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chapter 99. 불이 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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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남자의 수가 적은 세상이지만, 사실 그보다 더 적은 건 예쁘고 귀여운 남자의 수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화장을 한다고 해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으니까.
천상계 외모들이 연예인을 할 뿐,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게 그런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경우는 또 아니었는데......
“헐, 여기로 온다.”
“엉?”
“옆에 브브.”
뭐야 왜 이래?
핸드폰을 하다가 갑자기 어깨를 치는 친구에 고개를 돌리니 발음을 뭉개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를 이상한 눈빛으로 한 번 쳐다보고, 친구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건......
남자?
본능이 시키는 대로 순식간에 남자를 스캔했지만, 뒷모습이어서 그런지 키가 크고 굉장히 마른 거 같다는 거밖에 안 보였다.
뭐야, 말라서 보라고 한 거야?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친구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다시 유심히 살펴보니, 입은 옷 스타일도 괜찮았다.
뒷모습만 보고 있자니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고.
그렇게 한 3초가 지났을까, 기다리고 있었던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자 친구가 걸음을 재촉했다.
“야. 뒤에.”
횡단보도를 다 건너자 뒤를 보라며 턱짓을 하는 친구에 뒤를 돌아보자
“존나 예쁘네......”
“그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지만, 다행히도 작게 말해서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은 듯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다른 한 손에는 마실 걸 들고 걸어오는 남자를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눈호강 하네.
번호 같은 걸 물어볼 용기는 당연히 없었고,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유유히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떠났다.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기억 속에는 선명하게 다시 재생됐고.
“나도 저런 남자랑 연애 한번 해보고 싶다.”
“얼굴 보면 화가 풀릴 듯”
“네 얼굴을 보면 갑자기 화가 날 거 같은데.”
“뒤질래?”
주먹을 치켜세우는 친구를 보고 농담이라며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
다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면서 평범하게 녹아들었다.
남자는 기억 한구석에 작게 남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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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거라고 말해주세요.”
“저번에 같이 룩북 촬영하면서 한 번 작업해본 걸로 아는데 이번에 엘르 화보를 포토그래퍼 레나랑 찍는다네요.”
이마를 탁 치게 만드네.
캐스팅 팀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런 나를 보면서 옆에 있던 실장이 가볍게 물었고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러면 따로 바꿔줄 수 있냐고 연락해볼게.”
“문제라고 할 건...... 아니죠.”
“그럼 됐지. 성격 좀 더러워도 작업 한 번만 같이 하는 거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는 마.”
어떤 이유인지 대충 눈치를 챈 실장이 응원의 말을 건넸다.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레나 하니까 떠오르는 그때의 촬영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비록 이번 촬영은 스튜디오에서 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토그래퍼가 바뀌는 게 아니니까.
‘이놈의 결과주의.’
내가 현재 모델로서의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는 만큼, 같이 작업했었던 레나에 대한 평들도 좋았을 게 분명했다.
더욱이 유필리아의 이번 S/S 시즌은 정말 대성공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유필리아는 따로 데마시아 에이전시로 꽃바구니를 보내주기도 했다. 다음 F/W 시즌 패션쇼 모델을 제안하면서.
“아 그리고 아직 확정된 건 없는데, 팬미팅을 기획하자는 말이 나왔어요.”
“팬미팅이요?”
“네. 앞으로 해외 활동만 계속 돌 거 같긴 한데 예상보다 팬층이 더 두터워서 그쪽으로도 말이 나오더라고요.”
팬미팅이라, 한다면 나야 좋지.
내 팬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하는 거라고는 SNS를 꾸준히 하는 것과 라이브 방송을 자주 하는 게 전부인데.
당장 실현될 수는 없어도 괜찮긴 했다.
‘오늘 몰랐던 사실 여러 개 알아가네.’
엘르 화보 포토그래퍼부터 팬미팅, 그리고 그 외 연락 온 브랜드들의 다음 시즌 모델 제안까지.
예상 밖의 소식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희소식이 많아서 괜찮았다.
‘아무리 그래도 일이 최우선.’
팬 관리야 좋긴 좋아도 일단 물이 들어오면 노를 저어야지.
그저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썩 기분 좋은 일이었다.
“요즘 관리 열심히 하는 거 같아서 보기 좋네요. 힘든 만큼 빛을 볼 날도 있을 테니까 조금만 더 힘내요.”
“당연하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캐스팅 팀장이 나를 달래듯이 말하고는 힘내라며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갔다.
나는 컵에 남아있던 물을 입에 다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이 에이전시를 들르는 것이었기에 예진과 나는 그대로 건물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이번주에 있을 보그 코리아 화보 촬영 콘티를 살펴보면서, 미리 건네받은 인터뷰 가이드를 보고 대략적인 답변들을 떠올렸고.
이제 집으로 가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움직이지 않는 아체 앞을 바라보니
‘뭐지.’
운전석에 앉아서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고 있던 예진과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무언가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는 게 느껴져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고.
“왜요, 무슨 할 말 있어요?”
“응? 아, 오늘 저녁에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해서......”
“저 삼일 뒤에 중요한 촬영 있는데.”
“역시 좀 그렇지? 다음에 먹......”
“요즘 샐러드 가게 많던데 누나만 괜찮으면 전 좋아요.”
“잠깐만 검색해볼게,”
눈에 띄게 축 처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예진이었다.
허둥지둥 핸드폰을 들어 맛집 샐러드 가게를 검색해보는 모습을 보면서 작게 웃었고.
최근 들어서 정말 예진과는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이렇게 밥 한번 먹는다는 것도 용기 내서 꺼낸 말일 테니.
‘어차피 집에 가면 혼자 먹을 텐데.’
밖에서 샐러드를 먹는다면야 별문제 없지 않나 싶었다.
예진은 샐러드 가게를 검색하다가 이내 어디로 갈지 정했는지 차를 몰기 시작했고, 나는 핸드폰을 하지 않은 채 빠르게 뒤바뀌고 있는 창밖의 광경을 바라봤다.
저마다 다양한 옷을 입을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교복을 입은 학생.
‘새삼스럽네.’
그렇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예진이 곧 도착한다는 말에 멍 때리기를 멈추고 정면을 응시했다.
“이제 내려도 돼.”
“네.”
차를 주차한 뒤에 내려서 샐러드 가게로 직행한 우리는 샐러드를 시켜 약 20분 동안 식사를 했고.
식사한 뒤에는 곧장 집으로 향했지만 어디서 사진이라도 찍힌 건지 다음날,
“아이고.”
작게 뜬 예진과 열애설이 난 기사를 보면서 웃었다. 그래도 이런 기사가 나기는 나는구나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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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Korea
[떠오르는 모델계의 천사, 우연]
한국 남성 모델 신화의 한 획을 그을 신인이 등장했다. S/S 맨시크 서울 컬렉션을 시작으로 S/S 유필리아 밀라노 패션쇼까지 엄청난 행보를 보여주는 신인 모델! 천사라고 불리는 이 모델이 신인이라는 것도, 아직 미성년자라는 것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관록이었다.
Q. 모델을 꿈꾸게 된 계기는?
A. 아주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차라리 아이돌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지만 오로지 모델이라는 꿈을 꾸면서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같다. 지금은 굉장히 만족한다. 천생 모델이라서 그런가 (웃음)
Q. S/S 유필리아 밀라노 컬렉션에는 어떻게 서게 되었는가?
A. 처음에는 콜라보 패션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필리아가 밀라노 컬렉션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욕심이 났고, 오디션을 따로 봐서 합격했다, 그 결과 멋진 쇼에 서게 될 수 있었다.
Q. 오디션에 합격한 비결이 궁금한데,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만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개인적으로 워킹이 합격 비결이 아닌가 싶다. 또 매력이라고 할 건 아무래도 어떤 이미지를 하던 간 잘 소화해낸다는 것? 컨셉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노력해 변천사 같은 모습이 매력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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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확 붙었네.”
주성훈 대표는 근 몇 주간 온 수많은 브랜드들의 연락을 떠올렸다.
보그 코리아 잡지가 나가고 나서, 실렸던 우연의 화보와 더불어 인터뷰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다름 아닌 해외 브랜드들에서도 그런 좋은 반응들이 나타났고.
국내에서도 우연을 향한 연락이 안 오는 건 아니었지만, 체급을 고려했을 때 해외 활동을 더 우선시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 다음 시즌에는 패션위크 전부 다 서겠는데.”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그중에서도 뉴욕이 적기는 했지만, 나머지 다른 곳에서 온 연락들을 생각하면 절대 무시 못했다. 그중에서는 루이비통 같은 거물도 있었고 마르니, 버버리 프로섬 등등.
유필리아 패션쇼 이후 지펴졌던 불이 번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다가올 파리의 남성복 트렌드가 일치해서인지 ‘소년’ 트렌드와 맞닿아 우연에게 가장 연락이 많이 왔고.
엘르 화보 촬영을 위해서 해야 할 출국이 아무래도 장기로 이어져 많은 브랜드들에 들려야 할 미래가 그려졌다.
실장은 호들갑을 떨고, 캐스팅 팀장은 여태 이런 일이 없었다며 처음으로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주성훈 대표는 속이 쓰렸는데
“계약 기간 얼마 안 남았는데......”
그 이유는 얼마 남지 않은 우연과의 계약 기간 때문이었다.
불과 반년도 채 안 돼서 우연이 또다시 진화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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