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chapter 112. 팬미팅 (1)
* * *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딱 알맞게 떨어져 있었다. 그리 가깝지도 않고, 그리 멀지도 않고.
그래서인지 맨 앞에 앉은 몇몇 이들을 눈으로 훑자 보다 더 확실하게 보였다.
‘아, 당신들이 내 팬이구나.’
솔직히 말해 마이크를 직접 들어본 적도 거의 없고, 이런 팬미팅을 연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실수할 거라는 생각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은 대신
와아아아!
미쳤다 미쳤어!
존나 예뻐 미친!
가만히 서서 객석을 바라봤다.
어느 하나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다 있다는 사실이 체감되었지만 방금 본 앞줄을 제외하고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어차피 이따 사인도 하니까.’
한 명, 한 명 살필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보는 광경을 눈에 담아낸 뒤, 귀로 들으면서 있다가 마이크를 입에 다시 가져다 댔고 말해도 괜찮겠다 싶을 때쯤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알고 있는 인원이 맞는 거죠? 혹시 저 몰래 따로 인원을 늘린 건가 싶어서요. 함성이 엄청나네요 정말.”
말 그대로 격한 환영 인사였다.
이제는 함성이 아닌 웃는 소리와 여기저기서 말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중에서는 반이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소리였다.
그것들도 전부 채팅이나 댓글로만 봤었던 것들인데.
“저도 팬미팅이 처음이라서 너무 떨리는데 그래서 기대도 많이 했고 준비도 많이 해서 왔어요. 부디 제 팬분들이 오늘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당!! 연!! 하!! 지!!!”
“푸흡, 아.”
뭐야 이 엄청난 목청.
‘나만 마이크 들고 있는 거 맞지?’
순간적으로 사례가 들릴 뻔했지만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객석을 쳐다보니 다른 팬들도 웃고 있었다. 정말 목청이 어마어마하네.
그렇게 목청 좋은 팬의 목소리는 팬미팅 하는 내내, 귀에 때려 박히는 듯이 들려오곤 했다.
‘잊지 못하는 팬 1위는 저 사람이다.’
팬미팅 1부는 가볍게 사전에 미리 받은 Q&A. 그리고 단체 게임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퀴즈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고전이기는 해도,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토크를 끝내 의자에 앉으니 스탭이 포스트잇 붙여져 있는 판을 들고 와 내 옆에 세우고 갔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Q&A를 진행하겠다는 말과 함께 왼쪽 제일 끝에 붙어 있었던 포스트잇을 뗐다.
어떻게 보면 나랑 제일 멀리 있는 포스트잇을 뗐는데
“첫 번째 질문이 어......”
그렇게 뽑은 첫 번째 질문은 난감하게도.
“여자친구 있나요? 지금까지 연애한 횟수는 몇 번인가요, 라고 적혀 있네요. 이게 첫 질문인데...... 뭐야 다들 왜 이렇게 조용해지셨어요?”
방금 전까지 이렇게 조용하지는 않았는데 단숨에 조용해졌다.
왜인지는 알 거 같다만 이거에 대한 답은 간단하고도 시시해서. 씁쓸하지만 빠르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겠다.
“저 모태 솔로예요. 연애 횟수는 제로, 여자친구는 없음!”
동시에 에이, 하는 소리와 함께 의심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당당했다.
“저는 거짓말 못 해서 이런 걸로 거짓말 못해요. 그리고 중학생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해서 정신이 없었거든요. 연애보다 집중해야 할 것들이 많았달까.”
이대로 다음 질문으로는 바로 넘어갈 수 없을 거 같아 사족을 붙이고 나자 그제서야 수긍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없다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모델이고, 연애와 여자보다 우선시 됐었던 게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쪽 문제에 있어서 긍정적인 쪽이라고 봐야 하려나.
“다음 질문은 어, 블로그에 관한 질문이네요?”
다양한 질문들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중에서도 내가 이런 질문들을 뽑은 건지는 몰라도 첫 번째 질문에 이어 두 번째 질문도 평범하지가 않았다.
‘보통 모델이 된 계기가 뭐냐, 제일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냐 그런 거 아닌가?’
다른 준비를 열심히 한 탓에 Q&A에는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어서 크게 신경 안 썼는데.
겉으로는 티가 안 났어도 속으로 조금씩 놀랄 수밖에 없었다.
“블로그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한데, 사실 요즘에는 글을 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요. 그때의 글들은 전부 그때의 감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조차도 안 본 지 오래됐는데.
이제 일 년만 있으면 나이상으로 성인이 되는 해가 다가오고, 학교를 다니지 않은 채 일을 바쁘게 하다 보니 글 쓸 생각 같은 건 전혀 나지 않았다.
‘진짜 중2 감성인데.’
약간의 흑역사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팬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테니 대충 얼버무렸다. 블로그로도 관심을 많이 받았었으니까.
아직까지도 좋아하는 건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질문은 그래도 평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해외 활동에 관한 질문들도 있었고, 내 개인적인 것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외국 나가면 진짜 한국 음식이 그렇게 그립지 않을 수가 없어요. 물론 저는 살도 빼야 해서 먹지는 못하는데......”
“살이 어딨어!!”
“...... 여기?”
답변을 하던 도중 어디선가 또 우렁차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다가 이내 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아무래도 뭔가를 먹으면 배가 나오는 게 사람의 이치 아니겠어?’
하지만 팬들의 야유를 들으면서 배를 가리키던 손은 그대로 머리를 긁었다. 당연히 지금은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까 안 나왔지.
그렇게 활동, 취미 위주로 Q&A를 진행하다가 소수점까지 정확하게 내 키 맞추기, 현재 몸무게 맞추기 등의 퀴즈를 내면서 상품을 몇 개 나눠줬고.
팬들과 하는 단체 게임에서는 내가 너무 잘하는 바람에 두 명만이 상품을 받아 갔다.
이후 다시 한번 진행해서 몇몇 사람들이 타갔고, 그 때문에 예상했던 시간을 조금 넘겨버렸고.
“시간이 좀 지체된 거 같네요. 2부 넘어가기 전에 딱 하나 해야 하는 게 남았는데 저 5분만 기다려줄 수 있어요?”
네에ㅡ
대답과 함께 밤새도록 기다릴 수 있다는 둥의 재밌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의상 갈아입고 와야지.’
나는 얼른 다녀오겠다며 무대에서 내려왔고, 스탭의 안내를 받아 무대 뒤편 한곳에 위치한 간이 탈의실로 들어갔다.
도와주는 헬퍼가 없어도, 옷 갈아입는 거 속도 하나만큼은 빠르지.
“잠깐만 위에 봐주세요. 입술은 지우고 다른 걸로 바를게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곧바로 세 사람이 달라붙어서 빠르게 옷과 메이크업을 점검했다.
익숙하게 손길을 받아내며 신발까지 갈아 신으니 준비는 완전히 끝.
아직 1분도 넘게 남았다며 천천히 하라는 스탭의 말이 들려왔지만 천천히 할 수가 없었다.
무대 뒤에는 댄서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고, 무대 밖에서는 팬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됐나요?”
“네! 이제 됐어요! 완벽합니다!”
“감사합니다.”
올라갈 준비가 됐다고 사인을 보내자 그와 동시에 불이 꺼졌다.
바닥에 붙여져 있는 야광 스티커를 보면서 댄서들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고.
정중앙에 위치해 정면을 응시한 채로 1초, 2초, 3초를 세었을 때쯤.
둥.
BOY....!
불이 켜짐과 동시에 음악이 재생되었다. 크게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에 몸의 긴장을 풀고 천천히 움직여
“와아악!!! 와아아악!”
작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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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핫하다 핫해.
이런 게 팬미팅?
열기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정말 이런 걸 모르고 살았다니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본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착실히 눈동자는 떨리면서 무대를 응시하고 있지만.
응원봉도 뭣도 없어서 불끈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진짜 미쳤나봐 이우연!!!”
“헐..... 헐......”
“대박. 대애박.”
주변에서 아무렇게나 내뱉는 감탄사들은 이제 패시브였다.
능구렁이같이 움직이는 우연의 몸에 넋을 잃고 쳐다보기에 바빴고, 그러면서 곡의 응원구호가 나오면 저절로 외쳐지긴 했다만.
강렬하고 단단한 비트에 반해서 요염한 여자 아이돌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이거 재작년에 완전 히트 쳤던 곡이잖아.’
중독성 있는 노래뿐만 아니라 춤도 같이 화제가 돼서 너도나도 따라 추며 유행으로 번져갔었다, 물론 춤 잘 추고 얼굴 좀 생긴 애들이.
그런데.
모델이라며.
모델이라며.
모델 맞아?
아이돌 팬미팅을 방불케 하는 외침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 옷 빨은 오지게 잘 받네. 이건 모델이라서 그런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끼면서도 착실히 감상한 끝에 3분은 훅하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 마지막 동작을 한 채로 다시 불이 꺼졌는데.
음악이 꺼져서 오히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후, 쉬는, 시간 10분! 화장실 갔다 오시고, 하아, 2부에서 봐요!”
암흑 속에서 들려오는 우연의 목소리.
춤을 추고 나서인지 숨을 고르는 우연의 낮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서 들려왔다.
그렇게 다시 불이 켜졌지만 무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제 다음 2부에서는 사인도 받으면서 선물도 줘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 난 얘한테 뼈를 묻어야겠다.”
앉은 상태 그대로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부로, 더 좋아하면 더 좋아했지 탈덕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