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12화 (112/137)

〈 112화 〉 chapter 110. 팬미팅 준비

* * *

“굳이 나눌 필요 없기는 하지만 일단 서양권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아예 활동 의사가 없는 건 아니죠?”

“네. 그런 건 아니고 우선 한쪽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있는 나라가 버젓이 눈앞에 있는데,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싶었다.

특히 이번에 더 주목해야 할 건 미우미우를 통해 들어온 프라다의 제의겠지.

그 외에도 셀린느나 다음 시즌에 관해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는 브랜드들이 꽤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이쪽에 사활을 거는 게 맞지.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나 일본 같은 동양권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한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기도 하고

중국은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고 가느냐 마느냐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뒤로 밀어도 나쁘지 않으니까.

반대로 일본에서는 거절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마음에 안 드는 티를 낼 순 있어도, 아마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우연 군의 생각은 잘 알았어요. 다른 에이전시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그럼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리디아 에이전시와 IMG 에이전시는 아마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을까. 당연히 그들의 홈그라운드였으니까 환영할 만했다.

‘벌써 다음 시즌을 슬슬 논할 때가 됐다니.’

일하는 것도 일하는 거지만 노는 것도 만만치 않게 시간이 훅 가는 느낌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당장 얼마 안 남은 일 얘기부터 해보죠. 팬미팅 관련해서......”

팬미팅.

세 글자만 들어도 입가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다가오는 시즌과는 또 다르게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었으니까.

비록 가볍게 팬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것과는 반대로 예상치 못하게 스케일이 커져버긴 했지만, 알음알음 퍼져나간 탓에 더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도 열심하려고 했는데.’

서아와의 첫 만남,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배웠던 무용과 몸 수업을 마지막으로 처음 춤을 따로 배워봤다.

이런 쪽으로는 완전 처음이었는데 그래도 몸치는 아니라서 다행이지.

물론 몸치였어도 강행했거나 다른 돌파구를 찾았겠지만 최근 들은 게 칭찬뿐이어서 춤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만반에 준비를 다 했어요 저는.”

“이쪽도......라고 하기에는 아직 당일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것들이 많네요.”

하지만 문제가 있거나 준비가 미흡한 건 아니라고 캐스팅 팀장이 단언했다.

그러면 된 거지 뭐.

나는 확정된 팬미팅 프로그램들과 시간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그동안 먼발치에서만 응원받았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거니까. 그만큼 의미도 컸다.

“사람들이 많이 신청했나요?”

“응모요? 말도 마세요 진짜...... 공정성에 문제 있을까 봐 그쪽 담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좋은 거겠죠?”

“우연 군 입장에서는 완전 좋은 거죠.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도 그렇고.”

하기야 죽어 나가는 그쪽 담당뿐이었다.

캐스팅 팀장도 말로만 전해 들었는지 크게 유감을 표하지는 않았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팬미팅에서 진행할 사인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원래 사인보다는 아무래도 두 번째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크게 변한 건 없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예요.”

원래도 사인을 완전히 바꿀 생각은 없었지만 팬미팅에서 많은 이들에게 직접 사인을 해줘야 했기 때문에 조금 업그레이드를 시켰다.

여태껏 길거리에서 혹은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만 해줬던 사인이지만.

‘사인도 멋있어야지.’

캐스팅 팀장이 단번에 두 번째로 골라서 그런가, 낙점된 두 번째 사인의 모양새가 제일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오늘도 레슨 있댔죠?”

“네. 마지막이에요.”

“팔자에도 없는 춤 연습하느라 고생하네요. 끝까지 힘내요.”

“그래야죠. 팀장님도 힘내시고, 팬미팅 담당 분들도 힘내라고 전해주세요.”

“좋아요.”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밑에 층 사무실로 가서 캐스팅 팀장은 자연스럽게 실장을 찾았고, 나는 쇼파에 앉아있던 예진과 함께 회사를 벗어났다.

다섯 번째 춤 레슨이자 마지막 연습.

‘이번에는 댄서들이랑도 같이 한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연습하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예진이 힐끗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오늘은 연습하는 거 봐도 되지?”

“응. 오늘은 봐도 돼.”

처음 배워 보는 거기도 하고 제대로 숙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연습을 전부 못 보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거의 완성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보고 어땠냐고 물어봐야지.’

달리는 차 안에서 보이는 바깥의 풍경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그리고 팬미팅 준비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

모델 우연의 팬미팅 소식이 맨 처음 알려졌을 때는 여러 곳에서 이슈가 됐다.

원래부터 우연에게 관심이 많았던 팬카페나 팬 페이지뿐만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까지도 영향이 갈 정도였고.

그건 전적으로 우연의 성별과 그의 외모에 있었다.

“진짜 존나 예쁘다니까.”

이건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어. 화보를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몇 년을 활동했다고는 하지만 SNS에서 처음 보는 우연의 사진 한 장에 맛이 가버려서 화보집까지 사버렸다.

팬미팅 응모에 당첨될 수 있도록 화보집을 무려 열 개를 넘게 샀고.

‘아슬아슬할 거 같긴 한데.’

이 이상의 구매는 금전적으로 힘들었다. 아니었다면 안전하게 몇 개 더 샀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응모는 끝났으니까.

남자 아이돌을 판다는 친구의 의견으로는 아마 그 정도 샀으면 그래도 될 거라고는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불안한 법이었다.

추첨이라는 게 미치게 해.

혹시 몰라 가입했었던 팬카페에서도 이미 그녀처럼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전례가 없었기에 더 종잡을 수가 없으니까.

“내일 4시에 문자 온다니까 뭐, 기다려야지.”

그러면서도 기대 반, 걱정 반, 설렘 가득으로 다시 한번 우연의 감상용 화보집을 넘겨가며 감상했다.

‘나도 남자로 태어나서, 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짜 뭐든 했을 거 같네.’

모델도 어울리지만 다른 직업들도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얼굴이 개연성이라고.

그 말이 틀린 것 같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우연의 화보집을 다 보고 나자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핸드폰을 들어 팬카페를 스윽 눈으로 훑었고

[너네 응모권 몇 개였음?]

[ㅋㅋㅋㅋㅋㅋ나안될거같은데 그냥 팬미팅 취소해라]

[진짜 응모권 중고 거래 지긋지긋하다]

[만약에 팬미팅 가게 되면......]

[팬미팅에서 뭐함? 사인하고 선물주고]

게시판에는 팬미팅을 주제로 중구난방의 말들이 가득했다.

그중에서 흥미가 가는 몇 개의 글들은 클릭해서 내용이나 댓글을 봤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얘네보다는 낫지.’

눈팅만 하는 거기는 하지만 그래도 클린하잖아.

그렇게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팬카페를 훑고 있다가 못 봤던 베스트 글을 보고 바로 클릭해서 들어갔고.

[BEST] 데마시아 오피셜 아닌 오피셜;;

모르는 사람들 많은 거 같아서 가져왔음. 찔끔찔끔 나오는 게 좀 빡치긴 한데 이거라도 어디임.

일단 제일 말 많았던 응모권 중고 거래는 전부 다 막혔고 ㅇㅇ 이미 알고 있었긴 했지만 정확한 날짜, 일시(얼마나 하는지), 장소도 공개됐음.

(사진)

이거는 ㄹㅇ 우연이 관련으로 따로 뜬 게 아니라 팝업도 안 띄워주고 지들 공홈 공지 끝자락에 적어놨더라. 뭐 크게 꼭 알아야 하는 정보는 아니지만 아무튼

팬미팅에서 만나자 ㅅㅂ

추천 8956개 댓글 4536개

: 데마시아 일 똑바로 안 하냐

┖ 요즘 이거 때문에 엄청 예민한데 ㄹㅇㅋㅋ

┖ 진짜 현기증 날 거 같아 결과 언제 나오냐고!!!!

: 제발가게해주세요제발가헤주세요제발가게해주세요.....

┖ 이런다고 안 뽑힌다 아그야.

┖ 혹시 모르지 응모권 한 개밖에 없는데 뽑힐 수도

┖ 그건 진짜 희망편이고ㅋㅋ

: 근데 시간 길어서 뭐할지 궁금하기는 하다. 몇 개 정해진 건 있지만

┖ 질문 답하기, 사인, 선물, 모델이니까 옷 갈아입으려나?

┖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옷 갈아입기?

┖ 이거 못 참거든요.

┖ 그런 뜻이 아니잖아ㅋㅋㅋㅋ 씹

저 시간 동안 온전히 팬미팅을 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혀 있는 시간으로는 네 시간가량이었다.

사인과 선물 교환은 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거기에 시간이 많이 쓰이긴 할 텐데.

또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남자 모델이 팬미팅 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해서 모르겠다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직접 경험해 보면 되지.’

한 번도 가본 적 없었지만 그래도 잘 갈 자신 있었다.

“아 몰라. 게임이나 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떨쳐 내려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리고 다음날 4시, 1시간 전부터 소리를 최대로 한 채로 기다렸건만 안타깝게도 뜨는 알림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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