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85화 (85/137)

〈 85화 〉 chapter 84. 자의식 과잉일 수도

* * *

오늘은 쉬는 날이었지만 일어나서부터 할 게 없는 것이, 밖을 나가고 싶은 날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갔겠지만 그것도 계속 집에 있다 보니 유별나게 나가고 싶어졌달까.

결국 나는 혼자서 오후 2시에 마스크를 쓴 채로 밖으로 나갔다.

어딜 갈지는 꽤 고민했지만오랜만에 서점에 들러서 책 하나 사고 싶어 시내 쪽에 있는 큰 서점으로 향했다.

그렇게 코너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 한 명과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고.

“그으, 혹시 이우연 맞나요?”

“... 아 네 맞습니다.”

“헉, 내 말이 맞잖...... 아 정말 팬이에요! 사인 하나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해드릴게요.”

여자의 옆에 서 있었던 또 다른 여자가 허겁지겁 가방에서 볼펜과 메모지를 꺼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주위를 한 번 둘러봤고, 다행히도 평일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스크 썼는데도 알아보네.’

이름을 물어보고, 빠르게 사인을 해서 건네주니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한 둘은 슬금슬금 내게서 멀어졌다.

사실 마스크를 쓰면서도 이런 걸 써야 하나 고민하긴 했었지만.

SNS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알고 있기에 조용히 외출할 생각으로 쓴 거였다.

조금 더 구경할까 하다가 그냥 사려고 했던 책 하나만 사서 나가자는 생각으로 책 한 권을 골라 계산대로 향했고.

“15800원입니다.”

“여기요.”

왠지 모르게 점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서점을 나오자 또 갈 곳을 잃었다. 아무 계획 없이 나와서 그런가 발길이 가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몇몇 사람들이 보였고.

시간대가 학생들은 전부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시간이라서 그런지 교복을 입은 이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학생일 텐데.’

땡땡이를 친 건 아니었지만 마치 땡땡이를 치는 것 같았다.

나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고, 그러다가 누군가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는지

“혹시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죄송합니다.”

번호를 따는 사람이 한 명 있었지만 이제는 몸에 밴 것인지 자연스럽게 거절이 흘러나왔다.

‘이탈리아 갔을 때가 생각나네.’

거기 여자들은 전부 하나같이 작업 멘트를 치면서 다가왔는데, 한국에서는 기승전 전화번호였다. 뭐 둘 다 거기서 거기라 상관없지만.

처음에는 번호를 따이는 게 생소했는데 이제는 익숙했다.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걸.’

나는 뭔가 좀 귀여운 스타일을 원하는데, 다가오는 여자들은 전부 3대 몇은 칠 거 같은 여자들이었다.

“나중에 연애하겠지......”

원래 연애는 자만추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언젠가 내 눈앞에 누군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었고.

‘워커홀릭이라.’

일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이쪽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왜인지는 모르게 커가면서 여자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는 그렇게 시내를 거쳐서 멀리서부터 보였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옷이나 좀 봐야지.’

최근 들어 쇼핑을 한 적이 없어서 괜찮은 옷이 있으면 살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눈빛이 많이 따갑네.’

시내에 있었을 때는 크게 못 느꼈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여기가 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안에까지 들어가서 보고 싶은 곳이 없어서, 대충 눈으로만 구경했고.

몇 층 더 올라가니 명품 매장들이 있는 곳이었다.

“오......”

‘그래도 여기는 눈길이 가는 곳이 있네.’

자연스럽게 걸음이 이끄는 대로 향한 나는 그대로 버버리 매장에 들어갔다.

‘이 자켓 괜찮네.’

눈대중으로 훑으면서 꽤 괜찮은 아우터를 발견해 보고 있었고.

매장 안에 손님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곧장 내 옆으로 남자 직원 한 명이 붙어 있었다.

“보시고 있는 자켓은 재작년에 출시돼서 지금까지도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옷이에요 여기 보시면......”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한 귀로 듣고, 적당히 흘리면서 대답했다.

대충 재고가 별로 없고, 내게 정말 잘 어울릴 거 같다는 말들.

나는 행거에 시선이 고정된 채로 걸려 있는 옷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그러면서 직원은 내가 뒤적인 행거에서 몇 개를 추천해줬고.

“한 번 입어보시겠어요?”

“아 네.”

내 손이 멈춘 옷을 캐치한 직원이 넌지시 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켓을 꺼내더니 내게 입혀줬고 거울을 보니

‘괜찮네.’

거울에 비친 자켓이 꽤 마음에 드는 게, 옷장에도 비슷한 옷은 없는 것 같았다. 버버리 옷은 몇 벌 없기도 하고.

가격표를 포자 살짝 고민되긴 했지만, 역시 명품들은 사기 전에 한 번씩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택은 항상 또 똑같지.

“이거 하나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한번 마음에 든 건 꼭 사야 한다.

‘그래도 이 정도는 뭐.’

통장 잔고를 생각해 봤을 때, 사도 괜찮은 정도였다.

“혹시 손님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너무 예쁘셔서, 옷도 잘 어울리시고 연예인 하셔도 될 거 같은데.?”

“아...... 아니에요. 직업은 모델인데 아직 신인 모델이에요.”

립 서비스인지 여전히 웃으면서 친절하게 말하는 직원이 과장되게 리액션 했다.

“와아, 어쩐지 피지컬이 남다르셔서 모델일 것 같았는데 직업도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모든 스타일을 다 소화하실 수 있겠어요.”

포장을 마친 직원이 결제는 어떻게 하겠냐는 말에 나는 카드를 꺼내 건넸다. 일시불로 결제하자 직원은 내게 카드와 함께 쇼핑백을 건네주었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모델을 잘 몰라서...”

“이우연이에요. 그럼 이만 수고하세요.”

“우연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렇게 매장을 나오자 출출해져서, 백화점 안에 있는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이제 집으로 가야지.’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돌아다니니 이제는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밖을 나오니 학교가 끝났는지 교복을 입은 이들이 꽤 보이기 시작했고.

“혹시 우연 아니에요?”

“저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나는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학생들에게 붙잡혀 사진과 사인을 해줘야 했다.

‘......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나?’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겠지만, 자꾸만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는 것 같았다.

****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씻고 침대에 누웠다.

‘배도 안 고프고.’

할 것도 없었다. 사 온 책을 읽을까 싶었지만 또 그러고 싶지는 않았고.

불현듯 오랜만에 라이브 방송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팬이라는 건 여전히 묘하지만.’

오늘 유독 팬으로 보이는 이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가, 라이브 방송으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키고 싶으면 켜야지 뭐.”

딱히 해야 할 것도 없는데.

나는 거울을 보고 대충 몰골을 정리한 뒤 카메라로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했다. 머리를 빗으니 차분해진 게 나쁘지 않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뭐.’

라이브 방송을 한다고 화장을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니 내추럴한 모습으로 밀고 나갈 생각이었다.

짧게 방송을 할 준비를 마친 나는 곧장 아웃스타그램에 들어가 라이브 방송을 터치했는데.

“안녕하세요. 다들 잘 들리세요?”

ㅁㅊ 이게 얼마만이야.

예고도 없이 이렇게 라방 켜주시면......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빠!!!!

완전 오랜만이다 우연이 ㅠㅠㅠㅠ

라이브 방송이 시작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3000명을 넘어가는 걸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나는 올라오는 채팅을 읽었다.

“아, 다음에는 꼭 예고하고 킬게요. 오늘은 그냥 갑자기 충동적으로 켜보고 싶어서 켜본 거라.”

우연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냥 이렇게 막 키는 것도 좋아ㅋㅋㅋㅋ

생얼임? 화장 안 한 거 같은데.

You're so beautiful. I love you 하트하트

“화장은 귀찮아서 안 했어요. 아, 오늘 저 밖에 나갔었는데 마스크 써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놀랐어요.”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할 거 같은데.

어디 갔었어요???!

아 나도 보고 싶다 ㅠㅠㅠㅠㅠㅠ

모텔이나 갔겠지ㅋㅋㅋㅋ

이상한 말을 하거나 어그로를 끄는 사람은 보일 때마다 차단했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했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핸드폰 카메라에 대고 댓글을 읽으면서 말하는 게 익숙해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조곤조곤 말하며 소통하는 게 자리 잡아버렸다.

‘전생에도 이런 경험은 없었는데.’

그렇게 원래는 1시간 정도만 할 생각이었던 라이브 방송이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하다가 어느새 2시간을 살짝 넘어버렸고.

시간을 확인한 나는 방종 각을 잡았다.

“다들 이제 자셔야죠.”

지금 안 자요

벌써??? 되게 일찍 자네

우연이 아직 키커야 돼서 일찍 잠.

조금만 더 해요ㅠㅠㅠㅠ

“안 돼요. 이제 더 할 얘기도 다 떨어졌으니까 오늘은 다들 일찍 씻고 자요.”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잘 자라는 채팅과 가지 말라는 채팅이 섞여서 올라왔다.

한 10분 정도를 인사하고, 장난치면서 놀았을까 이제는 정말 라이브를 종료해야겠다 싶어서 종료했다.

“후아......”

순식간에 고요한 집안이 훅하고 다가와, 나는 너튜브로 노래를 틀어놓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애정이라는 게 이런 건가.’

팬들의 애정은 항상 일방적으로 받았는데, 그 느낌이 언제나 익숙하지 않았지만

덕분에 오늘은 왠지 좋은 꿈을 꿀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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