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32화 (132/137)

〈 132화 〉 chapter 130. 너튜브의 미래

* * *

벌써 한국을 뜬 지 두 달이 흘렀다.

‘얼마 전에 화보 공개됐다는데.’

일본과 중국에서 찍었었던 화보들이 전부 공개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어떤 반응인지까지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

이제 F/W 해외 패션위크가 열리는 9월까지 남은 시간을 불과 1개월이었으니까.

나는 주력인 파리와 밀라노를 오가면서 IMG 에이전시와 리디아 에이전시를 전전했다.

프로필 사진도 찍어야 했고, 브랜드 룩북과 화보 촬영을 하면서 여러 피팅에 동반했으니.

사실 이것만 해도 굉장히 벅찬 스케줄이었다. 무려 이번 F/W 시즌에 계약한 브랜드 수가 총 30여 개인 걸 생각하면 당연한 거지만.

패션쇼 같은 경우, 서지 않는 브랜드들도 몇 개 있었으나 그 외 패션쇼들은 전부 선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게 다 뉴욕 패션위크 때문에 그래.”

저번 시즌과 이번 시즌이 확연하게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뉴욕 패션위크다.

이번에는 뉴욕 패션위크에서도 활약할 예정이었기에, 이렇게 스케줄이 급증해버렸으니까.

‘딱 올해까지만이야.’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내 몸값을 올릴 생각이었다.

이미 셀린느의 메인 모델을 두 시즌 연속으로 하면서 독점 얘기가 나오고 있고.

그 외 다른 명품 브랜드들에게서도 독점 계약을 제안받았다. 하지만 아직은 전성기도 아닐뿐더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디서 멈춰 서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한 브랜드의 상징으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긴 하지만, 나는 여러 실적들과 함께 내 몸값을 높이고 싶었다.

다음 시즌인 내년부터는 성인이 됨과 동시에 노선을 확실하게 정해야 할 테니.

‘그건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당장 내 눈앞에 놓인 것들을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로 만들어야 했다.

일단 1순위로는 저번에 캔슬 당했었던 루이비통 쇼와 처음 서보는 프라다 쇼. 그리고 이번에 IMG 에이전시를 통해서 서게 된 샤넬 패션쇼까지.

명품 브랜드들 중에서 톱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들과의 패션쇼.

성공적인 발판으로 만들기에 아주 최적이다.

“저 내일 몇 시에 출발해야 돼요?”

“적어도 8시에는 출발해야 돼.”

“스케줄 다 끝나면 몇 시죠?”

“한 9시?”

“......”

“차에서 자.”

예진을 원망스럽게 쳐다봤지만 그녀에게는 아무 타격도 없었다.

‘차에서 자는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아침에 이불 밖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호텔이 아닌, IMG 에이전시에서 따로 마련해 준 숙소 덕분에 안락함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그 숙소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카메라가 있으니 확실히 낯서네요.”

“불편하면 꺼도 돼.”

“아뇨 딱히...... 나중에 거슬리면 끌게요.”

지금도 조금 거슬리기는 하다만.

그냥 눈에 보이니까 신경 쓰이는 정도였다. 카메라 자체는 원체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이 내가 생활하는 공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건 또 다르니까.

데마시아가 고민 끝에 결정한 내 너튜브의 방향성에 대한 결과다.

이미지를 해치치 않는 선에서 너튜브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모델 우연에 대한 홍보 수단으로 사용, 실제로 다른 에이전시들과도 상의한 결과 전부 운영하자고 했다나.

그래서 이번 촬영은 숙소를 제공한 IMG 에이전시가 맡아서 했다.

첫 영상은 이미 팬미팅 춤 영상이 올라가 있어서 내릴 순 없다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반응이 폭발적이었으니까.

정식으로 올라갈 첫 영상을 어떤 걸로 찍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저 들어와 있는 시간도 별로 안 되는데, 쓸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찍잖아.”

“아 맞다.”

예진이 찍는다고는 했지만 막상 촬영장에 가면 정신이 없어서 너튜브 촬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올라갈 영상이 오로지 타인의 시선이라는 연출로 찍히기 때문에, 내 말 대신 음악이 깔릴 예정이라 내가 신경 쓸 것도 딱히 없었고.

‘이게 과연 먹힐까.’

그저 일상을 담은 영상이겠지만, 괜히 브이로그가 망하지 않고 이어지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보고.

“그럼 난 이제 갈게.”

“네. 내일 봐요.”

예진이 나가자 나는 숙소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핸드폰을 조금 만지다 고개를 드니, 장식장 위에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와 눈이 마주쳐버렸고.

나는 작은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캐톡ㅡ

‘아, 팩하라고 했었지.’

예진으로부터 팩하고 자라는 캐톡이 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에 넣어놨던 팩 중 하나를 꺼냈다.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팩을 붙이고 나왔고.

최근 들어 정말 관리를 빡세게 하고 있어서 촬영 컨디션에는 기복이 없었지만, 내 컨디션에는 기복이 있었기에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

“먹은 게 없는데 움직이려니까 에너지 소모가 장난 아냐.”

건강을 알약 몇 개로 대체한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전부 커버는 못해도.’

아침마다 챙겨 먹는 비타민과 영양제의 개수를 생각하면, 만약 이게 없었을 경우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갔다.

나도 아마 병원 몇 번 실려가지 않았을까.

모델 중에서는 거식증에 걸리는 사람들도 많고,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린 이들도 있었기에 더욱더 유념해야 했다.

그나저나 내일 있을 촬영은......

‘생로랑 촬영이네.’

드물게 패션 화보 촬영이 아닌 뷰티 화보 촬영.

옷 갈아입는 것도 지치지만 메이크업 받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촬영 시간 대비 준비하는 게 더 시간을 잡아먹었다.

한 번 찍을 때마다 화장품 바꾸면서 얼굴 화장을 전부 다 갈아엎어야 했으니까.

“시작도 안 했는데 질리네.”

뭐 그래도 로케이션 촬영 아닌 게 어딘가.

야외 촬영을 하면서 실내 촬영의 절실함을 느끼고 있었다. 로케이션 촬영은 2배로 체력이 쪽쪽 빨리는 느낌이라서.

그렇게 다음날, 생로랑 촬영을 마치고 피팅까지 한 후에 돌아왔을 땐

“...... 아 죽겠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숙소에 있는 카메라들마저도 거슬렸고.

“카메라 치울까?”

예진이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건 모든 신인들의 공통사다.

아니, 신인이도 그렇긴 하겠지만.

‘우연은 괴물 신인이지.’

기본이 몇 년, 몇 십 년의 경력들을 가지고 있는 패션계에서 우연을 높이 사고 어린 나이에 그런 성공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남자 모델의 수가 적다곤 하지만 우연 자체가 평범하지 않아서.

아무튼 간에, 너튜브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 하나의 가능성을 찾은 이들이 추진한 덕에 우연의 너튜브 계정은 운영하기로 했다.

비교적 해외 패션위크에 접어든 단계라 한국에 있는 데마시아의 입김이 얕아질 수밖에 없었지만.

무려 경쟁 상대가 리디아 에이전시, IMG 에이전시였기에 투지가 끓어오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연의 너튜브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에이전시와 하면서 조율해갔고.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우연의 마더 에이전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실행에 옮겼다.

이제는 우연을 따로 담당하는 직원들도 생겼으니까.

“여기 이 부분, 좀 다른 디자인으로 바꿔와 봐.”

“네......”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새로운 직원을 뽑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직원들을 뽑아 이루어진 것이라는 거.

저번 팬미팅 때 우연의 굿즈 기획을 맡은 직원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편승됐다.

‘내 팔자에 어저다가 디자인 컨펌을 받고 있는 거지.’

호기롭게 맡은 기획이었으나 디자인 컨펌을 받기 시작하면서 두통을 호소하는 직원이었다.

“바탕색을...... 뭘로 해야 되지.”

그놈의 신비주의 컨셉.

딱 하나 확정된 게 있다면 잔잔하고 수수한 느낌으로 영상을 만들고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거였는데.

그게 말이 쉽지.

우연의 SNS를 보면 신비주의와는 조금 거리가 멀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그렇기 때문에 너튜브는 더 색다르게 가야 한다면서 밀어붙였다.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해야지.

결국 최종 승인이 나기까지 직원은 총 5개의 기획안을 제출해야 했고, 그 기획안은 데마시아를 더불어 다른 에이전시들로부터의 긍정을 받고 나서야 확정이 났다.

그러자 아직 영상이 없어 영상을 제외한 다른 너튜브 관련 일들을 하나둘씩 마무리해갔고.

우연이 한국에 없어, 다른 일들은 전부 해외에 있는 다른 에이전시 측에서 하고 있었기에 우연 담당의 이들은 알게 모르게 게으름을 피웠다.

"제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그렇게 약 몇 주간, 월급 루팡을 감행하다 이내 쏟아지는 일에 정신을 못 차리고 허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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