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chapter 123. 그래서 뭐가 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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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때가 됐다.
본격적으로 해외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우연아!!! 우연아!!!!”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우연씨. 여기요!”
“진짜 미쳤다!!!! 이거 선물인데 받아가요!!!”
그야말로 아비규환.
기억 속에 한적했었던 공항을 떠올려보자 지금과 비교하자면 다른 의미로 비교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에이전시에서 이 모든 사태를 예측했는지 내게는 경호원을 붙였고, 내 많은 캐리어들도 이제 내 손을 떠나 나는 그저 가방 하나만 맨 채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몇 개의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으며.
선물을 받아주거나, 사인을 해주는 등의 다른 요청사항들은 전부 들어주지 못했기에 일부러 팬들에게는 자주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다 나 보러 온 사람들인데.’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손 인사를 해주었고, 우리는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서 공항 안을 움직였다.
“우연아 가지마!!!!”
“에, 저 가야 돼요. 가서 예쁜 사진 많이 찍어올게요!”
맨 앞에 있었던 팬이 가지 말라고 우렁차게 말하자 나는 웃으면서 대답해줬다.
그리고 이제 이동하기 위해서 몸을 돌리려는데
‘송이?’
사람들 틈바구니로 모자를 쓴 익숙한 실루엣이 잠깐 보였던 것 같았다. 근데 걔가 여기 왜 있어.
‘그냥 비슷한 사람인가 보지.’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니었고, 1초 송이로 보였던 사람은 이미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파묻혀서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딜레이 없이, 혼잡한 공항을 떠나 비행기 표를 들고 곧장 탑승구로 향했고.
“후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그러게. 확실히 전보다 인기가 많아진 게 체감된다.”
좌석은 당연히 비즈니스석이었다.
승무원의 인사를 받고 자리에 앉자 바로 옆자리에는 예진이 앉았고.
몸을 뒤로 기대니 옷 때문에 불편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공항패션을 생각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코디한 덕분에 편한 거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래도 사진이 많이 찍혔으니, 그걸로 됐지 뭐.
모델 우연의 공항패션이라며 올라갈 기사들과 사진들을 생각하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좀 편해질 테니까.
‘나중에 어떻게 기사 났는지나 검색해 봐야지.’
그나저나 앞으로 오늘과도 같은 공황을 마주할 걸 생각하니 조금 질렸다. 몰래 들어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알아버려서.
“인기가 많아져서 좋은 거...... 맞겠죠?”
“당연하지. 뭘 하든지 일단 관심받으면 좋잖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예진을 보고 나는 살짝 미소 지었다.
확실히 사람들의 관심이 하나의 척도가 되는 만큼, 아예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이렇게 출국할 때 기사 몇 개라도 더 나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알지만.
‘그게 앞으로의 일상생활에도 미친다는 게 단점이지.’
그 점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행기가 이륙하자 안내방송을 제외한 정적이 흘렀고, 일본을 가는 데는 가까웠기 때문에 약 두 시간 정도 뒤면 내릴 예정이었다.
‘일본에는 사람 별로 없겠지 뭐.’
나는 가면서 볼 영화를 미리 노트북에 다운 받아 와서 주섬주섬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예진이 있는 쪽을 힐끔 보니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잠깐의 비행 동안에도 중간중간 오는 승무원에게 괜찮다고 대답한 뒤 영화에만 집중했다.
“도착했어.”
“아 벌써요?”
헤드셋을 끼고 있느라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못 들었다.
‘이제 막 클라이맥스에 접어든 참인데.’
나중에 다시 봐야지. 헤드셋을 벗고 다시금 울리는 도착 안내방송을 들으며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확실히 이곳이 일본의 공항이라는 게 물씬 느껴질 정도였고.
“이거는 제가 가져갈게요.”
내 짐까지 같이 가져가고 있는 예진을 보면서 예진의 짐이 담겨져 있는 카트를 내가 밀면서 가져갔다.
졸지에 서로의 짐을 들어주고 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아무튼.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자 또 많은 짐을 내리는데 정신이 없었다.
“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얼른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직원이 도와준 캐리어들 사이에 서 있으면서 예진이 체크인하고 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 왜 안 오지.’
어쩐지 카운터에 계속 머물러 있는 예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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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 하는데 한 시간이라니.”
끝내 방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예진의 얼굴도 반쯤 영혼이 가출한 상태였다.
오자마자 호텔 체크인에 1시간이 소요되면서 진이란 진은 다 빠졌으니까. 예진이 직원을 상대하면서도 회사와 전화하고 하는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렸다.
종국에는 나도 나서서 어떻게든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려 했으나 실패.
마땅히 다른 호텔을 찾을만한 곳도 없었고, 이미 예약은 되어 있는 상태였으며 짐도 많아 번거로운 탓에 끈덕지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전부 돌려서 말한다는데.’
뭐가 문제인지를 명확하게 안 알려주고 마냥 웃으면서 죄송하다, 확인해 보겠다 등 듣다가 속 터질 뻔한 적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짜 이건 무조건 클레임이야.”
아마 예진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찌 됐던 간, 체크인까지 끝났으니 이제 할 건 방에서 푹 쉬는 일만 남았으니까.
“아웃스타그램에 올려야지.”
비행기 안에서 찍은 사진, 택시 안에서 찍은 사진.
사진들과 함께 덧붙여서 체크인이 1시간이나 걸려 피곤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리기를 누르자 순식간에 피드가 올라갔고.
가족들이 있는 단톡방에도 잘 도착했다고 캐톡을 보내려는데, 그 밑에 있는 송이의 캐톡이 눈에 띄었다.
[송이: 조심히 가고 수고해]
나는 가족들에게도 메시지를 보내고, 송이에게도 잘 도착했다며 캐톡을 보냈다.
“으아아아.”
초밥 먹고 싶다.
일본에 왔음에도 먹을 수 없는 것들 천지였기 때문에, 자유를 잃어버린 나는 입맛만 다시면서 몸을 스트레칭했다.
당장 내일부터 이루어질 화보 촬영을 생각하면서 미리 받았던 컨셉 시안을 한 번 더 눈으로 확인했고.
‘스트릿 패션.’
일본 특유의 스트릿 패션 감성이 뭔지 알기 때문에 감을 잡는 건 쉬웠다.
전 시즌에는 패션위크에 스트릿 패션이 잘 없어서 이렇게 제대로 하는 건 또 처음이지만.
반항아 컨셉과 유사한 면이 있었기에.
“이틀 안에 끝내야지.”
예정된 촬영 기간은 빠르면 이틀, 늦으면 삼일 중이었기에.
나는 자신만만한 상태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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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명 패션지에, 더불어서 유명한 일본의 포토그래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기보다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패션지 촬영을 한 탓인지 자국 내에서 유명한 편이었다.
실제로 모든 활동들이 일본에 국한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걸 보고 종특이라고 하는 건가.’
어제와는 다른 의미로 열이 날 것 같은 상황에, 애써 심호흡을 하면서 촬영에 집중했다.
“한 번 더.”
원 모어.
그렇게 말하는 포토그래퍼를 보고ㅡ,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다시 카메라 렌즈를 쳐다봤다.
옷 한 벌 가지고 찍는 사진이 몇 백 장.
한 번 더가 대체 몇 번째인지 중간에 한 번 혹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냐, 어떤 포즈를 원하냐 등 많은 질문을 던졌으나
“자연스럽게 해주세요.”
내추럴 플리즈.
차라리 뭐가 잘못됐다면 잘못됐다고 말을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면 되는데.
‘한 번 촬영하기를 이렇게 시간을 오래 쓸 줄이야.’
들고 있는 카메라 밑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까만 수염이 거슬렸다. 물론 촬영이 짧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지.
같은 옷이더라도 계속해서 찍다 보면 더 좋은 게 건져지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거라면, 군말 없이 했겠지만
‘이런 소통이 단절된 촬영은.’
모델 입장에서 지칠 뿐이었다. 하다못해 좋다는 말까지 안 해버리니까.
“오케이! 넥스트!”
“흐.”
다음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먼저 헤어메이크업을 수정하러 자리에 앉았다.
내가 촬영하는 동안 예진이 음료를 사 와서 그걸로 수혈을 해줬고, 조용히 내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말을 건넸다.
“원래 이렇게 촬영 시간이 긴가요?”
“아 네! 오늘은 그래도 빠르게 끝나는 편이에요.”
이게 빠른 거라니.
내가 일본어를 잘못 알고 있는지 의심을 들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고. 다른 스탭들도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고생길이 훤하네.’
이럴 거면 통역사를 붙여달라고 할 걸 그랬나 보다.
여기는 일본, 그리고 나는 한국 사람.
어떻게든 의사소통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 핸드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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