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91화 (91/137)

〈 91화 〉 chapter 90. 포토그래퍼 레나 (1)

* * *

“첫 시작이 밀라노 패션위크라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주성훈 대표는 실소를 터트리면서 리디아 에이전시 측에서 온 계약서를 보았다.

패션쇼 오디션을 따로 보고, 또 합격해서 유필리아 측에서 보낸 새로운 계약서.

S/S 밀라노 패션위크 패션쇼.

‘원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가공되기도 전에, 아니 가공할 틈도 주지 않고 자기 스스로 빛나는 보석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유필리아는 크게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밀라노 패션위크가 높은 위상을 가졌기에 그걸 계기로 어떤 변수가 생겨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우연과 했었던 계약 기간은 고작 2년.

그중에서 1년은 한국에서 모델 우연의 이름을 알렸고, 이제 남은 1년은 해외에서 이름을 알릴 판국이었다.

‘아쉽네.’

계약 기간이 더 길었더라면.

짧은 계약 기간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당시 우연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걸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약 자체가 성립 불가능했을 테니까.

“우연 군 부모님 측으로 서명 부탁드리고, 기사 보도해요.”

“네 알겠습니다.”

직원에게 지시를 내린 뒤 주성훈 대표는 다시 개인 사무실로 걸음을 옮기면서 핸드폰을 들어 이탈리아에 있을 우연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까지 간판은 강원우지만.’

미리미리 잘해놔서 안 좋을 거 없었다.

일단 밀라노 패션위크 이후에 우연의 입지는 확연히 달라질 테니까. 물론 안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 같고.

우연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와 개성.

얼굴과 몸은 누가 봐도 일반인이라고 하기에 거리감이 있고, 해외에서는 특히나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됐다.

일단 유필리아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주성훈 대표는 김칫국을 들이마시면서도 행복 회로를 돌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재계약까지 이어진다면 완전 금상천화겠지.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우연에 대한 기사 보도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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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우연, 밀라노 패션위크 런웨이 오른다. ‘모델 발탁’]

[우연, S/S 밀라노 패션위크 모델 발탁......]

[해외로 뻗어 나가는 신인 모델의 쾌거]

<모델 우연,="" 밀라노="" 패션위크="" 런웨이="" 오른다.="" ‘모델="" 발탁’=""/>

세계 4대 패션위크 중 한 곳인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모델 우연이 마크 바이에른 수석 디자이너의 유필리아 브랜드 패션쇼 모델로 발탁됐다.

우연은 모델 데뷔 당시부터 화제성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가 국내에서 한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S/S 서울패션위크 이은석 디자이너의 맨시크 패션쇼, 제우스 코스메틱 모델....... (중략)

특유의 이미지와 독보적인 실력이 잘 어우러지면서 많은 러브콜과 함께 어린 나이에 해외 진출을 해낸 것으로 보인다.

[댓글]

: 아 ㅈ됐네.

┖ ㅋㅋㅋㅋㅋ 이제 국내 활동 어림도 없다 ㅅㄱ

┖ ㄹㅇㅋㅋ 촬영만 한다매 ㅋㅋ

: 세계 4대 패션위크라 ㄹㅇ 가슴이 웅장해진다.

┖ 앞으로 명품 브랜드 모델 그런 거 하려나?

┖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음? 키도 별로 안 큰 걸로 아는데.

: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너무 어린 나이에 일찍 성공한 거 아닌가.

┖ 꼰대 ON

┖ 대체 어느 부분이 꼰대라는 거임?

****

유필리아의 패션쇼 오디션이 끝나고 난 후.

나는 당당하게 합격 통지를 받았고, 수석 디자이너인 마크 바이에른의 옷을 세 벌 착장하기로 하면서 쇼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네.’

물론 그 좋은 결과마저도 신인에게는 정말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이지.

그렇게 오디션을 마치고, 패션쇼 리허설 날까지 해야 하는 건 오로지 체중 관리, 컨디션 관리, 피부 관리 등 관리뿐이었고.

남아 있는 룩북 촬영 스케줄을 끝내야 했다.

두 번의 스튜디오 촬영이 끝났어도 로케이션 촬영이 남아 있는 탓에 일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로케이션이란 촬영장 밖에서 실제 경치를 배경으로 하는 촬영으로

“비 오네요.”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오늘 안에 촬영 다 안 끝나겠는데요.”

한 마디로 야외 촬영이라는 말씀이었다.

희한하게도 유필리아는 다양한 포토그래퍼를 쓰려는지 두 번째 로케이션 촬영인 오늘, 첫 번째 로케이션 촬영 때와는 다른 포토그래퍼가 왔고.

스튜디오 촬영까지 합하면 세 명의 포토그래퍼와 합을 맞추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영 꽝이네.’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촬영이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었다.

촬영 장소는 밀라노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의 보타닉 가든을 빌려서 진행했고.

지금은 가든 안에 있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전문가가 아닌 내가 봐도 지금 있는 곳은 촬영할 곳이 못됐다.

차라리 스튜디오에서 하지.

‘아까 보니까 야외가 확실히 괜찮던데.’

자리를 잡고 찍어보려고 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찍지는 못했지만.

스튜디오 촬영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든 스탭 수여도 많은 사람들이 비 때문에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게 기가 빨리네.

먹은 게 없어서 그런가 에너지만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스튜디오 촬영이 훨씬 나은데 말이죠.”

“나도 야외 촬영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앞으로 잘 알게 되시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그다지 이번 생에 야외 촬영 경험이 많진 않았지만, 전생에는 그래도 야외 촬영을 많이 했었다.

‘다행히 춥거나 더운 것보다는 낫지.’

의상이 날씨와 정반대가 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봄, 여름인 S/S 시즌 옷을 8월에 입고 있다는 게 그나마 괜찮은 축에 속했다.

많은 모델들이 촬영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촬영은 스튜디오 촬영이었지만, 그만큼 또 제일 편한 것도 스튜디오 촬영만 한 게 없어서.

이런 야외 촬영은 변수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날씨 문제.

“비 이제 슬슬 다시 그치려는 것 같대요.”

“알겠습니다!”

스탭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예진에게 말했고, 우리는 이제 익숙하게 헤어 메이크업 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벌써 세 번째 수정 메이크업.

촬영 시도만 두 번을 했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확실히 전문가의 손길을 받자 습기로 처진 머리가 원상복구되고, 준비가 다 끝났을 무렵에 다른 스탭과 함께 포토그래퍼가 다가와 말했다.

“방금 비가 그쳤어. 찍을 장소는 물색해놨고, 비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서두르지.”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는지 그렇게 말한 포토그래퍼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나갔다.

그런 그를 따라 준비를 끝낸 우리는 몇몇 스탭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고.

촬영 장소로 보이는 곳에 서 있는 포토그래퍼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포토그래퍼 레나.

애연가인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자주 보였고, SNS에 검색하니 보이는 그녀의 작업물들이 전부 하나같이 유명인들과의 작업뿐이라는 걸 알았다.

포토그래퍼에 대해선 잘 몰라서 처음엔 그녀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보자 비로소 누군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성격은 좀 차가운 거 같고,’

하지만 실력이 확실하다면야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모두가 도착하자 레나는 우리를, 아니 정확히는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는데.

“그냥 가만히 서서 렌즈만 보고 있어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연장되는 촬영으로 짜증이라도 났는지, 망언을 지껄이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델에게 한다는 말이 저런 거였으니.

‘모델 보고 가만히 서 있으라고,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게.’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뭔가.

둘 다 유필리아에 고용된 입장일 뿐이지 어느 한쪽이 갑인 관계가 아니었다.

명백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실력에 대한 오만함을 드러내는 포토그래퍼, 레나를 보면서.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요.”

“뭐?”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레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 이래서 예술인이라고 해도 인성이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건데.

아무래도 이번 촬영은 여러모로 힘든 촬영이 될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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