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03화 (103/137)

〈 103화 〉 chapter 101. 새 매니저

* * *

레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가 변한 거지.’

아까에 비해서 사진도 훨씬 더 잘 나오는 거 같고, 깨질 법도 한 우연의 집중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적으로 이 촬영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건 오로지 우연 때문.

독기를 품었다?

그런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였다. 뭐가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특히나 그가 외국인이어서 힘들다고 말하는지 또한 몰랐다.

이 촬영장의 주인공이 우연이니 당연히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다른 스탭들도 그렇고 레나처럼 우연이 달라진 것을 느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직업 만족도로 따져봤을 때 포토그래퍼로서 저번 작업도 그렇고 우연은 최고의 모델이다.

한동안 부정했으나, 이제는 더는 부정하지 않는 사실.

“셔츠 정리해주세요.”

“메이크업 수정 한 번만 하고 갈게요.”

“저 물 좀.”

우연이 말이 꺼낼 때마다 레나는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엘르의 화보 촬영을 넘어서서 우연은 자신의 화보에 욕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를 프로듀싱하고 있다는 게 아마 저런 거겠지.

“우연은 정말 프로페셔널한 모델이에요. 그에게 반할 정도로 그는 완벽해요.”

elegance. (엘레강스)

고급스러운 우아함, 그리고 약간의 오만함.

디렉터는 온갖 감탄사를 섞어대며 그에 대해 말했지만 실제로 우연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러했다.

애초에 유필리아 룩북을 촬영했었을 때와는 다르게 엘르 화보 촬영이라는 점에서부터가 많은 것이 달라졌고.

그중에서도 우연이 달라졌기에.

‘...... 뜨겠네.’

우연의 새로운 모습을 본 레나는 감히 저 루키가, 패션계에 허리케인을 일으킬 것이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야 자신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하지만

나중에 우연과 작업했었던 모든 것들이 회자가 되기 위해서, 레나는 다시금 카메라를 들었다.

앞으로 네가 만날 그 어떤 포토그래퍼보다도 최고의 사진을 안겨주겠다고 생각하면서.

“컷!”

촬영이 무르익었다.

****

“여기 담요랑 베개, 신발도 벗겨줄 테니까 신발도 벗고 있어.”

“...... 밀크티는요?”

“여기다 둘 테니까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면 돼.”

“고마워요.”

나는 짧은 감사 인사를 전한 뒤 그대로 눈을 감고 손으로 꾹꾹 누르며 지압했다.

그냥 택시가 아니라 우버 밴이어서 승차감이 더 괜찮았고.

단 하루 만에 끝나야 하는 촬영이었기에 촬영이 장장 8시간 동안 이어지면서, 당연히 먹은 게 없었지만 지금은 배고픔보다 피곤함이 더 컸다.

‘계속 긴장한 상태였어서 그런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생명수를 공급하기 위해 밀크티를 잠시 들어 마시긴 했지만.

“그래도 잘 끝난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수고했어.”

“누나도요.”

걱정했던 것들이 무색하리만치 기우였다.

포토그래퍼가 레나인 것도 있었지만 그만큼 중요한 촬영이었다 보니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으니까.

콘티를 몇 번을 봤더라.

다행히도 엘르 관계자인 디렉터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레나와도 별 탈 없이 작업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어째 기운은 더 빠졌지만 사진은 더 잘 나오는 거 같았는데.

서서히 감을 잡았다는 게 그런 거겠지.

나는 핸드폰을 잠시 켰다가 아무 알림도 뜨지 않은 걸 보고 다시 껐다.

그 이후로도 딱히 누구에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애꿎은 시간만 계속 확인할 뿐이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을 만큼 몸이 피곤했음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가다가 결국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기절해버렸지만.

“마음에 드네요.”

다음날 오후에 건네받은 촬영본을 보고 몸의 피곤함은 잊은 채 만족감에 젖었다.

****

이탈리아는 그저 워밍업이었다는 듯, 촬영이 끝나자마자 도착한 파리에서의 미팅은 도무지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었다.

어떻게 소문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예정에도 없던 명품 브랜드와도 미팅을 하게 되지 않나.

정말이지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지금이 내 전성기인가 싶을 정도로.

‘이게 꿈인지 생신지.’

전에 미팅을 했었던 셀린느의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나는 뉴 셀린느 패션의 메인 모델이 되기로 하였으며.

그 많은 브랜드들 중에서

“패션지에서 왜 당신을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표현했는지 알 거 같군요. 정말 아름다워요.”

다름 아닌 루이비통 디자이너의 마음에 들면서 주가는 더 급부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잭팟이 터져버렸으니까.

나는 그렇게 킴 디자이너와 함께 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화를 나눴고, 그러면서 킴이 내 나이를 의심하길래 사실 속으로 뜨끔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의 눈에는 아마 오히려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일 걸 알았기에 그저 웃어넘겼다.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 덕에 사교성이 좋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으며, 우리 브랜드의 이미자와 걸맞다는 말을 들을 때면 정말이지 기분 좋았으니까.

단점이라고 한다면, 모든 브랜드들에서 한 번씩은 언급하고 좋아해 줬던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몇 번 쓰러질 뻔했다는 거?

대신 영양제를 조금 더 챙겨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없이 패션계 공부에 매진하고, 관리에 집중하려던 와중에

“만나서 반가워요 우연.”

“저도 반갑습니다.”

“이쪽이 매니저겠죠? 만나서 반가워요.”

“...... 반갑습니다.”

염색을 한 듯, 검은 뿌리가 자란 갈색 머리 외국인 여자.

‘키가 꽤 크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옷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범상치 않다는 게 느껴졌는데.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매니저가 바뀐다, 라서.

‘정확히는 바뀌는 거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리디아 에이전시에서 붙여준 새로운 매니저를 바라봤다.

한 그저껜가, 데마시아로부터 연락이 오고 리디아 에이전시에서도 연락이 오면서 매니저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까.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 그들이었기에,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욕심나지.

더욱이 예진이 아닌 다른 매니저를 붙이는 거에도 나름 대로의 명분이 있었다.

그야 이번에 새로 온다는 매니저가 자그마치 불어, 영어, 이태리어까지 가능한 3개국어의 능력자라는 사실과

해외 패션 업계에 계속 있었기에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이유도 없었고.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예진의 기분이 조금 안 좋아 보였고, 원체 태가 잘 나지 않았었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히 알아챌 수밖에 없어서.

정이라는 게 있었기에 그나마 그녀에게 좋은 말들을 건네는 게 다였다.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슈퍼 루키를 최선을 다해 보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큽, 재밌네요.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델이라고 불러줘요.”

“알겠습니다.”

아델은 예진에게도 눈인사했다. 그러자 예진도 고개를 까딱이는 게 보였고.

안타깝게도 다같이 밥을 먹는다거나 하는 자리는 있을 수 없었다.

이번 시즌에 서야 할 패션쇼도, 브랜드도 많았기에 곧바로 룩북 촬영을 계속해서 해야 했으니까.

패션쇼 준비도 그렇고 당연히 항시 다이어트 상태를 유지.

‘김치찌개 먹고 싶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돌아갈 수 있을까?

물론 이곳에서도 한국 음식을 사 먹을 수야 있긴 하겠지만, 첫 번째로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게 이유고 두 번째로는 그 맛이 안 난다는 점에서 기각이었다.

아무튼 간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델과도 함께 움직여야 해서 나는 간간이 그녀와 친해질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눴는데

“...... 그래도 잘 지내봐요.”

“그래야지.”

혹시나 예진이 서운할까 봐 그녀를 신경 쓰면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다, 아델과 잘 지내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을 때는.

“예진과 함께 고민했는데 이 밀크티가 네 입맛에 맞을 거 같아서 조금 바꿔봤어.”

둘이서 내가 먹는 음료에 대해서 상의한 뒤 더 맛있는 밀크티로 바꿔 오지 않나

“음, 그 옷 말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옷이 없어서......”

“오우 문제없지. 내가 빌려줄 테니까 당장 내 방으로 가자.”

항상 같은 정장이나 옷을 입고 다니는 예진을 보면서 아델은 그녀에게 옷을 빌려줬다.

‘이번에도 기우였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정작 모델인 자신을 제외하고 이미 친해져버린 거 같아 헛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지만.

“우연!”

“우연아!”

“네~”

해외에서의 생활이 더 편해졌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수 있겠지.

나는 두터워진 콘티 종이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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