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96화 (96/137)

〈 96화 〉 chapter 94. 두 개의 성공

* * *

패션쇼의 입장 순서는 그냥 정해지는 게 아니다.

의상의 패턴이나 특징 그리고 디자인까지 고려해서 신중에 신중을 가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의 순서를 바꾼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소화력 때문에

‘뒤에 있는 사람이 묻혀.’

정확히는 우연이 입고 있는 옷에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하고, 그다음에는 우연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앞에 있는 사람은 그렇다 치지만, 우연의 존재감으로 인해 뒤에 있는 모델이 의상을 비교적 소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피팅 같은 경우에는 다른 디자이너가 도맡아 했지만 마크 바이에른의 입김이 들어간 디자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본디 우연에게 받았었던 영감이 옷에 너무나도 잘 배어서 그에게 너무나도 잘 맞는 것인지.

여태 우연이 찍었었던 화보도, 광고도 전부 유필리아의 디자인을 따라오지 못해 자료가 부족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었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모르고.

‘메인 모델...... 확실히 메인 모델이긴 하지만.’

붙여볼만 했다.

다소 무모한 결단이었지만 뒤에 메인 모델이 있어서 위화감이 없었고.

‘성공적인 마무리네.’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수석 디자이너인 마크 바이에른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중석에 앉은 이들 대부분이 끝까지 쇼에 집중하고 있었고.

“저 모델 누군지 알아와.”

“알겠습니다.”

작게 속삭이는 이들부터, 열심히 사진을 찍는 이들까지.

주요 인사들의 얼굴을 면면히 살펴보면서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내려 애썼다.

그사이 마지막 피날레가 끝나자 모델들은 전부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고작 15분밖에 안 되는 쇼.

하지만 거기에는 작게는 몇백 명이, 크게는 몇만 명이 얽혀 있는 일이었다.

“이번 쇼 잘봤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멋진 쇼였네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건......”

“인터뷰 잠깐만 가능하실까요?”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결과를 볼 차례다.

****

새롭게 주목해야 할 브랜드가 나타났다. 베르사체의 디자이너였던 마크 바이에른이 수석 디자이너인 브랜드로, 유필리아는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브랜드 런칭 이후 반항적인 퇴폐미를 지향했던 유필리아는 이번 밀라노 컬렉션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시도를 보였고, 굉장한 퍼포먼스였다.

디테일과 소재의 믹스로 매력적인 의상을 선 보였으며 정교한 테일러링을 통해 도전적인 소년의 당당함을 표현했다.

특히 그린 계열 포인트를 넣은 시그니처 의상으로......

[댓글]

: 두 번째 사진에 있는 모델은 정말 미쳤어!

: 베르사체에서는 저런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을 거야. 유필리아 수석 디자이너가 되길 잘했네.

: 근데 저 앞에 있는 모델은 처음 보는데?

┖ 내 말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예쁘게 생겼네

┖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거 같아.

모델 우연,="" 1년="" 만에="" 밀라노="" 패션위크="" 안착!=""/

모델 우연의 해외 활동이 많은 해외 패션업계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모델로 데뷔한지는 1년, 심지어 첫 해외 활동인 유필리아 밀라노 컬렉션은 찬사를 받고 있으며......

이에 속한 모델 우연은 동양인 모델로서의 이름을 알리고, 많은 이들의 연락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연의 나이는 이제 곧 19살로 현재......

[댓글]

┖ 이래서 잘 될 애들은 다 정해져 있다는 거임. (추천: 402개 비추천:66개)

┖ 나는 패션의 세계를 이해 못 하겠다 ㄹㅇㅠ 그냥 서울컬렉션 때 입었던 옷이 더 나은 거 같은데. (추천: 306개 비추천: 2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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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개별론데?

┖ 확실히 모델 포스 지리네;; 괜히 해외 나가는 거 아님.

[BEST] 근황 기사 떴다 ㅅㅂ

(사진)

(사진)

이게 나라냐? 왜그렇게 오래 있나 싶었더니 사실은 밀라노 패션쇼였냐고ㅋㅋㅋ 심지어 데마시아에서는 이제서야 홍보랍시고 여기저기 기사내고 있음. 이런 걸로 미리 기사내서 관심 끌고, 끝나고 나서도 어그로 끌면 되잖아.

사전에 알려준 게 하나도 없네.

마케팅 ㅈㄴ 못해서 화나고, 이렇게 큰 거 숨기고 있었다는 게 더 짜증남.

그 와중에 사진은 개예쁘고.

좋아요 4669개 댓글 4021개

: 페룩 들어가면 대문짝만 하게 나오더라.

┖ 근데 사진은 좀 별로임. 룩북 사진이 지리는데;

┖ 초청된 한국 기자 한 명도 없는 게 ㄹㅈㄷ......

: 여기 화력도 이제 줄어가네 ㅜㅜ 한국 활동 없으니까.

┖ 어쩔 수 없음. 덕질하기 편한 것도 아니고.

┖ 그래도 눈팅하는 애들 많으니까 ㄱㅊ

: 진짜 난해한데 이상하게 멋있고 이상하게 예쁜데 또 별로임.

┖ 별로인 이유=저 돈 주고 저 옷을?

┖ 심플 이즈 베스트인 한국은 이해하지 못하는 갬성임.

****

리디아 에이전시에 도착하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녀는 흥분한 상태로 입을 열었다.

“당신한테 들어오는 컨텍이 지금 몇 갠 줄 알아요?!”

“..... 저 방금 왔는데요?”

“이것 좀 봐봐요.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쇼의 여파는 파도를 일으키듯이 퍼져나갔다.

그 증거로 지금, 내 눈앞에 놓여져 있는 종이에 적혀 있는 것들이 전이라면 꿈도 못 꿨을 만한 것들이었으니까.

‘..... 성공했네.’

일단 첫 번째로는 유필리아의 성공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스타일과 더불어 첫 패션쇼라는 것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얻었고.

그리고 그 스타일에 있어서 사람들은 반감을 가지기보다 호기심을 드러내는편이었다. 어느 정도 호의적이기도 했고.

사실 베르사체와 유필리아의 관계, 그리고 이탈리아와 밀라노를 생각했을 때 나오기 어려운 컨셉이었을 뿐이지.

파리를 비롯해서 ‘소년’이라는 카드는 어디든지 먹히는 카드였다.

패션계가 사랑하는 반항아.

패션계가 사랑하는 소년.

메이저에 메이저를 섞었는데,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기도 하지.

물론 유필리아가 그 두 개를 잘 녹여냈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엘르에서도 연락이 왔네요.”

보그가 아니라서 아쉽긴 하지만 뭐 아무렴 어때.

엘르를 비롯해서 다른 패션지들에도 나오고 나면, 보그도 언젠가는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게 분명했다.

두 번째는 나의 성공.

이번 유필리아 패션쇼에 동양인이 나를 포함해 두 명밖에 없어서 사람을 특정 짓는데 쉬웠고.

‘덕분에 동양인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도 많이 났지.’

당일 날 딱히 인터뷰를 하지 않았어도, 이미 쇼에서의 내 모습이 전부 찍혔었기에 기사는 심심치 않게 나왔다.

아직 신인이니 이름을 알리는 것에도 좋고, 쇼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관심을 얻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쏟아지는 관심이랄까.

하지만 인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저는 잠깐 반짝이고 지는 별이 되기는 싫어요.”

“맞는 말이에요. 데뷔가 성공적이었으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들도 있고.”

신인이다 보니 일보다는 인터뷰에 관한 컨텍이 제일 많이 들어왔다.

신인 타이틀 이용해서 어떻게든 기사 하나 인터뷰로 뽑아먹겠다는 전략이겠지만, 무명이 아닌 우연에게는 썩 괜찮은 제안은 아니었다.

‘이미지 소비는 줄이는 게 좋으니까.’

모델들은 대부분이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특정 이미지가 잡혀버리거나 사람이 이미지가 의상을 잡아먹으면 안 되니까.

자잘한 것들을 빼고 좀 큼직한 것들만 남기니 확실히 줄어들긴 줄어들었다.

‘그래도 이걸 소화해내려면 내 몸이 두 개여야겠지만.’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띈 건 패션잡지 엘르, 사진 작가 이코베, 유명 캐스팅 디렉터들 정도.

“그래도 많네요.”

“많은 게 오히려 좋은 거죠. 간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전부 다 계약으로 성사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말만 오가는 정도에서 그치거나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으니.

“그럼 여기 있는 건 전부 콜 할게요. 그리고 제가 본 역대 무명 신인들 중에 가장 멋진 데뷔였어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미소 지었다.

쇼가 끝날 때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남았는데, 지금은 아쉬움은 온데간데없고 기대만 가득 찼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리디아 에이전시의 미팅을 마쳤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스케줄이 당장 잡히는 것도 아니니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서 뜨끈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을 생각이었는데......

“파리요?”

“셀린느에서 널 보고 싶대.”

“이렇게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출국 전날, 메뉴가 국밥에서 라따뚜이로 바뀌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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