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chapter 88. 페이스 조절
* * *
“이거 좀 먹어.”
“괜찮아요.”
“너 그러다 진짜 쓰러진다.”
“아직 쓰러질 정도는 아니라서 괜찮아요.”
예진이 한숨을 쉬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주었던 과일 컵을 다시 되돌려주었다.
‘물이나 마셔야지.’
일하는 중이라 그런지 특히나 더 입에 뭐가 안 들어간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공복 상태로 있는 게 집중이 잘 되긴 했다.
그래도 쓰러지면 안 되니까 대신 수분 공급을 자주 해줬고.
원래 같았으면 이미 끝났어야 할 촬영이 제시간에 끝나지 못한 탓에 지친 상태이긴 했다.
이틀 연속으로 스튜디오 촬영인 룩북 촬영에서 스타일리스트도 같고, 포토그래퍼도 똑같았는데
첫째날에 비해 둘째날에 오히려 포토그래퍼는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촬영을 계속해서 다시 하고 있었다.
내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문제인듯한 모양새였고, 모델만큼이나 포토그래퍼도 중요했기에 맞춰나갈 수밖에 없었다.
“후우, 다시 촬영 들어가자고 하시네요.”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입술 지워진 것만 덧바를게요.”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어떤 한 스탭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었던 라이가 와서 입술을 다시 칠해줬고.
확실히 앉아 있었던 몸을 일으키자 몸이 무거운 게 느껴졌다.
‘무게로 치면 가벼워야 할 텐데’
피곤이 누적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나는 걸음을 옮겨 다시 조명 아래에 서면서 되도록 포토그래퍼가 빨리 감을 잡길 기원했다.
하지만 이런 내 바람과는 무색하게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포즈는 아까랑 똑같은 걸로.”
같은 포즈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 달라는 요구와
“지금 여기서 앞으로 쏠리듯이 몸을 당겨줘요.”
가뜩이나 힘든데 더 힘들게 만드는 요구사항.
그렇지만 나는 그 요구들을 전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명의 열기와 과도한 집중으로 힘이 모자랄 때쯤 한 번 더 쉬었다가 다시 촬영에 들어갔고, 그제서야 모든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촬영을 몇 시간이나 한 거야.’
옷을 갈아입기 위해 메이크업을 받았던 곳으로 향하는데, 퇴근 준비를 끝낸 라이가 나를 보더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웃스타그램 팔로우 해놨어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우연은 정말 멋진 모델이네요.”
“저도 이틀 동안 왜 라이가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인지 알 수 있었어요.”
“으엑,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나중에 또 봐요 귀여운 소년!”
귀여운 소년 아니라니까 그러네.
내 나이를 듣고도 그것보다 더 어려 보인다고 말했던 라이였다. 그리고는 대뜸 ‘귀여운 소년’이라는 별명을 지었고.
그는 내가 대답할 틈도 안주고 손을 흔들며 가버린 바람에 작별 인사를 한 뒤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촬영장으로 가니 유필리아에서 온 디자이너와 관계자, 포토그래퍼와 예진을 비롯한 몇몇 이들이 모니터 화면 앞에 서 있는 게 보였고
그들에게 다가가니 이런 나를 알아챈 듯 포토그패퍼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왔어요?”
“네. A컷은 아까 정했던 대로 가나요?”
“A컷은 그대로 가고 B컷을 이걸로 갈 생각이에요. 물론 확정된 건 아니지만.”
포토그래퍼가 사진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에 나는 그가 가리킨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두 개가 포즈가 달라서 느낌이 다르지만.’
옷을 생각했을 때 전체적으로 가장 나은 A컷은 거의 확정인 것 같고, 그런 A컷을 고려했을 때 바꾼 B컷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유필리아 쪽에서 어련히 잘 골라서 쓰겠지.
마지막으로 사진을 검토하는 일을 마치자 포토그래퍼는 내게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우연은 내가 여태 본 신인 모델들 중에 가장 최고예요. 그걸 내가 더 잘 담아내고 싶어서 욕심을 부린 것 같지만,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따라와준 덕에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네요.”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면서 말했다.
“저야말로 제이미씨 같은 분과 작업할수록 좋았어요. 제 페이스 조절에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포토그래퍼들 중에서는 성격이 안 좋은 이들도 더러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으면 촬영이 더 힘들어졌겠지.’
그렇게 우리는 잠깐 동안 촬영, 앞으로의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덕담까지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마쳤다.
스탭들이 철수를 거의 다 했을 무렵에서야 작별 인사를 해서 인사를 할 스탭들도 별로 없었지만.
예진과 함께 다른 스탭들에게도 인사를 한 뒤 스튜디오장을 벗어나자
‘...... 힘들어.’
몸에 긴장이 확 풀리면서 피곤함이 몰려왔다.
배도 고프고 피곤한 상태. 그런 나를 아는지 내 입에 아까 사 온 음료를 예진이 가져다 대줬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늦게 끝났어도 만족스럽게 촬영이 끝났고, 만난 사람들과도 전부 좋은 관계로 남은 것 같으니 앞으로 어떻게 되든 간에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이제 내일은 대망의 패션쇼 오디션 날인데......
“저 잠깐만 눈 좀 붙일게요.”
“도착하면 깨워줄게. 내 어깨에 기대서 자.”
식욕보다는 수면욕이라고, 아침부터 준비하고 촬영하느라 에너지를 다 소비한 몸은 차라리 수면을 원했다.
오늘만큼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잠드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그렇게 나는 예진의 어깨에 기댄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잠들어버렸다.
****
“괜찮네요.”
사진을 본 마크의 입에서 긍정의 말이 나온 걸 들은 직원은 속으로 안도했다.
이틀 전에 다른 모델이 촬영했던 촬영본을 보고 다시 촬영하라고 갈아엎은 전적이 있었기에.
다른 이도 아니고 1차적으로 마크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무조건 재촬영 일정을 잡아야 했다.
불과 어제 끝난 모델 우연의 룩북 촬영 일부분이었지만, 바로 다음날 전달되면서 마크에게 통과를 받으니 이제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될 예정이었다.
아직 보정도 안 됐고, 포토샵도 되지 않아서 거쳐야 할 게 많은 원본 사진.
이런 걸 볼 때 가장 우선적으로 봐야 하는 건 분위기와 구도였다.
‘잘 소화했네.’
확실히 표현력이 남달라.
그렇게 생각한 마크는 확실히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연의 표현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이어서 그런지 뭔가 더 와닿는 느낌이었고.
‘당장 오늘 스케줄로 잡혀 있는 모델 오디션에 우연도 있었지?’
오늘 스케줄을 잠시 떠올린 마크가 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흐음, 기대되네.”
“네?”
“아냐 됐어. 그만 나가봐.”
나가라고 손짓하자 직원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나갔고, 모니터에는 여전히 우연이 촬영한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A컷, B컷, 그리고 그 외의 사진들.
여러 장의 사진을 빠르게 넘겼지만 각각의 사진들의 구도와 분위기, 옷과 모델의 연기력을 고려해봤을 때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것 같았다.
‘오늘 그때 그 워킹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진으로 봤을 때는 합격.
“이따 오디션 보는 모델들 리스트 좀 갖고 와봐.”
“알겠습니다!”
마크의 옆에 있던 비서가 나가자 우연의 사진이 띄워져 있는 창을 내리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한 주가 지날 때마다 예민해지는 시한폭탄이었다.
****
[근데 원래 모델들은]
원래 이렇게 무슨 활동하는지 다 안 알려줌? 저번에 뭐 유필리아 브랜드 모델로 발탁됐다고 하는 건 봤었는데, 그러고 끝이네...... 이탈리아에서 두 달이나 있는다는데 뭐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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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은 촬영이라고 치고 다른 한 달은 뭐할까.
┖ 남은 한 달도 촬영하는 거 아님?
┖ 뭔 놈의 촬영을 두 달 동안 함?
┖ 그래도 아웃스타는 꼬박꼬박 올라오잖아 ㅇㅇ 그걸로 근황 확인 ㄱ
: 난 아직 놓아줄 준비가 안 됐는데 왜 해외로 뻗어나가냐고......
┖ ㄹㅇㅋㅋ 아직 꿀 덜 빨았다 이 말이야
┖ 한 게 없는데 시간 순삭임ㅋㅋ 이래서 해외 활동 별론데
┖ 앞으로도 해외 활동할 거 같음 ㅇㅇ....
: 한국특, 인재가 있으면 외국으로 떠남.
┖ ㄹㅇ 이우연 처음 봤을 때가 아직도 안 잊혀지는데.
┖ 우연이는 얼굴이 인재임ㅋㅋㅋㅋ 그래서 떠남 ㅅㅂ
┖ 아이돌이나 배우가 아니라 모델이라 더 그런 거 같음.
BEST [새로 올라오는 것도 없으니 추억 팔이나 하자]
(사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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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사진이라 희귀성은 없지만 오랜만에 풋풋한 옛날 사진들 가져와 봤다. 아웃스타그램에 올라와 있는 사진들이랑은 완전 다른 듯 ㅋㅋ 나이가 확 체감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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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성장기라는 게 관건임.
┖ 라이브 하는 거 들어보면 목소리도 ㄱㅊ던데
┖ 확실히 어렸을 때 얼굴이 그대로이긴 함.
┖ ㄴㄴ 좀 달라지지 않음? 그대로는 아닌 듯.
: 교복 사진ㅋㅋㅋㅋㅋㅋ 왜 이렇게 애 같아 보이냐.
┖ 정보: 진짜 애다.
┖ 원래라면 지금도 교복 입고 있어야 할 나이임.
┖ 지금은 확실히 키가 커서 핏도 다르지 ㅇㅇ
: 국내 활동했었을 때는 ㄹㅇ SNS에 하는 거 다 떴었는데 이제는 안 뜸.
┖ 어쩔 수 없지.
┖ 이번에 이탈리아에서 찍은 거 나오면 또 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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