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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는 법-110화 (110/137)

〈 110화 〉 chapter 108. 그래서 응모권은?

* * *

“야, 너 그 화보집은...... 안 주냐?”

“화보집?”

“너 무슨 개인 화보집 나왔다며. 그런 게 나왔으면 가족들한테 제일 먼저 줘야지.”

“아.”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

데마시아로부터 전달받았었던 최종 완성본인 화보집은 예진의 차 안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몇 개 따로 받아서 주변 사람들한테 나눠줄 수도 있는 건데.

‘몇 개 빼달라고 연락해야겠다.’

아무래도 가족들한테도 주고, 서아랑 송이한테도 한 개씩 줘야겠지. 예진은 안 줘도 될 거고.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네. 내가 오늘 따로 말해서 몇 개 달라고 할게.”

“오케이~ 내 거는 두 개로 부탁해~”

“두 개?”

두 개라는 말에 내가 되물었지만 다윤은 이미 자기 할 말만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가 왜 필요한 건데?’

나는 궁시렁거리면서도 원래 달라고 하려던 개수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뭐, 친구가 달라고 한 걸 수도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개인 화보집이 부모님도 그렇고 친구들한테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라는 거.

적어도 과한 노출은 없었으니까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가족들한테 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의상은 전부 저번 F/W 시즌 패션쇼를 서면서 받았었던 가지각색의 브랜드 옷들 중 골랐고, 내가 마음에 드는 것들 대다수.

개중에는 당연히 명품도 있었다.

그렇게 국내에 있는 포토그래퍼들과 함께 화보 촬영을 하면서 완성한 게 이번 개인 화보집.

완성본을 받았을 때는

‘확실히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아.’

내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면서 구성에도 힘을 쓴 덕에 결과물이 더 좋아졌다.

전생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합쳐져서 다른 패션 매거진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졌으니까.

그나저나 팬미팅의 여파인 걸까.

“팔로워 수도 계속 늘어나네.”

핸드폰 액정을 통해서 보이는 아웃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하루가 멀다하고 느는 추세였다.

이렇다 할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팬미팅으로 인해 이번 개인 화보집이 더 이슈가 된 것도 있고,

처음에는 급격하게 늘었던 탓에 혹여나 무슨 일이라도 터졌나 노심초사했었다.

하지만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니 이번 팬미팅 건으로 좀 화제가 돼서 사람들이 유입되는 것이었고.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않겠는가.

원래 그런 거 보면 멘탈 터진다고, 되도록 보지 말라고들 하는데 슬쩍 봤었을 때 주접이나 좋은 말들이 많았어서.

아무튼 간에 나는 늘어나는 팔로워 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잡혀 있는 미팅 스케줄을 마저 확인했다.

아직 다음 해외 패션위크까지는 시간이 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케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핸드폰으로 스케줄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난 뒤, 그대로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뒹굴거렸고

비로소 완벽하게,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

일요일 오후, 송이를 만나기로 한 날.

미리 예약했었던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나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예약 여부를 묻고, 내 이름을 대자 일행이 이미 와 있다며 자리로 안내했다.

안내된 곳에는 걸음을 옮기니 핸드폰을 하고 있던 송이가 허겁지겁 핸드폰을 내리는 게 보였지만.

‘머리 염색했네.’

흑발이었던 긴 머리가 갈색으로 염색되어 있는 게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미안, 기다렸어?”

“나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일단 앉아.”

“응. 아 그전에 이거 먼저 받아.”

“어? 이게 뭔데?”

“선물.”

파리에서 사 온 거라 선물을 전달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먹을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마카롱 살까 고민했었는데.

송이가 자기는 준비한 게 없다며 당황해하길래 나는 그냥 해외 나가면서 하나 받아온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내 머뭇거리다가 고맙다면서 쇼핑백을 열었고, 쇼핑백 안에 들어 있었던 상자를 꺼내 내용물을 확인했다.

“와...... 뭐야 엄청 예쁜데?”

“마음에 들어?”

“완전 마음에 들어. 여기 너 모델로 섰던 브랜드 아니야?”

“응 맞아.”

여성복으로 나온 게 있는데 괜찮아 보여서 하나 살 수 있겠냐고 물으니까 그냥 줘버렸다. 그러면서 저거 말고도 몇 개 더 주기는 했지만.

‘옷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저게 제일 괜찮아 보여서.’

무채색의 깔끔한 옷을 좋아하는 송이였기에 디자이너의 독특한 디자인은 난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심플 이즈 베스트.

나는 송이의 표정 변화에 주목했다. 송이도 얼굴에 다 티가 나는 쪽이어서, 마음에 안 들면 티가 났을 텐데 아까보다 훨씬 표정이 밝아진 게

‘마음에 들었나 보네.’

다시 상자에 옷을 넣은 뒤 쇼핑백에 넣고, 옆에 있던 의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일단 뭐 먹을지부터 정할까?”

“맞다, 아직 주문 아직 안 했었지.”

“어떤 코스로 먹고 싶어? 나는 B코스로 먹을 생각인데.”

“음...... 잠시만.”

메뉴판에 적혀 있는 코스들을 훑으면서 자연스럽게 송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이미 B코스로 정한 탓에 그런 송이를 바라보면서 웰컴 드링크를 마셨고.

‘확실히 달라지기는 했네.’

그렇게 관찰하다 보니 전과는 다른 송이의 모습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큰 건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지만 메이크업 스타일, 그리고 분위기가 달라졌으니까.

‘나는 흑발이 더 취향인 거 같네.’

송이는 둘 다 잘 어울렸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건 흑발인 거 같았다.

확고한 취향이 있다는 걸 하나 깨닫게 되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고.

“나도 B코스로 먹을게.”

“알겠어.”

아직 주문을 안 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직원과 눈이 바로 마주친 바람에 주문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와인을 못 마시는 게 아쉽지만.’

그거는 뭐 일 년 뒤면 성인이니까.

주문을 마치자 첫 번째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나는 송이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거 안 짚고 넘어갈 수가 없지.

“머리 갈색으로 염색했네?”

“아 응. 배역 때문에 어제 염색했어. 작중에 이미지 변신을 한 번 해서.”

“완전 따끈따끈한 거네. 갈색도 잘 어울려. 진짜 이미지 변신인데?”

“말이라도 고맙네요! 일부러 서프라이즈 하려고 말 안 했는데.”

내 말에 송이가 멋쩍게 웃었다.

그 뒤로 이어진 대화에서는 주로 서로의 일에 관한 이야기. 나는 해외패션위크를 하면서 어떻게 움직였는지와 송이는 어쩌다 캐스팅이 된 건지 비화를 듣고 있을 때쯤

“이 요리는......”

본격적인 코스 요리가 시작됐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먹으면서 간간이 대화를 나눴고, 음식 맛은.....

‘그럭저럭 괜찮네.’

비싼 값은 하는지 일단 눈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직접 먹었을 때도 그렇고 괜찮았다. 송이에게도 맛에 대해서 묻자 그럴 때마다 맛있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이미 캐톡이나 전화로 했던 대화도, 직접 실제로 보고 대화하니까 또 차원이 달랐다.

오랜만에 보는 거기도 하고 송이의 달라진 모습도 그렇고 직접 목소리를 듣고 직접 눈을 마주 한다는 게.

‘신기하다?’

작품 준비를 하면서 관리도 같이 받는 건지 피부도 그렇고 여러모로 어렸을 때의 송이의 얼굴과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의 송이 얼굴은 다른 애들보다 더 좋게 기억됐는데, 그것보다 더 진화했달까.

“너 팬미팅 한다며? 엄청 유명하던데.”

“아 맞아. 그거 준비하느라 요즘 엄청 바쁘거든.”

“그래?”

“응. 원래는 작게 할 생각이었는데 스케일이 훨씬 커져서......”

준비해야 할 게 늘기도 했고 팬미팅 자체의 퀄리티가 대폭 높아졌다. 그만큼 돈도 들었지.

일단 굿즈 의상으로 유필리아와 협업하게 되었고 팬미팅 때 입을 의상 착장도 총 세 벌로 정해서 추렸으니.

그 외에도 연습해야 하는 춤이라거나...... 할 게 은근 많았다.

“너도 하나 줄게. 좀 부끄럽기는 한데.”

송이에게도 하나 주려고 챙겨왔었던 화보집을 꺼내서 건넸다. 그러자 송이가 멍한 얼굴로 화보집을 받아 들었고,

“어어, 당사자 앞에 두고 바로 보는 게 어딨어.”

“괜찮아. 이야 너 이거 완전 잘 나왔는데?”

“어떤 거?”

“이거.”

거침없이 페이지를 넘기는 송이의 모습에 당황하다가 어느 한 구간에서 잘 나왔다고 멈추길래 뭔가해서 보니 셀린느 착장을 입고 찍었던 회사원 컨셉이었다.

‘의외로 저것도 반응 좋기는 했었지.’

그렇게 얼떨결에 송이의 픽을 알게 되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끝까지 전부 가볍게 훑자 송이는 쇼핑백에 화보집을 같이 넣었고.

“이제 디저트 달라고 할까?”

“응...... 근데 우연아.”

“어 왜?”

우리 쪽으로 직원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데, 송이가 나를 보면서 잠시 뜸 들이더니 이내 결심했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팬미팅 응모권은 어딨어?”

“치워드리겠습니다.”

그게 팬미팅 응모권 얘기인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접시를 치워주는 직원을 사이에 두고 나는 직원이 자리를 벗어날 때까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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