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02화 (102/137)

〈 102화 〉 chapter 100. 이게 최선인가?

* * *

본격적으로 해외 스케줄을 소화해내기 위해 한국을 출국했다.

원래는 엘르 화보 촬영을 위해서 이탈리아로 가야 했었는데, 우리는 그보다 일찍 도착해서 S/S 시즌 브랜드 미팅을 해야 했고.

그중에서도 대박인 건, S/S 밀라노 미우미우 패션쇼에 서게 되었다는 것.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이렇게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모델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미우미우 측에서는 처음부터 계약을 염두에 두었는지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고.

‘공부해야 할 게 늘었네.’

유필리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패션계를 포함해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느끼는 요즘이었다.

“이제 촬영이네요.”

“여기에 온 목적인 이 촬영이었는데 말이야.”

타국에 있어서 그런가, 일을 하면서 가야 할 곳들이 많아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인데 말이지.’

거울 속에 있는 내 얼굴이 점차 메이크업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엘르 화보에는 내 인터뷰 같은 게 실리지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그 코리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새로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화보였고.

패션지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실리는 걸 기대해보려면 일단 결과물이 좋아야 했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커리어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보그 코리아부터 엘르는 커리어로 인정되게에 충분했으니까.

‘그때도 그랬듯이’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지.

“머리는 옷 갈아입고 온 다음에 마무리할게요.”

“알겠습니다.”

계속 의자에 앉아있었더니 일어나니까 잠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위를 살피니 다행히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거 같았고.

옷을 갈아입으니 딱 맞아떨어지는 사이즈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의상 브랜드가 베르사체라는데,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베르사체, 유필리아의 수석 디자이너인 마크 바이에른이 있었던 곳.

모델과 어울리는 옷을 고심한 게 느껴질 정도로 잘 어울렸다.

밖으로 나오니 기다리고 있었던 스타일리스트가 신발을 신겨주었고. 헤어 스타일링까지 마치자 비로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자 스탭들의 시선이 한 데 모였다.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앉아있었던 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바로 눈이 마주쳤고.

그런 우리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으나, 그걸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뭐 딱히 둘 다 이렇다 할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횟수로 따지자면 세 번째 촬영.

뿌리 염색을 한 레나의 머리 스타일이 변한 것을 제외하곤, 무언가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조명 점검이 끝나자

“쉬운 거부터 먼저 할 필요는 없으니까. 3번부터 가지.”

“상관없어요.”

“좋아.”

지켜보고 있던 디렉터가 이쪽을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레나는 고개를 까딱이고는 그대로 카메라를 들어 올렸고, 저번 촬영과는 다른 카메라와 렌즈가 보였으며.

콘티에 제시됐었던 3번 구도와 표현을 생각하면서 나는 자리를 잡았다.

확실히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니, 촬영을 한다는 느낌을 세게 받는 것 같았다.

레나가 움직이면서 카메라 구도가 계속해서 바뀌고, 나도 포즈를 바꿔가면서 몸을 이용해 구도를 제시했고.

동시에 미세하게 바뀌는 시선 처리와 제스처까지.

“허리 거기서 더 틀지 마.”

레나가 플래시를 터트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레나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촬영을 하면서 모델에게 빠르게 피드백한다는 거겠지.

그게 칭찬일 때는 거의 없지만.

‘아예 없나?’

하지만 확실히 레나와 할 때는 그만큼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아무 말이 없으면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이고, 조용한 게 집중이 됐으니까.

“끝. 이제 누워.”

레나가 카메라를 내리면서 말하자 나는 세트에 누웠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다가와서 머리와 메이크업, 옷을 정리해주었고 다른 스탭은 레나의 앞에 의자를 가져다 뒀다.

찰칵ㅡ 찰칵ㅡ 찰칵ㅡ

전신을 찍을 때와는 달리 카메라가 가까이서 완전히 정면에 있었지만, 집중력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그런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과 쳐다보지 않는 것으로 시선 처리를 했고.

레나가 쉬자는 말이 없었기에 우리는 그대로 촬영을 이어나갔다. 나도 오늘 촬영 컨디션이 좋아서 쉬어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좋아서 망정이지.’

논스톱으로 촬영이 이어졌다. 집중하는 것도 집중하는 거지만 뜨거운 조명을 계속해서 받은 탓에 조금 더웠다.

“오케이 끝.”

“후우.”

쉴 새 없이 이어진 첫 번째 촬영이 끝났을 때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내가 숨을 쉬기는 했었나?’

계속해서 카메라만 바라보다 보니 내가 숨을 쉬었는지조차 까먹었다.

그렇게 다음 촬영을 위해서 다시 메이크업을 받으러 자리를 뜨는데

“...... 앞으로는 조금씩 쉬면서 하지.”

“네.”

양심이라도 찔린 건지.

뒤에서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말에 나는 짧게 대답하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마자 예진이 내게 빨대가 꽂힌 생수병을 들고 건네주었고.

빨대를 통해 물을 두 모금 정도 마시니

“아 살 거 같다.”

“좀 쉬면서 해. 보는 내가 다 힘들어.”

“촬영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예진이었지만, 사실 이거보다 더 힘든 촬영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기에.

일단 여기는 환경적으로 스튜디오라는 점에서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다.

‘이따 찍힌 거 보여달라고 해야겠어,’

저번에 하지 못했던 모니터링을 이번에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 나왔건 간에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으니까.

집중하느라 과열됐던 머리를 식히는 동안 메이크업이 한차례 지워졌고, 새롭게 되고 있었다.

동시에 머리카락도 아까와는 달리 볼륨을 많이 줘서 붕 뜨게 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오늘 촬영은 오래 걸릴 거 같네요.”

“그런가요? 저도 빨리 끝날 거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그냥 감이에요. 둘 다 촬영하는 걸 보니까 완전 프로페셔널 해서.”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볼게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장난기 어린 진심을 들으면서 나는 감사를 표했다.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대화나 빠른 손을 봤을 때 관록이 느껴졌다.

촬영은 사진 찍는 게 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준비하는 게 반이었으니.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나를 맞이하는 에르메스 가방이 보였다.

‘확실히 급이 다르네.’

몸에 걸친 모든 게 명품 브랜드라는 점에서 새삼 달라졌음을 느낀다.

가방을 들자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지 가벼웠고, 그립감이 좋았으나 막상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별로야. 다시.”

가방을 이용한 포즈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혹평을 받으면서, 레나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오른쪽 어깨가 올라갔어 내려. 가방 광고 아니니까 가방도 내리고.”

그렇지만 분하게도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자세가 수정될수록 좋아짐을 느꼈다.

“찍은 거 보여주세요.”

“......”

그렇게 두 번째 촬영이 끝나자 레나의 앞에 당당히 선 내가 말했다.

레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모니터 화면을 켰고, 사진이 띄워지자 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화면을 바라봤는데.

‘이거는 얼굴이 너무 부하게 나왔어, 아 방금 게 제일 잘 나온 거 같은데’

촬영을 하는 동안 빠져 있었던 디렉터까지 합류하면서 모니터링이 이어졌다.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이 몇 개 보였지만 그건 어차피 쓰이지도 않을 테니까.

좋은 사진을 고른다면야 새싹이 보이는 게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해.’

나는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였다. 어딘가 모르게 분위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보정을 거치면 다른 거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지만 분위기나 구도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 슬슬 준비하러 가지?”

대충 모니터링이 끝나가자 레나가 불퉁하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또 메이크업을 받으러 가는데

“컨디션 좋은데요? A컷도 건진 거 같은데 이대로만 부탁드려요.”

“...... 감사합니다.”

내 옆을 따라오면서 말하는 디렉터의 말을 듣고 감사하다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이게 최선인가?’

지금보다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거 같은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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