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chapter 129. 깔끔한 건 촬영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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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이틀 동안 펑크가 난 시간을 알차게 썼다.
첫째 날에는 길거리도 돌아보고, 백화점에도 가보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봤지만 둘째 날에는 호텔에 머물며 다음날 있을 촬영을 대비했고,
그러다 침대에서 영화를 두 편 정도 보긴 했다.
어차피 중국에서의 화보 촬영은 스케일이 크지도, 촬영량이 많지도 않아서 준비해야 할 거라곤 적었으니까.
무엇보다 중국에서의 첫 활동을 시작한다는 거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촬영 날이 되자 예진과 함께 시간에 맞춰 촬영장에 도착했는데.
“잠시만, 내가 물어보고 올게.”
“네.”
촬영장은 화보 촬영으로 한창이었다.
당연히 방금 도착한 내가 아니라 다른 모델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겠다는 예진은 자리를 떴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모델이 촬영하는 걸 지켜봤다.
‘잘하네.’
베테랑으로 보이는 여자 모델.
쉴 새 없이 터지는 셔터음과 남이 촬영하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묘했다.
여자의 촬영을 얼마나 지켜보고 있었을까, 관계자를 찾아 나섰던 예진이 돌아왔고.
“뭐래요?”
“촬영이 조금 밀렸나 봐. 그래도 너 준비 다 하면 저쪽 촬영은 완전히 끝날 거라고 문제는 없을 거래.”
“흐음...... 그래요.”
원래 내 촬영은 그저께와 어제 중으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으니, 오늘 이렇게 겹치게 된 거겠지.
모델로서 대기하는 건 익숙했지만 이런 단독 화보 촬영에서는 기본적으로 대기가 없다.
그래도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바통 터치만 잘해준다면야 불만은 없고.
예진을 말을 듣고 난 뒤 나는 곧장 헤어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로 다가왔으며
간단하게 통성명을 한 다음 본격적인 메이크업에 들어갔다.
‘완전 하얗게 만드네.’
기본 베이스로 내 피부가 하얀 편이긴 하지만 그거에 맞춰서 하얗게 조금 더 하얗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반짝이, 그러니까 글리터를 얼마나 눈에 많이 붙이는지.
“눈이 포인트네요.”
“맞아요. 너무 잘 어울리죠?”
흰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눈 화장은 버건디 섀도우를 활용했다. 거기다 화려한 반짝이까지 붙이니 좋게 말하면 눈이 포인트지만
‘이거 잘못해서 눈에 들어가면 아프겠네.’
혹시 몰라 챙겨온 인공눈물의 존재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거울을 바라봤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내게 준비한 렌즈까지 손수 끼워주면서 열과 성을 다 쏟아부었고, 메이크업이 전부 다 끝나자
‘어디서 본 얼굴인데.’
거울 속의 나는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화장법이 중요하다지만 중국의 어느 광고판에 붙어 있을 법도 하고.
헤어는 금방 끝났다.
준비되어 있는 포멀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어떤 컨셉인지 더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고, 스타일리스트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촬영은 끝났나요?”
“네. 방금 끝났어요.”
준비를 끝마치고 촬영장으로 진입하니 정말 방금 촬영이 끝났는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중에서는 단연 화보 모델이었던 여자의 존재가 튀었고.
나 또한 이 공간에서 눈에 안 띌 수가 없는 존재였으나 여자 모델과 포토그래퍼가 대화하는 걸 보면서 촬영장 한곳에 자리해 대기했다.
‘누가 말이라도 해주겠지.’
다음 촬영이 나인 이상 어떻게든 스탭이나 누구든 내게 진행 상황을 알려줄 것이기에.
그렇게 멀뚱히 서 있는데, 순간 포토그래퍼와 웃으면서 대화하던 여자 모델과 눈이 마주쳤다.
“와.”
그녀의 입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동시에 여자 모델의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까지 같이 내게로 쏠렸고.
‘이걸 무시할 수도 없으니까.’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조용히 대기할 생각이었는데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나는 웃으면서 그쪽으로 다가간 뒤 여자에게 작게 인사했고, 포토그래퍼와 연출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깍듯이 인사했다.
혹시 몰라 그 근처에 있는 스탭들과는 눈을 마주치면서 작게 고갯짓으로 인사했고.
‘이 정도면 인사봇이네.’
내가 등장함으로써 대화의 주제는 완전히 끊겼는지 포토그래퍼는 내게 턱하고 말을 꺼냈다.
“Are You Ready?”
“Yes,”
그 말을 끝으로 포토그래퍼는 앞서 촬영에 썼던 소품들을 다 옮기도록 지시했다.
‘바로 촬영에 들어갈 생각인 건가?’
곧이어 들어오는 내 촬영에 동반될 쇼파가 자리 잡는 걸 보면서 알아차렸다.
‘바로 들어가려나 보네.’
앞에 있던 촬영이 얼마나 이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의 휴식도 취하지 않고 촬영에 들어가는 건 조금 의외였다.
‘확실히 젊은 게 좋지.’
일본에서는 노장의 포토그래퍼가 촬영해 준 반면에 중국의 포토그래퍼는 육안으로만 봐도 젊어 보였다.
나야 어떻게든 촬영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면 나쁠 거야 없으니까.
내 옆에 있던 여자 모델은 그런 포토그래퍼와 뒤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몇 마디 더 나누더니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서서 눈치를 보다가 스탭이 주는 사인에 촬영장 쇼파 쪽으로 향했고.
‘시작이 깔끔하네.’
카메라를 드는 포토그래퍼를 보면서, 펑크가 나서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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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빨리 끝나면 좋다는 말 취소.
‘이렇게 빨리 끝나면 오히려 더 찝찝하기만 해.’
연신 좋다는 리액션과 함께 속전속결로 촬영이 끝나버렸다.
아까 맨 처음 촬영장에 들어왔을 때 봤었던 촬영에서는 충분한 의사소통이 오가고, 촬영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전부 중국어여서 못 알아먹긴 했다만.’
되려 좋다는 말이 성의가 없게 들렸다. 쉬지 않고 촬영을 이어갔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결과물을 보아하니......
마음에 안 들어.
따지자면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다지 성에 차지는 않았다.
쇼파를 이용해서 그런지 카메라에 잡히는 얼굴의 각도나 구도 같은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고, 이에 대해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대로 다음 촬영으로 넘어갈 순 없기에, 나는 모니터링을 하면서 일일이 피드백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 약간 아쉽네요. 여기서는 옷이 잘 안 보인 거 같고 또 여기서는 고개를 조금만 더 내렸으면.......”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쉬운 단어로 골라 말했으나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게 보였다.
‘이거 힘드네.’
다음부터는 통역사나 제2외국어가 가능한 사람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나.
또다시 부딪힌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핸드폰을 들고 와 번역기라도 돌려야 하나 생각하는데.
“제가 도와줄까요?”
어디선가 불쑥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우리 사이로 사람 한 명이 끼어들었고.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앞서 촬영했었던 여자 모델.
옷을 갈아입고 왔는지 완전한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녀는 아까 내 말을 들었는지 포토그래퍼에게 중국어로 전달하는 것처럼 보였고.
포토그래퍼의 표정이 조금 딱딱해지더니 중국어로 여자에게 무언가 말했다.
“알겠다고 다시 촬영해 보자고 그러는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쉬운걸.
그녀에게도, 포토그래퍼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다시 촬영을 재개했다.
‘역시 사람은 말을 해야 한다니까.’
재촬영에 들어가자 훨씬 더 나아진 듯한 포토그래퍼의 촬영 태도가 느껴졌다. 손짓이나 짧은 영어 지시를 캐치하면서 촬영에 들어갔고.
그렇게 진행된 촬영의 결과물은 확실히 아까보다 마음에 들었다.
“잘 나왔네요.”
아직 가지 않은 여자 모델이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통역을 해줄 때도 느낀 거지만
‘영어를 참 잘하네.’
중국에 와서 들은 가장 유창한 영어 발음이었다.
나 같으면 내 촬영이 끝나자마자 갔을 텐데, 이렇게 자리에 남아 통역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는 게 고마웠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다음 의상으로 갈아입기 위해 촬영장을 잠시 떠났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여자 모델이 내 뒤를 따라오더니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이요.”
“몇 살이에요?”
“19살, 그쪽은 나이가 어떻게 되죠?”
“어리네. 22살이에요.”
내가 메이크업을 수정 받는 동안 여자 모델은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왔다.
일부러 예진이 내게 필요한 게 있냐고 말을 걸어오거나 마실 걸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은걸.’
통성명까지 마친 여자 모델과의 대화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촬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고, 내게 호의적이었으니까.
두 번째 촬영 준비를 완전히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때를 기다렸는지 여자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수고해~”
“조심히 가.”
중국이 아니었더라면 아웃스타그램 맞팔까지는 했을 텐데,
우리는 연락처 교환이나 SNS 공유 같은 거 없이 깔끔하게 인사했다. 나는 촬영장으로 향하는데, 그녀는 퇴근하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째 나도 빨리 끝내고 싶었지만.
나는 다시금 촬영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외쳤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 촬영 소품은 의자.
여자 모델이 떠난 뒤로도 촬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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