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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는 법-130화 (130/137)

〈 130화 〉 chapter 128. 백화점 명품관

* * *

확실히 중국은 중국이라고.

겉으로만 봐도 압도적인 크기의 건물이 바로 백화점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역시나 넓은 공간과 함께 대리석 바닥이 우리를 맞이해주었으며

‘마스크 벗어도 되겠지.’

이런 공간이 내게 더 편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사람도 별로 많지 않고, 혼잡스러운 길거리와는 다르게 질서가 있다고 해야 하나.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가방에 넣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배고파요?”

“조금, 근데 이따 먹는 게 나을 거 같아.”

“좋아요. 그러면 먼저 의류 코너 가서 옷 좀 보다가 가죠.”

다행이다.

사실 아까 카페에서 마셨던 음료 때문에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었는데, 옷을 보다 보면 배가 꺼질 테니까.

우리는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이동했다.

올라가면서 층마다 뭐가 있는지 확인했는데 아무래도 여자, 남자 의류 매장 자체가 층이 다른 것 같았고.

“각자 보고 만날까요?”

“무슨 일 생길 줄 알고, 안 돼. 어차피 나 옷 별로 안 살 거니까 남자 거 먼저 보자.”

정색하면서 말하는 예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무슨 일이 생기면 수습해야 하니까.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건 행거에 걸려 있는 옷들이었다. 마네킹이 입은 옷들도 보였지만 그건 전부 별로여서 빠르게 넘겼고.

굳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보이는 옷들을 훑으면서 걸었다.

‘눈이 높아져서 그런가.’

백화점에 있는 옷들이니 어느 정도 괜찮은 것들일 텐데도 불구하고 눈에 차는 게 없었다.

‘다 무난하네.’

하지만 남자 옷 스타일이 정말 다양해서, 내가 주로 입지 않거나 생소한 옷들도 조금씩 보이긴 했다. 브랜드마다 취급하는 옷과 스타일이 달라서 이런 건 참고해 두면 좋으니까.

“이거 너랑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이거요?”

“응. 한 번 써봐.”

내가 멈춰 서지 않고 눈으로만 훑으며 걷고 있자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예진이 어느 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한 모자를 집어 들어서 내게 건네는데

‘누가 봐도 장난치는 표정이잖아?’

아니나 다를까 모자 위에는 곰돌이 귀가 달려 있었다. 이런 걸 백화점에서도 파네.

내가 받지 않자 받으라는 듯 모자를 흔들며 씨익 웃는 예진에 순순히 모자를 받아들여 머리에 썼다.

‘거울은 안 봤는데, 완전 안 어울릴 거 같아.’

오늘 내 옷을 생각하면 이 모자랑은 정말 안 어울릴 게 분명했다.

“여기 봐봐.”

“아 싫어요.”

“오늘 하루 중에 지금이 제일 예뻐.”

“그런 말 해도 안 넘어가거든요? 절 뭘로 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드는 예진에 나는 몸을 휙 돌려버렸다. 뒤로 돈 상태에서 모자를 벗고 다시 앞을 보자 예진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림도 없지.‘

모자를 제자리에 두고 우리는 매장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기면서 눈알을 열심히 굴리고 있는데.

“다 돈 거 같죠?”

“응. 근데 매장은 다 안 들어가 봤잖아.”

“안 들어가 봐도 다 알아요.”

나머지는 별로고 1/3 정도는 괜찮았던 것 같았다.

사야 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건 없어 그냥 가는 게 맞는 거 같고.

“이제 여자 옷 보러 가요.”

“그래.”

다음 층으로 가자 오히려 걷다가 멈춰 서서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평소 예진이 입던 옷 스타일도 알지만 그녀가 집어 드는 옷들을 보면서 정확히 어떤 취향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고.

매번 보는 남자 옷에 비해 여자 옷을 고르는 게 훨씬 더 재밌었다.

“이거는 입으면 상체가 좀 부해 보일 거 같아요. 차라리 핏은 이게 더......”

옷 별로 안 산다더니.

예진은 내가 꼼꼼하게 골라준 옷 대부분을 결제했다. 그중에서 셔츠 한 벌은 내가 선물이라고 사줬고, 덕분에 들고 있는 쇼핑백만 어느새 다섯 개로 늘었다.

“이제 더는 못 사.”

“그래요?”

하긴 이만하면 많이 둘러봤지.

남 옷 골라주는 게 재밌어서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음료는 이미 다 소화된 거 같지만 그렇게 막 배고픈 상태는 아니고.

‘밥이나 먹으러 가야 하나.’

예진을 쳐다보니 조금 지친 기색이 눈에 보였다.

‘아까 얼핏 보니까 꽤 유명한 음식점 이름들이 있던데.’

실패할 바에야 익숙한 음식을 먹는 게 최고다.

머릿속으로 메뉴를 생각하면서 일단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앞에 도착하자 아무 말 없던 예진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한 번 가볼래?”

“...... 명품관이요?”

“응. 너무 내 옷만 산 거 같아서.”

“저도 골라주는 거 재밌었어요.”

하지만 눈은 예진이 가리킨 층에 머물렀다.

익숙한 브랜드들이 나열되어 있는 층, 그러고 보니 백화점 명품관은 가본 적이 한 손에 꼽는 것 같았다,

못 갔다기보다는 안 갔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밥 먹고 저기 들렸다가 돌아갈까요?”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명품관을 갈 생각을 하면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

경비 한 번 삼엄하네.

동시에 화려한 명품관들이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열심히 눈을 돌렸다.

층의 공기부터 다르다고 해야 하나.

음식점이 있는 층에 있다가 오니까 다니는 사람도 훨씬 적어 보이고 무엇보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도 많이 달라졌네.’

이런 환경이 부담스럽다기보다 친숙한 게 느껴졌다.

“어디 가볼래?”

“음...... 셀린느 매장 한 번 가볼까요?”

백화점에 있는 명품관으로는 처음 가본다. 아니 애초에 매장 자체도 몇 번 안 가봤지.

셀린느.

다름 아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 그리고 저번 시즌과 더불어 이번 시즌 패션쇼의 메인 모델을 맡게 된, 굉장히 익숙한 브랜드.

자연스럽게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활짝 웃으면서 중국어로 인사하는 직원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넸고.

착실하게 몸은 옷들이 걸려 있는 쪽으로 향해 눈에 가는 것들로 몇 개 꺼내봤다.

걸려 있는 옷들도 그렇고 처음 보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아는 옷들이라 조금 반갑달까.

하지만 저번 시즌에 내가 입었었던 의상은 여기 없는 것 같았다. 안쪽에 따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하기 힘든 옷이니까.’

쇼에서 입었었던 의상들은 전부 보이지 않았다. 따져보자면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게 많겠지.

그렇게 들어온 지 한 5분 정도 경과했을까.

“손님한테는 이게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요?”

아까 인사를 한 직원이 아닌 다른 직원이 옷 한 벌을 들고 오더니 내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예진과 내 시선은 자동적으로 직원과 손에 들고 있는 옷으로 향했지만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직원이 가져온 옷은 저번 S/S 시즌 때 봤었던 옷 같았다. 평범한 건 아니지만 셀린느의 시그니처가 박혀 있는 특징이 눈에 익다.

하지만 저거보다 더 마음에 드는 S/S 셀린느의 옷들이 전부 내 옷장과 캐리어에 있어서.

오로지 구경할 목적으로 들어온 거였다,

“괜찮습니다. 비슷한 옷이 있어서요.”

정중하게 거절의 의사를 비추자 직원은 알겠다며 들고 있던 옷을 들고 잠시 가더니 이내 다른 옷을 들고 왔다.

‘이건......’

확실히 봤네.

룩북에 있었던 거.

예진을 힐끗 보니 그녀는 잠자코 지켜보기만 있었다.

나는 그래도 옷을 골라온 직원에게 예의상 고맙다고, 예쁘다고 말한 뒤에 직접 보고 싶다는 말을 전했고.

직원은 포기하지 않고 들고 온 옷에 대해 설명했지만 나는 그 설명을 조금 듣다 이내 매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로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데......

“구찌?”

매장 자체가 골드로 치장되어 있는 구찌가 눈에 띄었다.

명품관 특유의 구조상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략 눈에 보일 수밖에 없는데, 여자 둘과 남자 한 명이 안에 있는 게 보였고.

‘오히려 좋아.’

그걸 확인한 나는 직원이 저쪽을 더 신경 써주길 바라면서 예진과 함께 들어갔다.

셀린느와는 달리 구찌의 패션쇼는 저번 시즌에 서지 않아서 처음 보는 옷들이 많았고, 액세서리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이 가디건 예쁜데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레이더망에 얇은 가디건 하나가 걸렸다.

무게감도 괜찮아서 가을까지는 무난하게 입을 수 있을 거 같은데 패턴과 구찌의 화려함이 더해져 결코 평범하다 할 수는 없는 디자인이었다.

내가 그 옷에 관심을 표하자 어느새 우리에게도 직원 한 명이 붙었고.

중국어로 말을 거는 직원에게 영어로 대답하자 직원이 웃으면서 영어로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다른 걸 구경하는 동안 직원은 빠르게 어딘가로 갔다 오더니 내가 아까 관심을 표했던 가디건을 손에 들고 왔다.

“한 치수 크게 입으시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요.”

한 번 입어보라며 내게 내미는 직원에 나는 그 가디건에 팔을 꿰었다.

그러자 직원이 눈썰미가 있는지 딱 떨어지는 길이감이 보였고.

“어때요?”

“잘 어울려.”

예진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걸 보면서 슬쩍 붙어 있던 가격표를 확인했다.

‘...... 비싼데?’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니 약 200만 원 정도의 가디건.

그 돈을 주고 살 가치가 있나?

‘글쎄.’

돈 때문에 못 사는 건 아니었지만 산다고 해서 자주 입을 거 같지 않았다. 애초에 옷장에 이 구찌 가디건 만큼 좋은 것들이 많으니까.

결국 사지 않기로 결정한 나는 가디건을 벗어 직원에게 건네줬다.

“더 둘러보고 올게요.”

내 말에 직원이 차분하게 가디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으나 이미 내 마음은 뜬지 오래였다.

예진과 다음 매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구찌 매장을 벗어나려는데

“hey!”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자동으로 몸을 돌리니 눈이 마주친 건 다름 아닌 먼저 매장에 와 있었던 무리들,

그들 중 여자 한 명이 어눌한 영어 발음으로 말했다.

“저거 내가 살까?”

...... 어쩌라는 거지.

옆에 있는 예진을 보니 그녀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 무리를 보고 있었다.

‘왜 저러는지는 알겠어’

관심 끌려는 거겠지.

안 그래도 오늘 예진이 사람을 쳐내느라 힘든 걸 알았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이랑 안 어울려.”

여자를 빤히 쳐다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한 뒤 예진과 함께 그대로 몸을 돌려 매장을 벗어났다.

나중에 아웃스타 라방할 때 썰이나 풀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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