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chapter 102. 완벽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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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지 않았다기보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거 같다.
미팅을 하고, 계약을 하고, 촬영을 한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도 전부 빠르게 이루어져서.
그 중심에 있는 나는 당연히 흔들릴 수 없었다.
최고의 모델이 될 거라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은 그 과정을 거쳐 가는 중이었으니까.
“우연이 너 살 더 빠진 거 같은데.”
“그래요?”
“네. 확실히 최근 들어서 더 빠진 거 같긴 해요. 내일부터는 고기가 들어간 샐러드를 가져올까요?”
“아니에요. 그냥 원래대로 주세요.”
아델이 샐러드 팩을 건네주면서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살이 빠졌나?’
사실 여기서 더 빠진 건지도 딱히 못 느끼겠다. 매일 몸무게를 재고는 해도 큰 차이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니.
오늘 입은 옷이 옷 나름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거고.
나는 가만히 앉아 아델이 준 샐러드 팩을 열고 샐러드를 포크로 뒤적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싹싹 긁어서 먹었을 텐데 지금은 별로 구미가 안 당기네.
“뉴 셀린느가 이번 시즌에 완전히 이를 갈고 나왔다는 소리가 있어요. 우연은 메인 모델이기도 하니까 아마도......”
아델이 셀린느에 대해 설명해주는 걸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지금은 피팅을 해보러 셀린느로 가고 있었고, 계약 이후로 첫 만남이었으나 앞으로도 피팅을 몇 번 더 해야 할 테니까.
가장 중요한 패션쇼도 있었다.
결국 샐러드를 뒤적이던 포크마저도 내려놓은 채 그녀의 설명에 경청했고.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셀린느에 도착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어, 하나도 안 먹었네요?”
“방울토마토 먹었어요.”
“괜찮겠어요? 그러면 오늘 먹은 거라고는......”
“시간도 다 되어 가는데 이제 들어가죠.”
그래도 샐러드에 들어가 있는 몇 안 되는 방울토마토는 전부 사라져 있었다. 애초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샐러드 팩을 받아든 예진이 그대로 가방에 넣었고, 우리는 셀린느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경비를 지나쳐 골드로 장식되어 있는 로비를 지나 어딘가로 안내를 받았을 때는.
“세상에 우연!”
안에서 다른 디자이너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파비가 내 쪽을 바라보더니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금 당신의 모든 것들이 완벽해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면서 팔을 벌리길래 나도 가볍게 포옹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고.
그러자 다른 이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마친 뒤 바로 피팅에 들어갔다.
“완벽해!”
자그마치 셀린느의 디자이너도 나를 이렇게나 좋아해 주는데.
근래 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들은 말이 완벽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하나가 완성되고 둘이 완성되어가는 걸 보면서.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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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은 어쩐지 무언가에 막히기라도 한 거처럼 속이 답답했다.
우연이 데마시아 에이전시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줄곧 우연의 매니저를 맡아왔고, 그녀는 우연의 팬이기도 하였으니까.
우연이 스토커 문제로 인해서 시달릴 때도
첫 해외 활동으로 유필리아에 방문해야 할 때도
전부 함께였고.
우연이 제 나이 또래에 비해 굉장히 성숙하고, 모델로서 뛰어났다는 것 또한 알았다.
이우연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도 빛이 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 테니까.
그가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갈 것은 당연히 예상했다.
그래서 아델이라는 새 매니저가 왔어도 수용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들어서 우연을 볼 때면 묘한 기시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는 크게 다른 게 없는 거 같다고도 일과 관련되거나 자신을 관리하는 것에 있어서는 뭔가 더 예민해진 거 같달까.
‘예민?’
이런 걸 예민하다고 말해야 하는지도 사실 확신이 없었다.
그나마 새로 들어온 매니저인 아델과 우연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는데
“문제 될 건 없어. 우연은 지금까지 본 모델들 중에서도 정말 깨끗한 모델인걸? 술도, 마약도 안 하고 심지어는 여자도 안 만나는데”
그런 측면이 아니라고 말하자 아델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우연이 촬영하는 걸 몇 번 봐도 그가 좋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특히 자기 관리가 철저한 걸 보면 내가 봤을 때 앞으로 전ㅡ혀 문제 될 건 없을 거 같네.”
아델의 말을 듣고 예진은 말하기를 멈추고 곰곰이 생각했다.
확실히 그런 면으로 따지자면 우연은 완벽하고...... 잠깐만 완벽?
“뭐가 이상했는지 알겠어. 우연이 완벽한 게 문제였던 거야.”
“하아? 그게 무슨 소리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딨겠어.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그만큼 자기가 노력하는 거지.”
실마리를 잡고 나서야 최근 들어 우연에게서 느껴졌던 묘한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예진의 말을 들으면서 아델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하기는 했지만, 매니저가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예진의 말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완벽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없는 건 아니야. 당장 회사에 가면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어.”
더욱이 모델은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그건 문제라고 볼 순 없고 오히려 장점 같네. 적어도 이제 막 뜬 신인이 뭔가를 망친다거나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테니까.”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고 우리.
그렇게 말한 아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델과 예진의 핸드폰이 동시에 진동이 울렸고.
아델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예진이었지만, 핸드폰을 확인하는 바람에 대화는 잠시 중단됐다.
알림의 정체를 확인해 보니..... 아델과 함게 있는 단체방에 올라온 메시지들.
[우연: 작년 S/S 보그, 엘르, 에스콰이어 패션지 좀 구해주세요.]
[우연: 시간은 좀 걸려도 상관없으니까.]
[우연: 그리고 샐러드에 들어가는 과일 종류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어로 적힌 메시지였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아델도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대로 몸을 틀면서 예진을 흘깃 보고 말했다.
“그럼 나는 먼저 가볼게. 우리는 그냥 우연을 열심히 서포트나 하자고. 매니저잖아?”
어영부영 대화는 끝났지만, 답답하던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소득에 비해 마땅히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더욱이 우연에게는 목표가 있을 것이고 이 바닥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한국에서도 그렇고 우연의 성정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완벽을 추구했던 건 예전부터 그랬었던 거 같았다.
그러면 그런 우연을 말리기보다는 응원해 줄 수밖에 없다는 게 하나의 결론.
의문점이 풀리고 결론을 내렸지만 어딘가 찜찜한 게......
“조금 불안하지만.”
괜한 걱정이다.
지금까지 우연이 잘해온 게 있기도 하고 사실 아델의 말대로 자신은 매니징에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
예진은 핸드폰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나는 여기 머물러도.’
너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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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들이 지나갔다.
크리스마스는 둘째치고 적어도 새해 때는 집에 한 번 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2월이 세계 패션위크의 시작인데 어딜.
하지만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아서 아쉬움은 덜했다.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뜸해졌고 그만큼 해야 하는 일이 많아져서 힘든 몸은 잠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아무 탈 없이 흘러갔다.
계약한 브랜드들과 피팅을 거치면서 패션쇼에 입을 옷들을 선정하고, 화보 촬영과 룩북 촬영을 하면서 많은 디렉터와 포토그래퍼들을 만났다.
그 모든 경험들이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 발판들이 되어주었고.
“이제 곧 있으면 진짜 쇼네요. 저 쓰러지는 거 아니겠죠?”
“쓰러지지 않게 더 신경 써야지. 너는 무대만 잘하고 와.”
“제가 여태까지 지켜본 우연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응원의 말들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션위크는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순으로 이어졌고 가장 처음 패션위크인 뉴욕에서는 서는 브랜드가 적고 마지막인 파리가 제일 많았으며
가장 중요한 건 셀린느의 메인 모델이다.
그 외에도 미우미우나 루이비통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네.
“잘할게요.”
무려 반년 만에 서는 런웨이가 20개가 넘어갔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거 같냐는 물음 따위를 던지고 싶지는 않았고, 장난스럽게 한 말이었지만 사실 쓰러지는 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온 기회인데.’
당연히 잡아야지. 잘해야지.
그저 내가 하는 이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기를 바라고 모델로서의 내가
‘성공하고 싶어......’
성공하길 바란다.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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