.’
슬슬 감기려고 하는 눈꺼풀에 힘을 줬다.
“이건 스페인 계단에서 찍었고, 이거는 트레비 분수에서 찍었고......”
사진 찍은 걸 보니 오늘 하루 동안 간 곳도 꽤 많았다.
개인적으로 유명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골목길을 걸어본 게 가장 기억에 남았고,
콘도띠 명품 거리에서 생긴 해프닝도...... 기억에 남았다.
명품 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어마무시한 차들도 나름 장관이라고 하면 장관이라고 할 수 있겠지. 진짜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다 했다. 이제 올려야지.”
사진 고르는 작업이 끝나면 내용을 적는 건 쉬웠다.
술술 나오는 게, 졸려서 정신이 조금 몽롱하긴 하지만.
페룩과 아웃스타그램에 똑같은 게시물을 올린 나는 새로 고침을 한 번 하면서 달리는 댓글들을 몇 개 봤다.
“이제 진짜 자야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결국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불을 껐다.
내일이면 비행기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게만 느껴졌지만.
이틀만큼은 잡생각도,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고 즐겁게 보냈었다. 몰랐었지만.....
‘나 여행 좋아했네.’
전생에는 여행을 가볼 기회가 거의 없었었는데, 짧은 시간임에도 여행이 얼마나 재밌는지 깨닫게 되었다.
...... 앞으로도 많이 다녀야지.
‘다음엔 누구랑 올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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