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83화 (83/137)

〈 83화 〉 chapter 82. 나만 가만히 있으면 돼

* * *

우연과 함께 이탈리아행이 결정되자, 예진은 처음부터 부푼 기대를 안고 한국을 떠났다.

‘단둘이 여행이라니.’

따져보자면 여행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래도 기분이라도 내는 게 어딘가.

그리고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일도 아주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일단 이탈리아에 간 이유였던 유필리아 미팅은 하루 만에 일이 끝났고.

수석 디자이너와 캐스팅 디렉터는 우연에게 호의를 듬뿍 보였다고 하니 말 다 한 거였다.

그렇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틀간 우연과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괜히 자기 전에도 인터넷을 뒤적이며 괜찮은 곳이 있나 찾아보기 일쑤였다.

미래에 애인이랑 오면 이렇게나 할까 싶을 정도로.

분명 신중하게 골라서 샀던 옷들임에도 불구하고 옷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완벽하게 바꿀 순 없어서 그대로 입고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우연은 모델이라는 걸 온몸으로 알리려는지 멀리서만 봐도 피지컬이 대단했고.

“완전 말랐어.”

앞으로 이틀간은 전부 맛집을 돌기로 했으니 적어도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제대로 즐기면서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하자 그 다음날에는 더 본격적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덕분에 우연과 단둘이 여행을 하는 게 되어버려 기분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기분이 나락으로 치닫는 것도 한순간이었는데.

“당신은 굉장히 아름다워요.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정말 아름다워서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행이 있어서요.”

“......”

다섯 번째.

다름 아닌 콘도띠 명품 거리에 들어서서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는 것만으로 우연에게 다가온 이태리 여자들의 횟수였다.

확실히 명품 거리라 그런지 우연에게 시선이 고정되는 사람들이 많았고

옆에 있는 자신은 마치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오로지 우연에게만 말을 거는 게 짜증났다.

‘어딜 넘봐.’

그때마다 욱해서 말이 험하게 나갈 뻔했지만 그래도 우연이 웃으면서 단호하게 거절한 탓에

꾹 참았다.

간혹 몇 마디 더 붙이려는 여자가 있으면 나섰지만 대부분 쫓아오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방금 다섯 번째 여자가 왔을 땐 그냥 인상이 자동으로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입을 열었다면 싸움이 날 수도 있었겠지.

“참 개방적인 나라예요. 작업 멘트도 어디서 배워오는 건가.”

“...... 저렇게 말하는 게 좋아?”

“음, 오글거리기만 한데요. 아무래도 저는 이탈리아 여자랑은 안 맞나 봐요.”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말하는 우연이 느껴졌지만, 이게 우연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방금 말로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지만.

그나마 안 좋았던 기분이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았다.

작업을 걸어오는 여자들이 누가 봐도 잘나 보여서 괜스레 그들과 자신이 비교되는 느낌이랄까.

특히 차 키를 보여주면서 은근슬쩍 차를 과시하는 여자의 차 키를 봤을 때, 단번에 어떤 차종인지 알아본 나는 분하지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다음 장소로 가요.”

“...... 그러자.”

여전히 우연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 와서 우연에게 접근하는 여자들과 수많은 시선들을 생각하면 그에 비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또 명품 거리라는 이명에 걸맞게 이곳 여자들은 우연과 동급에 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니고’

삐뚤어진 마음이 기초가 되다 보니 쉬이 고쳐질 수 없는 노릇.

그렇게 우리는 다음 장소로 향하면서 대화를 나눴고, 막상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자 아이처럼 좋아하는 우연을 보면서 기분이 사르르 풀렸다.

“사진 찍어줄게.”

이제는 익숙해진 카메라 앱을 실행시키면서 우연에게 말했다.

합법적으로 갤러리에 가득 차 있는 우연의 사진은 나중에 N드라이브부터 USB에까지 따로 저장해둘 예정이었고.

‘생각만 해도 배부르네.’

우연이 삭제하는 사진들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뭐 만족했다.

‘몇 장 정도는 팬카페에 올려줘도 되겠지.’

우리는 스페인 계단에서의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나는 주린 배를 붙잡은 채 마지막 저녁 식사를 위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입에 들어가는 게 생기니 한결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재밌었지?”

“엄청요. 아마 이탈리아에 온 걸 절대 잊지 못할걸요.”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나도 좋았어.”

“다음에 올 때는 다른 곳들도 가보고 싶어요.”

“올 기회는 많을 테니까 가면 되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신 맥주가 그렇게 달 수가 없었다.

술에 취하진 않았건만 분위기에 취한다는 게 이런 것인지.

애초에 타국에 와서, 그것도 예쁜 남자와 함께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아마 우연과는 다르게 여러모로 이 여행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거란 걸 예감했다.

‘다음 여행은 같이 가지 못할 거고.’

사실 일 때문에 우연과 동행하게 된 거였으니 그 이상은 없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우연과 자신 사이 그어져 있는 선 하나를 알고 있고,

그것이 절대로 넘지 못할 선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우연의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사실 매니저 실격 아닌가.’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해고돼도 할 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남들이 모르는 이우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탈리아에까지 단둘이 오게 된 지금.

마음 한 켠에 생기는 감정은 쉽게 지워낼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여기서 만족해야지.’

드러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관계를 무너트릴 일은 아마 절대로 안 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그저 좋아하는 모델을 덕질하는 마음으로, 자신만 가만히 있으면 되는 문제였다.

“애인이에요?”

“..... 아뇨.”

택시에 타자 바로 잠들어 버린 우연의 얼굴을 힐끗 보면서 택시 기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택시 기사는 구태여 더 질문을 던지진 않았지만, 이미 머릿속은 복잡한 상태였다.

‘그게 쉽게 되는 일이었으면 했겠지.’

택시가 호텔에 도착하자 우연을 깨운 뒤 우리는 방문 앞에서 헤어졌다.

“...... 그냥 자야겠다.”

밤에는, 특히 이런 곳에서는 이상한 생각이나 감정을 들게 하기 마련이다. 그럴 바에야 빨리 잠에 드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우연에게 캐톡을 보낸 뒤에도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거리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씨.”

그리고 잠을 청하지 못해 3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다음날 퀭한 얼굴로 호텔을 나서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패션계가 워낙 폐쇄적이어서 해당 에이전시가 보도하거나 따로 관계자가 얽혀 있지 않는 이상 발표하기 전까지 모델의 스케줄이나 계약 성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국내가 아니라 국외로 나갈 경우에는 더욱더.

하여 우연의 SNS를 바탕으로 기사들은 우후죽순 글을 뽑아내고 있는 판국이었다.

[세계로 뻗어나가나... 대박 터진 ‘우연’ 탄생 뒷얘기]

[모델 우연, 유럽에서도 빛나는 미모 ‘시선집중’]

[주목받는 신인 모델, 해외 활동 강행하나?]

우연이 SNS에 이탈리아에서 찍은 사진들을 게시하자 그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것부터 시작해 외모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말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

.

.

.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모델?]

좀 힘들지 ㅇㅇ. 가수들 해외 도는 이유가 뭔데? 노는 물이 달라서잖아. 특히 모델은 판 자체가 해외랑 비교불가임.

떡잎이 좋으니까 걍 해외 나가서 활동하려나 보지 뭐.

댓글

: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으로는 이해 못하는 거 뭔지 알아?

┖ 몰라 ㅅㅂ 그냥 그러려니 해.

┖ ㅋㅋㅋㅋㅋ 이거 완전 내 상태잖아?

: 한국에서도 활동하면서 해외 활동도 같이 할 수 있잖아......

┖ 모델은 패션쇼 시즌이 정해져 있어서 불가능임.

┖ 국내 or 해외 고르라면 무조건 해외지ㅋㅋㅋ 탈한국

: 그래도 SNS 인기도 많고 반응 좋은데 해외 활동은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 ㅇㅇ 이거 에이전시에서 강행했다는 말도 있더라.

┖ 그건 억측임. 아웃스타만 봐도 완전 얼굴 폈는데?

BEST [이탈리아 이우연 주의보]

(사진)

(사진)

이거 말고도 사진은 많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이 사진 두 개니 이걸로 갖고 왔다. 다들 신속히 저장하고 핸드폰 배경사진 취향껏 바꿔라.

사진 뒷배경도 진짜 예쁜데 거기에 이우연이 너무 예뻐서 눈 멀어버릴 거 같음.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해외 활동설 도는 거 사실무근이었으면 좋겠다. 팬 사인회 이런 거 안 바랄 테니까 제발 한국에서 활동하게만 해줘......

가뜩이나 덕질하기 힘든데 해외로 보내버리면 ㅅㅂ 그냥 손가락 쪽쪽 빨고 있으라는 거 아니야.

추천 10352개 댓글 8552개

: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 온 세상에 알려지는 기분이 이런 걸까?

┖ 애초에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었음. 아웃스타그램 가봐라.

┖ 거기 댓글 무슨 영어 ㅈㄴ 많던데.

: 모델 출신 아이돌은 어림도 없지? 차라리 아이돌로 전향하자.

┖ 꿈 깨. ㄹㅇ 개 안 어울림.

┖ ㅇㅇ 이우연은 천생 모델이라 안 됨.

: 근데 어쩔 수 없잖아 ㅠㅠ 이미 진행되고 있는 거 아니야?

┖ 확실한 건 아님.

┖ 근데 가도 뭐 그냥 화보집 사고 그러는 거지 달라지는 게 있나.

┖ ㅇㅇ 달라지는 거 딱히 없을 거 같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