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chapter 109. 다 티 나잖아.
* * *
응모권? 이제 나도 있다 이 말이야.
송이는 자꾸만 올라가려고 하는 입꼬리를 애써 내렸다. 속으로는 이미 실실 웃고 있으면서도 우연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
음식을 해치운 지는 오래였지만, 아직 음식을 먹고 있는 우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도 오늘 꽤 힘줬다고 생각했는데.’
우연을 보니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세팅 받고 오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나 했을 게 분명했다. 미용실이라도 갔다 올 걸 하면서.
마지막으로 만났었을 때와는 달리 조금 여유가 생긴 덕에 우연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캐주얼한 차림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명품이었고.
딱히 박혀 있는 로고가 아니더라도 우연이 입은 그 자체만으로 부티가 났다.
“디저트로 나온 쇼콜라는......”
후, 이제 마지막이네.
‘다 먹으면 카페로 가자고 해야지.’
코스 요리를 가져오는 여자 직원이 그녀가 있는 그녀가 있는 쪽은 몇 번 쳐다보고, 계속해서 우연과 눈을 마주치려 한다는 게 보여서 불편했다.
사실을 중반쯤부터 눈치챘는데 말해서 뭐해.
쯧,
이번에도 우연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속으로 혀를 찼다.
근방에 있는 나름 프라이빗한 괜찮은 카페를 찾아놔서 디저트를 먹고 나는 대로 바로 가자고 할 심산이었다.
디저트 안내가 끝나고 직원이 뜨자 우연은 바로 포크를 들어 한 입 베어 물었고.
“맛있어?”
“응. 아 근데 엄청 달아서......”
으, 너무 단데?
한 입 넣자마자 입안에 퍼지는 단맛이 너무 강해 미간이 찌푸려졌다. 웬만한 거는 먹겠는데 이거는 너무 단 거 같네.
포크를 내려놓고 입가심으로 음료를 한 모금 마시자 우연이 그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슬그머니 내려다보니 그의 앞에 놓여져 있었던 작은 쇼콜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는 상태였고.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니네. 너 먹을래?”
“좋아!”
“자.”
우연의 앞에 있던 접시와 그녀의 것을 바꿔주었다. 그러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쇼콜라가 우연의 입안으로 직행했고.
‘내가 먹던 걸 우연이 먹었네.’
아까 그 직원이 이 장면을 봐야 하는데.
차오르는 만족감에 괜히 기분이 수직 상승했다. 우연의 행동 하나하나의 영향을 받는 것 같지만 나쁘지 않으니까 뭐.
이런 거에 있어서 한없이 털털해지는 우연을 알았기에 남들 눈에서라도 그렇게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 먹었으니까 이제 나갈까?”
“벌써? 마실 거 하나 시켜서 더 있어도 되는데......”
“내가 괜찮은 카페 찾아놨어. 거기 가서 마저 얘기하자.”
“오케이 콜.”
빠르게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우연이 주섬주섬 겉옷을 입으려는 걸 보고 빠르게 쇼핑백까지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송이는 성큼성큼 계산대로 향했고.
“계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내가 사준다고 했잖아! 잠시만요.”
미리 준비해놨던 주머니 속에 카드를 꺼내 내밀자 그와 동시에 뒤에서 부랴부랴 우연이 뛰어오는 게 느껴졌다.
뒤늦게 카드를 꺼내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결제가 되셔서요. 영수증도 같이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수고하세요.”
“...... 수고하세요.”
계산은 이미 되고 난 후였다.
‘남자한테 얻어먹을 수는 없지.’
직원이 건네준 카드를 받으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동안의 수입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 명색이 오랜만에 보는데.
그렇게 가게를 빠져나오자 누가 봐도 나 불만 있어요, 하는 표정의 우연이 눈에 들어왔다.
‘귀엽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귀엽게만 느껴진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물론 이 말을 꺼내면 우연이 질색할 걸 알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봐서 나도 사주고 싶었는데? 원래 돈은 먼저 내는 사람이 임자지.”
“그런 게 어딨어. 내가 먼저 사준다고 데려간 곳인데......”
“여깄다. 빨리 가기나 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하니 우연이 툴툴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오자 마스크를 올려서 얼굴이 반밖에 안 보였지만 그 안의 얼굴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매번 걷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미리 가야 할 길을 외워둔 덕분에 찾아뒀던 카페에 손쉽게 갈 수 있었다. 폼 안 나게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갈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카페에 도착하니, 확실히 바깥에서 봤었을 때보다 내부가 훨씬 나았다. 1층이 아니라 2층에 있어서 사람도 많이 안 오는 것 같았고.
“되게 분위기 있는데?”
“그렇다면 다행이고.”
좋게 말하면 분위기 있고 빈티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거기는 하지만, 칸막이가 있는 걸 보고 그런 곳이었다.
약간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니 확실히 다른 공간으로 분리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우연이 쓰고 있었던 마스크를 내렸다. 그래도 찾은 보람이 있네.
들어오는 동안 주위를 살펴보는 우연의 표정도 간간이 살펴본 결과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뭐 마실래?”
“나는 레모네이드.”
“배는 안 고프지?”
“응 배불러.”
직원을 호출해 과일볼 하나와 아메리카노 한 잔, 레모네이드 한 잔을 주문했다.
손님이 많지 않은 건지 확실히 음식점보다는 훨씬 빠르게 주문한 것들이 나왔고, 음료를 한 입 마시더니 이내 상큼하다며 마음에 든다고 우연이 입을 열었다.
비교적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했던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 점차 어색한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 그 자체였다.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피렌체에 가보고 싶어. 공적으로 말고도......”
재잘거리는 우연의 모습을 듣고,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근래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아서 그런가.’
일종의 휴식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힐링이라고 하지만, 송이는 우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헐, 이거 나 혼자 다 먹은 거야?”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기는 뭐가 그럴 수 있어. 카페는 내가 쏠 테니까 얼른 하나 더 시켜.”
송이가 얘기하는 동안 과일볼 안에 들어있던 과일을 전부 먹어버린 우연이 기어코 과일볼 하나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런 우연을 보면서 바라보면서 그녀는 또다시 실없는 생각을 했지만,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우연에게는 들리지 않을 말들이었다.
둘의 사이는 여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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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전과는 다른 대화의 양상인 것 같았다.
‘송이도 성숙해진 거 같고.’
어딘가 모르게 배부른 맹수처럼 나른한 얼굴을 할 때면 내가 알던 송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지도 많이 변했고.
‘그동안 내가 무심하기는 했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송이에 대한 관심은 덜한 편이었다. 왜냐하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는 친구니까.
은연중에 비치는 표정에서는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종종 나도 다른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들어가야지. 데려다줄까?”
“괜찮아. 너 내일 또 나가야 되잖아 집 가서 쉬어.”
“그래도...... 아니다. 택시 탈 때까지만 기다릴게 그럼.”
뭔가를 더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근데 그러면 뭐해. 얼굴에서 아쉬운 티가 팍팍 나는데.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깜깜한 밤을 배경으로 걸음을 옮겨 도로 쪽으로 향했고, 핸드폰으로 부른 콜택시를 기다리면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앞으로 너 나온다는 드라마 꼭 본방사수 할게.”
“그래 주면 고맙고.”
“다음에는 내가 꼭 밥 사줄 테니까......”
“그럼 나는 선물 사와야지.”
참고로 무슨 선물 사다줄지는 모른다?
송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나는 다 좋아하니까 아무거나 줘도 돼.”
“싫은데? 똑같이 명품 사줄 건데.”
“네가 돈이 어딨다고......”
“봐준다는 드라마 찍으면 돈 나오네요~”
아 진짜.
결국 말싸움에서 패배한 내가 송이를 쳐다보니 아직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 그대로 나를 쳐다봤다.
‘이제 곧 있으면 택시 올 거 같은데.’
이대로 헤어지려니까 조금 아쉬운 건 있었다. 이런 평범한 것들 말고도 다른 재밌는 것들을 많이 해볼 수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송이랑은 해본 게 많네.’
시간이 야속하게도 너무 빠르게 흘러갈 뿐이었다.
“저기 서 있는 택시가 네가 부른 거 아니야?”
“아마도.”
그때 신호에 걸려 있는 택시 한 대가 멀리서 보였다.
나는 그런 택시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송이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그녀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어느덧 사라져 있고 아쉬움이 다시 드러나 있었다.
예전부터 계속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새삼스럽게도 하지 못하는 말.
그런 나에 비해서 송이가 내게 하지 못한 말들은 더욱 많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좋은 남자 만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까지도 날 좋아하고 있다니, 완전 바보 아닌가.
나는 신발 앞코를 바닥으로 툭 쳤다. 신호에 걸려 있었던 택시가 신호가 바뀌자마자 곧장 우리 앞으로 다가와 멈춰 섰고.
이제는 우리가 진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택시 문을 열면서 입을 떼 인사를 대신한 말을 뱉었고
“앞으로는 1년에 두 번 보지 말고, 열 번 보자.”
그대로 택시에 올라타 문을 닫은 채 기사님께 출발해달라고 말한 뒤 주소를 읊었다.
비록 돌아오는 송이의 대답은 못 들었지만.
“표정에서 저렇게 다 티 나는데 연기는 어떻게 하는 거야......”
일이 최우선이 아닌 지금의 나에게는, 유난히 송이가 마음에 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