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13화 (113/137)

〈 113화 〉 chapter 111. 기대해

* * *

노래 혹은 춤.

팬미팅이나 팬사인회에서 무조건 하나쯤은 한다는데, 개인적으로 노래는 내 성에 차지 않아서 가볍게 제쳤다.

그래서 준비하기로 한 게 춤이었고, 커버 댄스를 하기 위해서 이런 나에게 춤을 가르쳐줄 한 댄서가 먼저 곡 선정을 위해 자료 영상을 여럿 가져왔다.

‘근데 이건 좀......’

비교적 동작이 쉬어보기는 하지만 귀여운 포인트 안무가 중간중간 하나씩은 나오는 게 약간 인상이 찌푸려졌다.

왜? 그걸 남자 아이돌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고 있으니까.

혐오감이 드는 수준은 아니어도 하마터면 손발이 사라질 뻔했다. 남자가 끼 부리는 걸 화면상으로 보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불편했으니까.

이걸 만약에 나보고 하라고 한다면 바로 배 째라고 드러누워야지.

“이런 거 말고 다른 스타일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네! 당연하죠!”

다행히도 드러누울 일은 없었다.

대답만큼은 그 누구보다 힘찬 게 한 댄서가 다른 영상을 틀어주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컨셉과 연도별 안무에 나는 고민에 빠져버렸고.

그래, 이왕 연습해야 하는 거.

“이걸로 할게요.”

“오, 이게 많이 유명하기는 하죠. 이미지랑 반대셔서 반응도 엄청 좋을 거 같은데..... 대신 연습이 조금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빡센 걸로 다가 하나 해야지.

확신에 찬 뉘앙스로 대답했지만 내심 속으로는 걱정이 없잖아 있긴 있었다.

정 모양새가 별로면 중간에 다른 곡으로 바꾸면 그만이겠지만

‘아무래도 댄서 취향이 처음에 봤었던 곡들 쪽인 거 같아.’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갔었던 아쉬움이 보였었다.

여차하면 그런 곡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나는 이 곡 하나를 완벽하게 마스터하겠다는 생각으로 굳게 다짐했다.

‘애교는 안 돼.’

그러자 나를 보고 있던 댄서가 해당 영상의 안무를 다시 재생하면서 한 구간당 멈춰 세우기 시작했고

“여기서 발을 뒤로 조금만 더 빼야 해요. 손은 그대로 있고 아 지금 좋아요!!”

“...... 네.”

한 동작하고 멈추고, 하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왜 춤을 추면 살이 빠지는지 알겠네.’

너무 절실히 알게 되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선택한 춤이다 견뎌.

결국 첫째 날에는 1절 후렴 전까지 진도를 나갔고, 이렇게 배워서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서도 영상을 몇 번이나 보면서 연습했다.

그 결과 두 번째 레슨에서는 처음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해졌다고 되려 칭찬을 들었다.

‘절대 다음은 없어. 그래도 있다면 무조건 쉬운 걸로 한다.’

진도를 전부 나가서 완곡을 할 줄 알게 되었을 때는 한 번 추고 바닥에 쓰러져 헉헉대기 바빴다.

하다 보면 는다고 나름 시간이 점점 지나면 지날수록 춤이 몸에 익어가는 게 느껴졌지만 알 게 뭐야.

이렇게 힘든데.

“우연 씨는 아이돌 했어도 참 잘했을 거 같아요. 분명! 팬들을 휩쓸고도 남았을걸요?!”

그놈의 아이돌론은 이제 인터넷에서뿐만 아니라 댄서에게도 감염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과연, 이라고 눈빛으로 쳐다봤던 거 같은데 지금은 이 정도면 엄청 잘하는 거라면서 치켜세우기에 바빴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더 깊이 생각하려고 들지 않았다. 한바탕 춤을 추고 나면 주접을 떠는 게 어느덧 익숙해졌고 나는 체념했을 뿐이었다.

주접을 떨든지 말든지 물을 마시고, 바닥에도 엎어져 있었고.

어찌 됐든 간에 팬미팅에서 보여줄 커버 댄스 연습은 그렇게 나름 순탄하다면 순탄하다고 할 수 있게 흘러갔다.

“아 헉, 어때, 요?”

“...... 개쩔어.”

대망의 마지막 연습날, 댄서들과 함께 춘 풀 버전의 커버 댄스를 처음으로 예진에게 보여주자 그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엄지를 들어 올렸고.

나는 몸을 세운 채로 잠시 숨을 고르다가 물 한 번 마시니 괜찮아졌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킬링 파트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있긴 했으나 집에 가서 표정 연기나 조금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연습 때는 예진이 있었지만 그녀가 있는 줄도 모를 만큼 하얗게 불태웠고.

밖에서도 팬미팅, 집에 와서도 팬미팅.

이거 이래서야 팬미팅을

“내가 더 기대하고 있는 거 같네.”

팬들보다 내가 더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보여줄 것도 있고, 전해줄 것도 있는데 아마 다들 좋아해 주겠지.

두 번째 생을 살면서 가장, 오로지 순수한 의도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

조용하고 단조로운 일상들 속에서 팬미팅 준비는 막을 내렸다.

소리 소문 없이 한순간에 당일이 되자, 여느 때와 똑같이 예진의 차를 타고 팬미팅이 열릴 장소로 향했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전부 어떻게든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게끔 애쓴 시간이 많았다.

“저 오늘 괜찮아요?”

“제가 봤었던 우연 씨 중에 최고예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말뿐이라도 고마워요.”

“말뿐이겠어요? 이게 거짓말이면 전 나가 죽어야 돼요.”

나가 죽어야 할 것까지야......

하지만 진지한 표정의 메이크업리스트 얼굴을 보고 나는 하하, 웃으면서 웃음으로 무마했다. 정말 진심인 거 같네 이 사람.

‘애초에 괜찮다는 말을 들으려고 물어본 거였는데.’

근 일주일 동안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아서 메이크업을 하고 나니 그 빛을 발하는 거 같았다.

‘피부 하나는 좋으니까.’

적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외에도 화보 촬영 때는 잘 하지 않는 반짝이 같은 게 눈 주위에서 강한 존재감을 뿜어냈고.

그동안 특이한 메이크업을 많이 해서 그런가 오히려 이런 메이크업이 조금 어색했다.

‘다른 연예인들은 이런 메이크업을 주로 하는 건가?’

반짝거리기도 하고, 깔끔한 화장이 얼굴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았다. 착시효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드는 메이크업이기도 했고.

역시 메이크업 한 번으로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의상이 총 세 벌이어서 전부 다 어울릴만한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했어요. 뭐든지 소화해 내겠지만.”

“좋네요.”

팬미팅에서 입을 착장은 총 세 벌.

1부와 2부 각각 한 벌, 그리고 춤출 때 한 벌 해서 총 세 벌이었다.

브랜드부터 시작해 디자인과 색상까지 고려한 착장.

데마시아에서 영상으로도 찍고 사진도 많이 찍는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을 거였다. 무려 첫 팬미팅인데, 남길 수 있는 건 다 남겨야지.

모델이어서 특히나 더 스타일링에 힘을 쏟았다.

“벨트는 늘어뜨리는 게 좋겠죠?”

“네. 그게 좋을 거 같아요.”

“허리가 진짜 개미허리네요.”

“감사합니다.”

벨트가 길게 늘어 뜨려졌다.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점검하면서 거울을 바라보니 사람은 꾸미고 봐야 한다는 말이 왜 있는지 알 정도로 완벽한 모습이 비쳤다.

“나 떨려.”

“떨린다고? 지금?”

“응. 쇼랑은 다른 떨림이야.”

“팬미팅은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춤이 어려워도 네가 열심히 연습 한 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괜찮아졌으니까 그만 말해도 돼.”

내 떨린다는 소리에 나보다 더 당황한듯한 예진의 말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자 내가 먼저 끊었다.

‘실수할 거 같아서 떨리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쇼와는 다르게 떨리다는 거였다.

누가 올지는 몰라도 이미 그들의 존재가 나의 팬이라는 거에 있어서 묘한 내적 친밀감이 샘솟기도 했고.

첫 만남에 대한 설렘, 그리고 떨림?

컨디션도 문제없었고 기분도 좋았다. 따로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문제도 없겠지.

“전부 들어와서 착석하셨대요. 이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내가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내내 옆을 지키고 있던 스탭이 말했다.

그대로 대기실을 빠져나와 팬미팅이 열릴 홀로 향했고, 무대 뒤편에 도착하니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무대 바깥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금. 지금?’

내게 올라가라고 사인을 보내는 스탭을 보다가 이내 걸음을 내디뎠고

그리 세지 않은 조명, 충분히 보이는 객석.

무대의 정중앙으로 가 손에 쥐고 있던 마이크를 들어 처음으로 입을 뗐을 때는

“안녕하세요! 이우연입니다.”

3초의 적막 그리고

“와아아아!!!!!”

10초의 함성으로 나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미소를 환하게 지을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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